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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몰아주기와 고성과자 이탈

문권모 | 42호 (2009년 10월 Issue 1)
한 여행자가 말과 당나귀에 짐을 싣고 길을 떠났습니다. 한참을 가다 기진맥진한 말은 당나귀에게 부탁했습니다. “지금 너무 힘이 드니 조금만 도와줘.” 게으른 당나귀는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지친 말은 얼마 못 가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말의 짐은 물론, 죽은 말의 털가죽까지 당나귀의 등에 실었습니다. 당나귀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큰 고생을 했습니다.
 
유명한 이솝 우화의 한 대목입니다. 말과 당나귀의 ‘배역’이 바뀐 이야기도 있습니다. 공식적인 교훈은 ‘서로 함께 도우며 살아야 한다’입니다. 물론 옳은 말이지요.
 
저는 여기서 시각을 조금 바꿔보고자 합니다. 기업 경영이란 ‘렌즈’를 이용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재미있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원래 이야기에서는 당나귀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보지만, 새로운 시각에서는 여행자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됩니다. 경영자(관리자)가 일의 양을 적절히 배분해줬다면 말이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게다가 말이 죽어 생긴 손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로, 만족도와 몰입도에 악영향
많은 경영자와 관리자들이 일 잘하는 사람에게 업무를 몰아줍니다. 그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의 물리적 여유나 ‘임계치’를 생각하는 않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임계치를 넘겨 일하는 사람은 ‘업무 탈진(burout) 현상’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고성과자의 이직률을 높이는 요인입니다.
 
왓슨와이어트의 ‘아시아 직원 몰입도 조사(Work Asia)’에 따르면, 한국 기업 고성과자의 이직 원인 중 가장 빈도가 높은 게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입니다. 쌓이는 일을 감당하지 못해 회사를 떠나는 것이지요. 제 주변에도 과로 때문에 직장을 옮기거나, 사표를 내고 박사 과정에 등록하거나, 휴직을 신청한 사람들이 여러 명 있습니다. ‘통근 거리’가 고성과자의 중요한 이직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을 몰아주는 것은 육체적·정신적 피로 외에도 ‘만족감과 몰입도’란 측면에서 악영향을 미칩니다. 고성과자들은 보통 직원들보다 일 자체에서 더 큰 보람을 찾으며, 일에 대한 몰입도도 높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폭주하는 업무 때문에 ‘일하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더 좋은 업무 환경을 찾아 떠납니다.
 
일본 기업들이 맥을 못 춘 이유
기업의 경영자와 관리자들은 고성과자의 업무 탈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첫 번째 해결책은 특정 인물에게 업무가 몰리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입니다. 이번 호에 소개한 모바일 솔루션 업체 유라클은 역량이 뛰어난 인재에게 업무를 너무 몰아주거나, 역량이 떨어진다고 일을 덜 주지 않도록 구조적으로 배려하고 있습니다. 대신 교육 훈련을 강화해 모든 직원의 역량을 높이려 노력한다는군요.
 
고성과자 자신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줄 수도 있습니다. 업무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은 보통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고, 맡은 일을 무조건 성공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다 지치면 본인은 물론 회사에도 피해가 가지요.
 
한광모 왓슨와이어트 상무님은 “회사가 업무 부담과 개인의 피로도를 측정할 수 있는 진단 장치를 제공하고, 결과를 본 당사자 스스로가 상사를 찾아가 조정을 요청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카운슬링 서비스를 제공해도 좋다고 합니다.
 
최근 몇 년간 일본 기업들이 맥을 못 춘 게 직원들의 업무 탈진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장기 불황을 겪으며 회사가 직원들을 몰아붙이니 조직 전체의 피로도가 높아졌고, 사람에 대한 투자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업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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