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것에 베팅하라안유석 지음
처음북스 · 2만6000원
2026년 현재, 미국의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AI 인프라 확장에 쏟아붓는 돈이 7250억 달러(약 1070조 원)를 돌파했다. 구글, 아마존, MS, 메타 4개 기업의 한 해 AI 설비투자가 한국 정부의 연간 AI 예산(10조1000억 원)의 100배를 웃돈다. 같은 시기 중국의 딥시크를 필두로 한 오픈웨이트(가중치만 공개하는 제한적 오픈소스) 진영은 모델 이용 가격을 100만 토큰당 0.14달러까지 떨어뜨리며 기술의 가치를 하향 평준화시켰다. 강 건너 불구경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기업이 막대한 돈을 들여 만든 AI 기술도 돈 안 되는 상품으로 순식간에 전락할 수 있다. 공들여 개발한 기술이 거인들의 업데이트 한 번 혹은 오픈웨이트 진영의 가격 파괴 한 번에 무력화되는 환경에서 IT 기업의 영속성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사실 이러한 도태는 비즈니스의 역사에서 반복된 흐름이다. 1990년대 PC 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을 누렸지만 2000년대 들어 컴팩, 게이트웨이, IBM 등 기존의 주요 기업은 마진 폭락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후발 주자들이 같은 부품으로 비슷한 성능의 PC를 더 싸게 조립해 팔기 시작하면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표준 부품처럼 변한 것이다.
책은 시대적 혼돈 속에서도 견고한 입지를 지켜내는 기업의 패턴을 추적한다. 인플렉션 AI는 한때 인간 친화적인 AI 모델로 주목받았지만 고객들이 더 뛰어난 모델을 개발한 경쟁사로 거리낌없이 이동하며 현재는 MS, 구글에 흡수됐다. 반면 팔란티어의 ‘온톨로지’ 아키텍처는 기업의 데이터와 업무 흐름 자체를 팔란티어 시스템 안에 통째로 옮겨 심는다. 한번 도입한 기업은 시스템을 걷어내는 순간 업무 전체가 멈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결과 기존 고객이 매년 평균 50%씩 더 많은 돈을 팔란티어에 쓰고 있다. 엔비디아의 ‘쿠다(CUDA)’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600만 명의 개발자가 이미 쿠다 언어로 코드를 짜 놓았기 때문에 다른 회사 칩으로 바꾸려면 코드를 전부 새로 짜야 한다. 이 막대한 전환비용이 5조 달러가 넘는 시가총액을 떠받치는 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