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 Management

가치관 혼재 시대에 ‘벙커’로 남지 않으려면

97호 (2012년 1월 Issue 2)



 
편집자주  오랫동안 CEO들을 대상으로 심리클리닉 강좌와 상담을 진행해온 신경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대인관계클리닉 원장이 리더들에게 필요한 마음경영 방법을 제시합니다.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경영자들이야말로 ‘마음의 힘’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강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통해 인생을 변하게 하는 마술 같은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김영진 씨에게는 일탈의 경험이 별로 없었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그는 일관되게 ‘범생이’로 살았다. 집이나 학교에서 정해 놓은 규칙을 잘 지킬 뿐 아니라 공부도 잘하는 모범적인 학생의 이미지는 그 뒤로도 쭉 이어졌다. 덕분에 그는 나이 마흔이 된 지금도 바른생활 맨으로서 흐트러짐 없는 생활을 고수해 오고 있다. 그런 스스로에 대해 자긍심도 컸다. 주변에서도 그의 고지식한 원리원칙주의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아마도 그가 좀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그 시절의 버전으로 ‘대쪽’이란 별명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옛말(?)이 잘 쓰이지 않는 요즘, 그는 ‘대쪽’ 대신 ‘벙커’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대쪽’과 ‘벙커’라는 두 단어만큼 서로 조합이 잘 되지 않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바로 거기에 김영진 씨의 문제가 숨어 있었다.
 
 
그가 ‘벙커’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
 
‘대쪽’은 예로부터 자신의 가치관에 위배되는 것이면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기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적어도 진정한 군자나 선비라면 ‘대쪽 같은 성품’ 정도는 지니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아래위로 두터운 신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에도 그런 기개를 지닌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그에게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보낸다. 다만 그런 사람이 흔치 않을 뿐이다.
 
선비의 기개까지는 아니어도 성실하고 고지식하게 원리원칙을 지키고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온갖 종류의 내 맘대로 식 가치관이 요동치는 세상에서 그건 보기 드문 장점일 수 있다. 그런데 김영진 씨는 왜 벙커라는 별명으로 불려야 했을까? 문제는 그가 자신의 시각만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데 있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바른생활을 해나가는 사람이라는 그의 의식 속에는 똑같은 무게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옳은 사람’이란 생각이 고착돼 있었다. 바로 ‘난 옳은 사람’이란 생각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난 옳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다 옳았다. 뭐, 거기까지도 사실 나쁠 건 없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든 다 내 마음이니까.
 
더욱이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올바르고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란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가끔은 적당히 타협할 때가 없진 않지만 이래봬도 근본은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성질을 부리기도 하고 참을성도 없고 잘 삐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난 분명 본성은 착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물론 때때로 거짓말을 하고 위선을 떨 때가 없진 않지만 이 세상에 나만큼도 그런 짓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하며 적어도 나 정도면 대단히 정직한 축에 든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와 관련한 실험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천국에 간다면 과연 누가 가장 먼저 갈 수 있을까’란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대답은 이랬다. 테레사 수녀가 3위, 오프라 윈프리가 2위, 1위는 당연히 ‘나’였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조사에 응한 사람들 중 무려 87%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 이유는 물론 “내가 가장 착하니까”였다.
 
사람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 정도의 자기 확신마저 없다면 우리가 어찌 이 험한 세상을 이만큼이나마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보면 김영진 씨의 경우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실제로 그는 누구보다도 스스로 보기에 옳다고 여겨지는 바른생활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자신이 세상을 보는 시각은 전적으로 올바를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것을 혼자 간직하지 않은 것은 그의 실수였다. 특히나 요즘처럼 온갖 종류의 가치관이 혼재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먼저 가족들 사이에서 균열이 생겨났다. 결혼생활이 10년째로 접어들면서 그의 아내는 이미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자신은 성실하고 바른 사람이라는 굳건한 신념 아래 그는 살림살이의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면서 이건 이래서 틀렸고 저건 저래서 틀렸다고 지적하기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견디지 못한 아내가 저항하자 그는 오히려 그런 아내를 이해할 수 없어 했다. 아니, 내가 지금 틀린 말을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제대로 좀 하자는데 그걸 못 견뎌 사네 마네 하다니 기가 막힌 노릇이란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나마 어린 두 아들은 아직까지는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고분고분 말을 듣는 것 같아 위안이 됐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좀 더 다잡아 두려는 생각에서 작은 잘못에도 매를 들곤 했다. 그것도 아내를 분노하게 하는 일 중의 하나였지만 그는 그런 사고방식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부서의 팀장인 그는 리더십에 대해서도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 자신의 바른 생각과 바른 생활이면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옳고 선한 사람이라는 그의 생각은 회사에서도 적잖은 문제를 일으켰다. 앞에도 언급했듯이 그런 생각을 혼자서만 간직하면 상관없다. 그런데 그는 평소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이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그는 자신만의 확고한 잣대를 가지고 있었고 기회만 있으면 그것을 모두에게 주지시키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팀원들은 하나같이 그가 ‘절대논리로 무장한 독선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자기와 의견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은 가차없이 형편없는 인간으로 매도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나만의 올바른 시각’을 남에게도 강요했다. 반발이 따르는 것이 당연했다. 일을 할 때도 그는 자기와 생각이 다르거나 일 처리 방식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물론 그는 자기는 단지 원칙대로 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팀원들이 보기에는 독선적이고 오만한 상사일 뿐이었다. 그것도 자기만의 편견과 흑백논리로 가득 찬. 그래서 결국 그는 ‘벙커’란 별명을 갖게 된 것이었다.
 
알다시피 벙커는 골프장 코스 중 모래가 들어 있는 우묵한 곳을 가리키는 용어다. 골프 공이 벙커에 빠지면 쉽게 빠져 나오기가 어렵다. 선수들도 애를 먹을 때가 적지 않다. 그런 것처럼 일단 나는 옳고 세상은 그런 내 말을 들어 줘야 한다는 김영진 씨의 절대 논리야말로 벙커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한번 그의 그런 주장에 걸려들면 웬만해서는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낫지 않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자기 경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연애가 불행하게 끝난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연애가 다 쓰라리고 애달프게 여겨지듯이 건강한 사람은 아픈 사람을,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사람을, 상처를 주는 사람은 상처를 받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겪은 것, 내가 본 것, 내가 들은 것만이 나를 이루는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때로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프랑스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 프랑소아즈 돌토는 “다른 사람에게 투사해 버린 것들을 자신의 내면에서 다시 찾는 순간 성장한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주장하지만 어느 순간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내가 모르는 생의 이면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가져야 한다.
 
김영진 씨처럼 인간관계에서 벙커가 되지 않으려면 늘 열린 시각, 열린 마음을 갖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 첫 번째 방법은 유머 감각을 키우는 것이 아닌가 한다. 유머 감각이란 게 타고난 순발력을 필요로 하는 건데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순발력도 노력하고 훈련하면 나아질 수 있다. 나는 올바르고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도를 넘어 흑백논리로만 세상과 다른 사람을 재단하기만 해서는 순발력도 유머 감각도 생겨날 여지가 없다. 편협하고 독선적인 사람은 자신이 농담의 대상이 되는 걸 못 견뎌 한다. 하지만 유머 감각이란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웃을 수 있는 능력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열린 마음과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만이 그런 유머를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인간관계에서 파스텔 색조를 보는 것이다. 우린 무지개가 일곱 색깔로 돼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컴퓨터로 분석해 보면 무지개 속에는 수많은 색깔이 들어 있다고 한다. 우리 개인이나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이 갖고 있는 다양한 색깔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낫지 않다”는 말이 있다. 나만 올바르고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칫 독선과 오만을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새해에는 먼저 나부터 마음에 새겨둬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양창순  신경정신과·대인관계클리닉 원장  mind-open@mind-open.co.kr
 
양창순 원장은 정신과, 신경과 전문의로 현재 <양창순신경정신과·대인관계클리닉> 원장이다. 연세대 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성균관대에서 주역과 정신의학, 리더십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정신의학회 국제회원, 미국의사경영자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ceo, 마음을 읽다> <미운 오리새끼, 날다> 등 자기계발, 대인관계, 리더십을 주제로 한 책들을 10여 권 넘게 저술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9호 Fly to the Metaverse 2021년 0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