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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5일장

화물기차를 추억실은 꼬마관광열차로… 지역 패키지 상품으로 오지에서 금맥 캐다

김유영 | 82호 (2011년 6월 Issue 1)
 

 

1960
년대 광산이 한창 번창하던 시절 강원도 정선에는 열차가 수시로 드나들었다. 탄광에서 캔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서다. 하지만 석탄 수요는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했다. 광산 여기저기가 문을 닫았다. 손님을 태우는 열차 수요도 덩달아 줄었다. 정선선은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철도청은 1990년대 후반 결단을 내렸다. 정선선을 폐선키로 결정한 것. 하지만 정선군청과 지역 주민은 철도청에 제안했다. ‘정선오일장 관광 상품을 만들어 정선선을 살리자’는 내용이었다. 정선군은 철도와 연계해 정선5일장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고, 1999년 서울 청량리역에서 ‘정선5일장 관광 열차’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화물을 실어 나르던 기차는 2, 3량짜리 관광용 꼬마 열차로 바뀌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현재 정선5일장은 전국 최대 규모의 장터로 성장했다. 지난 5월 7일 방문한 정선5일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고, 재래시장 특유의 정겨움이 가득했다. 시장 거리 양편으로 좌판과 노점이 늘어섰다. 봄철 산나물인 곤드레와 곰취의 내음이 짙게 퍼졌다. 지금은 정선에서만 채취하거나 재배한 산나물의 수요가 달려서 강원 평창 등 인근에서 구해와 팔아야 할 정도다. 저잣거리에서 파는 메밀부치기, 전병, 빈대떡과 옥수수 막걸리나 곤드레 막걸리도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든다.
 
정선군에 따르면 정선5일장을 본격적으로 상품화한 1999∼2010년 모두 168만6050명이 다녀갔다. 시장 좌판 중 하루 매출이 250만 원에 이르는 곳도 있을 정도다. 소박한 시골 장터가 ‘기업형 시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특히 정선5일장 방문객의 재방문 의사가 98%에 이르고, 5일장을 경험하지 못한 20∼30대가 전체 방문객의 20%에 육박한다. 최승준 정선군수는 “10여 년간 정선 군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며 “상인들은 물론 농민들과 식당, 숙박업소 등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사실 정선5일장의 여건은 다른 지역 재래시장과 비교했을 때 그다지 유리하지 않다. 총 길이 800m로 시장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기차는 서울에서 하루 한 편씩만 오갈 뿐이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정선역까지 꼬박 4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정선군은 각종 레일바이크와 화암동굴 등 각종 연계 코스로 체류형 관광지를 만들고, 지역의 스토리를 발굴해 불리한 여건을 극복했다. 정선군과 지역 상인 간의 단합된 노력도 성공에 한몫했다. 정선군 관계자와 정선 시장 상인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약점을 강점으로 바꾼 정선5일장의 운영 비결을 분석했다.
 

옛 것에 대한 향수와 지역 특산물 발굴
정선5일장은 1966년 주민들이 산골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생필품을 사고 팔던 시장에서 출발했다. 매월 2일, 7일, 12일, 17일, 22일, 27일 등 끝자리가 2와 7인 날에 5일을 주기로 열린다. 시장에는 상점 230여 곳과 노점 160여 곳이 있다. 철도청이 1990년대 정선선 폐선을 결정했을 무렵에도 정선5일장이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역 상인과 주민들 정도만이 찾아와 장을 보는 수준에 머물렀다.
 
정선군은 당시 전국에 5일장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역이용’하기로 했다. 도시인의 향수에 호소하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5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장날이면 조용한 시골 마을에 생기가 돈다. 할머니들도 주섬주섬 물건들을 챙겨 나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여서 토속 놀이를 벌이기도 한다. 정선군은 바로 이런 분위기라면 정서에 호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선5일장을 제대로 상품화한 1999년 이전, 정선5일장의 주력 상품은 공산품 위주였다. 하지만 제대로 상품화하려면 도시와는 다른 것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역 특산물 위주로 바꿨다. 특히 산나물과 건강상품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유병민 정선군 공보 담당 계장은 “사람들이 정선을 떠올리면 ‘백두대간 깊은 곳’과 ‘깊은 산과 맑은 물’ ‘청정 고원지대’를 떠올린다”며 “정선군 역시 이런 특징에 걸맞은 대표 상품을 발굴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상인들은 자발적으로 수요를 읽어내고 업종을 전환했다. 봄철에는 곤드레와 냉이 달래 참나물 더덕 곰취 등과 같은 산나물을, 여름에는 옥수수, 가을에는 고추와 감자를 주력으로 판매한다. 장터에서 25년째 장사한다는 남매농특산 김덕수 사장은 “처음에는 정육점 앞에 좌판을 깔고 더덕을 함께 팔았다”며 “정선5일장에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더덕에 대한 수요가 높아져서 정육점은 폐업하고 아예 더덕만 팔고 있다”고 말했다.
 
자장면이나 가정식을 팔던 식당 주인들도 장터에서 파는 음식을 곤드레 나물밥과 콧등치기 국수로 바꿨다. 곤드레 나물을 넣어 지은 밥으로 간장, 고추장, 된장 등으로 비벼 먹는 건강식인 곤드레 나물밥이 단연 간판상품이다. 옥수수를 재료로 올챙이 모양으로 면발을 만든 올챙이 국수와 메밀이 딱딱하게 굳어, 먹으면 콧등을 치는 느낌을 준다고 해서 콧등치기 국수로 불리는 메밀 국수도 인기다. 원래 이들 음식의 뿌리가 정선이긴 하지만 지금처럼 즐겨 먹진 않았다. 정선5일장이 서면서 무엇인가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역의 향토 음식들을 간판 상품으로 내세웠다.
 
정선군은 장날에는 떡메치기나 짚신 만들기를 선보이면서 추억의 옛장터를 재현해 시골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게 했다. 또 ‘내가 누르고 맛보는 올챙이국수, 내가 부쳐먹는 메밀부치기 코너’ 등을 운영한다. 관광객이 향토 음식 만들기를 직접 체험해보게 한 것이다.
 
이와 함께 정선군은 정선의 스토리도 상품화했다. 정선은 ‘정선아리랑’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조선개국 초기 고려왕조를 섬기던 선비들은 송도를 떠나 정선 지방에 숨어 지냈다고 한다. 이들은 회한과 그리움을 한시로 표현했는데, 한시를 당시 구전된 토착요에 후렴을 달아 부른 게 지금의 정선아리랑이다. 정선군은 이를 활용했다. 4∼11월 정선5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장터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정선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서 뮤지컬 형식의 아리랑 극을 무료로 공연한다. 출연진은 대부분 지역 주민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 등 격동의 세월을 보내면서 우리 민족이 아리랑을 통해 한과 상처를 어떻게 달랬는지 구수한 가락으로 풀어냈다.
 

 
또 장터를 경유하는 ‘추억의 정선 시내버스’도 운행된다. 특히 이 버스에는 안내양이 함께 타고 있다. 5일장에 대한 향수뿐 아니라 버스 안내양이 있었던 시절의 추억도 되살리기 위한 것이다. 특히 버스 안내양 가이드 코스는 정선5일장뿐 아니라 화암동굴, 정선아리랑극을 상연하는 정선문화예술회관 등을 경유한다. 추억의 정선 시내버스 안내양을 맡은 권인숙 씨는 “군청에서 관광 안내 자원 봉사를 하다가 버스 안내양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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