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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무용가

발레·현대무용·전통무용·탱고…춤의 경계를 파괴하는 ‘갈망의 무용가’

신동엽 | 151호 (2014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혁신, 자기계발, 인문학

 

지속가능한 경쟁력의 원천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있다. 하나는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정된 자원과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로 관심을 넓히며경계파괴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둘 다 일리가 있지만 최근 21세기형 경쟁력의 원천으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창조와 혁신에 관한 한 후자 쪽이 상대적으로 좀 더 강한 설명력을 가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무용가 김주원은 세계적 예술가 중에서 특히경계파괴측면에서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1 365일 흔들림 없는 자기관리와 연습을 통해기본기를 연마하고 클래식 발레가 주는엄격한 틀안에서 끝없는 변화를 시도한다. 이를 위해 음악, 현대무용, 한국무용 등 같은 문화예술 분야는 물론 연관된 모든 분야, 일견 관련이 적어 보이는 모든 것에서 창조성의 원천을 얻어온다.

 

 

편집자주

모두가창조를 말하는 시대지만 정작 정확한 개념 정의도, 진정한 의미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창조성에 대해 10여 년 전부터 연구해 온 신동엽 연세대 교수가 여러 학자들과 함께 진행한 각종 인터뷰와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21세기 시대정신, ‘창조성의 원천을 찾아서를 연재합니다.

 

선택 집중과 경계파괴 사이의 딜레마

개인이나 기업, 국가의 지속가능한 경쟁력의 원천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두 가지의 정반대 입장이 공존하고 대립한다.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는 입장과 끊임없는 경계파괴를 주장하는 입장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전문가들이 지지하는 첫 번째 입장은 자원과 역량이 제한된 환경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달성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 기반논리는 단순명료하다. 한 개인이나 기업이 보유하고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자원, 역량, 시간, 관심, 에너지 등은 결코 무한할 수 없으며 항상 그 양이 제한돼 있다는 단순한 관찰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어떤 영역이나 사업이 아무리 매력적이고 또 자신이 원한다고 해도 너무 많은 분야에 진입하게 되면 제한된 자원과 역량이 필연적으로 분산되고, 그 결과 어느 것도 높은 수준으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경쟁이 분야 단위로 진행될 때는 다양한 분야에 활동영역이 펼쳐져 있는 사람이나 기업은 특정 분야에만 선택과 집중하는 전문화된 경쟁자들을 이길 수가 없다. 게다가 한 분야에만 선택과 집중하면 같은 활동을 반복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숙련도가 높아져서 그 분야 내에서의 역량이 더 강해지게 된다. 결국 개인과 기업을 막론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제한된 역량과 자원, 시간, 관심, 에너지를 분산시켜 낭비하지 말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한 분야에 선택과 집중하는 게 옳다는 얘기다. 그게 바로 지속가능한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논리다.

 

글의 도입부에서 제기한 대로 이와 정반대의 주장도 존재한다. 바로 경계파괴 또는 창조적 파괴 등으로 대표되는 것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로 지평을 넓히는 것이 지속가능한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입장이다. 상대적으로 소수의 의견이지만 최근 들어 부쩍 그 지지자가 많아졌다. 개인이나 기업이 한 가지 분야에만 폭 좁게 선택과 집중하면 그 분야에서의 숙련도와 효율성은 높아질 수 있어도 급변하는 환경하에서는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논리다. 오히려 치명적 위기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스스로 자신의 강점 분야를 넘어서서 새로운 분야와 영역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경계파괴가 필요하고 주장한다. 이 입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특히 강조하는 요소는 바로 환경변화다. 근대 이전의 시기처럼 동일한 환경이 장기간 지속되지 않는 한 선택과 집중 전략은 오히려 엄청난 위험의 원인이 되다는 것이다. 환경이 급진적으로 변화하면 기존에 선택과 집중한 분야나 영역의 매력도가 급속하게 사라지게 되는데 한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한 사람이나 기업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기존 분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몰락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필자가 DBR에서 이미 소개했던역량파괴적 환경변화1 가 발생할 때 나타나는성공의 덫위험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달성하는 유일한 전략은 자신의 강점에 안주하고 지키려는 태도를 버리고 환경변화의 속도와 패턴에 발맞춰 끊임 없이 새로운 분야와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경계 넘어서기와 창조적 파괴가 핵심이라는 말이다. 특히 극도로 불안정하고 급변하는 21세기 초경쟁 환경에서는 끊임없는 경계 넘어서기와 창조적 파괴가 생존의 필수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김주원은 한국 발레의 대표적 스타로서 볼쇼이 발레학교 졸업 후 1998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2012년까지 15년간 몸담으며 한국 발레 성장을 이끌어 온 무용가다. 뛰어난 테크닉과 함께 탁월한 표현력과 연기력을 겸비한 발레리나로 2006년에는 발레계 최고의 영예인브느와 드 라 당스최고 여성무용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입장들 중 어느 쪽이 옳을까? 두 가지 모두 나름대로 탄탄한 논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옳고 그르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또 실제 사례의 분포를 보더라도 이 두 가지 입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개인이나 기업의 사례들이 무수히 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입장은 해당 분야의 특성이나 시기, 환경 등과 같은 상황에 따라 상대적 설명력이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21세기형 경쟁력의 원천으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창조와 혁신에 관한 한 후자 쪽이 상대적으로 좀 더 강한 설명력을 가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특히 예술은 원래부터 끊임없는 창조와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 그 본질이었다. 완벽하게 똑같은 품질의 작품만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면 되는 장인과 달리 예술가는 모든 작품이 항상 새로워야 한다. 즉 예술의 본질은 자신의 이전 작품과 뭔가 다른 새로움을 추구하는상시 창조적 혁신이고, 이를 위해 예술가들은 과감하게 스스로의 강점 분야를 넘어서서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경계 넘어서기와 창조적 파괴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창조적 예술가의 대표격인 피카소는예술의 본질은 파괴다. 나는 파괴하기 위해 그린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실제로 10대 청소년기에서 80대에 작고할 때까지 후기 인상파, 청색시대, 장및빛시대, 입체파, 신고전파 등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또 회화뿐 아니라 조각과 도예, 무대미술 등으로도 영역을 넓히는 경계파괴를 반복했다.

 

아를르의 여인

 

집중화된 경계파괴가 딜레마의 해결책

그렇다면 창조적 혁신에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적용되지 않고 끊임 없이 경계파괴를 시도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창조성의 원천>이라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심층 인터뷰를 했던 20여 명의 세계적 예술가들을 돌아보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세계적 예술가들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스스로의 강점 분야를 과감하게 넘어서서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각고의 노력을 통해 창조적 예술을 만들어낸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의 경계 넘어서기와 창조적 파괴 시도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른 특별한 패턴이 있고 항상 명확한 초점이 있다. 겉으로는 전혀 아무런 원칙이 없고 무절제하고 무작위적인 것처럼 보이는 창조적 예술가들의 경계 넘어서기에 초점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스스로에 대한정체성규정과소명의식이었다. 즉 예술가가 스스로에 대해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해 내린 결론이 바로 그의 일생의 창조활동에 초점이 된다는 얘기다. 이 정체성과 소명의식의 범위 안에 있다면 구체적인 사업이나 활동, 역량, 기법 등은 전혀 제약조건이 아니며 창조적 혁신을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넘어서고 파괴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예를 들면, 피카소가 세계미술사에서 가장 혁신적 사조 중 하나인 입체파를 주도했지만 실제로 입체파 스타일의 그림을 그린 것은 채 10년도 되지 않으며 입체파를 완성하는 순간 주저하지 않고 즉시 또 다른 새로운 미술을 찾아 미련 없이 새로운 영역을 탐구했다. 그는 새로운 미술사조를 끊임 없이 창조하며 회화뿐 아니라 조각, 도예, 무대미술, 설치미술까지도 탐구했지만 그의 핵심 정체성과 소명의식은 항상시각예술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결코 그것을 벗어난 적은 없다. 즉 피카소의 정체성과 소명의식은 시각예술 분야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피카소는 실제로 미술뿐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들에도 조예가 깊고 관심도 많았으며 기욤 아폴리네르나 장 콕도와 같은 문학가들이나 에릭 사티와 같은 음악가들과도 절친했다. 1910년대와 20년에 파리를 중심으로 획기적인 종합예술을 선보인 디아길레프의 러시아발레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그의 역할은 항상 무대미술과 같은 시각예술에 집중됐을 뿐 결코 스스로 음악이나 무용으로 무대에 서겠다고 시도한 적은 없다. 필자가 <창조성의 원천> 책에서 다루고 있는 20여 명의 세계적 예술가들도 예외 없이 경계 초월자이자 창조적 파괴자였으나 그들의 경계 넘어서기와 창조적 파괴는 항상 자신이 스스로 규정한 근본적 정체성과 소명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며 결코 그 범위를 넘어서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창조적 예술가들은 극단적 선택과 집중이나 무절제한 경계파괴 중 어느 쪽도 아닌 일종의집중화된 경계파괴를 통해 창조적 혁신을 달성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예술가들뿐 아니라 개인이나 기업들도 먼저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에 초점을 맞춰 끊임없이 경계파괴를 시도한다면 상시 창조적 혁신이 생존의 필수 요건인 21세기 초경쟁 창조사회를 성공적으로 리드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창조성의 원천>에서 분석한 20여 명의 세계적 예술가들은 모두 집중화된 경계파괴의 달인들이었지만 그중에서 특히 경계파괴의 측면에서 가장 돋보인 사람은 무용가 김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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