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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는 습관 버리고 절제된 삶으로!

정재승 | 28호 (2009년 3월 Issue 1)
미국 사람들은 저축을 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큰 집을 사고 자동차를 할부로 구입하는 것은 기본이다. 신용카드로 온갖 가전제품을 일단 들여놓은 뒤 평생 그 빚을 갚아가며 산다. 1970년대 미국 사람들의 저축률은 10%가 넘었지만 1994년 무렵에는 5%대로 반토막이 났으며, 2006년 들어서는 마이너스 1%가 되었다. 유럽 사람들의 저축률은 평균 20%, 일본 사람들은 25%, 중국 사람들은 무려 50%에 이른다는 걸 감안하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갑자기 일어난 비극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미국발 경기 침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신용카드 사용 증가’와 ‘자기 절제력을 잃은 소비문화’가 한 몫 했음을 알 수 있다. 평범한 미국 가정이 가지고 있는 신용카드 수는 평균 6개이다. 2005년 한 해 동안 미국인이 받은 신용카드 개설 안내 편지는 무려 60억 통에 이르며 평균 가계 부채도 9000달러(약 1300만 원)가 넘는다.
 
미국 사람들도 매년 얼마 이상 저축을 하겠다고 다짐했겠지만 결국 여름휴가를 해외로 가거나 각종 제품에 대한 구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저축할 돈을 다 썼을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신용카드로 미리 당겨 계산했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뻗어 있는 쇼윈도와 날마다 쌓여가는 신상품, 온갖 세일로 고객을 유혹하는 월마트와 메이시스 백화점의 유혹을 의연하게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랴!
 
삶에서 자기 절제가 필요한 부분은 저축만이 아니다. 우리는 매년 1월이 되면 담배를 끊겠다고 다짐하지만 한 달을 넘기기가 어렵다. 또 규칙적인 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하지만 3일을 넘기지 못한다. 정해진 기간에 건강 검진을 받겠다고 계획을 세우지만 친구들과의 술 약속으로 번번이 미룬다. 책상에는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잔뜩 쌓여 있지만 하기 싫어 미뤄둔 상태로 ‘골동품’이 된 지 오래다.
 
이처럼 중요한 일을 번번이 미루며 뭉그적거리는 행동을 심리학자들은 ‘미루는 버릇’(procrastination)이라고 부른다. 최근 자기 절제가 부족한 현대인들에게 미루는 버릇이 ‘심각한 사회적 장애’를 초래함에 따라 심리학계에서는 이를 중요한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마인드’ 2008년 12월호에 따르면 중요한 일을 미루는 버릇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요한 일을 질질 끌어본 경험이 한두 번 이상 있으며, 일상적으로 매사를 지연해서 낭패를 보거나 사회 활동에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무려 1520%에 이른다.
 
이렇게 미루는 버릇이 일상화된 사람들은 저축을 못해 빚에 시달리거나 운동 부족과 다이어트 실패를 겪고, 규칙적인 검진을 하지 않아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 2006년 캐나다 윈저대 심리학자 퓨시아 시로이스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약 40%의 사람들이 미루는 버릇으로 인해 재정적 손실을 봤으며,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다. 이들은 또 제때 일을 처리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소한 감기 따위에도 취약했다. 특히 이들은 정기적인 건강 검진을 제대로 받지 않아 심각한 질환이 생길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생활에서 업무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해 인간관계나 출세에 지장이 있었던 사례도 많았다.
 
미루는 버릇이 생기는 이유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눈 앞의 만족을 얻기 위해 장기적으로 유익한 행동을 자꾸 미루는 것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심리적 이유가 있었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잘 처리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강했으며, 이로 인해 마음이 편치 못해 일 자체를 회피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었다. 순발력 있게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처리하다가 때를 놓치는 경우도 포함됐다.
 
미루는 버릇은 ‘마감 증후군’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마감(deadline)이 있으면 그에 임박해 시간에 쫓기면서 일을 처리할 때 아주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며, 때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결국 이것이 습관화된다. 그러나 이런 게 장기적인 습관이 되면 결국 제때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마감을 넘기고 자꾸 미루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필자도 이 원고를 마감을 넘기면서 작업하고 있다!)
 

미루는 습관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캐나다 캘거리대 심리학자 피어스 스틸 교수는 ‘미루는 버릇’에 관한 연구 논문 500여 편을 분석해 특정 상황에서 미루는 행동을 할 가능성을 예측하는 수학 공식을 만들기도 했다. 2007년 심리학 회보(Psychological Bulletin)에 실린 논문에서 스틸 교수는 인간의 미루기 행동이 성격과 환경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며, 그것의 영향이 ‘방정식의 형태’로 기술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성격과 환경에 의해 미루는 버릇이 형성되는 게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미루는 버릇을 줄이고 자기 절제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댄 애리얼리 교수는 자신의 책 ‘Predictably Irrational’(2008)에서 흥미로운 실험과 함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리포트 제출을 요구하면서
교수가 정한 마감 시간에 제출하도록 할 때 학기 중에 아무 때나 제출하도록 할 때 제출 기한을 스스로 정해 그 날짜에 맞춰 내도록 할 때 가운데 어떤 사례가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는지 알아보았다.
 
흥미롭게도 교수가 ‘마감을 정해 주었을 때’ ‘그것을 엄격히 적용했을 때’ 학생들의 성적이 가장 좋았다. 마감 시한을 넘겨 제출해 감점을 당하는 수도 가장 적었고, 리포트의 질도 우수했다. 특별한 제출 기한 없이 학기 중에 아무 때나 제출하도록 했을 때 학생들의 성적이 가장 형편없었다.
 
이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들이 미루는 버릇이 있으며 자꾸 미룰 경우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2030%의 학생들은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자기 절제를 하지 못했고, 결국 리포트를 내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다. 따라서 스스로 마감 날짜를 정하되 권위 있는 방식으로(또는 벌금 같은 것을 부여함으로써) 정해진 일정대로 행동하도록 통제하는 것이 절제된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외부의 목소리’가 명령을 내릴 때 사람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더라는 것이다.
 
현실적 목표 세워야
스틸 교수에 따르면 미루는 버릇을 지닌 사람의 95%는 자신의 이런 버릇을 매우 싫어하며 고치고 싶어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루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그가 내세운 처방전은 애리얼리 교수의 제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아내나 직장 상사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하고 정해진 시간 내에 일을 처리하겠다고 약속한다. 이때 계획은 반드시 실현 가능한 ‘현실적인 목표’여야 한다. 또 계획은 매우 구체적이어야 하며 시간을 세분화해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에는 스스로에게 보상을 해줘야 하며, 약속을 어겼을 때에는 벌칙이나 벌금도 내게 하면 좀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스트레스나 피로 등으로 인해 미루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필수 조건이다.

직장 내에서 일처리를 미루기 일쑤인 직원들에게 이런 처방전을 교육해 본다면 기업 내 업무 효율이 크게 올라가지 않을까?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미루기 습관을 고쳐주고, 절제된 삶을 도와주는 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자.
  • 정재승 정재승 |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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