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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朝鮮 : 충녕대군 세자 책봉

리더의 공백은 예고 없이 찾아올 수도… 승계 프로젝트 준비하라

김준태 | 217호 (2017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리더의 부재는 결정과 책임의 부재를 의미하기에 조직에 엄청난 위기를 몰고 온다. ‘대체 계획’과 ‘승계 계획’이 짜여 있어야 하는 이유다. 조선시대 가장 완벽한 승계를 이뤄낸 태종의 충녕대군(세종) 후계자 옹립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그래서 이 시대 많은 리더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태종은 두 가지 사항에 특히 신경을 썼다. 첫째, 왕권을 제약할 수 있는 요소를 제거했다. 둘째, 세종의 시대를 보좌할 대신들을 안배했다. 현대기업으로 치면 새로운 리더십을 위협할 수 있는 반대세력이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구시대 인물’을 물러나게 했고 CFO, CHO, CMO, COO 등 리더 집단을 미리 준비시켜줬던 것이다. “CEO는 취임과 동시에 후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태종의 승계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많은 부분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편집자주

조선에서 왕이 한 말과 행동은 거의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 가지 기록 중 비즈니스 리더들이 특히 주목해봐야 할 것은 바로 어떤 정책이 발의되고 토론돼 결정되는 과정일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왕과 마찬가지로 기업을 이끄는 리더들 역시 고민하고 판단하며 결정을 내리고 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미 해당 정책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 수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면밀히 성공과 실패의 요인들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정통한 연구자인 김준태 작가가 연재하는 ‘Case Study 朝鮮’에서 현대 비즈니스에 주는 교훈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1418년(태종18) 6월3일. 태종은 15년간 세자 자리에 있던 양녕대군을 전격적으로 폐위해 광주(廣州)로 추방하고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忠寧大君)을 세자로 삼았다. “세자의 행동이 지극히 무도(無道)하여 종묘사직을 이어받을 수 없다”는 대소신료들의 요구도 있었지만 양녕대군이 궁궐로 기생을 불러들이고1 후계자 수업인 ‘서연(書筵)’에 갖은 핑계를 대며 빠졌으며2 부녀자와 통정을 하는 등3 도저히 왕위를 이을 그릇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조치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우선 1)적장자가 왕위를 승계한다는 전통사회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게다가 2)충녕대군의 왕위 승계서열은 3위에 불과했다. 예법대로라면 양녕대군이 폐위된다고 해도 양녕대군의 적장자(태종의 적손)나 아니면 태종의 둘째 적자인 효령대군이 세자의 지위를 이어받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3)태종이 이미 연로한 상태였기 때문에 후계자 교육을 시킬 시간이 부족했다. 4)기존에 양녕대군을 지지하던 세력들이 새로운 세자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자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 태종은 과연 어떤 입장을 보였고, 또 어떻게 해결책을 찾고자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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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계자의 존재 이유

태종의 이 케이스를 본격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우선 ‘세자’라는 자리, 즉 ‘후계자’가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무릇 리더의 공백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것이다. 임기가 정해진 리더건, 종신 임기를 가진 임금과 같은 리더건 예외가 아니다.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 병에 걸려 집무를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져 적군의 포로로 잡힐 수도 있다.4 이때 리더의 빈자리가 곧바로 채워지지 않으면 조직은 위기를 맞게 된다. 리더의 부재는 결정과 책임의 부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리더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구성원들의 불안이 가중되는 문제도 있다. 후계자를 미리 정해서 준비시켜놓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유명한 사례가 있다. 1996년 4월 보스니아로 향하던 미국 사절단의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론 브라운(Ron Brown) 상무장관을 비롯해 벡텔과 ABB 등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목숨을 잃자 승계 준비가 안 된 해당 기업들은 이후 상당 기간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후계자가 마련돼 있던 회사 포스터 휠은 거뜬하게 난국을 해쳐나간다. 2004년의 맥도날드도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줬는데 짐 캔탈루포(Jim Cantalupo) 회장이 심장마비로 급서하자 맥도날드 이사회는 단 2시간 만에 최고운영책임자(COO) 찰리 벨(Charlie Bell)을 새로운 CEO로 선임했다. 짐 캔탈루포 회장이 찰리 벨을 사장 겸 COO로 임명해 후계자로 준비시켜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맥도날드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조직을 정상적으로 가동하게 된다.

조선의 세자도 바로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인데 임금이 승하하자마자 ‘보위는 한시라도 비워둘 수 없다’며 다음 날로 세자가 즉위함으로써 왕권의 단절을 방지한다. 결국 세자는 무슨 일이 생겨도 리더십이 차질 없이 이어질 것임을 대내외에 과시해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는 존재인 것이다. 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미래를 상징하는 의미도 있다. 세자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 ‘국본(國本, 국가의 근본)’ ‘저군(儲君, 만일을 위하여 예비한 군주)’이라는 점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2. 후계자의 자격

그런데 조선의 세자는 중요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적장자 승계가 원칙5 이기 때문에 내부 경쟁과 검증이 이뤄지지 못한다. 좋은 후계자를 만드는 데 있어서 필요한 두 가지 요소, ‘최적의 자질을 가진 후계자를 찾는 것’ ‘육성과 교육을 통해 최적의 후계자로 만드는 것’ 중 전자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조선에서 디테일하고 철저한 세자 교육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왕재(王才·왕의 자질)가 없다면 왕재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자 교육이 실패한다면 아무리 제왕학 수업을 시켜도 끝내 왕위를 감당할 만한 자질과 능력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군다나 현재의 세자보다 나은 선택지까지 있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물론 그러한 일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조선은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적장자 승계 원칙 때문이다. 예외가 있었다면 태종과 영조 두 임금뿐인데6 살인을 일삼고 반역을 의심받은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와 달리 태종의 아들 양녕대군은 상대적으로 치명적인 하자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태종은 세자를 폐위시키는 결단을 내린다. 대체 무슨 이유였을까?

태종이 생각하기에 부족한 인물이 단지 적장자라는 이유만으로 왕이 된다면 이는 나라와 백성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었다. 창업의 시대가 끝나고 수성(守成)의 시대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무인의 기질을 가진 양녕대군은 조선이 필요로 하는 미래 리더상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태종은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며 네 가지 이유를 제시했는데 여기에 태종이 생각하는 리더상이 담겨 있다.“ 1) 총명하고 민첩하며 자못 학문을 좋아하여 몹시 추운 날이나 더운 날도 밤을 지새우며 글을 읽었다. 2) 정치의 요체를 알아서 중대사를 처리할 때 내놓는 의견들이 모두 옳고 훌륭했으며,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것들이었다. 3) 중국 사신을 접대할 때면 말과 행동거지가 두루 예에 부합하였다. 4) 기상이 씩씩하고 건강한 아들이 있다.”7 요컨대 충녕대군은 학문에 힘쓰며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정무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창의적인 사고를 갖추고 있으며 외교력도 있다는 것이다. 명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국가질서를 안정시키며 각종 제도와 문물을 완비해야 하는 과제를 앞둔 시점에서 충녕대군의 이러한 자질이 조선의 임금이 되기에 어울린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성리학을 기반으로 세워진 조선이 지향하는 이상을 실현시키기에도 양녕대군보다는 충녕대군이 적합해 보였을 것이다. (기상이 씩씩하고 건강한 아들이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든 점도 눈길을 끄는데 이는 충녕대군의 뒤를 이를 차차기 후계자감까지 준비돼 있으므로 국가의 기틀이 공고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대저 CEO가 후계자를 정할 때는 반드시 미래에 대한 고찰이 병행돼야 하는 법이다. 현재의 상황뿐 아니라 앞으로 요구될 과제와 변화할 대내외 환경까지 미리 염두에 둬야 공동체의 미래를 담보하고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공동체의 오늘뿐 아니라 내일에 적합한 사람을 세자로 책봉한 태종의 결단은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3. ‘대체 계획’이 아닌 ‘승계 계획’

자, 이제 이처럼 훌륭한 자질을 갖춘 왕자를 후계자로 삼았으니 일이 끝난 것일까. 여기에서 멈춘다면 유사시를 대비해 단순히 전임자를 대체할 후임자를 정해 놓는 ‘대체 계획(replacement plan)’을 마련한 것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리더다운 리더, 모든 리더십 레벨에서 높은 성과를 내는 후계자가 뒤를 이을 수 있도록 ‘승계 계획(succession plan)’이 뒤따라야 한다.

‘승계 계획’이 중요한 것은 리더에게는 연습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왕은 왕위에 오르는 순간에 이미 ‘준비된 왕’이어야 한다. 따라서 후계자 시절에 각 핵심 임무의 중요 사항을 파악하고 주요 업무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CEO로서 국정의 큰 그림을 그리며 균형 있게 나라를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실록을 보면 국정 현안을 놓고 왕이 직접 세자를 가르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 밖에도 정무를 처리할 때 세자를 배석시켜 신하를 파악하고 국정이 돌아가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현장에서 선임자의 생생한 경험을 전달받도록 하는 것이다.

태종이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한 지 두 달 만에 양위하고8 상왕으로 물러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겉으로는 “18년간 호랑이 등을 탔으니 이제는 쉬고 싶다”라고 말하지만 자신이 계속 관장하겠다고 밝힌 병권(兵權)을 비롯해 인사권, 국가의 중대사들에도 계속 개입했다. 이는 권력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라 ‘승계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그간 충녕대군은 일반 왕자의 신분이었으므로 왕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 교육을 처음부터 시키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태종이 이미 노쇠해 있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태종은 충녕대군이 세자로서 교육을 받고 국정을 참관하게 하기보다는 아예 곧바로 임금으로 즉위시킴으로써 직접 책임을 지고 정무를 맡아보게 한 것이다. 덕분에 세종은 전임 리더인 태종의 지도를 받으며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물론 하늘 아래 태양이 둘이나 존재하게 되고 권력이 양분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없진 않았지만 양자 간의 신뢰와 적절한 역할 분담이 담보된다면 장점이 많은 구도다. 후임 리더의 가장 좋은 스승이 돼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전임 리더이기 때문이다.





4. 후계자를 위한 전임자의 선물

아울러 ‘승계 계획’은 후임자 개인을 교육시키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후임자가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승계 계획’의 일환이다. 이것은 전임자가 후계자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이기도 하다.

태종은 특히 두 가지 사항에 마음을 썼다. 첫 번째는 왕권을 제약할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한 것이다. 그는 공신들을 무력화하고 처남 4형제와 세종의 장인인 심온을 제거하는 등 유례없는 외척 숙청을 단행했다. 권신과 외척의 위세가 세종이 왕권을 행사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사전 정지 작업을 한 것이다. 양녕대군을 광주로 유폐시키고 양녕대군을 지지했던 세력을 몰락시킨 것도 그래서였다. 방법이 숙청밖에 없었느냐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덕분에 세종은 수월한 환경 속에서 임금으로서 통치에 나설 수가 있었다.

다음으로 태종은 세종의 시대를 보좌할 대신들을 안배했다. 세종대의 명재상으로 꼽히는 황희, 맹사성, 허조, 신개 등은 모두 태종이 발탁해 전문 분야별로 키운 인물들이다. 황희는 총괄, 허조는 인사, 맹사성은 예악, 신개는 제도 등을 맡게 된다. 세종의 싱크탱크인 집현전을 초기에 이끌어준 것도 태종의 측근인 박은이다.9 태종은 황희를 귀양 보냈다가 세종으로 하여금 다시 등용하게 하는 등 세종이 이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처럼 ‘승계 계획’은 리더 본인만이 아니라 리더가 된 후 함께 팀을 구축해 일할 핵심 멤버들의 승계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삼정승 육조판서, 기업으로 따지면 CFO, CHO, CMO, CSO, CIO, COO를 담당할 후보군이 함께 준비돼야 후계자가 보위에 올랐을 때 신속히 조직을 장악하고 차질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 충녕대군과 태종의 사례는 비단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오너 경영체제에서뿐 아니라 모든 후계자 승계 프로그램에서 참고할 만하다. 주지하다시피 CEO의 교체는 조직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시스템이 완성단계에 이른 조직이라 할지라도 CEO 개인의 카리스마와 성향, 리더십에 따라 조직의 비전, 전략, 제도, 문화가 달라지곤 한다. 해당 조직의 성과와 경쟁력, 생존가능성도 이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따라서 체계적인 승계프로그램을 마련해 가동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태종이 보여준 조건들만큼은 충족시켜야 한다. 조직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고 조직의 미래를 담당할 수 있는 인재를 후계자로 삼아야 하고, 자질과 능력이 부족하다면 과감히 결단해 교체할 수도 있어야 한다. 또한 후계자가 정해지면 다양한 경험과 교육의 기회를 마련함으로써 리더로서의 역량을 키워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 후계자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인재들을 제공해주는 일도 중요하다. 이러한 것들이 물 흐르듯 유기적으로 연결됐기에 세종이라는 탁월한 후계자가 탄생한 것이다. “승계는 이벤트가 아니라 프로세스다(Succession is a Process, Not an Event)”라는 마빈 바우어(Marvin Bower)의 격언이 충실히 구현된 사례라 할 수 있다.


김준태 성균관대 동양철학문화연구소 연구원 akademie@skku.edu

필자는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과 한국 철학을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를 거치며 10여 년간 한국의 정치사상과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주간지에 연재한 역사 칼럼 ‘세종과 정조의 대화’를 보완해 엮은 <왕의 경영>, 올바른 리더십의 길에 대해 다룬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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