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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미리 본 것을 포기하지 마라

구본형 | 52호 (2010년 3월 Issue 1)

언젠가 전설적인 하키 선수였던 웨인 그레츠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키 공이 있는 곳이 아니라 공이 움직일 곳으로 미끄러져 간다.” 그는 정말 공이 어디로 갈지 미리 알고 있었을까? 웨인 그레츠키의 뛰어난 성과는 그가 정말 미리 공이 올 곳을 감지하거나 예감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에게 육감과 예감 혹은 예지력과 같은 신의 선물이 특별히 주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상대편을 주의 깊게 연구했고, 오랜 연습을 통해 동료들이 공을 어디로 패스할 것인지 알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위대함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미래 경영에 성공하는 것이다. 예지력은 현재나 미래를 마치 지나간 과거처럼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래를 잘 볼 수 있는 자는 과거를 잘 아는 자다. 선견지명에 이르는 신비의 원천은 신의 선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근면과 노력이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다. 예지력이 뛰어난 인물들은 현재를 이해하기 전에 과거를 연구했고,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사건들의 본질을 파악했다. 그들은 현재를 바꿀 방법을 강구하기 전에 그들이 처한 현재 상황과 여기까지 이른 경로를 면밀히 탐구했다. 예지력의 정체는 쉽게 보이지 않는 패턴과 동기, 그럴 수밖에 없는 필요성, 기회와 전조가 되는 사건과 행동을 파악하기 위한 힘겨운 탐구의 결과다.
 
예지력은 부지런한 탐구의 결과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 영국의 해군 장관이었던 처칠은 독일의 대양함대를 누를 수 있는 새로운 드레드노트 함대를 건설하고, 종전 12인치 대포 대신에 15인치 대포로 무장하도록 했다. 그는 넬슨 제독 이후로 가장 걸출한 해군 원수인 존 아바스넛 피셔로 하여금 새로운 함대 설계와 건조를 감독하게 했다. 그러나 이 멋진 함대의 건설도 어려움을 극복해내야 했다. 함포의 총통 무게가 무거워지자 배가 커져야 했고 이로 인해 배의 속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처칠은 함대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대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석유는 석탄보다 가연성과 효율성이 좋았다. 속도를 훨씬 더 빨리 올릴 수 있었다. 석탄을 치우면 더 많은 공간을 공격적인 용도로 개조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승무원을 지치게 만드는 노동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영국은 산유국이 아니었다.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이 문제였다. 가연성이 높은 석유 저장 창고에 적이 포탄 공격을 해올 때의 위험도 지적됐다. 무엇보다 석유를 쓰려면 영국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했다. 이는 매우 위험해 보이는 모험이기도 했다. 실제로 1914년에 처칠이 영국 정부에 제출한 예산안은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해군 예산안이었을 것이다. 그는 피셔와 함께 영국 정부를 압박했고 다행히 함선의 동력 원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대체할 수 있는 예산을 따냈다. 1914년, 4년간 계속된 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한 달 전 처칠은 영국-페르시아석유회사 지분 51%를 확보해 안정적으로 석유를 군함에 공급할 수 있었다. 이 대담한 결정으로 영국 해군은 전략적 우위를 차지했다. 처칠은 이때 아직 30대의 젊은 나이였다. 그는 1차 세계 대전의 영웅이 되었고, 영광의 자리에서 실각했다가 다시 2차 세계 대전의 영웅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그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우선 당시 영국해군과 이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정력적으로 몰두했다. 처칠은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독일이 킬 운하를 넓히고 함선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독일의 발트 함대들이 이 운하를 통해 덴마크를 빙 돌지 않고 북해로 직접 진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독일 함대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영국의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처칠은 ‘독일 전함의 80%가 완전히 전시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해군 장관이 된 첫날, 그는 책상 뒤 벽에 커다란 북해 지도를 걸어두었다. 당직 장교가 매일 독일 해군의 주요 함선 위치를 작은 깃발로 표시해 두었다. 그는 해군 장관 전용선인 ‘마녀(Enchantress)’라는 요트를 타고 모든 해군 기지와 조선소를 돌며 해군 전술과 능력에 대한 세부 사항을 끊임없이 배웠다. 마침내 그는 ‘원하는 모든 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마녀는 그 후 4년간 처칠의 집무실이자 집이 되었다. 그는 어떤 주장을 펼칠 때 항상 충분한 근거와 정보를 갖고 있었다. 그는 이 부분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부지런했고 정력적이었다. 처칠의 예지력은 바로 현장을 철저히 관찰하는 부지런함과 연역적 추론에서 나왔다.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지금 상황을 분명히 이해하게 만들고, 무엇이 결정적인 요소인지 알게 했기 때문에 그는 다수 의견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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