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Highlight : 생태환경사 관점에서 본 기후 위기
“인류세 헤쳐나가려면 구조적 전환 필요”
Article at a Glance
‘생태환경사’는 인간을 더 이상 자연에 대한 정복자가 아니라 생태환경과 공존하는 생태계의 한 고리로 이해하는, 생태학적 관점을 담고 있다. 예컨대, 17세기를 기후변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기후가 인간의 삶에 예나 지금이나 큰 변수라는 점, 더 나아가 인간이 기후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기업도 생태학적 관점으로의 전환을 바탕으로 ‘인류세’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선두에 나설 수 있다.
기후 재앙 앞에 선 인류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 종 멸종이 심각해지는 시대를 맞아 어떻게 하면 지구환경의 한계 내에 머물면서 우리의 생활양식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인류 최대의 과제가 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인류가 현재 수준의 화석연료 사용을 지속한다면 21세기 말 지구 평균기온이 금세기 초보다 섭씨 4∼5도가량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 1) 1
과학계의 여러 연구를 종합해볼 때, 지구 평균기온이 섭씨 4도 정도 상승하면 알프스의 빙하는 완전히 녹아버리고, 아마존 열대우림은 모두 소실될 것이다. 세계 최대 옥수수 생산국인 미국의 수확량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는 등 식량 위기가 매년 전 세계를 휘몰아칠 것이며, 오늘날 자연재해라 부를 만한 현상이 일상적인 ‘날씨’가 될 전망이다. 물 부족과 식량난으로 인해 수억 명의 인구가 생존의 한계선에서 허덕이게 될 것이다. 또 해수면 상승과 사막화의 진전으로 인류와 여러 생명체가 거주하고 서식할 구역이 크게 제한될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기후 난민 문제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계속된 최악의 가뭄은 시리아 난민 사태를 촉발했다. 그런데 시리아 난민의 수십 배 이상 되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내전에 휘말린다고 생각해보자. 파시스트 정당들이 출현해 굶주린 난민들을 몰아낸다는 공약으로 선거에서 압승할지도 모른다. 과연 인류의 정치경제와 거버넌스가 이런 극한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까.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전 세계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사회경제적 변혁을 촉구하는 운동에 나서고 있다. 파리기후협약 등 각국의 그린 관련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와 관련한 비관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우리는 그야말로 기후 비상사태에 놓여 있다.
생태환경사란 무엇인가?
기후 위기 극복이라는 난제를 풀려면 인류가 왜 이런 지점에 와 있는지부터 근본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시도하는 역사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봄으로써 오늘날을 성찰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역사학이 지닌 ‘기억의 힘’이다.
특히 역사학에서도 기후 문제와 관련한 분야로 생태환경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생태환경사란 무엇일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생태환경사는 생태사와 환경사의 조합어다. 먼저, 생태사(ecological history)는 생물체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중시하는 생태학에서 출발했다. 곧 생태사는 “인간에게 특권을 부여하지 않고 진화 과정 중에서 나타나는 생물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생태학에 기반을 둔 역사 서술이다”. 이 점에서 생태사는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역사로 볼 수 있다. 또한 생태사는 인류 역사가 나아갈 방향을 생태적 균형으로 설정함으로써 “역사의 ‘생태학적 전환’을 실현”하는 것을 지향한다.2 그렇다면 생태사는 환경사와 어떻게 다를까. 모든 생명체를 대상으로 하는 생태사와 달리 환경사(environmental history)는 기본적으로 인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환경사는 지구생태계에서 인간의 특별한 위치에 주목한 것으로, 환경이라는 공간에 인간을 접합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둘의 상호연관성을 탐구하는 역사다. 결국 환경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포착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환경사는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환경 운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1970년대 미국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역사 연구에서 인간 이외의 생명체나 자연환경 요소가 무시돼왔던 데 대한 학문적 반성이자 인간의 환경 파괴 문제를 비판하는 차원에서 환경사가 시작된 것이다.
생태환경사는 환경사에 ‘생태학적 전환(ecological turn)’이라는 의미를 더한, 환경사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여타 동식물에 비해 자연을 길들이는 문화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생태계라는 연결망의 핵심 고리로 위치한다. 그렇기에 생태환경사도 분석 대상으로 인간에 중점을 둔다. 하지만 ‘생태학적 전환’은 인간을 더 이상 자연에 대한 정복자가 아니라 생태환경과 공존하는 생태계의 한 고리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를 더한다.
즉, 생태환경사는 인간의 자연 정복 욕망을 비판한다는 의미에서 기존 인간관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다. 인간은 그동안 또 다른 인간을 계급이나 인종, 성적으로 차별하고 착취해왔을 뿐만 아니라 자연도 착취해왔다. 특히 자연에 대한 착취는 끝없는 경제 성장을 기초로 한 자본주의 근대문명이 추구해온 생산력 지상주의와 함께 점점 심각해졌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물질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풍요로움을 누렸으나 환경 파괴와 생물다양성 후퇴, 기후 위기를 불러왔다. 이제는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자연 정복과 자연에 대한 착취를 일삼아온 인간 스스로에 대한 인식에 성찰적 비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점에서 현재 생태환경 문제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는 생태환경사는 근대 자본주의가 남긴 부정적인 산물을 반성하고, 근대가 갖는 여러 함의를 재성찰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생태환경사 연구는 현재의 생태환경 문제에 대한 역사학의 학문적 대응이자 일종의 현실 참여라고 볼 수 있다.
기후변화의 역사가 주는 교훈
그렇다면 생태환경사는 기존의 역사학과 어떻게 다르며, 현재의 기후변화 문제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생태환경사의 연구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19세기 중후반 서해에서는 중국과 한국 어선 사이에 분쟁이 자주 일어났고, 이는 양국 간 외교 마찰을 빚었다. 이런 어업 분쟁에 관해 기존의 역사 연구들은 서해안의 어장을 둘러싼 어업 분쟁이 발생한 사실을 평면적으로 언급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이를 생태환경사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19세기 한국과 중국의 어업 분쟁에는 기후변동과 청어(靑魚)라는 변수가 작용하고 있었다. 현재 한국의 연해에서는 잘 안 잡히는 청어가 지금보다 지구 평균기온이 2도는 내려갔던 소빙기(Little Ice Age, 대략 1400∼1850년), 곧 한국의 역사로 조선시대에는 동•서•남해 전역에서 흔하게 잡히는 물고기였다. 이 청어가 16세기 후반부터는 중국의 요동과 산동 지역에도 출현해 중국인들에게 대량으로 잡히면서 그들의 단백질 공급원이 됐다. 그런데 1850년 무렵이 되자 중국 연해에서 청어가 점차 사라졌고, 청나라 어선들은 청어 떼를 쫓아 조선의 서해안으로 몰려들어 불법 어업을 펼쳤다. 이후 1880년대 들어서는 서해안에서도 청어가 거의 사라져갔고, 이 과정에서 청국 어선들이 조선 어민들의 어장을 약탈하는 사건이 빈번히 발생했다. 이런 양국 어민의 충돌은 외교적인 현안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1890년대 이후 서해에서 청어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양국 어민들은 갈치와 같은 새로운 어종을 찾게 됐다.
당시 청어가 사라진 배경에는 기후변동이 있었다. 소빙기가 되면서 동아시아 해역에 자리 잡았던 청어가 19세기 후반 기후가 온난해지면서 점차 동아시아 해역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이다. 본래 청어에 의존해 생활해온 인간들이 이에 영향을 받았고, 이는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어업 분쟁이라는 외교 갈등으로까지 이어졌다. 소빙기가 몰고 온 ‘청어 풍년’을 지구온난화가 거둬들인 것이다. 청어의 생태환경 변화는 인간의 활동에도 영향을 끼쳤다.3
이처럼 역사에서 기후라든가,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와 같은 생태환경 변수를 고려해볼 때 그동안 바라본 역사상을 좀 더 다면적이고 풍성하게 그릴 수 있다. 기후와 해양 환경의 변화, 예컨대 청어와 인간이 공존하고 길항한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 중심적인 역사관에서 벗어나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생태환경사는 현재의 기후변화 상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첫째, 기후변화는 실제로 인간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청어가 서해와 남해에서 헤엄치던 소빙기, 특히 가장 추위가 두드러진 17세기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격변과 위기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의 기후변화는 기온 하강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기후변동성이 커졌음을 말한다. 추위와 불규칙한 날씨는 작물에 큰 피해를 줘 수확량을 감소시키고 기근을 초래했다. 기근은 농민들의 경제를 위축시켰고, 영양실조는 면역력을 감퇴시켜 감염병의 원인이 됐다. 이런 상황은 사회적인 불안감을 가중하고, 부족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반란과 전쟁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17세기 동아시아도 중국은 명에서 청으로의 정권 교체, 일본은 에도막부의 설립, 한국은 정묘•병자호란 등이 발생하는 등 격변을 겪었다. 이 모든 것을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 사회의 변동에 기후가 상당한 영향을 행사한 변수였음은 분명하다.
둘째, 급격한 기후변동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인간이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17세기에 네덜란드는 스페인 군대를 막아낸 뒤 회복력을 바탕으로 해상강국을 건설했다. 청나라의 강희제(康熙帝)는 기근에 대응해 부역과 조세를 감면하고 다양한 구휼정책을 실시해 성군으로 칭송받기도 했다. 한편, 소빙기의 상대적으로 추운 날씨는 난방의 필요성을 증대시켜 나무 장작의 수요를 촉진했다. 이로 인한 목재의 수요와 가격 상승은 다른 연료 자원을 찾게 하는 요인이 됐는데, 석탄이 바로 그 대체재로 떠올랐다. 이런 석탄 수요의 증대는 산업혁명의 배경이 됐다.
소빙기 기후변동이 인간에 미친 영향과 그에 대한 대응은 21세기가 맞이한 기후 위기의 현실에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기후는 인간의 삶에 예나 지금이나 큰 변수라는 점, 더 나아가 인간이 기후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재앙을 피할 수도,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도 있다는 점을 말이다.
인류세를 살아남기 위한 기업과 우리의 역할
지구환경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로 규정하려는 주장이 차츰 많은 이의 동의를 얻고 있다. 인류세는 약 1만2000년 전에 시작된 ‘홀로세’4 를 지나 지구가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용어다. 네덜란드의 대기과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과 미국의 생물학자인 유진 스토머(Eugene F. Stoermer)가 2000년에 사용한 뒤부터 ‘인류세’란 용어는 점차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인류세는 ‘인류로 인해 빚어진 시대’라는 의미로, 최근 급격하게 변화하는 지구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담긴 용어이기도 하다.
인류세의 기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그럼에도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지층에 쌓여 있던 화석연료를 대기권으로 과도하게 배출하면서 지구적인 에너지와 원소 순환 주기가 변화했고, 특히 화석에너지 체제가 일반화하고 인구 및 세계 경제의 규모가 급격하게 커진 1945년 이후 인류세가 도래했다고 보는 시각이 보편적이다. 방사성 물질이나 탄소 배출, 막대한 플라스틱 쓰레기 등 인류가 남긴 흔적은 지층과 대기권, 해양권 등을 교란하고 있다.
호모사피엔스는 홀로세라는 안정되고 온화한 지구의 기후 조건에 놀라울 만큼 잘 적응한 생물로, 이제는 지구의 생태환경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생명체가 됐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류는 자신이 조성하고 있는 지금의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종이 되고 있다. 인류는 ‘인류세’의 서막을 열자마자 멸종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인류세는 시작하자마자 오히려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자본주의의 총아인 기업은 탄소 배출을 주도하고 소비사회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기후 위기를 초래한 데도 책임이 크다. 그만큼 인류세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데 기업이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역시 훌륭한 제로 탄소 기업과 산업을 구축한 나라가 다음 세대에 세계 경제를 이끌 것으로 전망했다.5
기업은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기후 위기를 타개하는 움직임의 선두에 나설 수 있다. 예컨대,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기업 그룹인 RE1006 에 가입하는 것도 좋은 예다. 물론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제조업이 발달한 국내 산업구조에서 RE100에 가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를 위한 실천 방안으로 저탄소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을 우선시할 수 있다. 또 법인 차량을 전기차로 교체하고, 건물을 짓거나 개조할 때 저탄소 자재를 사용할 수 있으며, 전기의 상당 부분을 재생에너지로 바꿀 수도 있다.
기후 재앙에서 벗어나 인류가 만든 인류세를 잘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스스로가 가진 막강한 힘을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상생활에서부터 관점을 바꿈으로써 사회경제체제의 구조적인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 에너지 소비에 중독되고 경제 성장에 의존하는 사회 체제로는 기후 위기를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이는 북극곰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자기 집의 전기요금이 올라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인해 몰디브가 해수면 아래로 잠길 위기에 놓였기 때문에 몰디브로 하루빨리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만연해 있다. 물질만능주의,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인간과 여타 생명체의 공존을 고려해 약간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소빙기의 위기에 적응한 인간군상이 오늘날의 기후 위기 극복에 작은 교훈을 던져줬듯이 생태환경사 관점에서 역사와 현재를 돌아보는 일 또한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참고문헌
1. 고태우, 2020, 「생태환경사를 말한다② 한국학계의 환경사 연구와 생태환경사」, 웹진 역사랑 2호, 한국역사연구회
2. 고태우, 2020, 「총론 : 기후위기 시대의 생태환경사 - 한국 기후사의 모색」, 역사와 현실 118
3. 고태우, 2020, 「[내일을 여는 ‘선언’ 19] ⑮ 비상사태에 돌아보는 기후운동과 기후 선언」, 내일을 여는 역사 79
4. 벤저민 리버만, 엘리자베스 고든 지음, 은종환 옮김, 2018, 『시그널』, 진성북스
고태우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kotwmaha@gmail.com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구 분야는 한국 근현대사로, 식민지 개발과 그 유산 문제, 20세기 한국의 생태환경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연구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 ‘기후, 날씨와도 싸워야 했던 일본제국주의, 그리고 식민지민’ ‘식민지 토건업자의 ‘과점동맹’’ ‘한국사, 한 걸음 더(공저)’ ‘3•1운동 100년 4. 공간과 사회(공저)’ 등이 있다.
‘생태환경사’는 인간을 더 이상 자연에 대한 정복자가 아니라 생태환경과 공존하는 생태계의 한 고리로 이해하는, 생태학적 관점을 담고 있다. 예컨대, 17세기를 기후변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기후가 인간의 삶에 예나 지금이나 큰 변수라는 점, 더 나아가 인간이 기후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기업도 생태학적 관점으로의 전환을 바탕으로 ‘인류세’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선두에 나설 수 있다.
기후 재앙 앞에 선 인류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 종 멸종이 심각해지는 시대를 맞아 어떻게 하면 지구환경의 한계 내에 머물면서 우리의 생활양식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인류 최대의 과제가 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인류가 현재 수준의 화석연료 사용을 지속한다면 21세기 말 지구 평균기온이 금세기 초보다 섭씨 4∼5도가량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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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의 여러 연구를 종합해볼 때, 지구 평균기온이 섭씨 4도 정도 상승하면 알프스의 빙하는 완전히 녹아버리고, 아마존 열대우림은 모두 소실될 것이다. 세계 최대 옥수수 생산국인 미국의 수확량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는 등 식량 위기가 매년 전 세계를 휘몰아칠 것이며, 오늘날 자연재해라 부를 만한 현상이 일상적인 ‘날씨’가 될 전망이다. 물 부족과 식량난으로 인해 수억 명의 인구가 생존의 한계선에서 허덕이게 될 것이다. 또 해수면 상승과 사막화의 진전으로 인류와 여러 생명체가 거주하고 서식할 구역이 크게 제한될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기후 난민 문제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계속된 최악의 가뭄은 시리아 난민 사태를 촉발했다. 그런데 시리아 난민의 수십 배 이상 되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내전에 휘말린다고 생각해보자. 파시스트 정당들이 출현해 굶주린 난민들을 몰아낸다는 공약으로 선거에서 압승할지도 모른다. 과연 인류의 정치경제와 거버넌스가 이런 극한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까.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전 세계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사회경제적 변혁을 촉구하는 운동에 나서고 있다. 파리기후협약 등 각국의 그린 관련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와 관련한 비관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우리는 그야말로 기후 비상사태에 놓여 있다.
생태환경사란 무엇인가?
기후 위기 극복이라는 난제를 풀려면 인류가 왜 이런 지점에 와 있는지부터 근본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시도하는 역사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봄으로써 오늘날을 성찰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역사학이 지닌 ‘기억의 힘’이다.
특히 역사학에서도 기후 문제와 관련한 분야로 생태환경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생태환경사란 무엇일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생태환경사는 생태사와 환경사의 조합어다. 먼저, 생태사(ecological history)는 생물체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중시하는 생태학에서 출발했다. 곧 생태사는 “인간에게 특권을 부여하지 않고 진화 과정 중에서 나타나는 생물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생태학에 기반을 둔 역사 서술이다”. 이 점에서 생태사는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역사로 볼 수 있다. 또한 생태사는 인류 역사가 나아갈 방향을 생태적 균형으로 설정함으로써 “역사의 ‘생태학적 전환’을 실현”하는 것을 지향한다.2 그렇다면 생태사는 환경사와 어떻게 다를까. 모든 생명체를 대상으로 하는 생태사와 달리 환경사(environmental history)는 기본적으로 인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환경사는 지구생태계에서 인간의 특별한 위치에 주목한 것으로, 환경이라는 공간에 인간을 접합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둘의 상호연관성을 탐구하는 역사다. 결국 환경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포착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환경사는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환경 운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1970년대 미국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역사 연구에서 인간 이외의 생명체나 자연환경 요소가 무시돼왔던 데 대한 학문적 반성이자 인간의 환경 파괴 문제를 비판하는 차원에서 환경사가 시작된 것이다.
생태환경사는 환경사에 ‘생태학적 전환(ecological turn)’이라는 의미를 더한, 환경사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여타 동식물에 비해 자연을 길들이는 문화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생태계라는 연결망의 핵심 고리로 위치한다. 그렇기에 생태환경사도 분석 대상으로 인간에 중점을 둔다. 하지만 ‘생태학적 전환’은 인간을 더 이상 자연에 대한 정복자가 아니라 생태환경과 공존하는 생태계의 한 고리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를 더한다.
즉, 생태환경사는 인간의 자연 정복 욕망을 비판한다는 의미에서 기존 인간관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다. 인간은 그동안 또 다른 인간을 계급이나 인종, 성적으로 차별하고 착취해왔을 뿐만 아니라 자연도 착취해왔다. 특히 자연에 대한 착취는 끝없는 경제 성장을 기초로 한 자본주의 근대문명이 추구해온 생산력 지상주의와 함께 점점 심각해졌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물질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풍요로움을 누렸으나 환경 파괴와 생물다양성 후퇴, 기후 위기를 불러왔다. 이제는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자연 정복과 자연에 대한 착취를 일삼아온 인간 스스로에 대한 인식에 성찰적 비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점에서 현재 생태환경 문제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는 생태환경사는 근대 자본주의가 남긴 부정적인 산물을 반성하고, 근대가 갖는 여러 함의를 재성찰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생태환경사 연구는 현재의 생태환경 문제에 대한 역사학의 학문적 대응이자 일종의 현실 참여라고 볼 수 있다.
기후변화의 역사가 주는 교훈
그렇다면 생태환경사는 기존의 역사학과 어떻게 다르며, 현재의 기후변화 문제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생태환경사의 연구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19세기 중후반 서해에서는 중국과 한국 어선 사이에 분쟁이 자주 일어났고, 이는 양국 간 외교 마찰을 빚었다. 이런 어업 분쟁에 관해 기존의 역사 연구들은 서해안의 어장을 둘러싼 어업 분쟁이 발생한 사실을 평면적으로 언급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이를 생태환경사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19세기 한국과 중국의 어업 분쟁에는 기후변동과 청어(靑魚)라는 변수가 작용하고 있었다. 현재 한국의 연해에서는 잘 안 잡히는 청어가 지금보다 지구 평균기온이 2도는 내려갔던 소빙기(Little Ice Age, 대략 1400∼1850년), 곧 한국의 역사로 조선시대에는 동•서•남해 전역에서 흔하게 잡히는 물고기였다. 이 청어가 16세기 후반부터는 중국의 요동과 산동 지역에도 출현해 중국인들에게 대량으로 잡히면서 그들의 단백질 공급원이 됐다. 그런데 1850년 무렵이 되자 중국 연해에서 청어가 점차 사라졌고, 청나라 어선들은 청어 떼를 쫓아 조선의 서해안으로 몰려들어 불법 어업을 펼쳤다. 이후 1880년대 들어서는 서해안에서도 청어가 거의 사라져갔고, 이 과정에서 청국 어선들이 조선 어민들의 어장을 약탈하는 사건이 빈번히 발생했다. 이런 양국 어민의 충돌은 외교적인 현안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1890년대 이후 서해에서 청어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양국 어민들은 갈치와 같은 새로운 어종을 찾게 됐다.
당시 청어가 사라진 배경에는 기후변동이 있었다. 소빙기가 되면서 동아시아 해역에 자리 잡았던 청어가 19세기 후반 기후가 온난해지면서 점차 동아시아 해역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이다. 본래 청어에 의존해 생활해온 인간들이 이에 영향을 받았고, 이는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어업 분쟁이라는 외교 갈등으로까지 이어졌다. 소빙기가 몰고 온 ‘청어 풍년’을 지구온난화가 거둬들인 것이다. 청어의 생태환경 변화는 인간의 활동에도 영향을 끼쳤다.3
이처럼 역사에서 기후라든가,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와 같은 생태환경 변수를 고려해볼 때 그동안 바라본 역사상을 좀 더 다면적이고 풍성하게 그릴 수 있다. 기후와 해양 환경의 변화, 예컨대 청어와 인간이 공존하고 길항한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 중심적인 역사관에서 벗어나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생태환경사는 현재의 기후변화 상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첫째, 기후변화는 실제로 인간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청어가 서해와 남해에서 헤엄치던 소빙기, 특히 가장 추위가 두드러진 17세기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격변과 위기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의 기후변화는 기온 하강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기후변동성이 커졌음을 말한다. 추위와 불규칙한 날씨는 작물에 큰 피해를 줘 수확량을 감소시키고 기근을 초래했다. 기근은 농민들의 경제를 위축시켰고, 영양실조는 면역력을 감퇴시켜 감염병의 원인이 됐다. 이런 상황은 사회적인 불안감을 가중하고, 부족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반란과 전쟁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17세기 동아시아도 중국은 명에서 청으로의 정권 교체, 일본은 에도막부의 설립, 한국은 정묘•병자호란 등이 발생하는 등 격변을 겪었다. 이 모든 것을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 사회의 변동에 기후가 상당한 영향을 행사한 변수였음은 분명하다.
둘째, 급격한 기후변동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인간이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17세기에 네덜란드는 스페인 군대를 막아낸 뒤 회복력을 바탕으로 해상강국을 건설했다. 청나라의 강희제(康熙帝)는 기근에 대응해 부역과 조세를 감면하고 다양한 구휼정책을 실시해 성군으로 칭송받기도 했다. 한편, 소빙기의 상대적으로 추운 날씨는 난방의 필요성을 증대시켜 나무 장작의 수요를 촉진했다. 이로 인한 목재의 수요와 가격 상승은 다른 연료 자원을 찾게 하는 요인이 됐는데, 석탄이 바로 그 대체재로 떠올랐다. 이런 석탄 수요의 증대는 산업혁명의 배경이 됐다.
소빙기 기후변동이 인간에 미친 영향과 그에 대한 대응은 21세기가 맞이한 기후 위기의 현실에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기후는 인간의 삶에 예나 지금이나 큰 변수라는 점, 더 나아가 인간이 기후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재앙을 피할 수도,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도 있다는 점을 말이다.
인류세를 살아남기 위한 기업과 우리의 역할
지구환경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로 규정하려는 주장이 차츰 많은 이의 동의를 얻고 있다. 인류세는 약 1만2000년 전에 시작된 ‘홀로세’4 를 지나 지구가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용어다. 네덜란드의 대기과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과 미국의 생물학자인 유진 스토머(Eugene F. Stoermer)가 2000년에 사용한 뒤부터 ‘인류세’란 용어는 점차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인류세는 ‘인류로 인해 빚어진 시대’라는 의미로, 최근 급격하게 변화하는 지구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담긴 용어이기도 하다.
인류세의 기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그럼에도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지층에 쌓여 있던 화석연료를 대기권으로 과도하게 배출하면서 지구적인 에너지와 원소 순환 주기가 변화했고, 특히 화석에너지 체제가 일반화하고 인구 및 세계 경제의 규모가 급격하게 커진 1945년 이후 인류세가 도래했다고 보는 시각이 보편적이다. 방사성 물질이나 탄소 배출, 막대한 플라스틱 쓰레기 등 인류가 남긴 흔적은 지층과 대기권, 해양권 등을 교란하고 있다.
호모사피엔스는 홀로세라는 안정되고 온화한 지구의 기후 조건에 놀라울 만큼 잘 적응한 생물로, 이제는 지구의 생태환경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생명체가 됐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류는 자신이 조성하고 있는 지금의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종이 되고 있다. 인류는 ‘인류세’의 서막을 열자마자 멸종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인류세는 시작하자마자 오히려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자본주의의 총아인 기업은 탄소 배출을 주도하고 소비사회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기후 위기를 초래한 데도 책임이 크다. 그만큼 인류세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데 기업이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역시 훌륭한 제로 탄소 기업과 산업을 구축한 나라가 다음 세대에 세계 경제를 이끌 것으로 전망했다.5
기업은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기후 위기를 타개하는 움직임의 선두에 나설 수 있다. 예컨대,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기업 그룹인 RE1006 에 가입하는 것도 좋은 예다. 물론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제조업이 발달한 국내 산업구조에서 RE100에 가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를 위한 실천 방안으로 저탄소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을 우선시할 수 있다. 또 법인 차량을 전기차로 교체하고, 건물을 짓거나 개조할 때 저탄소 자재를 사용할 수 있으며, 전기의 상당 부분을 재생에너지로 바꿀 수도 있다.
기후 재앙에서 벗어나 인류가 만든 인류세를 잘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스스로가 가진 막강한 힘을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상생활에서부터 관점을 바꿈으로써 사회경제체제의 구조적인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 에너지 소비에 중독되고 경제 성장에 의존하는 사회 체제로는 기후 위기를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이는 북극곰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자기 집의 전기요금이 올라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인해 몰디브가 해수면 아래로 잠길 위기에 놓였기 때문에 몰디브로 하루빨리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만연해 있다. 물질만능주의,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인간과 여타 생명체의 공존을 고려해 약간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소빙기의 위기에 적응한 인간군상이 오늘날의 기후 위기 극복에 작은 교훈을 던져줬듯이 생태환경사 관점에서 역사와 현재를 돌아보는 일 또한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참고문헌
1. 고태우, 2020, 「생태환경사를 말한다② 한국학계의 환경사 연구와 생태환경사」, 웹진 역사랑 2호, 한국역사연구회
2. 고태우, 2020, 「총론 : 기후위기 시대의 생태환경사 - 한국 기후사의 모색」, 역사와 현실 118
3. 고태우, 2020, 「[내일을 여는 ‘선언’ 19] ⑮ 비상사태에 돌아보는 기후운동과 기후 선언」, 내일을 여는 역사 79
4. 벤저민 리버만, 엘리자베스 고든 지음, 은종환 옮김, 2018, 『시그널』, 진성북스
고태우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kotwmaha@gmail.com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구 분야는 한국 근현대사로, 식민지 개발과 그 유산 문제, 20세기 한국의 생태환경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연구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 ‘기후, 날씨와도 싸워야 했던 일본제국주의, 그리고 식민지민’ ‘식민지 토건업자의 ‘과점동맹’’ ‘한국사, 한 걸음 더(공저)’ ‘3•1운동 100년 4. 공간과 사회(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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