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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일광전구의 피벗·리브랜딩 전략

빛에 집중한 마지막 백열전구 제조사
‘업의 본질’지킨 헤리티지 전략 빛나다

이규열 | 385호 (2024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1962년 문을 연 일광전구는 ‘국내 마지막 백열전구 회사’이다. 외환위기, 중국산 저가 제품의 시장 침투, 전 세계적인 백열전구 퇴출 등으로 수차례 위기를 맞았지만 적시에 사업의 방향성을 전환하며 현재는 MZ세대가 주목하는 조명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일광전구는 전구보다 본질적인 ‘빛’에 초점을 맞춰 업을 재정의했다. 리브랜딩 과정에서는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지키기 위해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오래 두고 사용할 수 있는 ‘롱 라이프(Long Life)’ 브랜딩을 추구했다. 변화에 따르는 기존 구성원들의 불만에는 작은 성과를 가시화해 정당성을 확보해나갔다. 변화에 대한 리더의 강한 의지 또한 구성원들의 불안을 덜고 확신을 강화했다.



1887년 봄 어느 날, 경복궁의 깊은 안쪽에 위치한 건청궁. 고종과 명성황후가 머물던 이곳에 조선 사상 처음으로 전깃불이 켜졌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지 약 8년 만의 일이었다. 동양 최초의 전등 설비로 아시아의 개화를 이끌겠다던 일본의 궁에 도입된 것보다도 2년 빨랐다. 이 모습을 숨어서 지켜봤다는 안씨 상궁은 1936년 등화사연구가 안겸과의 면담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서양인의 손으로 기계가 움직였는데

연못의 물을 빨아올려 물이 끓는 소리와 우레 소리 같은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얼마 뒤 궁전 내의 가지 모양의 유리에

휘황찬란한 불빛이 대낮같이 점화됐다.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안 상궁의 말을 빌리면 조선인들에게 전구의 불빛은 말 그대로 “듣도 보도 못한 것”이며 “불가사의하고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누군가는 도깨비불이라고 하며, 누군가는 무서워서 어두운 곳을 찾아 숨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본 전깃불은 사실 인류에게 가장 친숙한 불인 모닥불을 닮았다. 전구가 발명되기 이전 인류는 약 100만 년간 모닥불을 피워왔고, 최초의 전구인 백열전구 또한 에디슨이 모닥불이 타는 원리를 빌려 발명했다. 탄화시킨 대나무로 필라멘트를 전기로 가열하면 빛이 만들어진다. 불빛이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는 모습 역시 모닥불을 떠올리게 한다. 이후 1900년 4월, 종로 네거리에 민간 최초로 가로등이 등장하며 백열전구가 우리나라 곳곳을 밝혀 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처음으로 우리 땅에 백열전구가 켜지고 약 120년이 지난 2007년, 백열전구는 퇴출 위기란 ‘비극’을 맞았다. 그해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백열전구가 에너지 낭비의 주범으로 지목당하며 생산 및 사용 자제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 또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가정용 백열전구에 대한 생산 및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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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열전구를 생산하던 업체 대부분은 백열전구보다 에너지 효율이 4~8배가량 높은 발광다이오드(LED) 사업으로 전환하거나 문을 닫았다. 1962년 문을 연 ‘일광전구’만이 계속해서 백열전구 생산의 명맥을 유지했다. 김홍도 일광전구 대표는 퇴출 대상에서 비껴간 장식용 전구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1879년 에디슨이 처음 만든 전구를 본떠 만든 ‘클래식 전구’와 소형 백열전구 20~30개를 이어 만든 야외 파티용 전구 ‘파티 라이트’를 각각 2012년, 2014년 출시했다.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고 쓰임새를 재해석한 제품들이 다행히도 시장의 호응을 얻으며 ‘국내 마지막 백열전구 제조사’라는 타이틀과 헤리티지를 지켜냈다.

2016년 이후에는 조명 기구 시리즈를 출시하며 조명 사업에 진출했고 2020년 말, 김 대표의 아들인 김시연 씨가 마케팅팀 팀장으로 합류하며 조명 기업으로 본격 전환했다. 2021년 12월 선보인 납작한 눈사람 모양의 ‘스노우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작된 집 꾸미기 열풍을 타고 연간 2만 개 이상 판매고를 올리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2022년 전년 대비 매출은 150%, 2023년 전년 대비 매출은 50%가량 성장하며 조명 기업으로서 입지를 탄탄히 다져 나가고 있다. 경기에 적신호가 켜졌던 2023년에는 가성비와 활용도가 높은 포터블 제품을 선호하는 시장 흐름에 맞게 스노우맨 포터블 제품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온라인 편집숍 29CM에서 조명 카테고리 상위권을 꾸준하게 차지하고 있으며 해외 하이엔드 편집숍에도 입점하며 글로벌 시장 진출의 물꼬를 텄다. 2024년에는 AC(교류) 방식으로 제작된 내수용 제품을 국가 간 규제가 없는 DC(직류) 방식으로 전환해 미국 등 해외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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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의 백열전구가 산업화의 상징 중 하나였던 만큼 백열전구의 퇴출 또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조명됐지만 김 대표는 “사업을 하면서 편안한 날보다 어려운 날이 많았다”며 “백열전구의 퇴출 역시 자연스러운 시대적 흐름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1998년 그가 아버지로부터 일광전구를 물려받자마자 받은 미션은 외환위기로 휘청거리던 회사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회사를 정상화시키고 나니 산업 자체의 불씨가 꺼져갔고, 돌파구로 여겼던 장식용 시장에도 저렴한 중국산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한 길만 우직하게 걸어오며 살아남았기에 찾아온 ‘신의 선물’과도 같은 순간들도 있었다. 일광전구는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고, 어떤 기회를 만나 재도약했을까. 그 비결을 요약하자면 피버팅(pivoting), 즉 새로운 방향 설정과 그에 따른 전면적인 실행 방식의 전환이다. 많은 기업의 목표가 성장보다 생존이 된 지금, 사양 산업이라는 한계를 넘어 60년간 불씨를 이어온 일광전구의 피버팅 및 이를 통한 리브랜딩 전략을 분석했다.


위기와 변화, 극복의 60년

일광전구는 어려움의 순간마다 적시에 사업을 전환하며 생존을 이어 나갔다. 수출 시장에서 내수 시장으로, 전구 시장에서 조명 시장으로 새롭게 방향을 잡았다. 그에 따라 생산 방식, 영업 방식, 마케팅 방식도 전환했다.


 피버팅 1  IMF, 수출 시장에서 내수 시장으로

일광전구를 창업한 고(故) 김만규 회장은 1960년, 부산에 있던 평화전구의 대구 대리점을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 열었다. 그런데 1961년 본사에 부도가 났다. 김 회장이 부랴부랴 본사를 찾아가니 본사 관계자는 “전구 만드는 기계를 줄 테니 생산을 대신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렇게 1962년 백열전구를 만드는 일광전구의 역사가 시작됐다.

1970년대, 백열전구보다 수명이 5배가량 길고 소비 전력도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형광등이 등장했다. 국내 30여 개의 백열전구 공장 중 절반이 문을 닫았지만 해외시장을 겨냥한 일광전구는 1980년대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당시 정부는 수출 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일광전구 또한 매달 100만 개가량의 전구를 생산했는데 이 중 80%가량이 미국, 유럽 등 해외로 판매됐다.

그러나 1990년대에 진입하며 세계 전구 시장의 판도가 뒤집혔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중국 기업의 물량 공세에 한국 기업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7년 외환위기까지 들이닥쳤다. 일광전구의 전구 생산량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1998년 말 어느 날, 김 회장은 아들인 김홍도 대표에게 물었다. 회사 문을 닫을지 고민 중인데 장남인 그가 이어받을 생각이 있다면 맡기겠다고.

당시 김 대표는 대구에서 시내버스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1994년, 망해가던 시내버스 업체를 인수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버스에 고가의 무전기를 설치했다. 버스 기사들 사이에서 교통 흐름을 공유하게 하는 방식으로 배차 간격을 개선하며 매출을 끌어올렸다. 기사들에게 유니폼을 입힌 것도 업계에선 유례가 없던 일인데 그만큼 서비스 개선에도 공을 들였다. 그리고 김 대표 사업 인생에 첫 번째 선물 같은 순간이 찾아왔다. 외환위기가 터지고 자가용 대신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이 늘어났다. 당시 대구에는 지하철도 없던 때라 시내버스 업계는 뜻밖의 호황을 맞이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김 대표는 일주일간 골똘히 백열전구의 미래에 대해 고민했다. 백열전구 대비 수명이 길고 전력이 낮은 삼파장 형광등이 보급되면 백열전구 시장이 축소될 것이라는 건 자명해 보였다. 그러나 백열전구의 시대에도 고급 레스토랑에는 자리마다 촛불을 켰다. 마찬가지로 그는 인류가 직접 모닥불을 지펴온 100만 년의 시간이 DNA에 녹아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사람들이 모닥불을 닮은 백열전구를 계속해서 찾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업을 승계하기로 마음먹은 김 대표는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중국산 제품과 경쟁해야 하는 수출 시장에서는 가격으로 승부를 보기는 어려우니 내수 시장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영업 방식도 전환했다. 당시 형광등과 백열전구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는데 형광등을 취급하는 5개 회사 중 두 전구를 모두 파는 회사는 금호전기, 즉 번개표가 유일했다. 김 대표는 나머지 4개 회사를 찾아가 가장 저렴한 가격에 품질 높은 백열전구를 공급하겠으니 백열전구도 취급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한 개 회사를 설득하니 나머지 세 개 회사를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금세 주문량 100만 개를 회복했다.

생산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전구 조립을 제외한 모든 공정을 협력 업체에 맡겼다. 조립과 품질 관리만을 전문으로 하며 내부 작업을 효율화한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덜어내니 직원들의 작업 환경도 크게 개선됐다. 동시에 작업과 물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신공장도 설립했다. 주문량이 회복되고 공정을 효율화하니 규모의 경제가 작용해 고정비용도 낮아졌고 수익성도 개선됐다. 다시금 일광전구의 공장은 분주하게 돌아갔다.


 피버팅 2  백열전구 퇴출, 가정용에서 장식용으로

일광전구만의 제품도 차차 선보여 나갔다. 점점 작은 전구를 찾는 시장의 흐름에 따라 60㎜ 전구뿐이던 시장에 최초로 55㎜ 전구를 선보였다. 소비자 입장에서 5㎜가 큰 차이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타 업체와는 차별화된 제품을 내놓았다는 것 자체에서 의미를 가졌다. 무엇보다 수십만에서 백만 단위로 생산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제품 크기를 5㎜ 줄임으로써 물류 비용, 재고 공간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더 콤팩트한 전구를 개발하면서 35㎜ 크기의 크립톤 전구1 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산하기도 했다.

이처럼 나름대로 순항하던 일광전구에 또 다른 파도가 덮쳐왔다. 에너지 절약을 이유로 전 세계에서 백열전구가 완전히 퇴출된 것이다. 대부분의 업체는 정부의 도움으로 업종을 전환하거나 문을 닫았다. 당시 퇴출 대상이었던 가정용 백열전구는 일광전구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했다.

김 대표는 또다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업종을 바꾸는 것이 맞을까. 시대의 흐름에 맞춰 LED 전구를 내놓지 않을 수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당시 부상하던 LED도 크게 매력적인 시장처럼 보이지 않았다. 독자적인 기술이나 디자인이 요구되는 제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제든 값싼 중국 업체가 들어오면 국내 업체들이 밀려날 가능성이 농후했다.

김 대표는 고민 끝에 결국 끝까지 백열전구를 생산하기로 결심한다. 처음 일광전구를 물려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백열전구를 찾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남아 있었다. 직원들 역시 더 이상 자신들의 직장이 존속할 수 없는 게 아니냐는 불안에 떨었을 것이다. 이에 김 대표는 ‘빛’에 집중하며 회사의 미션, 비전, 핵심 가치를 정의했다. 계속해서 시장이 변동하는 전구가 아닌 본질적인 빛에 집중해 업의 가치를 정립한 것이다. 즉, 가치관 경영을 선포하며 내부 구성원들을 결집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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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가 회사를 다시 일으킬 실마리를 얻은 건 다름 아닌 전구의 본고장이자 에디슨의 고향인 미국에서였다. 평소 마라톤을 좋아했던 김 대표는 2011년 뉴욕 마라톤에 출전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했다. 한 고급 상가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이 에디슨이 발명한 디자인의 백열전구 아래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김 대표는 에디슨의 전구가 돌파구가 될 것이란 사실을 직감했다. 유리구 모양과 필라멘트 모양을 다양하게 설계해 디자인적으로도 차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바로 미국에서 샘플을 구입해왔다.

김 대표의 벅찬 마음과는 달리 직원들의 반응은 썩 호의적이지 않았다. 너무 어두웠고 무엇보다 생산 단가가 너무 비쌌다.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 위해서는 1만 원은 받아야 하는데 백열전구에 10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삼파장 전구가 7000원 정도였다. 그러나 김 대표는 가성비가 중요한 가정용 제품이 아닌 장식용 제품이기에 감각적인 디자인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디지털화가 가속될수록 아날로그한 감성을 찾는 이들도 생겨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결국 일광전구는 클래식 전구 개발에 돌입했다. 20세기 초의 전구 모양을 복원하되 일광전구의 기술을 적용해 기존 백열전구보다 5배가량 수명을 늘려 설계했다. 처음 선보이는 고가의 장식용 제품이었기 때문에 패키지도 더욱 신경 써서 만들고 싶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딸에게 패키지 디자인을 부탁하니 자신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며 디자인 스튜디오 064의 권순만 디렉터를 소개해줬다.

권 디렉터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직접 스튜디오를 차리기 전에는 주로 전자제품을 디자인했다. 제품을 만들고 난 이후 리플릿, 상세 페이지 등 시각디자인 작업이 이뤄지는데 그 과정에서 초기에 제품을 설계하며 설정한 방향에서 엇나가는 일도 많았다. 그는 하나의 브랜드를 통일성 있게 이끌어 가는 작업을 하고 싶어 직접 스튜디오를 차렸다. 시각디자인과 제품디자인을 통합하는 마땅한 용어가 없어 스스로는 브랜딩 디자인을 한다고 말한다. 일광전구 대구 공장에 방문한 그는 한 우물만 파 온 공장이 주는 아우라에 매료됐고, 흔쾌히 의뢰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2012년 출시한 클래식 전구는 소위 말하는 감성 카페들의 인테리어 ‘잇템’으로 입소문이 났다. 월 1만 개가량이 팔리며 일광전구의 새로운 캐시카우 역할을 했다. 유리구의 크기와 모양, 필라멘트의 형태를 변형하며 제품도 다양화했다. 패키지 디자인 또한 세 차례 리뉴얼을 거쳤고 2014년에는 전구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일본의 ‘굿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사용자가 제품을 보는 순서를 고려해 네 옆면에 각각 제품명, 볼트, 와트 정보, 세부 사항을 실은 점이 특징이다.

아울러 2014년 출시한 파티 라이트는 대한민국 리테일 인테리어, 캠핑 문화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대표는 유럽 여행 중 사람들이 파티를 열며 긴 전선에 소켓이 여러 개 달린 조명 기구로 장식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루프톱 레스토랑 및 카페, 차박 용품 등으로 익숙하고 다양한 브랜드에서 제품이 출시되고 있지만 당시 일광전구에서 국내 최초로 제작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피버팅 3  디지털 시대, 중소기업에서 브랜드로

새로운 장식용 제품을 내놓는 동시에 리브랜딩도 추진됐다. B2B 기업으로서 업력은 길지만 B2C 브랜드로 일컫기에는 어려웠던 게 당시 일광전구의 현실이었다. 과거 전파사를 통해 B2B로 판매하던 가정용 제품과는 달리 온라인 구매와 리뷰가 중요해진 시대에 장식용 제품은 B2C로도 접근하는 게 적합해 보였다.

일광전구에 리브랜딩의 필요성을 일깨운 건 권 디렉터였다. 그는 백열전구라는 제품이 사라지고 일광전구가 올드한 기업으로 가라앉는 것이 안타까웠다. 패키지 리뉴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역으로 일광전구의 리브랜딩 작업을 제안했다. 패키지 디자인에 관한 내용을 포함해 30개가량의 제안서를 내밀 정도로 진심을 내보였다. 무엇보다 국내 마지막 백열전구 회사라는 스토리를 매력적으로 잘 살린다면 헤리티지 있는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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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광전구는 빛에 초점을 맞춰 업의 본질을 정의했다”며 “자칫 전구에만 집중했거나 반대로 전구와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본질을 찾았다면 지금과 같이 헤리티지를 인정받는 브랜드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0년대 초반 많은 브랜드가 리브랜딩을 시도했다. 당시에는 소위 ‘키치’해 보이는 브랜드 이미지가 유행이었다. 그런데 헤리티지를 갖춘 브랜드도 그저 키치해 보이는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 단기간 브랜딩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때 만들어진 결과물은 1~2년이 지나자 다시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 됐고, 그 과정에 그 기업 고유의 헤리티지는 훼손됐다.

이는 권 디렉터가 지향하는 브랜딩과는 어긋나는 방향이었다. 그는 옛 감성을 끄집어내는 동시에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롱 라이프(Long Life)’ 브랜딩을 추구한다. 버려진 물건의 가치를 되살리는 작업을 하는 일본의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가 처음으로 ‘롱 라이프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는 10년은 거뜬하게 사용할 수 있고 세대를 넘어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과 제품을 일컫는다.

권 디렉터는 일광전구에서는 그가 추구하는 브랜딩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는 헤리티지를 갖춘 브랜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대체될 수 없는 본질을 정의하고 그것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여러 노포를 조사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마냥 오래됐으면 노포인 줄 알았다. 그런 곳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이나 오래된 공간 곳곳을 자료로 촬영하기도 했다. 작업을 진행할수록 깨달은 점은 오래됐다고 해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노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음식에서 포기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위생이다. 그런데 그가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던 곳들 중에는 알고 보니 차마 음식을 입에 댈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하게 관리되는 곳도 있었다. 진짜 노포는 입구부터 반짝거렸다. 새것들로 가득 찼다는 게 아니라 매일 문 앞도 쓸고 창문, 테이블도 신경 써서 닦았다. 오랜 세월 동안 본질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일광전구가 본질을 잘 정의하고 유지하는 기업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김 대표는 백열전구 산업이 흔들리자 가치관 경영에 돌입하며 ‘빛’에 주목해 일광전구의 가치관을 선포했다. 처음부터 일광전구가 오랫동안 지켜온 가치 자체를 리브랜딩의 핵심 요소로 소화한다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비록 백열전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지만 그 브랜드가 남아 두고두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며 오랫동안 그 불빛을 추억하게끔 한다”고 스토리텔링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에 회사의 생존을 해결해야 하는 김 대표에게 당시 리브랜딩을 위한 투자는 우선순위 밖의 일로 다가왔다. 그저 일광전구에 열정을 보여주는 청년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이후 김 대표는 그에게 명함, 현수막 등의 작업을 의뢰했다. 권 디렉터는 일부 작업에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김 대표가 일광전구의 디자인 감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체감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2014년, 권 디렉터의 꾸준한 설득 끝에 김 대표는 권 디렉터에게 리브랜딩을 의뢰했다. 리브랜딩에 시큰둥했던 김 대표였지만 그의 경영 철학과 권 디렉터의 브랜딩 철학은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또한 시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재편되며 B2C 시장이 확대되고 있음을 체감하며 그에 발맞춰 갈 필요성을 느꼈다. 일광전구와 064의 회사 대 회사의 계약으로 진행됐지만 권 디렉터는 책임감을 갖고자 스스로 일광전구의 디자인팀장을 겸직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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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팀장 주도로 일광전구는 홈페이지를 열었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 계정도 개설해 사진을 올렸다. 당시는 인스타그램보다 페이스북을 더 많이 사용하던 때였는데 ‘국내 마지막 백열전구 회사’라는 타이틀과 함께 꾸준히 사진을 업로드하니 금세 팔로워 2만 명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내부 브랜딩도 진행했다. 김 대표가 빛을 중심으로 재정의한 기업 가치관을 바탕으로 “We make light”라는 슬로건을 개발하고 1962년부터의 역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로고도 리뉴얼했다. 300개가 넘는 전구 제품 라인도 정리했다. 소비자들에게 쉽게 각인될 수 있도록 카테고리의 앞 글자를 따 C(클래식), D(장식용), P(파티용) 등으로 분류했다.

권 팀장은 효율적으로 브랜드 스토리를 전파할 방법의 필요성을 느꼈다. 가까스로 리브랜딩을 결심한 김 대표에게 막대한 광고비를 집행하도록 설득하기는 무리였다. 권 팀장이 떠올린 묘수는 큰 비용 없이 다른 브랜드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흡수해 올 수 있는 컬래버레이션이었다. 2014년 말, 권 팀장은 당시 서울 연남동, 가로수길 등의 유명 식당, 카페 10곳을 추리고 추려 제안서를 보냈다. “당신의 가게가 ‘라이팅 디자인 스폿’에 선정됐으니 원한다면 6개월 동안 무상으로 파티 라이트를 설치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가게에서 하겠다고 답장이 왔다. 권 팀장은 한 푼이라도 아끼고자 직접 매장을 방문해 파티 라이트를 설치하는 노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행히 파티 라이트로 꾸며진 카페, 식당의 사진은 일광전구와 누리꾼들의 SNS 계정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됐다.

홍대의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인 오브젝트에는 클래식 전구 입점을 제안했다가 전시를 열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역제안을 받았다. 대구 공장에서 예쁜 전구를 골라와 작은 테이블 하나에 배치하며 자그마한 전시를 열었다. 디자이너들이 많이 방문하는 공간이었기에 이후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 제의가 물밀듯이 들어왔다. 먼저 협업을 요청하던 입장에서 제안받는 입장이 된 것이다.

2018년에는 아우디 신차 발표 행사에 메인 컬래버레이션 회사로 참여하게 됐다. 아우디 또한 빛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자동차 회사다. 세계 최초로 풀 LED 헤드램프와 전방 상황에 따라 빛의 각도와 세기를 조절하는 매트릭스 LED 기술을 적용했다. 즉, 최신 디지털 라이팅 기술을 추구하는 아우디와 최고의 아날로그 라이팅 기술을 선보인 일광전구의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1000개가 넘는 일광전구의 백열전구가 새로 출시한 A4 차량의 위를 비췄다. 야외 현장에도 파티 라이트를 설치해 파티 분위기를 연출했다.

50여 개가 넘는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면서 협업의 기준도 세웠다. 반짝 판매를 위한 컬래버레이션은 지양한다. 재미있는 기획으로 이슈몰이를 해 빠르게 판매량을 올릴 수 있는 프로모션에는 브랜드 파워가 소비된다. 표면적으로 서로의 이름을 빌리는 협업이 아닌 빛이라는 일광전구의 본질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협업을 추진한다. 교보문고와의 협업으로 제작한 독서등이 좋은 예시다. 은은한 불빛 아래 책을 읽게 하는 제품이라는 점에서 일광전구, 교보문고 모두의 본질을 잘 녹여냈고, 프로모션 기간 동안 반짝 판매하지 않고 상시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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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인 2018년에는 공간 브랜딩도 시도했다. 당시 권 팀장이 개인적으로 인천 구도심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인천 개항로에 오랫동안 방치됐던 병원 건물을 발견했다. 이 공간을 최소한으로 리모델링해 카페 겸 쇼룸인 ‘라이트하우스’를 열었다. 오래되고 열악한 공간을 빛을 통해 재조명한다는 의미를 담은 작업이었다. 공간이 생기자 SNS상에서의 해시태그 양도 증가했고 협업을 요청하는 브랜드도 늘어났다. 협업을 상의할 때도 라이트하우스로 불러 전구의 빛이 주는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사실 처음 권 팀장이 리브랜딩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 기존 구성원들의 반응이 마냥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전구 카테고리를 분류하며 클래식 전구에 C를 붙였더니 “제품이 C급이냐” “알파벳 A가 가장 좋지 않냐”는 등의 불평이 이어졌다. 권 팀장은 리브랜딩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해외의 성공 사례를 공유하는 식으로 접근했다. 모두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권 팀장은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작은 성과, 반응이라도 가시화하는 것이다. 2014년에 굿 디자인 어워드에 출품한 것 역시 리브랜딩의 필요성을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컬래버레이션 등 브랜딩 활동으로 외부와 메일을 주고받을 때도 회사 대표 메일을 참조에 걸었다. 리브랜딩 활동을 통해 회사가 더욱 확장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인상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로 설득하니 구성원들도 리브랜딩의 필요성을 점점 받아들였다.


 피버팅 4  전구에서 조명으로

1) 피버팅에도 ‘때’가 있다

클래식 전구와 파티 라이트의 선전으로 일광전구는 흥행을 이어 나갔다. 국내에서 마지막까지 백열전구를 취급하는 업체인 만큼 어느 정도 가격 결정권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2017년부터 또다시 값싼 중국산 제품들이 시장에 난입했다. 클래식 전구와 유사한 중국산 제품이 3분의 1 가격에 판매됐다. 문제는 이를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점이다. 감각적인 디자인이었지만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130년 전 에디슨의 전구를 재현한 제품인 셈이다. 감도 높은 제품이지만 독창적인 제품은 아니었다. 파티 라이트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20여 년 전 외환위기 때의 과오가 반복된 것이다.

권 팀장은 답답했다. 서울에서 브랜드들과 협업을 하며 일광전구가 정말 대단한 회사라는 말을 듣고 다녔다. 그런데 백열전구의 쓰임이 한정적이었던 만큼 막상 브랜드에 관심을 갖게 된 고객들이 구매할 제품이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제품이 브랜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그는 2012년 처음 리브랜딩을 제안할 때부터 조명 시장으로의 진출을 주장했다. 빛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당연히 조명으로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광전구의 광원과 헤리티지를 조명 디자인으로 녹여 걸작을 만들고 싶은 디자이너로서의 욕심도 있었다. 반면 김 대표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조명에 관심은 있으나 자신이 할 일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그에게는 일광전구라는 기업이 몸집을 줄이더라도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그랬던 일광전구가 처음 조명 제품을 선보이게 된 것은 2016년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참여하면서부터이다. 인테리어에 관심 많은 업계 관계자, 소비자 30만여 명이 모이는 자리다. B2C 중심으로 전환했지만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오프라인 매장이 없었기에 페어는 타깃 고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아울러 매년 페어에 참여하면 1년마다 신제품을 선보여야 하니 꾸준히 제품 개발에 힘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이때 권 팀장은 전구만으로는 부스를 채울 수 없으니 소수의 조명 제품을 개발해 출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와이어, 콘크리트, 대리석 등 건축 소재를 활용한 ARCHI 시리즈가 탄생했다. 총 5개 제품을 선보였는데 전구가 노출돼 있었다. 와이어 프레임에 전구를 끼워서 만드는 식이었는데 예산과 공정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2016년부터 매년 페어에 참여하며 조금씩 조명 제품의 수를 늘려 나갔다. 초기에 제작한 테이블 스탠드 제품도 늘려 나갔고 펜던트 타입 제품도 선보였다. 전구에 셰이드(갓)를 씌운 제품들도 개발했다. 온라인 편집숍인 29CM에도 입점하고 29CM의 핵심 페이지이자 브랜드 스토리를 소개하는 PT에도 소개됐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매출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본사의 지원 없이 권 팀장이 디자인과 브랜딩, 영업, 개발 등을 전부 주도하다 보니 권 팀장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제품을 만들어 내기 어려웠다. 당시 인테리어 아이템으로 조명의 중요성이 지금만큼 높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중국산 제품의 등장으로 장식 전구도 점점 힘을 잃어가자 회사의 존속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매출이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며 당장 내일 문을 열어야 할지 닫아야 할지를 걱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소소하게 팔리던 조명 제품도 새로운 제품이 빠르게 나오지 않으니 한 달에 몇 개 수준으로 판매량이 줄어들었고 적극적인 브랜딩 활동을 펼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조명 제품에 대한 투자를 둘러싼 김 대표와 권 팀장의 입장은 서로 달랐다. 김 대표는 매출이 나야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고 권 팀장은 투자를 해야 매출이 발생한다는 입장이었다. 조명 외에는 마땅히 돌파구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니 권 팀장은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기분이었다. 그가 일광전구와 함께 작업한 세월도 어느덧 10년이 다 돼 갔다. 더 이상의 발전이 없다면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러던 2020년, 권 팀장이 최후의 통첩을 날렸다. 마케팅과 영업을 할 사람을 데려오지 않으면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고.

사실 권 팀장이 그만두겠다고 한 순간이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김 대표는 조금만 더 같이해보자고 설득했다. 그런데 여느 때보다 진지한 권 팀장의 통보에 김 대표도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물론 권 팀장의 말이 일면 타당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수차례 사업을 전환하며 위기를 극복했던 김 대표였지만 어디까지나 전구 산업 안에서의 일이었다. 전구 회사에서 조명 회사로의 전환은 그 무게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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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김 대표는 드디어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느리지만 매년 꾸준히 제품을 출시하며 시장도 파악했고 제품의 가짓수도 충분히 갖춰졌다. 오늘의집 등을 통해 집 꾸미기 콘텐츠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MZ세대를 중심으로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등 대세도 조명 시장을 향해 기울고 있었다. 그렇지만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환경이라고 판단했다.

김 대표는 22년 전 자신이 아버지의 부름으로 일광전구에 합류했던 것처럼 아들이자 현재 마케팅팀을 이끌고 있는 김시연 이사를 회사로 불렀다. 김 대표는 아들이 군대에 가기 전에 이미 회사를 이어받을지 결정을 내리라고 했다. 예비 리더로서 젊었을 때의 모든 경험에 진중하게 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찍이 승계에 대한 운을 뗐다. 김 이사 또한 그 부름에 응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한 건설회사에서 주택 영업을 다니며 현장에서 경영자 훈련을 받았다. 김 대표는 김 이사가 충분히 성장하고 일광전구의 새 기반이 다져질 때를 기다렸다. 그렇게 해볼 만한 판이 깔린 2020년 말, 1990년생인 김시연 이사가 드디어 마케팅팀을 신설하고 팀장으로 취임하며 팀을 이끌게 됐다.


2) 제품-브랜드 상호 견인 관계 구축해야

김 팀장 또한 조명 시장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조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30대 또래들의 소비 행동이 점차 성숙해지고 있음을 체감했다. 보통 처음 조명에 입문할 때는 디자인과 가격을 보고 유럽 브랜드의 카피 제품을 구매한다. 조명 브랜드에 대해 점차 알게 되면서 자신이 구매한 것이 카피 제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브랜드 제품에 눈길을 돌리게 된다. 브랜드 조명 시장이 점차 성장할 것으로 보였고 국내에는 아직까지 두각을 보이는 브랜드가 없었다.

무엇보다 김 대표가 말한 신의 선물 같은 순간이 또다시 찾아왔다. 김 팀장이 합류하고 얼마 후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하며 록다운이 되자 ‘집콕’하게 된 사람들이 인테리어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김 팀장은 우선 판매처를 확보해 나가기로 했다. 홈페이지와 일부 온라인 판매처가 있었지만 인력의 부재로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었다. 이를 정비하는 동시에 새로운 판매처를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조명을 취급하는 서울 전역의 편집숍의 문을 두드렸다. 카피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라도 상관없었다. 직접 보따리에 제품 10~20개를 싣고 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판매처를 넓히긴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3개월 정도 배회하다가 방향성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브랜드 제품의 가치를 이해하는 하이엔드 편집숍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소비자들에게 오리지널 브랜드의 제품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데도 그 편이 옳은 선택으로 보였다.

한편 권 팀장은 온전히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아래 2021년 5월에 열릴 페어를 준비해 나갔다. 이전부터 스탠드의 기둥을 가늘게 만들어 디자인적으로 차별화를 이루고 싶었는데 부품 수급 문제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 팀장이 합류하며 직접 부품을 구해왔고 촛불을 닮은 캔들 제품을 만들었다. 이때 개발한 기둥, 소켓을 활용해 도토리의 단단한 껍질을 모티브로 만든 에이콘, 개구리의 경쾌함을 닮은 프로그 제품을 페어에 출품했다.

조명 제품 라인을 대대적으로 내세운 첫 번째 페어였지만 현장에서 기대만큼 많은 주문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공들여 준비한 결과가 저조하자 권 팀장조차 더 이상 조명을 하면 안 되는 건가 회의감이 들었다. 그런데 두 달 정도 지나고 주문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권 팀장은 “일광전구의 조명 제품이 생소했던 만큼 고객들에게도 탐색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장에서 제품을 눈여겨본 사람들이 제품을 충분히 검토한 후에 구매를 결정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9년여간에 걸친 리브랜딩의 노력과 조금씩 쌓아온 제품에 대한 리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제품을 통해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하니 하이엔드 채널에서도 입질이 왔다. 국내 1세대 편집숍인 에이치픽스 등을 비롯한 하이엔드 편집숍에서 먼저 입점 제안이 온 것이다. 이때부터 먼저 찾아가는 아웃바운드 영업이 아닌 찾아오게 만드는 인바운드 영업에 집중하게 됐다. 하이엔드 시장을 공략하기로 하며 그 외의 채널들은 과감하게 정리했다. 당장의 매출을 위해서는 뼈 아픈 선택이었지만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위한 결단이었다. 현재는 국내 30여 개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중 10개에 입점한 상태이며 대중적인 플랫폼 중에서는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 왔고 감도 높은 큐레이팅을 선보인다고 평가받는 29CM에서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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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데이터에서 탄생한 시그니처

김 팀장의 합류 이후로 개발 과정도 더욱 전략적으로 진행됐다. 2021년 열린 페어에서는 전시 부스에 구글폼이 연동된 QR 코드를 부착해 방문객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높은 관람객들인 만큼 신뢰도 높은 결과가 나올 것을 기대했다. 조명 구입에 가장 결정적인 요소를 물었더니 1위가 디자인, 2위 브랜드, 3위 가격, 4위 기능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90%가 디자인을 선택했고 가격은 상대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소비자들이 조명을 하나의 가구와 같이 소비한다는 통찰을 발견했다. 이외에도 유럽의 선도 기업들을 중심으로 제품 라인, 라인별 제품 수, 신제품 , 가격대 등을 조사해서 정리했다.

이처럼 데이터에서 도출한 인사이트는 디자인팀에 전달됐다. 당시 경쟁사들이 빛을 사방으로 퍼뜨리는 제품들을 선보이며 소소하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에이콘과 프로그는 알루미늄으로 셰이드를 제작해 빛이 아래로 떨어지는 제품이었다. 마침 권 팀장 또한 차기작을 유리로 제작할 계획이었던 터라 쉽게 신제품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다. 유리는 알루미늄에 비해 공정도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드는 재료이지만 마케팅팀의 데이터를 통해 한차례 수요를 증명했고 통상 연말에 조명 수요가 몰리기에 9월부터 개발에 착수했다.

그렇게 2021년 12월, 일광전구의 시그니처 제품으로 자리매김한 스노우맨과 형제 제품인 스노우볼이 탄생했다. 스노우맨은 두 개의 타원형을 위아래로 붙여 납작한 눈사람 형태를 띠고 있으며 스노우볼은 하나의 타원으로 눈 뭉치를 닮았다. 네이밍이 제품디자인의 연장이라고 믿는 권 팀장의 신념에 따라 형태와 잘 어울리면서도 사람들에게 좋은 추억을 상기시키는 이름을 짓고자 했다. 그는 사람들이 신제품을 보고 어릴 적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던 추억을 떠올렸으면 하는 마음에 스노우맨, 스노우볼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한 차례 반응에 뜸을 들였던 에이콘, 프로그와는 달리 바로 주문이 몰렸다. 한 달에 백 단위로 들어오던 조명 제품 주문이 수천 개로 훅 뛰었다. 무난한 디자인의 스노우볼이 선전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개성을 더한 스노우맨 제품이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진한 아이보리 색을 띤 버터 컬러가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스노우맨의 흥행 직후인 2022년 2월에 열린 페어에는 전구 없이 조명만으로 처음 참여했다. 부스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줄을 이뤘다. 마침 일광전구가 60주년을 맞는 해였는데 준비를 위해 서울에 방문한 대구 본사의 직원들 또한 그간의 성과를 체감하며 감격의 순간을 나눴다.

이후 설문조사에서는 스노우맨의 디자인이 귀엽고 예쁘다는 응답이 많았다. 그러나 권 팀장은 스노우맨의 성공에 대해 “디자인이 전부는 아니었다”며 “모든 게 다 잘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에서 조명 시장 전체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진 점, 조명의 수요가 몰리는 연말에 출시했다는 점, 시즌 분위기와 잘 맞는 이름과 컬러를 선택한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입지 굳힌 2023, 도약하는 2024

일광전구가 조명 제품을 처음 선보이고 5년 만에 일광전구는 조명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일광전구 전체 매출 중 조명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70%에 달해 내부적으로도 피벗에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일광전구만의 브랜딩과 디자인도 롱 라이프라는 키워드 아래 정체성이 확고해졌다. 디자인적으로는 조명이라는 제품을 떠올렸을 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춰야 한다. 안정적인 인상을 줘야 하며 지나치게 트렌디한 디자인은 지양한다. 기술을 자랑하기 위한 디자인 트릭을 활용하거나 업계에서 선보인 적 없는 혁신을 시도하는 것도 선호하지 않는다. 소재나 후가공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을 택한다. 최근 무광이 트렌드이지만 적용하지 않는다. 유광이 더욱 자연스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조형적으로 완벽한 인상을 줘도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옛것들은 가공 기술의 한계로 특정한 각도 또는 딱 떨어지는 대칭을 구현할 수 없다. 레트로를 트렌드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형태를 마주하면 자연스레 인간적이고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스노우맨 제품들의 셰이드 또한 유리 작업자들이 직접 입으로 불어 제작한다. 완벽한 대칭을 만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품질 관리도 엄격하게 해야 한다. 완벽할 수 없는 수작업으로 만들었지만 어딘가 홈이 패였다든가 조립이 제대로 되지 않는 건 고객들이 바라는 빈티지 디테일이 아니다. 이러한 티끌들을 최소화해야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 문제가 생긴 제품에 대한 서비스도 폭넓게 제공해야 한다. 즉, 롱 라이프 디자인이란 단순히 질리지 않는 디자인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생산, 마케팅 등 기업의 모든 가치사슬에서 실천해야 구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광전구는 미래를 낙관하며 현재의 성공에 마냥 안주하지 않는다. 2023년 팬데믹이 불러온 고금리, 고물가의 여파로 국내 소비자들도 지갑을 꽁꽁 닫았으며 2024년 경기 전망도 그리 밝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는 조명 시장 트렌드에도 영향을 미쳤다.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대의 무선 포터블 제품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럭셔리 브랜드들에서도 하나둘 가격을 낮춘 포터블 제품을 선보였다. 실제 설문조사를 진행해 보니 유선 제품 대비 포터블 제품 구입에서는 가격 요인의 중요성이 4~8배가량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광전구는 2023년 3월 시그니처인 스노우맨을 포터블 제품으로 재구성해 발 빠르게 대응했다. 숙련된 유리 작업자들이 만드는 기존 스노우맨의 셰이드와는 달리 플라스틱으로 사출해 비용을 낮췄다. 이로써 20만 원 중반에서 10만 원 초반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스노우맨 포터블 제품은 2023년 3만 개가량이 팔리며 2만 개가량이 팔린 테이블 스탠드의 판매량을 앞질렀다.

스노우맨을 중심으로 중국산 카피 제품들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디자인 출원을 통해 방어하고 있다. 법적 조치를 가하겠다는 공문을 보내면 상대방이 바로 제품을 내린다. 독자적인 디자인으로 브랜드를 지킬 수 있는 대책이 생긴 것이다.

올해 2월에는 2세대 스노우맨을 선보일 예정이다. 전기 안전 인증 문제를 해결하고 마감, 디테일 등 품질을 높인 제품으로 소비가 얼어붙은 국내를 넘어 미국 등 해외시장을 적극 개척해 규모를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해외 진출 전략 역시 국내 전략과 같다. 하이엔드 채널에 입점하고 먼저 컨택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에서 러브콜이 오기 시작했다. 중국 상하이의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인 아이유스에서 입점 제안이 왔다. 2023년 10월부터 전기 안전 인증으로부터 자유로운 포터블 제품을 우선적으로 납품하기로 했다. 운송, 세금 등 비용이 더 붙음에도 일광전구는 최대한 한국과 유사한 수준의 가격을 유지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이유스 측에서 제품의 가치를 높게 사며 2배가량의 가격 인상을 제안했다. 미국에서 최고로 꼽히는 디자인 숍에서도 입점을 제안해 협의를 마무리하는 단계다. 스마트 전구를 사용하거나 타이머를 설정할 수 있게 하는 등 기능을 강화한 제품도 선보일 계획이다. 작년 5월 서울 회현역 인근에 ‘일광전구 IK 서울 쇼룸’을 열었다. 적산가옥을 개조한 건물이라 오래된 것을 지키고 조명하는 일광전구와 합이 잘 맞는 공간으로 오프라인을 통해 감각적인 고객 경험을 제공하고 브랜드가 추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아울러 쇼룸의 존재 자체가 고객들에게 신뢰를 제공하기도 한다. 현재 라인업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2024년 확장이전을 통해 더욱 풍성한 현장 고객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DBR mini box I: Interview: 김홍도 일광전구 대표

“사업엔 ‘방향’이 중요… 사무실 밖에서 새 아이디어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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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대표는 스스로를 대구 서문시장 장돌뱅이 출신이라고 표현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전거를 타고 근거리 전파상에 전구를 배달하며 부모님의 사업을 지켜본 그는 1998년 외환위기와 중국산 저가 제품의 시장 침투로 흔들리던 회사를 물려받아 약 25년간 회사를 지탱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3세로의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에게 사업 전환의 지혜와 가족 경영에 대해 물었다.

일광전구는 수차례 변화를 겪어왔다.
사업 방식을 전환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첫째는 방향이다. 미친 듯이 질주할 수 있는 탄탄대로라도 모두가 죽는 방향이라면 과감하게 틀어야 한다. 둘째는 차별화다. 새로 설정한 방향에 기존 기업과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일광전구 또한 내 아버지 때부터 꾸준히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차별화를 꾀했다. 나 역시 크기를 줄이거나 수명을 늘리는 등 일광전구만이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셋째는 그에 따른 실행이다. 밀어붙일 때는 밀어붙이고 뭔가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빠르게 수정해야 한다.

올바른 방향을 잡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상 모든 영역에서부터 사업적 영감을 구해야 한다. 여행을 하거나 운동을 할 때도 늘 머릿속 한편에 회사 생각이 있다. 클래식 전구와 파티 라이트도 전부 여행 중에 힌트를 발견했다. 뭔가 떠오르면 바로바로 휴대폰에 메모한다. 과거에는 손으로 직접 썼는데 휴대폰에 저장하니 필요할 때마다 쉽게 메모하고 검색할 수 있어 참 좋다.

변화의 순간에 내부 구성원의 불안이나 반발은 없었나.

무언가 변화를 선포해야 하는 날은 아침부터 두근거린다. 모두가 내 얼굴을 주목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런 순간마다 늘 직원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전적으로 나를 믿으라”고 선언한다. 이미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니 내리는 순간 죽음이라고. 호랑이가 제풀에 지칠 때까지 계속 달려야 한다고. 나 스스로도 새로운 방향에 확신이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조명 사업으로 초점을 옮기면서도 똑같이 말했다. 사업을 전환하면 누군가는 평생 하던 일과는 다른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 일이 하기 싫은 일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리더가 더욱 강한 확신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 직원들 앞에서 쭈뼛거려서는 안 된다. 오랜 시간 같이 시간을 보낸 직원들은 내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신뢰한다. 늘 성과로 입증했기 때문이다.

2세와 3세가 함께 경영하고 있다.
각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내 역할은 큰 방향성을 잡는 것이다. 시장도 소비자도 내 한창때와는 너무나도 달라졌다. 현장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은 대부분 위임한 상태이다. 경영자로서의 면모를 갖춰갈수록 차차 더 많은 권한을 넘겨줄 예정이다. 올해에는 더 큰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자 팀장에서 이사로 직책을 새로 달아줬다.

가족 경영의 장점은 무엇인가.

위기의 순간에도 매달릴 수 있는 사명감이 아닐까. 어떤 전문경영인이 사양 산업에 속한 지방의 중소기업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손을 들겠는가. 아들에게 요즘 하루 몇 시간이나 일하냐고 물었더니 12시간 넘게 일한다고 대답하더라. 나 또한 어려운 때 회사를 이어받고 하루 20시간씩 일했다. 회사를 지킬 수 있다면 잠을 줄이는 건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가족 회사가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부자는 일찍이 승계를 논의하고 준비해왔다. 반면 사업을 물려주겠다 해도 자녀들이 거절해 끝내 문을 닫는 지방의 중소기업도 늘고 있다. 자식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고 싶어 하기도 하지만 승계에 관한 정책이 까다롭기도 하다. 중소기업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정책이 완화됐으면 좋겠다.

변화의 흐름에서도 일광전구가 지켜 나갈 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백열전구이다. 2022년 10월 백열전구 직접 생산을 중단했다. 1962년부터 생산한 전구 수가 약 6억2404만 개였다. 전 세계적으로 백열전구 시장이 위축되니 자재를 조달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조명 작업을 위한 공간도 필요했다. 그렇지만 백열전구는 계속해서 판매하고 있다. 이미 5년간 판매할 양을 생산해 재고로 확보해 뒀고 주문자위탁생산(OEM) 방식으로 전환했다. 추후에 OEM마저 어려워지는 상황이 온다면 백열전구 라인을 다시 돌릴지도 모르겠다.

다만 일광전구만큼 다양한 광원을 보유하고, 광원을 잘 이해하는 기업도 없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본질을 지키고 무기로 활용하며 조명 시장에서 승부를 보는 건 다음 세대의 몫이다.

생존이 목표가 된 경영자들을 위한 조언이 있다면.

종교는 없지만 신의 존재는 믿는다. 신이 나를 안 도와줄 수 없게끔 일에 매달리면 언젠가는 선물 같은 순간이 온다. 나에게는 버스 회사를 운영하던 때 외환위기가 그러했고, 일광전구에서 조명을 내놓을 때 코로나19 사태가 그 역할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위기였지만 나에게는 구사일생의 기회였다. 착실히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기회는 어디서 올지 모른다.

DBR mini box 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전구 넘어 ‘빛의 가치’에 포커스… 최첨단 시대에도 롱런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marnia@dgu.edu



최근의 사회 환경에서 브랜드 전통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모든 게 가벼워지고, 얇아지고, 짧아지고, 작아지는 소위 경박단소(輕薄短小) 시대로 가면서 장수 브랜드를 찾기가 쉽지 않아졌다. 기술 발전과 함께 제품이나 브랜드의 수명 주기가 짧아지고 계속해서 대안이 등장하는 시대다 보니 무엇 하나 진득이 오래가는 것을 찾기가 쉽지 않게 된 것이다. 소비자도 기업도 어쩔 수 없이 이에 적응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예전에는 오래가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래서 장수 기업, 장수 브랜드가 각광을 받으며 그들을 연구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첨단 기술의 발전, 인구구조 변화, MZ세대라는 신인류 등장과 함께 그런 열기가 식어가는 것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법한 백열전구 회사가 최첨단 시대에도 당당히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안겨 준다. 게다가 이 회사로부터 미래 기업 존속에 대한 여러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조그마한 기업이 역경 속에 초심을 지키고 자신의 정체성을 재발견, 환경 변화에 순응해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을까. 몇 가지로 요약해 본다.

1. 제품 브랜딩이 아닌 가치 브랜딩

전략적으로 단기성 목적의 브랜드를 출시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보통은 브랜드를 한 번 론칭하면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 오래가길 바란다. 인간의 장수에도 비결이 있듯 브랜드가 장수하려면 무언가 달라야 한다. 제품 중심이 아닌 가치 중심 브랜딩이 바로 그 핵심이다. 특정 제품에 의존한 브랜딩은 환경 변화와 같은 위험에 급격히 쇠락할 수 있다. 롱런하려면 제품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가치 제안이 수반돼야 한다. 가치는 여러 형태의 제품, 서비스로 표현될 수 있다. 특정 제품은 성공하더라도 그 제품의 특성에 제한되기에 확장성이 약하다.

전구라는 제품에서 ‘빛’이라는 가치로의 대전환은 신의 한 수다. 이 한 수로 일광은 역경 속에서 지금도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전구라는 물적 정체성은 그 물성적 특성으로 인해 적용 범위와 확장의 한계가 명확하다. 하지만 빛은 밝음이라는 가치적 성격을 띠고 적용과 구현에 있어 범위와 확장성은 커지게 된다. 전구 회사에서 조명 회사로 전환하며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바로 가치 브랜딩이 자리 잡고 있다.

악조노벨이라는 300년이 넘은 네덜란드 출신의 글로벌 페인트 기업이 있다. 장수의 이유는 페인트가 아닌 컬러를 만드는 기업이라는 가치 표방 덕분이었다. 단순히 건설 현장이나 자동차, 선박 제조에 사용되는 페인트 제조에 머물렀다면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컬러로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는 가치 기반 브랜드 정체성은 다양한 진화와 확장을 가능케 했다. B2B에 머물지 않고 컬러 코팅 기술을 통해 벽지 등 인테리어, 홈 스타일링 분야로 진출하고 가구, IT 제품 등 다양한 B2C 분야로 그 적용 범위를 넓혀갔다.

최근 들어 제품 중심의 브랜드들이 가치 중심 브랜드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영역 파괴의 시대에서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함이다. 기아자동차의 경우 자동차라는 제품명을 벗어던지고 ‘기아’로 리브랜딩했다. 자동차에 국한하지 않고 미래 모빌리티 사업 어디로든 광폭 확장을 하겠다는 의미다. 스타벅스커피는 스타벅스로, 던킨도너츠는 던킨으로 리브랜딩했다. 마스터카드는 로고에서 마스터카드라는 워드마크를 제거하면서 특정 아이템에 국한하지 않음을 선언했다. 벽이 허물어지고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다양한 크로스오버가 나타나는 세상이기에 특정 제품명, 서비스명에 고착되면 시대 변화에 능동적 대처가 어려워진다. 파괴의 시대이기에 특정 형식이나 형태에 머무르면 불확실성이 강한 환경에 살아남기 어렵다. 딱딱한 고체적 정체성에서 벗어나 유연한 액체적 정체성으로 전환해야 오래간다. 일광전구의 사례에선 전구를 고체에 비유한다면 빛은 액체에 비유할 수 있다.

물론 너무 자주 바뀌거나 정체성 없이 변화만 강조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혼란만 가져다준다. 우선은 새로움에 잠깐 시선을 끌 수 있지만 지나친 변화는 그 브랜드만의 아우라를 찾기 힘들게 해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된다. 변하지 않아 식상하면 발길을 돌리지만 너무 자주 변해 부담이 생겨도 발길을 돌리게 된다. 중간점을 잘 찾아야 된다. 그래서 ‘일관된 변화(Consistent Change)’라는 다소 역설적인 키워드를 던지게 된다. 변화하되 일관성을 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속적 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 미래 환경 변화에 살아남고 장수하는 비결이다.

2. 롱 볼 마케팅이 아닌 빌드업 마케팅

최근 대한민국 축구가 많이 성장했는데 그 비결에 ‘빌드업’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과거에는 소위 ‘뻥축구’라 불리는 ‘롱 볼 축구’(상대 진영을 향해 롱 패스 날리는 것) 위주였다면 지금은 수비수, 미드필드, 공격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포지션을 지나며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 쌓아가는 빌드업 축구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실수도 적고 각자의 포지션 역할을 지키며 좀 더 탄탄한 축구를 할 수 있다.

마케팅도 축구에 비유할 수 있다. 특정 타깃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향해 유료 광고를 행하는 전통적 매스 마케팅이 롱 볼 마케팅의 예가 된다. 대규모 할인이나 사은품 증정과 같은 특정 판촉행사도 롱 볼 마케팅에 해당된다. 이들은 롱 패스 후에 몰려가며 체력 소모가 큰 축구처럼 특정 기간에 전력투구하기에 인적, 재정적 소모가 크다. 그렇다고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반면 일광전구처럼 서두르지 않고 반응을 살펴가며 단계적으로 타깃이나 접점을 수정, 보완해가는 방식은 빌드업 마케팅에 해당된다. 욕심을 내며 한꺼번에 전체 시장에 다가가기보다는 자사 제품이나 브랜드의 최적 접점 포인트에 있는 사람, 장소, 기업을 찾아 발굴해가며 점진적으로 신뢰를 쌓아 전진해가는 점에서 빌드업 축구와 닮았다.

아직도 많은 기업은 한 방의 유혹을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습관적으로 롱 볼 마케팅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유료 매체에 돈 내며 광고하고 할인으로 판촉하는 것이 마케팅이라 생각하는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브랜드 빌드업은 요원하다. 기업 중심의 미디어가 소비자 미디어 시대로 바뀌면서 마케팅에 대한 접근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요즘 MZ세대는 유료 매체에서의 광고 노출보다는 비(非)유료 매체에서의 콘텐츠 경험이나 직접 경험을 SNS에 공유해 서로 커뮤니케이션하기에 자연스러운 노출이 중요해지고 있다. 억지로 만든 작위적 세팅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기에 자연스런 직간접 노출 경험이 브랜드 진정성을 불러일으키며 그 브랜드에 대한 마니아로 이끌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 경험 여정을 따라 단계적으로 해당 접점의 키 플레이어를 찾아 그들과 협업하며 자연스러운 노출 경험을 만들어가야 한다.

일광전구는 광고, 홍보 전략뿐만 아니라 판매 채널 전략에서도 빌드업을 잘 구사했다. 조명 시장에 진출할 때 처음엔 다양한 레벨의 편집숍에서 출발해 여러 단계를 거쳐 하이엔드 채널에 집중하는 현재에 이르게 됐다. 처음부터 욕심을 가지고 무작정 덤벼들기보다 시장의 분위기를 파악해가며 자사 브랜드와 제품 정체성에 가장 적합한 채널을 단계적으로 찾아 들어가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 과정에서 채널 멤버들에게 브랜드 신뢰를 쌓아간 것이라 볼 수 있다. 작은 기업일수록 조급함에 롱 볼 위주로 가며 실수를 연발하고 결국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데 빌드업을 통해 실력을 키워가며 결정적 순간에 기회를 놓치지 않는 진정한 실력자가 돼야 한다.

3. 반짝 리브랜딩이 아닌 지속가능 리브랜딩

일광전구의 브랜드 전환 여정은 10여 년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 단발적 리브랜딩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장기적 리브랜딩 스토리라 더욱 값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많은 리브랜딩이 단기적 성과 창출에 초점을 두기에 잠깐 주목을 끌다 이내 사라지고 만다. 리브랜딩은 한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성장, 적응해가고 계속해서 진화해가기에 반짝 리브랜딩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리브랜딩 정책을 펼쳐야 한다.

지속가능 리브랜딩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브랜드에 진심이어야 한다. 제품 판매에 진심이면 매출액에 초점이 가고 가격이 무너지면서 브랜드 자부심도 함께 무너지고 만다. 반짝 매출 상승에 중독돼 너덜너덜한 리브랜딩 딱지를 단 ‘좀비 브랜드’들이 주변에 많다. 브랜드에 진심이어야 고통스러운 리브랜딩 과정을 참고 견뎌낼 수 있다. 리브랜딩은 고진감래와 같다. 고생 끝에 고객, 소비자의 사랑을 먹고 부쩍 성장한 브랜드를 만나는 단맛을 누릴 수 있다.

지속가능 리브랜딩 방법에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뉴트로(Newtro) 리브랜딩이다. 낯섬과 익숙함의 조화다. 익숙함은 안정, 낯섬은 설렘을 선사한다. 절묘한 감정의 교차다. 시대 변화에 맞춰 과거와 현재를 지속적으로 교차시키며 진화해갈 수 있다. 일광전구는 옛 감성과 현대적 디자인을 잘 버물려 IK 조명으로 전환하며 성공적인 뉴트로 기반의 리브랜딩을 지속해가고 있다. 첨단으로만 가지 않고 그렇다고 옛것에만 머무르지 않는 둘 사이에서 적정한 균형을 이루며 줄타기하는 것, 이것이 세대를 아우르는 지속가능한 리브랜딩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멀티페르소나 리브랜딩이다. 본캐와 부캐의 조화다. 본캐는 자신의 본질, 부캐는 일탈을 상징한다. 본질과 일탈의 묘한 결합은 신박함을 만들어낸다. 시대의 변화상을 시시각각 담아내면서 자신의 본질은 지키되 새로운 영역으로 넘나들며 지속가능성을 키워갈 수 있다. 일광전구는 백열전구 광원에 대한 본질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분야로 변신해가는 멀티페르소나 성격의 리브랜딩을 지속해가고 있다. 뉴트로와 멀티페르소나는 단발로 그치지 않는다. 세상의 변화와 소통하면서 지속해서 자신의 모습을 변경해갈 수 있다. 리브랜딩에 대한 관점을 단발에서 지속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 전환 필요성을 언급하고자 한다. 최근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이 흔히 ESG로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은 늙지 않고 계속 변화하며 주변 환경에 적응, 진화해가는 능력을 의미한다. 즉, 장수 능력을 의미한다. 경박단소 시대에 브랜드 수명 주기를 무조건 짧게만 볼 게 아니다. 일광전구와 같은 장수 브랜드가 국가적으로 발굴, 장려되고 많은 중소기업에 귀감이 될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 벤처기업 중에는 반짝 성공 뒤 팔고 나가는 엑시트를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다. 장수 브랜드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낼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브랜드’로 명칭을 바꿔서라도 사회 전반에 인식 전환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다. 백년대계를 가진 국가가 되려면 백년대계를 가진 기업, 브랜드가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어야 한다. 온고지신, 옛것을 익혀 새로움을 안다는 말처럼 주변에 오래됐지만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는 장수 브랜드를 찾아 그들로부터 미래에 대한 혜안을 찾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필자는 고려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사단법인 서비스마케팅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저명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저서로 『한국형 마케팅 불변의 법칙33』 『역발상 마케팅』 등이 있다.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시장 변화 발맞춘 피버팅… 사내 기업가정신 반짝반짝



강신형 충남대 경영학부 조교수 sh.kang@cnu.ac.kr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는 기성 기업의 쇠퇴와 신생 기업의 출현을 야기한다. 그러나 일부 기업은 변화의 흐름에 맞춰 스스로를 혁신하는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생존을 이어간다.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가 IBM이다. IBM은 사무용 기기를 생산하는 사업으로 출발해 중대형 컴퓨터 개발을 선도했으며 현재는 데이터 분석 및 관리, 컨설팅 등 다양한 서비스 기업으로 변모했다. 스타트업과 구분되는 이런 기성 기업의 기업가정신을 ‘사내 기업가정신(Corporate Entrepreneurship)’이라고 한다.

일광전구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고 또 변화 중이다. 에디슨의 백열전구로 태동한 전기 조명 기술은 이후 형광등, 삼파장 전구, 발광다이오드(LED) 등으로 발전했다. 일광전구는 이런 기술 변화 속에서 백열전구라는 유산을 계승하며 강소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반도체, 인공지능(AI)과 같은 최첨단 기술을 다루는 기업은 아니지만 환경 변화에 맞춰 기존 사업을 혁신해 새로운 기회와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사내 기업가정신의 본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일광전구 사례의 시사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피버팅은 단 한 번의 결정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7개 스타트업의 전략적 의사결정과 그 변화 과정을 약 2년간 관찰한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와튼스쿨의 커틀리 교수와 보스턴대 경영대학의 오마호니 교수는 피버팅이 점진적 전략 변화의 누적적 결과이며 단 한 번의 극적인 변화가 아님을 강조한다.i 스타트업은 기회와 위협을 촉발하는 새로운 정보를 수집해 기존 전략의 타당성을 계속 검증한다. 새로운 정보가 기존 전략의 가정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기존 전략을 고수하지만 크게 벗어나면 전략 변화를 감행한다. 그러나 한 번에 모든 요소를 변화시키기보다는 전략의 일부만 수정하며, 여러 번의 작은 전략적 변화가 축적돼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전반적인 방향의 재조정, 즉 피버팅이다.

일광전구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 백열전구 제조에서 조명 가구 사업으로 전환했다. 90년대 말 IMF 경제위기에서는 아웃소싱 생산과 신공장 설립으로 생산 효율화를 이뤘다. 전구 크기를 조금 줄여 물류 효율화도 달성했다. 10여 년 뒤에는 장식용 전구로 사업을 전환했고, 이후 다시 10년이 지난 지금 조명 가구 사업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최근 10여 년의 변화는 전보다 더욱 극적이었으나 그 과정은 답답할 만큼 점진적이었다. 패키지 리뉴얼을 시작으로 브랜드 개발 등을 통해 디자인의 핵심 역량화 가능성을 검증했다. 이후 새로운 마케팅 및 유통 채널을 구축하고 일종의 MVP(Minimal Viable Product, 최소 기능 제품)라 할 수 있는 단순한 방식의 와이어 스탠드 조명을 출시하며 신사업의 운영 방식을 검증했다. 이 모든 검증이 끝난 후 신사업에 대한 확신이 들었을 때 백열전구 생산 중단을 천명하고 조명 제품을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한마디로 구현(Build), 측정(Measure), 학습(Learn)의 사이클을 반복하는 ‘린 스타트업’ 과정을 점진적으로 되풀이하며 신사업으로 재편한 셈이다. 어쩌면 이런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변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에 대한 구성원의 반발이 덜했을지도 모른다.

2.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라

59명의 창업가를 8개월간 관찰한 케임브리지대의 그라임스 교수는 새로운 사업으로의 피버팅이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로 사업에 대한 창업가의 ‘심리적 소유감(Psychological Ownership)’을 든다.ii 심리적 소유감은 아이디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감정으로 아이디어와 스스로를 동일시(Identification)하는 것이다. 이는 창조적 근로자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로 창업가 역시 자신이 고안한 사업 아이디어에 대해 심리적 소유감을 강하게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경우 창업가는 주변에서 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거나 정보를 입수하더라도 피버팅을 거부하고 기존 사업 아이디어를 고수한다. 그라임스 교수는 창업가가 자신의 생각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 차별화에는 도움이 되지만 특정 시점에서 피버팅이 일어나려면 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심리적 소유감에서 일정 부분 벗어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광전구의 김홍도 대표는 백열전구의 감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업을 접지 않았다. 다만 백열전구라는 감성을 바탕으로 사업 방식이나 제품 차별화 측면에서 변화를 모색했다. 심리적 소유감을 일부 내려놓음으로써 기존 사업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시대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매체를 접하며 순간순간의 생각을 메모하고 반추한다. 그라임스 교수는 ‘집단적 의미 형성(Collective Sense-making)’이 심리적 소유감을 벗어나는 데 도움된다고 강조한다. 집단적 의미 형성은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와 피드백을 비슷한 지위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나누면서 정교화하는 것으로 창업가의 메타인지를 높일 수 있다. 본질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3. 과거를 바탕으로 과거와 단절하라

조직이 새로운 것을 학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버려야 하는 ‘폐기 학습(Unlearning)’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조직이 기존 사업에서 구축한 지식이 혁신에 저항하는 관성(Inertia)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광전구는 폐기 학습의 첫 단계로 2022년 10월 백열전구 생산을 중단하며 과거와의 단절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리고 직원들을 의도적으로 재배치했다. 예를 들어, 품질관리 담당자가 조립, 제조 담당자가 수입 검사, 자재관리 담당자가 고객서비스 담당을 맡는 등 기존에 자신이 하던 업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동떨어져 있지도 않은 업무로 변경한 것이다. 새롭게 진행하는 마케팅 영역은 김시연 이사에게 전권을 맡겨 새로운 역량을 구축하도록 했다. 익숙함에서 탈피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도록 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학습과 폐기 학습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러나 이렇게 조직을 뒤흔들 경우 구성원의 반발과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축적된 시간만큼 기존의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직원이 많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내부 이해관계자인 직원들로부터 변화에 대한 심리적 지지를 얻고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일광전구가 백열전구를 만들던 오랜 역사를 지난 회사임을 잊지 않도록 했다. 생산은 중단했으나 백열전구 공장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뒀다. 당시에 쓰던 장비도 일부는 그대로 뒀다. 공장 부지에 백열전구의 필라멘트를 상징하는 대나무 조경도 그대로다. 생산을 중단하면서 과거의 유산을 기념할 수 있는 책도 발간했다. 이 모든 것이 일광전구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정체성 확립이 변화 과정에서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이다.

4. 없다면 빌려야 한다

창업가의 기회 실현 과정에서의 자원 동원을 연구한 클러프 교수 등은 스타트업이 확보해야 하는 중요 자원 중 하나로 이해관계자로부터의 정당성(legitimacy)을 언급한다. 정당성은 조직이 제도적 환경에서 적법하다는 인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새로운 분야에서의 정당성 확보는 기존 사업을 버리고 신사업을 시작하는 기성 기업 입장에서 다른 어떤 자원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일광전구가 스스로 조명 가구 업체로 변화했다고 아무리 외쳐도 고객, 공급자, 유통회사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업에 진출한 기업은 정당성 확보를 위해 광고, 홍보에 막대한 지출을 한다. 그러나 일광전구는 그럴 만한 자금이 부족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외부 업체와의 컬래버레이션이다. 예를 들어, 아우디 신차 공개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얻었고 식당, 카페 등과 협업을 진행해 인테리어 소품으로서의 전구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고객이나 유통회사 등 주요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단순 백열전구 제조사가 아닌 인테리어 소품 제조사로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과정이었다. 창업과 마찬가지로 신사업 추진 과정에서도 부족한 자원을 발 빠르게 확보하는 방법은 협력을 통해 외부에서 빌려오는 것이다.

혁신은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유일한 방법은 작은 변화를 계속 주면서 시장 반응을 살펴보고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다. 정확한 방향 설정을 위해서는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따라 적절한 자원을 확보하고 필요하다면 과감히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

일광전구의 변화는 아직 진행 중이다.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일반인 입장에서는 일광전구의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의 이면에는 수많은 갈등과 고뇌가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가장 먼저 버텨내야 하는 사람은 리더 자신이다. 구성원의 몰입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리더 자신의 믿음이 확고해야 한다. 리더가 방향을 잃는 순간 조직은 무너진다.



필자는 카이스트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경영대학에서 경영공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LG전자 본사 전략기획팀에서 신사업 기획, M&A, J/V 등의 업무를 수행한 바 있으며 LG전자 스마트폰 사업부에서도 근무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경영 혁신으로 개방형 혁신, 기업벤처캐피털(CVC) 등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가치경영의 실천 전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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