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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보이는 최고 전망의 호텔 왜 장사는 안될까?

한근태 | 183호 (2015년 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어떻게 늙는 것이 아름다운 것일까. 나이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정년을 앞두고도 현실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아름답게 늙는 방법 중 하나가 가정을 돌아보는 것이다. 중국의 석학 후스는 무학의 아내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 임종을 앞두는 그가 세상의 남편들을 향해 삼종사덕의 말을 남겼다. 세 가지를 따르고 네 가지 덕을 베풀라는 것이다. “부인이 화장할 때 불평하지 말고 끝날 때까지 기다려라, 부인의 생일을 잊지 말라, 부인에게 야단맞을 때 말대꾸 하지 마라, 부인이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말라”는 것이 사덕이다. 정신과 의사로 평생 일했던 저자가 본 환자들은 대부분 가정에 문제가 있었다. 가족 안에 가해자가 있고 가족의 병이 환자를 만든 것이다. 환자는 가족을 대표해서 병을 앓았던 것이다. 그 말을 뒤집으면 가정을 치유하면 사회도 치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 한 재벌가의 ‘형제의 난’ 때문에 연일 시끄럽다. 이 사건을 지켜보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문제의 원인이 무엇일까? 필자는 아흔이 넘은 아버지에게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가 자신이 영원히 죽지 않을 걸로 생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자신이 나이 들었다는 사실, 자신의 시대는 지나가고 자식의 시대가 올 것이니 이쯤에서 은퇴하자고 결심하고 후계자 문제를 명확히 했더라면 문제가 이 지경으로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멋지게 나이 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책,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를 소개한다. 그는 신경정신과 전문으로 50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집을 크게 지어 결혼한 자녀 부부와 네 명의 손자손녀까지 모두 삼 대 열세 명의 가족이 한집에 모여 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간은 누구나 생노병사의 단계를 거친다. 태어나고, 늙어가고, 병들고, 죽는다. 우리는 이 과정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행동해야 할까? 과연 우리들은 이 과정에 대해 준비가 돼 있을까?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일까? 그중 하나가 선택에 대한 책임이다.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어른이고 성숙한 사람이다. 만약 선택도 하지 않고,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는 나이만 먹었지 성인이 아니다. 네팔의 결혼제도는 독특한데 말이 아닌 제도로 선택에 대한 책임감을 가르친다. 결혼을 위해 신랑 아버지가 술 한 병을 들고 신부 집에 간다. 신부 아버지에게 술을 권한 뒤 그가 이 술을 마시면 결혼을 허락한다는 의미다. 신랑 아버지는 신랑을 신부 집에 놔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일 년이 지난 후 양가 부모들이 모여 커플에게 “재미있느냐, 살만 한가”라고 묻는다. 두 사람 모두 그렇다고 답하면 계속 살게 하고, 한쪽이라도 싫다고 하면 그 즉시 원상복귀다. 살다 임신을 하게 되면 양가 부모가 모여 또 다시 좋은지, 계속 살고 싶은지를 묻는다. 그때도 역시 한쪽이라도 싫다면 원상복귀다. 아이를 낳은 후 또다시 모여 커플에게 어떤지를 묻는다. 둘 다 만족스럽다고 답하면 그제야 비로소 결혼식을 올린다. 이 과정이 빨라도 일 년, 길게는 5년까지 걸린다. 아이를 낳은 상태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이는 엄마 쪽에서 양육한다. 모계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혼을 한 후 이혼을 하게 되면 얘기는 180도 달라진다.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한다. 이들은 이혼한 사람을 가장 무시한다. 왜 그럴까? 시간을 두고 네 번이나 물었는데 이혼을 한다는 것을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네팔의 결혼풍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매우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혼전에 동거를 하고 생활을 하면서 상대에 대해 충분히 학습하는 것이다. 단점이 있어도 받아들일 수 있으면 계속 살 수 있고, 그게 안 되면 싫다고 답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 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단 자신이 내린 결정에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결정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완했으니 이것이야말로 합리적인 것이다.

 

 

인생의 사계절을 보내는 이들에게 띄우는 편지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저자 이근후, 샘터사, 2014

 

멋지게 나이들려면

철이 들었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의 철은 계절을 뜻한다. 철이 들었다는 건 철에 맞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성숙한 사람이란 철이 든 사람을 뜻한다. 그런 면에서 네팔 사람들은 지혜롭다. 이들은 인생을 네 단계로 나눈다고 한다. 봄에는 배우고, 여름에는 적응하고, 가을에는 참회하고, 겨울에는 마침내 자유로워지는 것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마지막을 자유의 계절이라 부르는 것이 신선하다. 힌두교 역시 76세 이후의 삶을 자유의 시기라고 말한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말일까?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겨울이란 사계절이 끝나가는 시기다. 죽음이 멀지 않은 때다. 삶과 헤어지는 시기이다. 이런 시기는 한편 섭섭하고 다른 한편으로 홀가분하다. 당연히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자유는 평온을 뜻한다. 자유란 죽음을 맞이하는 가장 평온한 태도이기도 하다.

 

‘노인정 대화’란 말이 있다. 듣는 사람은 없고 말하는 사람만이 있는 대화를 말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나이가 들수록 대화상대가 필요하고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마땅치 않아 일어난 일이다. 그만큼 말이 고픈 것이다. 인간에겐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하다. 불통은 곧 죽음이다. 뒷방 노인네, 독거노인이란 단어를 들으면 고립, 단절 등의 단어가 연상된다. 독일 프레데릭 2세는 아이들이 말을 배우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무슨 교과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끼고 앉아 가르치는 것도 아닌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한 살 정도 된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을 했다. 두 그룹의 아이들 모두 보살피긴 했다. 하지만 한 그룹은 먹이고, 재우고, 입히기만 할 뿐 전혀 말을 걸지 않았다. 기른다기보단 사육에 가까운 것이다. 생존을 위한 기본 조건만 제공하고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결과는 어땠을까? 말을 주고받지 않은 그룹의 아이들은 6개월이 지나면서 죽기 시작하더니 2년이 지나자 거의 다 사망했다. 놀라운 일이다. 소통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소통을 통해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소통을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다. 중죄인을 독방에 가두는 것을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소통이 없는 삶은 그 자체로 고통이다.

 

뭐든 서두르면 문제가 생긴다. 가장 빠른 길이 가장 느린 길이다. 그래서 영어속담에 ‘Haste makes waste’가 있다. 사는 것도 그렇다. 뭐든 급하게 하면 체하기 마련이다. 사는 것도 그렇고 산에 오르는 것도 그렇다. 산은 자연 리듬에 맞춰 오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목 샹보체라는 곳에 에베레스트 뷰라는 호텔이 있다.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로 이동해 샹보체 근처의 간이비행장에 내려 호텔로 가야 한다. 이 호텔은 에베레스트를 정면으로 볼 수 있어 경치가 참으로 좋은 곳이다. 해발 3880m에 위치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텔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문제는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이다. 에베레스트를 보겠다고 경비행기를 타고 와 내리는 순간 고산병에 걸리기 때문이다. 가장 쉽고 빠르게 에베레스트를 보는 방법이지만 산은 그런 이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일본인 주인은 객실에 산소통까지 갖다 놓고 여러 방법을 쓰지만 영 신통치 않다.

 

 

상대를 함부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도 위험하다. 사람들이 일정한 행동패턴을 보이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우리 눈에 네팔 사람들은 게을러 보인다. 세상에 급한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 부지런하다, 게으르다는 것은 함부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환경 탓이 크다. 히말라야는 인간이 설정한 시간에 맞추기가 어려운 곳이다. 아무리 서둘러도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경우가 많다. 자연의 시간을 따르지 않고 인간의 시간을 따르다가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급하게 오르면 고산병으로 고생할 수 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의 빠름은 신체의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이들이 시간을 안 지키고 게으른 것은 자연 특성에 맞춰 무리하지 않게 생활하다 얻은 생활의 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어떻게 늙어가고 싶은가? 언제까지 직장을 다닐 것인가? 은퇴 후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대부분 사람들이 별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때 일은 그때 가서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난 동의하지 않는다. 난 무슨 일이든 미리미리 생각 정리도 하고 준비할 게 있으면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교수직을 은퇴하고도 멋지게 생활을 한다. 그의 생각은 명확하다. 퇴직은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지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직장을 그만 둘 때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을 권한다. 첫째, 내 나이가 65세가 됐구나라는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정년이란 사실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어차피 나이란 거부한다고 안 먹는 것도 아니고 젊어지려고 노력하는 동안에도 나이는 계속 들어간다. 둘째, 정년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정년을 자각했다면 그에 맞는 적응연습을 해야 한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시니어패스를 발급받았다. 우리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을 많이 듣고 살았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다. 나이 드는 것이 대표적이다. 가장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은 나이 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게 생활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곱게 늙어가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노년이 돼 성형과 시술에 집착하는 것은 열등감 때문이다. 내면의 열등감을 외면의 모습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는 보기 좋지 않다. 노인이 되는 것보다 노인이 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힘들다.

 

노인 하면 두 사람이 연상된다. 잉그리드 버그만과 오드리 헵번이다. 둘 다 미모의 여배우이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카사블랑카’에서, 오드리 헵번은 ‘로마의 휴일’에서 열연했다. 버그만은 전성기에 은퇴한 뒤 저택 속에서 은거하면서 세상과의 접촉을 끊었다. 나이든 자신의 얼굴을 팬들에게 보여주기 싫다는 이유에서다. 헵번은 나이 들어 주름 진 얼굴로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주 대조적인 삶이다. 숨어 산다고 안 늙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버그만은 노화보다 남의 시선을 더 두려워했던 것이다. 여러분은 둘 중 어떤 사람처럼 나이 들고 싶은가?

 

잘 죽기 위해서는

유언도 준비해야 한다.

유언은 가장 적극적 삶의 계획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은

절대 죽지 않으리란 믿음을

갖고 있다.

 

자녀의 인생에서 벗어나라

장수의 시대가 되면서 부모 자식의 관계가 달라지고 있다. 인류 최초로 부모와 자식이 같이 늙어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새롭게 관계설정을 하지 않으면 서로에게 불편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란 것이다. “한 사람의 아버지는 열 명의 자식까지 기를 수 있으나 열 명의 자식은 한 사람의 아버지도 보살피지 못한다.”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뿌리 깊은 이스라엘 속담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처럼 자녀에게 노후를 의지할 수 없다. 자녀를 키우는 것은 확실한 부모의 의무이자 책임이지만 그렇다고 자녀에게 부모 봉양을 강제할 수는 없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같은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자기 삶과 자녀 삶을 구분하지 않는 부모들이다. 자녀가 잘되면 내가 잘된 것이라 생각하고, 자녀가 잘못 되면 내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 전통적 부모들이다. 이들은 노후를 자식들에게 맡긴다. 자녀를 보살핀 대가를 성인이 된 후 되돌려받기를 원한다. 둘째, 자식을 독립적 존재로 인식은 하지만 조종의 끈을 놓지 않는 부모를 뜻한다. 육체적으론 독립돼 있지만 자식의 일에 사사건건 참견해야 직성이 풀리는 부모들이다. 셋째, 나의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는 부모들이다. 셋째가 바람직하다. 자녀는 내가 낳았지만 내 소유물이 아니다. 나의 인생과 자녀의 인생을 구분하고 그들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 처음에는 품 안의 자식이니 온전히 내가 모든 것을 보살피지만 자식이 커가면서 점차 자식의 자아를 인정하는 것이다. 사춘기가 되면 자식 주장의 30%를 인정한다.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장에 들어가면 30%를 더 인정한다. 자식이 결혼하면 나머지 30%까지 넘겨준다. 90%의 주체권을 자식에게 준다. 그래도 부모와 자식이라는 10%의 끈이 남아 있다. 자식을 조종하기엔 부족하지만 연결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래도 매우 끈끈한 끈이다. 부모는 절대 자식을 조종해서는 안 된다. 자녀의 삶은 내 삶이 아니다.

 

 

삶에서 행복만큼 중요한 것은 많지 않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 근데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내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다. 근데 이상하게 내 안의 행복은 남에게서 오는 경우가 많다. 행복은 관계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행복은 이타심에서 오고 불행은 이기심에서 온다. 사실 이기심과 이타심은 분리할 수 없다. 이기심이 이타심이고 이타심이 이기심이다.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이고 나를 위하는 것이 바로 남을 위하는 것이다. 그만큼 이타심과 이기심은 혼재돼 있다. 이타적 행동이란 넓게 보면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면 이타성은 싹트기 시작한다. 혼자 잘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다른 사람이 잘살아야 나도 잘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타심은 성숙한 이기심이다. 순서는 내가 먼저 건강하고 행복한 것이다.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지 않은데 남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다. 내 안의 넘치는 행복감이 남에게 전달되는 것이 이타심이다. 내가 행복해야 더불어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으며 남의 행복이 나에게 전해지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나 없이 남을 도울 수 없다.

 

행복의 요건에는 먹는 것도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먹는 게 남는 것이란 얘기를 자주 한다. 배우는 것도 그렇다. 뭔가를 배워두면 그건 온전히 내 것이 된다. 때로는 남에게 긴요하게 나누어줄 일도 생긴다. 중국의 유명한 석학 후스(胡適)는 주미대사를 지냈다. 근데 부인은 무학에 전족의 풍습을 따른 옛날 사람이다. 그가 미국대사로 임명되자 외교가 사람들은 부인이 격에 맞지 않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했다. 주미대사라는 무거운 직책을 무학의 부인이 잘 해낼까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근데 우려와 달리 그녀는 외교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녀는 친정에서 가져온 무쇠 가마솥에 중국 전통 음식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을 극진하게 대접했다. 덕분에 성공적인 대사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임종을 앞둔 후스는 남편들을 향해 삼종사덕의 말을 남겼다. 세 가지를 따르고 네 가지 덕을 베풀라는 것이다. “부인이 외출할 때 꼭 모시고 다녀라, 부인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라, 부인이 아무리 말 같지 않은 말을 해도 맹종하라”는 것이 삼종이다. “부인이 화장할 때 불평하지 말고 끝날 때까지 기다려라, 부인의 생일을 잊지 말라, 부인에게 야단맞을 때 말대꾸 하지 마라, 부인이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말라”는 것이 사덕이다. 여필종부를 생각하던 우리들에겐 충격적이지만 일리 있는 말이다. 이상적인 남자는 밖에서 힘을 쓰고 안에서는 아내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남자들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저자가 본 대부분의 환자들은 가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가족 안에 가해자가 있고 가족의 병이 환자를 만든 것이다. 환자는 가족을 대표해서 병을 앓았던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는데 이유 또한 가정 때문이다. 그 말을 뒤집으면 가정을 치유하면 사회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생로병사의 연속이다. 그중에서 병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에 대한 태도도 미리 생각을 해두는 것이 좋다. 병을 편안하게 다스릴 것이냐, 아니면 병과 싸울 것이냐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병 자체로 힘들게 살고 싶지는 않다. 병은 고통도 주지만 동시에 통찰도 준다. 죽음 앞에서 마지막으로 치르는 구도이기도 하다. 잘 죽기 위해서는 유언도 준비해야 한다. 유언은 가장 적극적 삶의 계획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은 절대 죽지 않으리란 믿음을 갖고 있다. 입으로는 죽음에 대해 말하지만 실제 속으론 영원히 살 것으로 생각한다. 노욕이나 노추는 그런 것에서 연유한다. 잘 죽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유언을 해야 한다. 유언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죽을 것이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의 유언은 아주 심플하다. “장례식에 오는 분들을 소홀히 하지 말라. 화장으로 처리해 달라. 장례비용을 최소화하라. 모든 것을 아내에게 주고 싶다” 등이 그것이다. 지혜란 무엇일까?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중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는 것이 그렇고 나이 드는 것이 그렇다. 이 책이 필자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저자가 실제로 그런 사람인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kthan@assist.ac.kr

필자는 서울대 섬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크론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핀란드 헬싱키경제경영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대우자동차 이사, IBS컨설팅그룹 상무,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등을 지냈고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겸임 교수를 맡고 있다.

  • 한근태 한근태 | - (현) 한스컨설팅 대표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 교수
    - 대우자동차 이사 IBS 컨설팅 그룹 상무
    -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kthan@ass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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