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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까지 챙기는 위기관리

김호 | 28호 (2009년 3월 Issue 1)
정부나 기업이 위기관리를 할 때에는 두 가지 ‘의사(意思)’가 필요하다. 하나는 사태 관리를 위한 적절한 의사결정(decision-making)을 내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들의 결정에 대해 내외부 관련자들과 제대로 의사소통(communication)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화재라는 위기를 맞아 정부나 기업이 위기관리를 할 때 신경 써야 할 2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소방관이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통해 화재를 진압하는 것이다. 둘째는 화재의 원인 및 진압 과정, 사후 조치 등에 대해 국민이나 소비자들과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스마트한 조직은 위기 사태 초기에 2가지 질문을 던진다.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우리의 조치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 것인가.’
 
용산 참사에서 나타난 정부의 미흡한 위기관리
우리에게 영원히 불행한 사건으로 남을 용산 철거민 참사를 보자. 지금까지 정부의 위기 대응은 과연 얼마나 스마트했을까. 기업들이 이 사례에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
 
동아일보가 이명박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2월 16일 발표한 심층 설문조사 결과를 잠시 살펴보자. 이 조사는 정치·경제·교육 분야로 나누어 전문가 81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정치 리더십 6개 분야에서 가장 미흡한 점수를 받은 항목은 ‘국민 통합 능력’으로 5점 만점에 2.21점이었다. 이는 주로 공감과 의사소통 능력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위기 대응 방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 글에서는 주로 ‘공감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측면에서 위기관리 방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검토는 기업의 경영자들도 주목해야 한다. 기업은 마케팅 과정에서 소비자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기업에 위기 사건이 터지면 자신들의 실수나 잘못을 해명하거나 축소하는 데 신경 쓰느라 소비자와의 공감대는 뒷전으로 미루는 일이 다반사다.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공감대 형성은 마케팅과 위기관리에서 모두 중요하다.
 
1. 책임 있는 리더십을 보여라.위기가 왔을 때, 리더가 스스로에게 꼭 던져야 할 질문이 뭘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일 것인가’이다. 용산 사태와 관련해 정부의 위기 대응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아쉬움은 ‘책임지고 나서서 위기 상황을 통제하고 관리해 나가는 리더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지못해 물러나는 모습을 보인 경찰청장 내정자, 원론적인 이야기에 그친 대통령, 이번 사태와 거리를 두려고 애쓰는 듯한 서울시장도 모두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거나 보호하려는 태도에 그쳤을 뿐이다. 책임지고 전체 위기를 관리해 나가는 리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최근 자진 사퇴의 형식을 밟은 김석기 전 경찰청장 내정자는 엄격한 법 집행에 대한 강한 소신을 표명하며 경찰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생을 경찰에 몸바쳐온 그의 소신은 이해한다. 그러나 “무전기를 꺼 놓아서 알지 못했다”는 변명에서부터 퇴임식에서 보여 준 ‘경찰에 대한 애정’은 오히려 경찰과 국민을 대결 구도로 만들었다. 위기 상황을 맞은 당사자가 자기 보호의 메시지를 너무 강하게 뿜어내면 오히려 점점 더 자신을 보호하기 힘들어진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이처럼 철거민의 생계권 및 재개발 정책, 시위와 진압 과정에서의 사망 사태 발생 등이 맞물린 ‘정치적’ 사건에서 리더가 법적인 원칙과 사실에만 근거하여 판단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
 
이어 청와대 행정관의 부적절한 ‘홍보지침 e메일’ 사건으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상황에서도 청와대는 그에게 구두 경고만 했다. 결국 청와대 행정관이 스스로 사의 표명을 하는 형태를 취함으로써 청와대는 국민에게 위기 상황을 잘못 관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청와대가 더욱 적극적인 판단과 해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건을 ‘무난하게’ 마무리하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2. 사람이 우선이다.미국 배우 알 파치노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뉴욕시장 존 파파스로 분한 영화 ‘시티홀’은 경관이 개입한 총격전에서 경찰관은 물론 어린 소년이 유탄에 맞아 죽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알 파치노는 결국 정치적 야망 때문에 비윤리적인 일을 하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그가 영화 초반부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정치 지도자로서 위기 상황을 두고 시민들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장면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숨진 경찰관의 부인과 사망한 소년의 집을 차례로 찾아가 위로한다. 그리고 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시장으로서 내가 결코 이겨내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한 경찰관의 죽음입니다. 삶에서 내가 결코 극복하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무고한 어린이의 죽음입니다.”
 
정부가 이번 위기 대응을 하면서 내세우는 아젠더는 ‘원칙의 고수’로 보인다. “법질서 확립의 계기로 삼겠다”라든지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겠다”는 등의 표현이 그 증거다. 결국 불법 폭력 시위에 앞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희생자를 보듬는 자세는 잘 보이지 않는다.
 
조직이 겪을 수 있는 위기 상황을 그 심각성에 따라 나눌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희생자가 발생했는가’이다. 이 점에서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용산 사태는 조직이 대처해야 하는 가장 심각한 위기 상황에 속한다. 이럴 때 리더는 희생자에 대한 의례적인 유감 표명을 넘어 진심 어린 입장과 실질적인 대책을 표명해야 한다.
 
대통령, 경찰청장 내정자, 서울시장은 사과했어야 할까? 지금에 와서야 사과하는 것은 타이밍을 놓쳤으니 별 효력이 없다. 오히려 사고가 난 초기에 이유를 떠나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관과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 대해 사과하고, 적극적인 사건 해결에 대한 의지와 추후 동일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을 내놓았다면 어땠을까? 이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유감 표명’으로 그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사건 초기에 “모든 이유를 떠나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인명을 잃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인간적인 모습으로 호소하고, 진상 파악에 들어갔다면 정치적 부담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3. 그들의 이슈가 진짜 이슈다.지금도 나는 어머니가 강조한 간단한 원칙, 즉 ‘네게 그렇게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니’를 정치활동의 길잡이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가 전체를 놓고 볼 때 우리는 상대편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는 마음이 부족한 것 같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저서 ‘담대한 희망’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는 정치적 리더의 판단에서 공감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리더의 공감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위기관리 원칙 가운데 하나는 우리 입장에서 이슈를 정리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 특히 희생자 입장에서 이슈를 정의한 다음에 ‘그들의 이슈’를 다뤄줘야 한다는 점이다.
 
용산 사태에서 정부가 보인 국민과의 공감 능력은 매우 미흡했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이번 사건을 ‘법을 어기는 집단의 무분별한 저항 대(對) 정부의 정당한 법 집행’이라는 이슈로 바라본다. 그러나 희생자들이나 국민 입장에서는 ‘무리한 법 집행 대 가난한 철거민의 저항’ 또는 ‘뉴타운 같은 도심 개발 정책 대 철거민의 삶의 터전 보전’에 대한 이슈로도 보고 있다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리더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진압 방식에서 향후 개선할 점이 무엇인지, 철거민에 대한 정책 전환과 배려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강조했어야 한다. 불행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개선해나가는 인간적 모습을 보여 줘야 했다.
 
마케팅에서 소비자의 브랜드 인식이 중요한 것처럼 위기 상황에서도 ‘인식이 사실이다’라는 말은 똑같이 작용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링컨은 “국민의 정서가 모든 것이다. 국민의 정서와 함께 한다면 아무것도 실패하지 않으며, 이것이 없다면 어느 것도 성공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책임감(responsibility)이라는 말을 ‘반응하는(response)’과 ‘능력(ability)’의 합성어로 해석하기도 한다. 위기 상황에서 리더는 적극적인 사실 규명과 함께 국민이나 소비자의 정서와 인식에 반응해야 할 책임이 있다. 리더는 사실뿐 아니라 마음까지 챙겨야 하는 것이다.
 
편집자주 위기는 ‘재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어느 기업에서나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위기관리 시스템을 철저히 정립해 놓고 비상시에 현명하게 활용하는 기업은 아직 드뭅니다. 위기관리 전문가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가 실제 사례들을 중심으로 기업의 위기관리 노하우를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직접 겪은 위기관리 사례를 공유하고 싶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김 대표의 e메일(coolcommunication@gmail.com)로 보내 주십시오. 좋은 사례를 골라 본 아티클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 김호 김호 | - (현) 더랩에이치(THE LAB h) 대표
    - PR 컨설팅 회사에델만코리아 대표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공인 트레이너(CMCT)
    -서강대 영상정보 대학원 및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 교수

    hoh.kim@thelab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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