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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에서 북경까지

혼자 놀기의 진수, 준비됐나요?

안동섭 | 300호 (2020년 7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코로나19로 인해 비자발적 혼자 놀기가 필요한 시기가 됐다. 혼자 놀기의 진수는 명상이 아닐까 싶다. 과거 불교는 명상을 통한 득도를 강조했는데 유교 역시 이 영향을 받아 북송시대부터 명상법이 자리를 잡는다. 특히 정이(程頤, 1033∼1107)의 공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우리 마음을 물병으로 비유해 마음에 상념이 생기는 것은 물병이 비었기 때문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채워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런가 하면 현실주의자였던 조선의 정도전은 누군가 득도를 위해 명상을 하는 행위는 다른 누군가가 현실 세계에 발 담그고 세속적인 일들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했기에 가능했다고 봤다. 결국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많은 것 중 하나는 어떤 것이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처럼 보일 때조차 사실은 ‘누구에게만’ 허락된다는 것이다.


편집자주
인간사에는 늘 반복되는 패턴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 함은 바로 그 패턴 속에서 현재의 우리를 제대로 돌아보고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의미일 겁니다. 철학과 역사학을 오가며 중국에 대해 깊게 연구하고 있는 필자가 주(周)나라가 낙양을 건설한 후로 현대 중국이 베이징에 도읍하기까지 3000년 역사 속에서 읽고 생각할 만한 거리를 찾아서 서술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이정수라는 개그맨이 있었다. 그는 재능보다는 노력이 더 돋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개그계는 노력보다는 재능 값이 더 비싼 곳이었다. 그래도 그는 열심히 노력한 끝에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지”라는 유행어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20년, 바야흐로 대(大)자가격리의 시대를 맞이한 우리는 십수 년 전에 그가 외치던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 친구가 무슨 소용입니까”라는 말에 마냥 웃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혼자 놀기는 21세기에 처음 출현한 기현상도 아니요, 미제 개인주의에 찌든 젊은이들이 우리 공동체를 붕괴시키려는 전조도 아니다. 이정수 씨가 무대에 등장하며 외친 유행어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은 2500여 년 전에 인도 북부에 위치한 어느 소국의 왕자 고타마 싯다르타가 어머니의 복중에서 뛰쳐나오자마자 한 말로 알려져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혼자 놀 것을 선언한 이 말이 어찌나 감동적이었던지 독일의 문호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는 그를 위해 ‘싯다르타’를 썼고 그리스의 거인 니코스 카잔자키스(Nikos Kazantzakis, 1883∼1957)는 희곡 ‘붓다’를 썼다. 헤세나 카잔자키스 같은 글재주는 없지만 지금도 사월 초파일이 되면 수억 명의 필부필부가 모여서 이 갓난아이의 혼자 놀기 마니페스토를 기념한다.

그래서 그런지 불교(佛敎)의 수행법에는 혼자서 하는 것이 유독 많은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명상’일 것이다. 명상은, 과감히 요약하자면, ‘정신 집중’이다. 지난 겨울방학 이후로 반년 가까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 박혀 있는 초등학생들은 잠시만 방심(放心)해도 집중력을 잃고 여기저기로 달아나(放) 버린다. 이 원숭이들을 한자리에 붙들어 두려면 아주 흥미로운 물건을 던져주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이라든가, 스마트폰이라든가, 아니면 스마트폰이라든가. 명상도 마찬가지다. 부모님들이 폰으로 초등학생을 포획하듯 스님들은 ‘화두(話頭)’로 마음을 붙잡는다.

꼭 화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때로 이것저것에 정신을 집중한다. 영화, 만화, 책 등은 물론이고 간혹 강의, 미팅, 업무 따위에 집중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존재한다고 한다. 깊이 몰두한 동안에도 물론 이런저런 상념(想念)들이 멈추지 않고 일어나 우리의 정신을 빼앗아가려고 기회를 엿본다. 정신 집중은 이런 상념을 뿌리부터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건 불가능하니까) 그런 상념이 우리를 습격하지 못하게 단단히 중심을 잡는 것과 비슷하다. 마당에 뜨거운 화로(火爐)를 세워 놓으면 흩날리는 눈꽃이 그 위에 떨어질 듯하다가도 녹아 없어져 버리는 것처럼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정신을 세워 놓으면 분분히 흩날리는 상념이 그 위에 떨어질 듯하다가도 녹아서 사라져버린다.

명상하는 스님들이 멋있어 보였는지 선비들도 유행에 편승해 가만히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유학자의 명상법은 대체로 북송(北宋, 960∼1127) 시기에 몇몇 철인(哲人)들의 토론 끝에 정립됐는데 그중 정이(程頤, 1033∼1107)의 공이 가장 컸다. 그는 우리 마음을 물병으로 비유했다. 빈 병을(마음) 강물(세상)에 던져 놓고 물(상념)이 들어오지 않길 바라다니, 그게 가능할 리가 있나? 병 속에 자꾸 물이 들어오는 게 근심이라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병을 미리 채워버리면 된다. 가득 찬 병에는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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