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원명 교체기에 벌어진 위화도회군은 고구려 영토 회복의 기회를 놓친 사건이었다. 이성계가 내세운 4불가론은 쿠데타에 대한 자기변명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고려 우왕과 최영은 이성계의 야심을 경고하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성계에게 지나치게 큰 권한을 위임하는 결정적 실책을 범했다. 권한을 위양할 때는 그 권한이 잘못 행사될 경우 조직 전체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는지 신중히 따져야 한다.
편집자주 본 연재의 콘텐츠는 필자의 저서 『역사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2021)』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국가대전략(Grand Strategy)은 국가 생존을 위해 안보 분야에서 중요한 정책을 선택함을 의미한다. 국가대전략은 실패할 경우 국가 소멸, 영토 축소와 같은 비싼 대가를 치르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국가대전략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이다. 일본은 전쟁 패배로 식민지인 조선, 대만, 만주와 쿠릴열도의 4개 섬 등 본토의 일부도 잃었다. 고구려가 백제의 위기를 방관해 멸망 위기를 자초한 것도 국가대전략 실패 사례다.11 DBR 323호 ‘백제의 위기를 방관한 고구려의 패착, 삼국의 운명을 가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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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도 중국 왕조 교체기에 중원이 혼란한 틈을 타서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 기회는 사리사욕을 앞세운 집단의 빗나간 선택 때문에 번번이 좌절됐다. 서양에도 정실주의(Cronyism)가 존재하지만 우리나라의 제 식구 감싸기는 도가 지나쳐 공정, 정의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고 진실마저도 진영 논리에 따라 부정된다. 이러한 혼돈의 근본 원인은 과거 실패한 역사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제대로 따진 적이 없는 데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정 집단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와 민족에 해를 입힌 과오를 범해도 영웅 취급을 받는다면 공동의 가치를 위해 헌신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4세기 원명 교체기, 고려가 요동을 차지했다면?
14세기와 17세기 중국 왕조 교체기의 고려와 조선의 잘못된 의사결정이 가져온 실패의 역사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는 비슷한 과오가 반복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원명 교체기와 명청 교체기는 중국 왕조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실패해 민족웅비의 날개를 스스로 꺾는 손해를 봤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원명 교체기에는 해볼 만한 싸움인데도 스스로 굽히고 명나라의 신하를 자청해 고구려 영토 회복의 기회를 날렸다. 하지만 명청 교체기에는 막강한 상대에게 무모하게 대들어 무참하게 깨지면서 기회를 잃었다.
1388년 우왕과 최영이 주도한 요동 정벌은 공민왕 시절인 1370년 이미 점령한 바 있던 요동성에 다시 진출해 요동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고 요동이 고구려, 더 나아가 고조선의 옛 강역으로서 동이의 땅임을 천하에 알리고 인정받기 위한 군사 작전이었다. 요동원정군 사령관에 도원수 최영이 임명됐으나 우왕이 최영의 출전을 만류해 제1 부원수였던 이성계가 병권을 장악하게 됐다. 이성계와 정도전은 요동원정군 병권의 장악을 권력 탈취를 위한 다시없는 기회로 봤다. 그래서 민족의 숙원을 배신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우왕과 최영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쿠데타로 집권하기는 했지만 명분이 부족해 고려 권신들의 반발에 직면한 이성계는 명나라를 든든한 뒷배로 삼았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명나라에 다가가 번신을 자청하며 나라 이름까지 지어달라는 굴욕적인 저자세를 취함으로써 요동 진출을 좌절시켰다.
최중경choijk1956@hanmail.net
한미협회장
최중경 한미협회장은 33년간 고위 관료와 외교관을 지냈고 동국대 석좌교수, 고려대 석좌교수, 미국 헤리티지재단 방문연구원, 한국공인회계사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미 협력을 증진하는 민간단체인 한미협회 회장과 자선단체 평가 업무를 수행하는 NGO인 한국가이드스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미국 하와이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저서로는 『청개구리 성공신화』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 『역사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