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by Map

중년은 인생지도를 업데이트하는 기간
못 치는 공은 참고, 잘 치는 공 노려라

257호 (2018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사람은 모든 분야에서 모든 걸 잘할 수는 없다. 최고의 타자도 잘 치는 구질과 본인이 강점을 갖는 스트라이크존은 정해져 있다. ‘강점존’을 잘 파악하고 연습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칼 융이 말하는 제2 성인기는 40세가 지난 이후에 시작된다. 이때에는 인생항로가 자의든, 타의든 크게 바뀌는 경우가 많다. 이때 자신에게 질문을 잘 던져야 한다. 짐 콜린스의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가’ ‘무엇으로 경제적 안정을 얻을 것인가’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즉 강점, 소명, 성과, 조직으로 치환할 수 있는 ‘인생 질문’은 상당히 좋은 질문 가이드라인이다.

편집자주
DBR은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거나 혁신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하는 ‘Management by Map’ 코너를 연재합니다. 지도 위의 거리든, 매장 내의 진열대든,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든 공간을 시각화하면 보이지 않던 새로운 정보가 보입니다. 지도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지혜와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추신수와 워런 버핏의 공통점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전반기 52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웠고 처음으로 올스타에 뽑혔다. [그림 1]은 최근 3년 동안 추신수의 스트라이크존 세부 구역별 타율을 보여준다. 매년 상대 팀에서 약점을 공략하기에 도전과 응전이 계속된다. [그림 1]은 추신수의 인생이 걸린 치열한 공방의 기록이다. 매년 변화가 있지만 추신수가 3년 내내 강점을 유지하는 구역이 있다. 노란 사각형으로 표시했다. 추신수가 가장 잘 치는 핵심 구역이다. 추신수의 두 번째 강점은 상단부다. 높은 공은 잘 치고 하단부 스트라이크에는 취약하다. 메이저리그 타율 최상위 5명의 분포도를 살펴봐도 비슷하다. 모든 타자가 강점과 약점을 갖고 있다.

“제가 왜 테드 윌리엄스의 타율 분포도를 벽에 걸어 뒀는지 아십니까?” 버크셔 헤서웨이 CEO 워런 버핏은 웃으며 말했다. 테드 윌리엄스는 1941년 정규시즌 타율 4할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유일한 기록이다. “그조차 모든 공을 잘 치진 못했어요. 바깥쪽 아랫부분은 2할
2푼대로 떨어졌습니다. 만약 그쪽에만 집착했다면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야 해요. 강점존을 벗어나지 않았기에 최고 성적을 낼 수 있었지요.” 테드 윌리엄스는 못 치는 공은 참고 잘 치는 공만 공략했다. 워런 버핏은 자신의 투자전략을 그에게서 배웠다고 강조한다. “제가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사업은 정말 열 가지도 너무 많습니다. 절대로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관심 분야를 최대한 좁혀 아주 깊게 분석해야 합니다.”

미국 CBS 뉴스는 추신수가 올 전반기에 어떻게 최고의 시즌을 만들었는지 분석했다. 적게 휘두르는 자제력과 나쁜 공을 참아낸 인내심에 주목했다. 메이저리그 타석에서 100개 투구가 날아온다고 상상해보자. 좋은 공도 있고 나쁜 공도 있다. 올해 상반기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평균 46.4번 배트를 휘둘렀다. 추신수는 40번만 스윙했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난 공을 쫓아가 스윙하는 비율이 평균 28%일 때 추신수는 21%를 기록했다. 나쁜 공의 유혹을 더 참아냈다. 올해 놀라운 출루 기록이 나온 배경이다. 참고 기다렸다가 강점존에 공이 들어오면 안타와 홈런을 만들어 낸다. 1


진정한 강점구역
IDEO는 애플의 최초 마우스를 디자인했다. 디자인 컨설팅의 대표 기업으로 평판을 쌓았다. 친형 데이비드 켈리는 보잉의 디자이너였고, 동생 톰은 컨설팅 회사에서 일했다. 서로 뜻을 합쳐 IDEO를 창업했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업을 창조했고 아무도 가지 않을 길을 걸어왔다. 자신들의 저서 『유쾌한 크리에이티브』에서 두 형제는 독창적인 창의성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짐 콜린스의 ‘인생질문’을 소개했다. 2

미국 스탠퍼드대 테크놀로지 벤처스 특강에서 동생 톰 켈리는 책보다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3 동영상의 내용과 짐 콜린스가 직접 발표한 원고를 참고해 정리해봤다. 4 고교 시절 짐 콜린스는 수학을 잘했다. 그래서 대학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했다. 공부도 재밌고 학점도 괜찮았다. 그런데 고민이 생겼다. 수학시험을 볼 때였다. 그는 3시간을 채워 겨우 문제를 다 풀었는데 20분 만에 모든 문제를 풀고 시험장을 빠져나가는 친구들을 보게 됐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수학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수학을 좋아하지만 평생 탁월하게 잘해낼 수 있는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짐 콜린스는 스스로 물었다. ① Good at -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② Born to Do -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가? ③ Pay you to Do - 무엇으로 경제적 안정을 얻을 것인가? 자신이 좋아하는 브람스 교향곡을 수백 번 듣는다고 해서 동전 한 푼 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로를 바꾸기로 했다. 대학 졸업 후에 MBA를 선택했고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18개월 일했다. 다음으로 휴렛팩커드(HP)의 제품 매니저로 일했다. 그런데 3년 차가 되자 무료함이 찾아왔다. 열정은 바닥났다. 다시 ①②③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대답을 찾기로 했다. 즉흥적인 결정을 피하기 위해 자신에 대한 관찰 기록을 2년 동안 적어갔다.

두 가지 뚜렷한 패턴이 드러났다. 복잡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즐겼다. 남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나누는 열정도 발견했다. 저술 활동과 경영대학원 강의에 전념하는 계기가 됐다. 스탠퍼드 MBA에서 ‘최고 강의상’도 받았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① 자신이 잘하고, ② 소명의식을 느끼며, ③ 경제적인 성과까지 모두 겹치는 공통분모를 찾았지만 행복감이 충만하지 않았다. ④ 누구와 함께하는지에 따라 ①②③ 전체의 만족도가 좌우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스탠퍼드경영대학원의 교수직에서 물러나 독립적인 경영연구소를 설립했다.

짐 콜린스의 인생질문을 실제로 필진 두 사람의 진로 탐색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짐 콜린스의 실험처럼 자신의 ① 강점, ② 소명, ③ 성과,
④ 조직 네 가지가 모두 포개지는 황금지대를 찾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독서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함께 읽고 토론했다. 비공개 블로그를 개설해서 가까운 지인들과 각자 자신에 관한 관찰 기록을 적고 고민을 나누며 조언을 구했다. 일정이 맞으면 함께 여행도 떠났다. 편백나무숲, 템플스테이, 짧은 워크숍도 다녀왔다. 일은 나쁘지 않지만 몰입과 열정이 느껴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토론했다. 경제적인 보상은 마음에 들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가치관이 충돌할 때는 어떻게 대처할지 의견을 나눴다. 그래서 강점, 소명, 성과, 조직 네 가지를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기까지 함께 의지하고 격려하며 동행하고 있다.

추신수의 가을, 짐 콜린스의 겨울
지난가을 메이저리그에는 추신수의 트레이드 루머가 나돌았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구단에 팔려가는 일은 당사자에게 힘겨운 시련을 안겨준다. 고액 연봉, 최고령, 타율 하락, 반 토막 난 수비 출전… 다음 시즌에 기회 자체가 줄어들 거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정규시즌이 끝나자 추신수는 타격 코치와 1년 성적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타율과 출루율이 가장 아쉬웠다. 냉정하게 진단했고 절박하게 대처했다. LA 다저스의 저스틴 터너는 메이저리그 타율 5위를 기록했다. 추신수는 저스틴 터너의 개인 타격 코치인 덕 래타(Doug Latta)를 찾아갔다. 개인 레슨을 시작했다. 타격폼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5

짐 콜린스의 나이를 한국식 표현으로 하면 ‘58년 개띠’다. 그가 서른여섯이었을 때 이야기다. 그해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을 출간했다. 12월에 피터 드러커와 약속을 잡고 자택의 초인종을 눌렀다. 캘리포니아의 겨울은 온화했다. 오랫동안 흠모해왔던 거장을 직접 만나게 됐다. 짐 콜린스는 자신보다 반세기 이상 컨설팅과 저술과 강의를 이어온 드러커를 직접 만나게 된 것이다. 한참을 기다려 초인종을 다시 눌렀다. “나갑니다. 나가요. 예전처럼 빠르게 걸을 수가 없어요.” 아흔다섯의 드러커가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 나왔다.

짐 콜린스는 그날의 교훈을 자신의 블로그에 소개했다. 6 첫째 교훈은 성공의 원천에 관한 것이었다. 아직 명성도 부족하고 이룬 것도 너무 적다고 생각한 짐 콜린스는 앞으로 더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했다. 드러커는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공헌으로 바꿔야 합니다. 공헌과 성공이 함께 가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과 분야, 그리고 외부 세계에 대한 공헌도가 높아지면 성취도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교훈은 겸손이었다. “장시간 귀한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관에서 짐 콜린스는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드러커는 “오늘 저 또한 당신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는 자신을 낮춰 학생처럼 배우려 했다.

자신을 다시 고양하는 질문이 있다. 드러커 저작은 대부분 이런 질문들로 채워졌다. “나의 강점은 무엇인가? 회사가 필요로 하는 것들 가운데 내가 공헌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특히 내가 남다르게 잘할 수 있는 공헌은 무엇인가?” 질문은 계속된다.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진정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은 무엇인가? 앞으로 수년 동안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그 일은 회사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인가? 나는 무엇에 공헌해야 하는가?” 연이은 중요한 질문은 “나는 어디에 속해야 하는가?”다. 7 드러커의 질문 중에서 ‘회사’ 대신 ‘분야’를 적용해봤다. 특정 회사를 뛰어넘어 전문 분야에서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칼 융이 남겨준 인생지도
직장과 일에 대한 질문만으로 인생문제가 모두 해결될 수는 없다. 청춘에만 머물 수도 없다. 신입사원은 한껏 희망을 안고 경력을 시작한다. 한편, 일터에는 직장생활 15∼20년 차 중년층도 있다. 메이저리그에 매년 신인이 등장할 때 고참 선수들은 언젠가 자신이 떠나야 할 경기장을 지켜보는 풍경이 동시에 일어난다. 올 상반기 메이저리그에서 100타석 이상 출전한 타자는 모두 153명이다. 그중에 서른다섯 이상은 딱 5명이었다. 추신수 같은 최고참 그룹은 선뜻 회사를 옮기기도 어렵고, 대책 없이 사표를 쓰기도 곤란하다. 그래서 중년의 심리상태는 복잡하고 곤혹스럽다. 중년의 진로 탐색에 대해 칼 융의 연구를 찾아봤다.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칼 융은 기나긴 중년의 위기를 경험한다. 곧바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칼 융은 군의관으로 포로수용소에서 복무한다. 단조롭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프로이트 학파로부터 파문을 당한 고립감은 고통스러웠다. 전쟁, 정서적 방향 상실, 직업적 불확실성으로 힘겨운 시간이 이어졌다. 칼 융은 마흔 살부터 자신의 생각, 감정, 꿈, 연구작업을 붉은색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솟아나는 감정이 정신을 위협할 때 요가, 명상, 놀이치료, 상상, 그림 그리기, 모래 쌓기, 메모를 이어갔다.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고, 듣고, 기록했다. 칼 융은 52세까지 계속 자신의 중년을 탐구해 나갔다.

칼 융 사후 그의 연구를 30년 동안 정리한 머리 스타인은 『융의 영혼의 지도』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융 자신도 지도 없이 영혼 여행을 하면서 두렵기까지 했을 것이다. 그는 이 여행에서 보물을 찾을 수 있을지, 아니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융은 자신을 미지의 인간 영혼의 신비를 알아내려는 탐험가로 생각했다.” 칼 융은 중년의 위기를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론을 완성하는 기회로 전환했다. 자신이 직접 겪었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아’와 ‘자기’에 대한 중요한 발견이 깊어졌다. 8



[표 1]은 칼 융의 저작에서 중년 위기만을 따로 분석한 제임스 홀리스의 연구를 압축했다. 9 칼 융은 제1차 성인기를 40세까지로 구분했다. 20대에 육체적 성숙은 완료되지만 사회적 성숙은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학업, 직업, 사랑, 결혼, 육아, 승진 등 개인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주제들이 30대 말까지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제1차 성인기는 무한정 연장될 수 없다. 신체적 쇠약, 직장에서의 위기, 정체성의 혼란, 열정의 고갈, 새로운 시도가 뒤섞이며 중년은 위기를 겪기 때문이다. 제2차 성인기는 세상과 자신에 대한 환상은 사라지고 환멸, 좌절, 무기력이 강화되는 시기다. 한마디로 인생의 가을 구간에 해당된다. 피터 드러커, 칼 융, 짐 콜린스가 이미 겪었고 조만간 추신수가 마주할 구간이다.

칼 융은 중년 위기를 극복하는 중간역의 이름을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불렀다. 개성화는 자기다움으로 건너가는 환승역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의 환경에서 인격의 근원인 자기에 도달하려는 기간이다. 1차 성인기에 맡은 배역의 가면(페르소나)을 벗고 무대에서 벗어나 진정한 내면을 직시하라고 권한다. ‘변하지 않으면 분노로 시들고, 다시 성장하지 않으면 내면의 붕괴를 경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자신의 명함과 이력서의 효력이 조만간 끝날 것이니 다음 단계로 이행하라고 권유한다. 개성화로 가기 위한 칼 융의 첫 번째 처방은 고독한 시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자신에 대해 메모를 시작해볼 일이다. 제임스 홀리스는 독서, 산책, 여행, 낙서하기 등 무엇이든 자신만의 방식을 시도하길 권한다.

어디에서 최고를 얻는가?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구속은 2000년 이후 점점 빨라지는 추세다. 투구정보추적시스템이 도입된 이래로 선발 투수의 패스트볼 속도는 2002년 시속 142.6㎞였다가 2015년 시속 147.6㎞로 빨라졌다. 2017년에 패스트볼의 비중은 54.5%를 기록했다. 10 추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13년째 경력을 이어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 전체 구종의 50∼60%에 달하는 패스트볼을 잘 치기 때문이다. 반면 슬라이더, 커브, 커터, 싱커와 같은 변화구에는 약점을 드러냈다. 모든 구종을 다 잘 치는 타자는 없다.



추신수의 구종별 대처 능력이 다르듯 직장인의 역량도 상황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는다. [표 2]는 직장인이 자신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법이다. 산업, 직무, 조직, 개인의 특성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동일한 사람일지라도 업무 성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전제를 반영했다. 두 명의 실제 사례를 소개해보려 한다. A는 금융공학 석사 학위를 마치고 증권사에 입사했다. 초기에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큰 문제 없이 회사 생활에 적응했다. 막상 자신이 직접 펀드를 맡아서 매일매일 성과를 보고하게 되면서 내적 갈등이 심해졌다. A는 매일 펀드수익률을 평가받고 다음 날의 대응방안을 보고하는 부서에서 일했다.

육상 선수에 비유하자면 100m 단거리 경기를 계속 뛰며 기록을 확인받는 처지였다. 하지만 A는 산업 흐름과 기업의 다양한 경영 요소를 분석해서 중장기적 투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더 알맞은 성향을 가졌다. 마라토너 스타일인 셈이다. 회사가 요구하는 업무 방식과 조직문화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투자 스타일에 맞는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그 회사는 2∼5년 단위의 투자전략을 실행하는 곳이다. A는 이전 회사보다 훨씬 뛰어난 실적과 정서적 만족감을 얻고 있다.

B는 대기업 그룹본부에서 전사적 전략기획을 담당해왔다. 전략사업을 연중 12∼15개씩 계속 검토했다. 검토할 사업은 계속 바뀌었다. 원래 전략업무를 좋아했지만 10년 이상 반복되자 소진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성장은 멈춘 것 같고 점점 불안감이 밀려왔다. 변화가 절실했다. 우선 자신이 어떤 성향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진단했다. 일부러 사업의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성과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사업부서에 지원했다. 매일 사업의 생생한 실체를 접하며 새로운 환경, 목표, 도전에 적응해 나갔다. 지루한 일상에 생기가 감돌고 업무에 몰입감이 올라갔다.



피터 드러커, 짐 콜린스, 칼 융의 인생질문을 건축물에 비유하자면 골조기둥과 같다. 근본적으로 중요하지만 답하기 어렵고 자칫 막막한 침묵으로 흘러가기 쉽다. 직장의 현실에서 더 나은 의사결정을 위한 질문법도 필요하다. 중년의 직장인은 전직과 부서 이동의 기회가 적다. 현재 몸담은 조직에서 최선의 방안을 찾아가는 안내지도가 필요하다. 골조만 있는 건물에서 살아가기는 어렵다. 지붕도 필요하고 창문과 계단도 갖춰야 한다. 어떤 질문을 던져야 자신의 특성과 회사의 특징이 최적으로 결합될 것인가? 완벽한 체크리스트를 찾는 대신 [표 2]를 참고해 자신만의 점검 항목을 만들어 보길 권한다. 스스로 질문해서 답을 찾지 않으면 남이 정해준 방식대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질문으로 바뀐 인생
언젠가는 회사에서 물러나야 한다. 퇴직 후 성공적으로 변화를 이룬 사례는 반가웠다. 그는 입사 28년 차에 통신 분야 대기업의 충북지사 고객센터장으로 승진했다. 나이는 오십대 초반이었다. 정년까지 버틸 것인가? 새로운 도전을 선택할 것인가?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나이 80대까지 내다보고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당장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2003년 최광근 센터장의 내면은 복잡했다. 그로부터 15년이 흘렀다. 현재 그는 ‘작가님’ ‘선생님’ ‘교수님’으로 불린다. 자신만의 옹기공방을 열어 작품활동을 한다. 경제 활동을 이어가며 대학과 체험 강좌에서 강의한다. 15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인생살이다.

퇴직을 준비하며 새로 도전할 만한 분야를 적었더니 20가지가 목록에 펼쳐졌다. 모두 실험할 수는 없었다. 그저 마음이 끌린다고 덜컥 선택할 수도 없었다. 자신만의 기준을 정리했다. ⑴ 내가 좋아하는 일 ⑵ 80살까지 할 수 있는 일 ⑶ 일정한 수입이 들어오는 일 ⑷ 자식과 주변에 부끄럽지 않은 일 ⑸ 내가 죽은 후에도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일 - 5가지를 정했다. 20가지 후보를 하나씩 대입해봤더니 모두 탈락하고 딱 한 가지가 남았다. 도자기 공예였다.

여주대 도예과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얼마나 가나 보자’ ‘그 나이에 무슨 도자기냐’며 비웃는 시선들이 많았다. 타고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도자기는 만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저 어린 시절부터 손으로 무엇인가 만들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도예과를 졸업하고 시골로 이사를 갔다. 살 집에 공방을 차리고 가마를 설치해 계속 작품을 만들었다. 공방에서는 판매와 체험 교실을 운영하고 외부 강의를 이어왔다. 가장 뿌듯한 일은 모교에서 외래교수로 가르친 일이다. 11 한발 더 나아가 옹기 제작에 관한 전문서 집필과 체험 프로그램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2

인생 항해를 위한 좌표계
지도 제작은 딜레마와 함께 시작된다. 3차원의 복잡한 타원체인 지구를 2차원의 평면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딜레마는 좌표계를 정하는 것이다. 독도의 위치를 지도에서 찾는다면 북위(N) 37도 14분 13초와 동경(E) 131도 51분 9초에서 만날 수 있다. 위도는 적도(0°)를 기준으로 북극(N 90°)과 남극(S 90°) 사이를 숫자로 표시한다. 경도는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경도 0도 0분 0초)를 기점으로 동서 180도씩 표시한다. 좌표계는 대륙마다, 국가마다, 소지역마다 수백 가지 버전으로 세분화된다. 3차원의 해당 지역을 더 적절하게 2차원으로 표시하기 위해서다.

심심풀이로 지도를 살피는 사람에게 위경도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바다에서 항해는 사람에게는 생명을 좌우하는 운명의 표식이다. 1707년 대영제국 최강함대를 대표하던 전함 4척이 영국 서쪽 작은 섬 바위에 부딪혀 침몰했다. 지도의 경도 표시가 잘못된 까닭이었다. 무려 2000명이 넘게 사망했다. 인생 항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에 대처하는 딜레마에서 시작한다. 도대체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인가?



복잡한 세상을 헤쳐나갈 좌표계가 필요하다. 세상의 변화를 읽어낼 좌표계는 없을까?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에서 적용한 것처럼 사회경제적 변화를 수평축으로 펼치고, 과학기술의 변화를 수직축으로 교차해 산업별로 진단하는 방법이 있다. 지도제작 분야처럼 인문사회학에서도 세상의 변화를 진단하는 좌표계는 수없이 많다. 항해자의 위치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가 공개한 『한국인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는 두 가지 질문을 채택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두 질문을 가로·세로로 교차해 인생의 중요한 변화마다 어떤 설정과 선택과 교훈이 있었는지 진단하는 것이다. 그 바탕 위에 다음 인생 항로를 재설정하는 것이다. 단 하나의 좌표계로는 충분치 않다.

중년이라면 자신만의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있다. 훌륭한 내비게이션은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실시간 교통상황을 반영한다. 중년은 인생 지도를 업데이트하고 최적 경로를 재탐색하는 기간이다. 피터 드러커는 마흔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본격적으로 고뇌하기 시작했다. 13 칼 융은 마흔부터 자신만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내면을 기록하며 『레드북』을 써 내려 갔다. 워런 버핏은 마흔에 투자조합을 해체하고 단기 투자를 포기했다.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단순 투자자에서 기업 경영자로 변신을 결심한다. 14

피터 드러커, 칼 융, 워런 버핏은 서로 다른 삶을 산 만큼 서로 다른 항해지도를 그렸다. 그럼에도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자신이 속했던 전문 분야의 전통적 관행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개성화를 이뤘다. 남의 길을 마냥 따라가지 않았다. 둘째, 세상에 태어날 때 지니고 나온 자신의 잠재력을 남김없이 발휘하기 위해 분투했다. 어디까지 가능한지 미리 알 수 없어 스스로 증명하고자 했다. 셋째, 중년에 이르러 다시 근본 질문을 던졌다. 자신만의 통찰력, 인내력, 실행력을 결합해 끊임없이 항해에 나섰다. 우리는 앞선 항해자들이 남겨놓은 지도를 보며 자신만의 항로를 개척해 나갈 것이다.

필자소개
송규봉은 공간 데이터를 분석하는 GIS 애널리스트로 일한다. 펜실베이니아대에서 GIS(지리정보시스템)를 공부하고 와튼경영대학원 GIS연구소에서 일했다. 지금은 연대 디자인경영 과정과 국민대 빅데이터 MBA에서 강의한다.
차동석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전략컨설턴트로 일했다. 통신·IT·미디어 분야에서 글로벌 신사업을 담당했다. 최근에는 라이프스타일과 헬스케어 분야에서 신사업을 직접 수행하기 위해 새로운 항해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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