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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ting Machiavelli

지도자는 공포의 대상이 돼야 할까?

김상근 | 110호 (2012년 8월 Issue 1)




편집자주많은 사람들은 마키아벨리를권모술수의 대가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억울하게 살고 있는 약자들에게더 이상 당하지 마라고 조언했던 인물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창조 경영 리더십 연재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 마키아벨리를 주제로 연재합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주는 마키아벨리의 이야기 속에서 깊은 지혜와 통찰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공포 경영의 미래?

() 일간지를 펼치니공포 경영의 미래란 제목의 칼럼이 시선을 끌었다. 제법 긴 인용문이라 읽어내기가 번거로울 수 있지만 마키아벨리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에 칼럼의 앞부분 전체를 인용해 본다.

 

“삼성과 현대차는 대한민국 재계의 양축(兩軸)이다.… 두 그룹은 판이한 성장사를 걸어왔고, 주력 업종도 거의 겹치지 않는다. 하지만 두 그룹이 묘하게 닮아가는 분야가 있다. 바로 오너의 경영 방식이다. 두 그룹 임직원을 만나보면 고위직일수록 이건희·정몽구 회장에 대한 두려움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회장님이 출근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업무 강도와 정신적 긴장도가 4∼5배는 차이나요.’ ‘무서운 회장님 앞에서 농담 건네며 여유 부리는 임직원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 흥미롭게도공포 경영을 구사하는 두 그룹은 승승장구하며 글로벌 최선두 기업으로 도약한 반면 점잖고 합리적이며 가족적 경영을 표방하는 다른 대기업들은 직원들의 높은 만족도에 비해 경영 실적은 그다지 신통찮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군주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군주가 낫다는 마키아벨리의 경구(警句)가 떠오르는 대목이다.”1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오너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마키아벨리가 불쑥 등장한다. 이 칼럼에서 인용된 마키아벨리의 경구는 <군주론> 17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마키아벨리의 말을 정확하게 인용하자면 군주는사랑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it is much safer to be feared)”라고 기록돼 있다. 위 칼럼에서 인용한나은 것 <군주론> 원전에 나오는안전한 것은 분명히 다른 의미이기 때문에 마키아벨리의 진정한 의도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마키아벨리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난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칼럼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군주론> 17 장에서 노골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지도자들은 공포의 대상이 돼야 하는 것일까?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는 모두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안전한 것인가? 최근 높은 경영 성과를 자랑하고 있는 삼성이나 현대자동차그룹처럼 오너는 직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돼야 하는가? 칼럼에서 애둘러 언급된점잖고 합리적이며 가족적 경영을 표방하는 다른 대기업의 오너들은 지금 경영을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재해석하고 있는 이 글은 경영진단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LG와 같은 대기업 집단의 바람직한 오너 리더십에 대해서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리더십의 교본처럼 사용하는 저간의 흐름을 볼 때 마키아벨리가 왜 이런 말을 했으며 그런 주장을 펼치게 된 역사적 배경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가려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왜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사랑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고 했을까? 이 주장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보편타당한 진리인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팔고 있는 어느 출판사의 광고 카피처럼, 정말로 지도자는 악인이 돼야 하는가?

 

마키아벨리의 생각과 사상은 책상에 앉아서 골똘하게 생각하면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현장의 사람이었다. 자기 말대로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의자가 따뜻해 질 시간이 없었던부지런한 사람이었고 현장에서 지혜를 얻었던 직관적인 관찰자였다. 그가사랑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고 말한 것은 율리우스 2세를 만나 그를 관찰하고 얻은 현장의 결론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율리우스 2세 같은 인물은사랑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생각이다.

 

율리우스 2세의 놀라운 승리

그것은 마치 늑대를 겨우 피했는데 호랑이를 만난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 막 쓰레기차를 피했는데 똥차에 받치는 것과 같은 운명! 피렌체의 정치적 입장이 딱 그랬다. 냉혹한 영웅 체사레 보르자가 일으켰던 평지풍파(平地風波)를 겨우 진정시키고 나니 진짜 태풍의 검은 먹구름이 피렌체를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새로 선출된(1503)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바로 그 태풍의 눈이었다. 보르자 가문의 땅 욕심은 그래도 이탈리아 중부 로마냐 지방에 국한돼 있었다. 그러나 율리우스 2세는 처음부터 이탈리아 전 국토의 세속 군주를 겸하겠노라고 선언했다. 교황의 아들이었던 체사레 보르자가 전쟁을 선언한 것도 놀랄 만한 일인데 율리우스 2세는 교황인 자신이 직접 전쟁을 선포하고 스스로 교황령 군대의 사령관을 자처하고 나섰다. 교황이 군복을 입고 전쟁 사령관이 된 것이다!

 

권력과 영토 확장에 야심을 불태우던 교황이 등장하자 피렌체는 노련한 외교관 마키아벨리를 급히 현장에 투입했다. 1505 827, 마키아벨리는 네피(Nepi)에서 교황의 법복을 벗고 장군의 갑옷을 걸친 율리우스 2세를 알현한다. 마키아벨리는 이때부터 이탈리아의 정벌에 나선 율리우스 2세를 따라다니면서 또 한 명의 놀라운 시대의 영웅을 관찰하게 된다. 프랑스에서 루이 12세를 따라다녔고 로마냐 지방에서 체사레 보르자를 근거리에서 관찰했던 마키아벨리에게 율리우스 2세는 또 다른 살아 있는 리더십과 권력의 분석 대상이었다. 네피에서 시작된 교황의 행군은 치스타 카스텔라나, 비테르보, 오르비에토, 카스텔라 델라 피에베, 카스틸리오네, 페루자로 이어졌다. 전사교황(Warrior Pope)으로 불렸던 율리우스 2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마키아벨리를 불러다가 윽박질렀다. 피렌체 정부도 자신의 성전(聖戰)에 참여하고 전쟁 비용을 즉각 분담하라고 고함을 질러댔던 것이다. 이번에도 피렌체 정부가 취한 전략은 시간 끌기. 여러 가지 구실을 대면서 시간을 끄는 외교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마키아벨리가 제일 잘하는 것 중 하나였다.

 

교황 군대를 따라다니던 마키아벨리는 놀라운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기 때문에 마키아벨리도 두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총 병력이 400명 정도밖에 되지 않고 변변한 무기도 없던 율리우스 2세의 교황 군대가 페루자를 정복해 버린 것이다. 평생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페루자의 영주 잠파올로 발리오니(Gian Paolo Baglioni, 1470-1520)는 수적으로 절대적인 약체였던 교황의 군대가 페루자로 진격하자 성문을 열고 항복을 선언해 버렸다. 400명의 교황 군대가 모두 진격한 것도 아니었다. 몇 호위병만 거느리고 호통을 치면서 페루자 성문을 향해 돌진하는 교황의 배짱과 용기에 기가 질려 발리오니는 어이없게 백기를 들고 교황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마키아벨리도 당황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황군대가 승리할 수 없는 판세인데 왜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난 것일까? 마키아벨리는 발리오니의선량함과 양심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하는 조심스러운 글을 남겼다.

 

“여기에 대해서는 잠파올로 발리오니가 그 선량함과 양심에 흔들려서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여동생을 범하거나 정권을 위해 사촌형제와 조카까지 희생시킬 만큼 흉악한 인간에게도 일말의 고귀한 자비심이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숨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2

 

과연 그것 때문이었을까? 발리오니가 선하고 양심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차마 교황에게 대항하지 못해서 일어난 돌발사건이었을까? 마키아벨리는 율리우스 2세의 다음 행보를 지켜보면서 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페루자 공격에 성공한 교황은 이번에는 볼로냐 공격을 감행했고 그곳에서도 놀라운 승리를 쟁취했기 때문이다.

 

페루자는 로마냐 지방의 작은 산악도시다. 사실 율리우스 2세가 페루자를 정복한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볼로냐는 다른 곳이다. 이탈리아 중부의 대도시이며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였고 대대로 벤티볼리오(Bentivoglio) 가문이 철통 같은 도시의 성곽을 기반으로 외세의 침입을 막아오던 난공불락의 도시였다. 그런데 약체인 교황의 군대가 백 년 동안 이 거대한 도시를 지배하고 있던 벤티볼리오 가문을 일시에 몰아 낸 것이다.3

 

마키아벨리는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두 번이나 연거푸 목격하면서 율리우스 2세라는 시대의 영웅을 다시 관찰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이 인물을 이토록 뛰어나게 만드는 것일까? 왜 율리우스 2세는 페루자와 볼로냐를 일시에 함락시킬 수 있었을까? 이 전사(戰士)교황의 놀라운 배짱과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이며 그가 가진 탁월함의 비밀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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