CEIBS Case Study - 상하이차의 쌍용차 인수 및 실패

준비 안 된 해외 M&A 5000억원 날리고 신뢰마저 잃다

125호 (2013년 3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글은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CEIBS)의 케이스스터디 ‘Shanghai Automotive and Ssangyong Motor - A Tale of Two Dragons (C)’(Asian Case Research Junrnal Vol.16,No.02)를 발췌 번역한 것입니다.

 

 

본문

2008년이 끝나고 새해가 며칠 남지 않은 연말의 어느 날. 2007 11월부터 SAIC(Shanghai Auto motive Industry Corporation)의 국제 비즈니스를 책임져 온 장하이타오(張海濤)1 는 인삼차를 홀짝이며 고통스럽게 돌아가는 상황을 돌이켜봤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장하이타오는 쌍용자동차의 공동 CEO에서 지금의 자리로 승진했고 쌍용차가 흑자전환에 성공하면서 한 해를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2007년 쌍용차는 흑자전환을 자축하며 7185명에 이르는 모든 직원들에게 특별 보너스로 100만 원을 지급했다.2  쌍용차 경영진은 자사가 그해 여름에 노조와의 충돌 없이 임금 협상을 성공적으로 끝낸 한국의 유일한 자동차 회사라며 자축하기도 했다. 무려 7주 동안 지속된 노조 파업으로 3억 달러어치의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했던 2006년의 상황과는 정반대라 할 만큼 긍정적이었다.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SUV에 치중돼 있던 포트폴리오를 다른 차종으로 확대하려는 쌍용차의 시도도 상당한 진척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쌍용차와 SAIC의 협력 개발 프로젝트에 배치받은 후 불신과 반대로 일관했던 쌍용차 엔지니어들의 태도 역시 온화해졌다.

 

하지만 불과 1년 후 장하이타오와 SAIC는 쌍용차에서 이전과는 매우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8년 한 해 동안 무려 710억 원(5700만 달러)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했지만 한국 정부는 쌍용차에 전혀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쌍용차는 손실을 메우기 위해 비용 절감 방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노조는 일자리나 임금과 관련된 어떤 손해도 감수하려 들지 않았다. 노조가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쌍용차 경영진은 급기야 2008 12월에 지불해야 할 290억 원의 임금 지불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임금 지불 유예는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SAIC가 급여와 기타 운영비를 지불할 수 있을 정도의 운전자본을 투입한다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운전자본을 투입한다 하더라도 임시방편 이상의 역할은 할 수 없을 것이 뻔했다. 장하이타오에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옵션만이 남았다.

 

1) 쌍용차 채권단의 동의를 받아 워크아웃을 실시하는 방안. 단 이 방안을 실행에 옮기려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고 노조로부터 상당한 수준의 양보를 이끌어내야 한다.

2) 법원에 보호(법정관리)를 신청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방안. 이 방안을 택할 경우 SAIC가 경영권을 빼앗길 위험이 있다.

3) 매수자를 찾아 쌍용차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

 

2006: 장기 파업의 여파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2005 1월에 57200만 달러를 내고 채권단으로부터 쌍용차 지분 48.9%를 사들인 지 1년이 흐른 후 SAIC는 한국의 강성 노조를 경험했다. 2006 7월에는 급기야 쌍용차 노조가 7주간 파업에 돌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쌍용차는 노조의 장기 파업으로 인해 약 3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국내 판매와 수출이 대폭 하락했으며 쌍용차는 설립 이후 처음으로 한국 자동차 업계 5위로 추락했다. 생산 대수 기준으로 르노삼성에도 밀리는 신세가 돼 버렸다.

 

극적으로 노사 간의 최종 합의가 이뤄지긴 했지만 해고할 수 있는 직원의 숫자는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최종 합의는 당시 SAIC의 국제 비즈니스 총괄 관리 및 쌍용차 감독을 맡고 있었던 필립 머터우(Phillip Murtaugh, GM에서 아시아 비즈니스 총책임자를 지낸 인물)가 쌍용차의 효율성 개선을 위해 다양한 변화를 시행하는 토대가 됐다. 머터우가 채택한 변화 방안 중 하나는 쌍용차의 핵심 공장인 평택 공장의 자동차 생산량을 10% 줄여 연간 자동차 생산 대수를 20만 대로 조정하는 것이었다.3 머터우는 경유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당시 쌍용차가 생산 중이던 SUV 모델 시장이 둔화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쌍용차가 새로운 고급 세단, 고급 SUV, 소형 SUV를 선보여야 할 때가 됐다고 선언했다.4

 

쌍용차의 판매 영업부도 구조조정 대상이었다. 한국 시장 내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4명의 최고위급 관리자도 교체했다. GM코리아 김근탁 사장이 글로벌 판매/마케팅 책임자로 취임했다.5  2006년 한 해 동안 한국 시장 내 판매가 24% 하락하고 수출이 4% 감소했지만 쌍용차 공동 CEO 최형탁은 중요한 변화가 제대로 실시되기만 하면 2007년에는 매출이 20%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6

 

 

2007: 흑자 전환

2007년 초, 머터우는 쌍용차 장기 성장 계획을 공개했다. 머터우가 공개한 계획에 의하면 쌍용차의 목표는 2011년까지 자동차 판매 대수를 2006년 대비 3배 수준인 33만 대로 늘려 6조 원(64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SUV 생산업체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포트폴리오에 새로운 세단 모델을 추가해야만 했다. 당시 SAIC는 중국과 한국, 유럽에 있는 R&D팀과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2005년에 인수한 브리티시 로버(British Rover) 75 모델 및 25 모델 플랫폼을 기반으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SAIC는 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최초의 자체 브랜드 로위 750(Roewe 750) 개발을 끝낸 후 2006 10월에 중국에서 첫선을 보이기도 했다.7

 

2007년 중순이 되자 쌍용차는 고비를 넘긴 것처럼 보였고 다음 글에서 엿볼 수 있듯이 장하이타오(당시 SAIC의 발령으로 쌍용차의 공동 CEO를 지내고 있었다)도 꽤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는 약 2년 동안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제는 누구에게든 한국팀과 중국팀의 공동 노력 덕에 쌍용차가 암흑기를 벗어나 건강하게 발전해나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신뢰와 존중으로 이뤄진 견실한 기초 덕에 우리는 협력하고 서로 힘을 모아 쌍용차를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회사로 만들 수 있게 됐다.

 

쌍용차가 중국에 진출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우리는 지금 현지 생산을 통해 빠르게 성장 중인 중국 시장에 쌍용차를 참여시키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SAIC와 쌍용차는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동시에 이윤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동차를 시장에 내놓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생산 라인, 기술, 품질, 비용 구조, 가격 등 경쟁력과 관련된 모든 측면을 강화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노조와의 긴장 관계를 완화하는 것이다. 그동안 노조가 쌍용차의 발전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닌 긍정적인 원동력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중국과 한국을 넘나드는 교류를 실현하기 위해 상호 신뢰와 조화가 밑바탕이 되는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8

 

 

머터우가 SAIC를 떠나 크라이슬러(Chrysler)의 아시아-태평양 법인 책임자가 되고 란칭송(藍靑松)이 쌍용차의 신임 공동 CEO 자리에 앉은 후 장하이타오는 2007 11월에 SAIC의 글로벌 비즈니스 총괄 책임자로 승진했다. 장하이타오는 쌍용차의 발전을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SAIC와 쌍용차의 발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설명했다.

 

향후 4∼5년 내에 중국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한국으로 수출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한국 소비자들은 벤츠(Benz) BMW 같은 고급 브랜드만 원한다. 한국 시장에서는 미국에서 수입된 자동차도 맥을 추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산 자동차가 어떻게 더 나은 결과를 낼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지금 5개의 플랫폼을 개발하고 한국 시장을 공략하기에 적합한 중형 자동차와 SUV를 도입하기 위한 계획을 갖고 있다. 그전까지는 오직 한국 자동차를 판매하는 데만 주력할 것이다.

 

쌍용차의 역할은 SAIC가 중국에서 시장점유율을 늘릴 수 있도록 돕는 데 국한돼 있지 않다. 한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우리가 마련한 장기 전략 가운데는 내년에 체어맨 W200 세단을 출시하고 매년 새로운 체어맨 모델을 하나씩 선보이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우리는 2011년까지 쌍용차가 6조 원(64억 달러)이 넘는 판매를 달성하고 한국에서 세 번째로 큰 자동차 회사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한다9

 

2008: 악화

쌍용차가 2007년에 흑자전환에 성공하자 모든 직원들은 회사의 미래를 낙관했다. 2008 3, 쌍용차는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S-클래스, BMW 7-시리즈, 아우디(Audi) A8 10 등과 경쟁하기 위해 고급 세단 체어맨 W를 출시했다. 당시 쌍용차는 한국에서 생산된 자동차 중 최고가인 1억 원(107000달러)의 가격을 책정했다. 2008 4, 공동 CEO 최형탁은 현대자동차가 판매하는 대중적인 자동차 모델 아반떼와 경쟁하기 위해 쌍용차가 오리지널 로버 디자인을 활용해 SAIC가 출시한 로위 550과 유사한 소형 자동차 모델을 한국 시장에 선보일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11

 

하지만 2008 1월부터 5월까지 경유 가격이 51%, 휘발유 가격이 31% 급증하면서 쌍용차의 소형차 생산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쌍용차의 경우 디젤 SUV 차량이 전체 생산 차량의 80%를 차지했다.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보다 좀 더 가파르게 상승한 탓에 쌍용차는 경쟁업체들보다 한층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12 수요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 쌍용차는 디젤 엔진 SUV 모델 중 렉스턴과 액티언 생산을 중단했다. 고급 세단 시장은 고유가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근거로 쌍용차는 휘발유 엔진을 장착한 체어맨 W의 한국 시장 판매량이 13000, 해외 수출 물량이 1만 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2008 1분기에 총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19% 하락했고 116억 원(1240만 달러)의 이윤을 달성한 2007년과는 대조적으로 2008년에는 340억 원(36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13

 

 

 

 

 

쌍용차의 저조한 실적은 한국 자동차 업계에서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 및 기아의 실적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현대와 기아의 판매는 같은 기간 동안 12% 증가했으며 양사의 시장점유율 합계는 70%에서 73%로 늘어났다. 휘발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엔진이 경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엔진에 비해 비용 우위가 있었을 뿐 아니라 2008년 상반기에 좀 더 많은 신모델을 선보인 것이 현대와 기아의 실적 강화에 도움이 됐다. 연비가 우수한 소형차를 공략한 GM대우의 판매도 증가했다.

 

2008 6월이 되자 쌍용차의 한국 시장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68% 폭락했으며 수출은 17% 감소했다. 체어맨 판매는 늘어났으나 쌍용차의 주력 제품인 SUV의 판매 부진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8년 내내 이런 추세가 지속됐고 한국의 5대 자동차 업체 중 쌍용차의 판매 및 시장점유율 하락세가 가장 두드러졌다. 대조적으로 현대와 기아의 강세는 지속됐다. 두 회사 모두 새로운 모델을 출시했고 그 결과 판매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1%, 4% 증가했으며 양사의 시장점유율이 모두 늘어났다.14

 

SAIC가 불법으로 쌍용차의 하이브리드 디젤 기술을 국외로 빼돌렸다는 의혹 역시 쌍용차를 괴롭혔다. 쌍용차가 하이브리드 디젤이라는 민감한 기술을 국외로 빼돌려 SAIC 측에 넘겼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2007 1월 이후 줄곧 공식적인 수사가 지속됐다. 2008 74,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증거를 찾기 위해 20명의 조사관을 쌍용차로 파견했다. 조사관들은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와 각종 문서를 압수하는 등 평택에 위치한 연구 센터와 본사를 집중적으로 뒤졌다. 조사관들이 찾아낸 각종 근거를 볼 때 관련 기술 문서가 이미 SAIC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됐다. 수사관들은 일반적인 기술은 이전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하이브리드 디젤 기술 이전은 법적인 문제가 된다고 주장했다. SAIC는 피인수 기업으로부터 기술을 넘겨받는 것이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어쨌건 쌍용차에서 SAIC로 기술이 이전된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15

 

위와 같은 일련의 상황으로 쌍용차의 입지는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8년 가을에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쌍용차에 치명타를 안겼다. 금융위기는 전 세계를 뒤흔들었지만 한국 시장이 특히 큰 피해를 입었다. 코스피지수가 무려 51%나 폭락했을 정도다. (비교를 위해서 설명하자면 아시아 외환위기가 닥쳤던 1997∼1998년에 코스피는 42% 하락했다.) 뿐만 아니라 원·달러 환율 역시 28%나 하락해 외환위기 때보다 큰 낙폭을 기록했다. 2008 2분기에 0.8%를 기록했던 경제 성장률 역시 0.6%로 둔화됐고, 소비 지출이 줄어들었으며, 수출 역시 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고, 일자리 증가율도 대폭 줄어들었다. 당연히 자동차 판매도 둔화됐다. 모든 국내 자동차 회사의 판매가 줄어들었지만(전년 동기 대비 8.6% 감소) 쌍용차의 판매가 특히 큰 폭(63%)으로 하락했다.16

 

 

 

 

대응

한국의 자동차 업계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큰 세계적인 불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생산 감소에 돌입했다. 예컨대, 현대자동차는 해외 공장의 생산 물량을 줄였으며 GM대우는 한국에 위치한 3개의 공장에서 2주 동안 생산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현대차는 관리 직급 정리 해고 계획을 발표했고 GM대우는 2009년 채용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쌍용차 역시 불황에 대처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쌍용차는 비용 절감을 위해 계약직 직원들에게 희망 퇴직을 권고하고 사무직 직원들에게 휴직을 권했다.17  2008 12월에는 주택지원금, 학자금 보조금 등과 같은 복리후생이 중단됐다.18  2008년에는 13만 대였던 연간 생산 목표 역시 2009년에는 9만 대로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쌍용차 경영진은 세계 경제 환경이 상당 수준 개선되지 않는다면 2010년의 생산목표를 추가적으로 낮춰 잡아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19  쌍용차는 2008년에 400억 원(3200만 달러)을 받고 평택 자동차 공장 부지 절반(16만㎡)을 매각했지만 자금난 해소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아 구로동에 위치한 사무용 부지를 매각하는 방안도 고려했다. 쌍용차는 판매 증진을 위해 렉스턴, 카이런, 액티언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다시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전체 자동차 구매 금액 중 최대 7%를 차지하는 자동차 취득·등록세도 대신 내주었다.20

 

쌍용차는 2009 9월에 출시할 예정이었던 신형 SUV(C200) 모델 하나를 제외한 모든 개발 프로젝트를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쌍용차 R&D 센터에서 일하는 한 관리자는 이 같은 활동이 R&D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한동안은 SAIC의 중형 차량 개발에 모든 노력을 쏟아부을 것이다. 쌍용차의 자체 프로젝트는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21

 

지급불능 위기와 대립

쌍용차는 SAIC 측에 긴급 운영자금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SAIC는 모든 중국인 경영진의 사퇴를 주장하는 노조의 요구가 부당하다며 쌍용차의 요구를 거부했다. 경영진은 별다른 의지를 내보이지 않은 채 3주간 모든 공장에서 생산 활동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2008 1212, 경영진은 조직 구조조정을 선언한 후 국내 비즈니스 사업부와 해외 비즈니스 사업부, 서비스 사업부를 통합하고 10여 명의 경영진을 해고했다. 구조조정이 일단락된 후 쌍용차 경영진은 사내 부서를 중점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또 한 차례의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22

 

경영진의 대처에 불만을 느낀 쌍용차 노조는 1213일에 중국인 경영진의 사퇴를 요구하며 중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1214, 쌍용차 노조는 평택공장 앞에 모여 중국인들이 쌍용차의 핵심 기술을 SAIC에 넘겼다며 이들을 체포할 것을 요구했다. 노조는 SAIC 2005년에 내건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으며 쌍용차의 추가적인 기술 개발에 투자해 쌍용차의 부활을 돕기는커녕 쌍용차의 핵심 기술만 뽑아갔다고 비난했다.23

 

쌍용차 내 중국 임직원들은 노조가 중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중국인들의 체포를 요구하는 바람에 쌍용차 사태가 중국에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노조의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쌍용차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시각을 한층 냉담하게 만들었다. 중국 정부는 쌍용차가 중국 측으로부터 그 어떤 재정 지원도 받을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중국 측은 해외기업에 특별한 혜택을 전혀 주지 않는 한국 정부의 정책, 분할 납부가 매우 힘든 환경 등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24

 

지식경제부는 금융위기 대처 방안의 일환으로 정부가 신용 경색, 판매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동차 제조업체에 도움을 줄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지식경제부 산하의 우체국이 채권, 기업어음 등을 사들여 최대 43000억 원(33억 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지원할 것으로 예상됐다. 1226, SAIC가 맨 처음 쌍용차를 인수했을 당시 쌍용차의 공동 CEO를 지냈던 인물이자 SAIC의 이사인 장쯔웨이(曾志偉)가 지식경제부 임채민 차관을 만나 한국 정부가 쌍용차에 재정 지원해 줄 것을 직접 요청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별다른 소득 없이 마무리됐다.25

 

SAIC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쌍용차를 회생시키기 위해 전체 직원 중 절반을 해고하는 등 급격한 구조조정을 시행하는 대가로 한국 정부와 은행 측에 자금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쌍용차의 주채권은행이었던 산업은행은 이미 쌍용차에 2300억 원(17500만 달러)을 빌려줬으나 그 외 다른 국내 은행들은 쌍용차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26  하지만 이번에는 산업은행도 SAIC 측에서 먼저 쌍용차에 3200억 원(24400만 달러)을 투입하지 않으면 신규 대출이 불가하다며 대출을 거부했다. 산업은행은 SAIC가 기술을 이전받은 대가로 쌍용차에 1200억 원을 지불해야 하며 SAIC가 중국은행(Bank of China) 및 중국공상은행(Industrial and Commercial Bank of China)과 체결한 크레디트 라인 계약을 근거로 1000억 원을 끌어올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쌍용차가 파산 위기를 맞이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 찬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SAIC는 노조가 구조조정 방안을 거부하면 1월 초나 중순경 쌍용차에서 손을 떼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정장선 민주당(지금의 민주통합당) 의원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우리는 오늘 국회에서 SAIC가 공동 CEO 최형탁을 비롯한 쌍용차 경영진과 대화를 나누던 중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SAIC의 결정은 충격적이고 우리나라의 경제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매우 심각한 문제다. 정부와 협력해 활용 가능한 모든 구제방안을 동원할 생각이다.27

 

하지만 지식경제부 관련자는 직접적으로 개입할 의사가 없다는 정부의 뜻을 전달했다.

 

SAIC와 쌍용차의 노사가 협력과 양보를 통해 생존할 방법을 찾는 것이 다른 어떤 방법보다 우선시돼야 한다.28

 

하지만 날이 갈수록 쌍용차 노조와 SAIC의 입장이 더욱 확고해지고 있었던 탓에 장하이타오는 SAIC와 노조가 쌍용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합의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SAIC가 쌍용차의 운명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은 채 SAIC의 이익을 위해 쌍용차의 기술을 얻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는 노조 지도부의 원색적인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SAIC와 노조의 관계는 개선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것처럼 보였다.

 

쌍용차 R&D 직원들은 SAIC 2005 1월에 쌍용차를 인수한 직후부터 쌍용차가 개발한 기술을 이전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예컨대, SAIC는 체어맨 엔진을 생산하는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해 4∼5개 차량 모델의 청사진을 입수하려 했다. 뿐만 아니라 SAIC의 쌍용차 인수 직후 상당수의 쌍용차 엔지니어들이 중국으로 발령받아 중국 엔지니어들을 가르쳤다. 당시 쌍용차 엔지니어들이 중국으로 대거 발령을 받은 탓에 한국 시장과 관련된 여러 프로젝트가 취소되거나 지연됐다. 쌍용차의 어느 경영자는 “300명의 핵심 엔지니어 중 50∼60명이 중국으로 발령받아 SAIC를 위해 개발 업무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한국 시장에 내놓을 신모델을 개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이야기했다.29

 

 

 

다음 행보

장하이타오를 비롯한 SAIC 경영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서둘러 결정해야 했다. 쌍용차는 비즈니스를 이어나가기 위해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SAIC가 택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대가로 쌍용차가 필요로 하는 현금을 제공하겠다고 협상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SAIC는 단기간 내에 밀린 임금을 지불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돈을 제공할 수도 있었다. SAIC는 노조가 전체 직원의 약 25%에 해당하는 약 2000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데 동의하면 2600억 원(2억 달러)을 투자하겠다는 방안도 내놓았다. 하지만 이 방안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았다. 만약 2600억 원을 투자한다고 해도 쌍용차의 운영 활동을 6개월 이상 지속하기는 힘들 가능성이 컸다.

 

SAIC가 택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안은 산업은행과 한국 정부에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대가로 신규 자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협상을 시도하면 산업은행과 한국 정부가 SAIC 역시 중국에서 상당한 자금을 끌어와야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컸다. 당시 한국 측 관계자 상당수가 쌍용차가 성장할 수 있도록 12000억 원(13억 달러)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덕에 SAIC가 쌍용차 인수에 성공했다는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었다. SAIC는 계속해서 언론 보도를 부인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워크아웃과 구조조정 외에도 SAIC가 택할 수 있는 방안이 2개가 더 있었다. 그중 첫 번째는 법정관리를 신청해 반드시 필요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방안은 쌍용차 주식을 매각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것은 미국에서 파산 신청(Chapter 11)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 다시 말해서,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의 경영진, 채권단, 기타 이해관계자들이 회사의 운영 효율성 개선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법률 구조와 재무 구조를 조정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한다. 또한 법정관리가 진행되는 동안 채권단은 별도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법정관리 아래 구조조정을 반드시 단행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법정관리를 받으려면 쌍용차 이사회가 법원에 보호를 신청해야 하고 법원이 신청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까지 최대 1달 정도 시간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 채권단이 쌍용차 자산을 처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거나 쌍용차가 자력으로 살아남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법원이 법정관리 신청을 거부할 수도 있다. 법정관리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기존의 경영진은 경영권을 빼앗기고 법원이 회사를 맡을 관리인을 임명한다. 쌍용차의 경우, SAIC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경영권을 빼앗기게 된다. 물론 법원이 기존에 SAIC가 임명한 경영진을 그대로 둘 수도 있다. 하지만 경영 권한이 대폭 제한되고 법원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법정관리 기간에도 법원은 주기적으로 진척 상황을 평가하며 어떤 시점에 기업이 회생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며 청산을 명령할 수도 있다. ( 4)

 

마지막으로 SAIC가 매수자를 찾아 쌍용차 지분을 매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쌍용차의 부채 규모가 크고 세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데다 자동차 부문이 특히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매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또한 저가 매각으로 인해 SAIC가 쌍용차 투자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장하이타오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고요한 찻잔을 바라보며 이 중 어떤 방법을 제시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결과

결국 SAIC, 쌍용차 노조, 한국 정부는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SAIC는 법원의 감독하에 쌍용차를 구조조정하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2008 12 2008년 쌍용차의 SUV 판매가 30% 줄어들어 63000대에 그쳤다. 회사는 2008 12월부터 임금을 지불할 수 없다고 선언했으며 직원을 2000명 해고하는 방안에 노조가 찬성할 경우 SAIC가 긴급 자금으로 2억 달러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노조는 SAIC가 인수 당시 약속한 투자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SAIC가 제안한 인원 감축 방안에 불응했다.

 

한편 산업은행은 SAIC에 쌍용차 구제를 위해 3억 달러를 지원할 것을 요청했다. 이 금액의 3분의 1 SAIC가 쌍용에서 가져간 것으로 보이는 기술이전의 대가로 요구했으며 3분의 2는 쌍용차가 중국 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대출을 보증하는 용도로 요구했다.

 

2009 1 쌍용차 경영진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SAIC의 지분가치는 27100만 달러로 내려갔다.

 

2009 2 법원이 쌍용차의 파산 신청을 승인했다. SAIC는 경영권을 법원 측에 빼앗겼지만 소유 지분은 유지했다. 대신 추가로 투자할 필요는 없어졌다. 쌍용차의 부채는 97200만 달러, 자산은 14억 달러였으나 실제로 남아 있는 현금은 19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이는 1달 운영비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2009년 여름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77일 동안 지속된 파업으로 쌍용차는 3160억 원(25330만 달러)어치의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했다. 수백 명의 노조원들이 공장을 점령하고 전경들과 전투를 벌였다. 파업 중인 직원들과 경찰 간의 충돌, 노조원과 비노조 직원 간의 충돌로 11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2009 7월 중순 기준, SAIC의 쌍용차 지분은 채권단의 지분이 늘어나며 자동적으로 10%로 낮아졌다. 70% 지분은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채권단이 소유하게 됐다.

 

2010 8 823, 인도 최대 SUV 제조업체 마힌드라 & 마힌드라(Mahindra & Mahindra)가 쌍용차 채권단과 MOU를 체결하고 일정 지분을 확보했다. 마힌드라 & 마힌드라는 세계적인 유틸리티 차량 제조업체로 거듭나기 위해 최대 4억 달러를 지불하고 쌍용차의 대주주가 되려는 뜻을 내비쳤다. 마힌드라 & 마힌드라는 언론에 보도된 대로 현금준비금, 증자, 부채 등을 활용해 인수 자금을 확보할 계획을 세웠다.

 

한편 SAIC는 주식시장을 통해 지분을 모두 처분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826, SAIC는 남아 있던 쌍용차 지분 3.89%를 모두 매각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총 61900만 달러를 투자한 SAIC는 투자액을 거의 회수하지 못했다.

 

현재 쌍용차는 마힌드라에 인수돼 2011 1534억 원, 2012 800억 원대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2015년까지 흑자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SAIC 2012<포브스>지에 의해 중국 1, 세계 12위 자동차회사로 조사됐다.

 

 

수 레이핑·스티븐 와이트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CEIBS) 연구원 수 레이핑(Xu Leiping)과 칭화대(Tsinghua University) 경제 경영 대학원(School of Economics and Management) 교수 스티븐 와이트(Steven White)가 이 케이스 스터디를 작성했다.

 

번역 |김현정 translator.khj@gmail.com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