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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디자인

지금 나의 선택, ‘자유의지’였을까?

윤재영 | 387호 (2024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우리는 플랫폼이 선보인 서비스를 온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통제의 환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서비스가 제공한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용자가 불쾌감이 들어 서비스에서 이탈하려 해도 플랫폼이 이에 관한 사용자 경험을 복잡하고 까다롭게 설정해 쉽지 않다. 플랫폼이 사용자의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설계자는 우리를 위해 세상을 창조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며 산다. 그리고 선택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기에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어느 날, 누군가 당신에게 다가와 귀띔해준다. “지금껏 당신의 자유의지로 모든 걸 선택해 왔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 선택들은 설계자에 의해 예정된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당신은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내가 그동안 고민하고 선택해온 것들이 누군가가 예정해 놓은 것이었다니!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이 글, 오늘 들었던 노래, 어젯밤에 봤던 영화, 이번 주에 놀러 갔던 곳, 그리고 지금까지 했던 수많은 선택. 정말 당신의 의지로 온전히 선택한 걸까?1 혹시나 영화 ‘트루먼쇼’에서처럼 철저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게 일어나는 일들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트루먼은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에 살고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출근길, 티 없이 맑은 하늘로부터 괴물체가 떨어졌다. 놀란 트루먼이 다가가 살펴보니 ‘큰개자리 시리우스 별’이라고 적혀 있는 거대한 조명 기기였다. 트루먼은 하늘을 쳐다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잠시 후 자동차 라디오에서 “이 지역 상공을 날던 비행기에서 부품이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트루먼은 의심을 거두었다.

트루먼의 일상을 몰래 관찰하는 TV쇼의 돔 세트장에서 조명 기기 추락사고가 났다. 모든 것이 ‘쇼’였다는 사실을 트루먼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설계자는 신속히 가짜 뉴스로 사고를 무마했다. 이후에도 비 내리는 장치가 오작동되고, 쇼 제작진이 나누는 대화가 트루먼의 라디오에 잘못 잡히는 등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이어진다. 트루먼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지만 그 실체를 좀처럼 파악하기 힘들다.

트루먼이 진실을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이유는 그가 갖고 있는 정보의 양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설계자는 트루먼이 태어날 때부터 지켜봐 왔고, 그의 모든 생활 패턴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설계자는 이 쇼의 전체 틀을 창조한 사람이고, 모든 것이 그의 지시에 의해 돌아간다. 하지만 트루먼은 설계자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 왜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모든 게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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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SNS 피드에는 뉴스, 영상, 광고, 이름 모를 타인의 글 등 하루에도 수많은 콘텐츠가 올라온다. 막연히 우리에게 맞춰진 추천 콘텐츠라는 것만 추측할 뿐 그게 어떤 근거로, 왜 자신에게 보이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서비스는 우리의 이름과 나이, 성별, 사는 곳, 취향과 성격 등 우리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우리는 서비스의 알고리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설계자와 사용자 간 생기는 정보의 격차, 즉 ‘정보의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은 힘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많은 것이 정보를 많이 가진 쪽에 유리하게 작용되고 적게 가진 쪽에는 불리하게 작용되는 ‘불균형을 이루는 힘’이다. 그래서 피드에 비합리적이거나 불쾌한 정보가 포함돼 있더라도 우리에겐 알고리즘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결국 트루먼처럼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내 선택은 자유의지에서 비롯된 것일까

트루먼은 아침에 이웃들과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출근길에 가판대를 들러 신문을 산다. 직장에서는 상사 몰래 여행 계획을 세우는 등 딴짓을 하기도 하고, 퇴근 후에는 친구와 맥주를 마시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주말에는 정원 잔디를 깎는 등 밀린 집안일을 하고, 밤에는 가끔 아내 몰래 옛사랑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기도 한다.

트루먼의 삶은 평범하면서도 자유로운 일상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밖에서 지켜보는 우리는 안다. 그의 삶이 평범하지도, 마냥 자유롭지도 않다는 것을. 그는 거대한 영화 세트장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통제된 삶을 살고 있다. 친절해 보이는 트루먼의 이웃들, 트루먼이 믿고 있던 아내와 친구, 심지어 어머니까지도 모두 이 쇼를 위해 섭외된 배우들이었다. 트루먼을 둘러싼 모든 상황과 환경은 설계자가 자신의 목적에 맞게 디자인하고 설계한 것이었다.

트루먼의 생각과 선택은 대부분 설계자가 짜 놓은 시나리오와 틀 안에 있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트루먼은 매 상황에서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통제하고 있다 믿었을 것이다. 바로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이다.2 통제의 환상은 사람들이 특정 상황을 자신 스스로 온전히 제어한다고 믿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슬롯머신 게임에서 자신이 레버를 어떻게 내리느냐가 결과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나 인형 뽑기 기계에서 인형을 뽑았을 때 자신이 조종을 잘했기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3 그래서 설계자 입장에서는 게임 플레이어에게 통제의 환상을 갖도록 설계하면 플레이어는 흥미와 자신감을 갖게 되고, 게임을 지속적으로 하게 만들 수 있다.4

많은 온라인 서비스에서도 ‘통제의 환상’이 활용되고 있다. 사용자는 피드를 보고, 광고를 보고, 검색을 해보고, 검색 결과를 클릭해서 상품을 확인하고, 문의를 하고 구매를 하게 된다. 사용자들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쇼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서비스의 추천 피드와 광고, 서비스가 내놓은 검색 결과들,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대화형 챗봇, 상품 리뷰 등에 의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비스 알고리즘이 은밀히 개입하는데 서비스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우선적으로 보여주고, 보여주기 싫은 것은 감추게 된다. 결국 사용자는 자신이 온전히 무언가를 선택했다고 믿지만 실상은 서비스가 제공한 선택지 중에서 선택한 것일 뿐 서비스가 설계한 큰 그림 안에서 결정한 셈이 된다.


어떻게 은밀히 통제당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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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은 자신의 삶에서 원인 모를 답답함을 느꼈고 결국 마을을 떠나기로 한다. 가능한 멀리 가기 위해 비행기 표를 사러 여행사에 갔지만 번개 맞는 비행기 포스터가 걸려 있어 트루먼은 섬뜩함을 느낀다.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해 시외버스를 탔지만 버스는 출발도 전에 갑자기 고장. 하는 수 없이 자동차를 타고 어디든 떠나보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차들 때문에 길이 막힌다. 또 멀쩡하던 도로에서 갑자기 화재가 발생하고, 방사능 유출 사고가 났다면서 경찰들이 도로를 통제하기도 한다.

트루먼이 마을을 떠나려고 할 때 겪었던 웃지 못할 상황들은 온라인 속 우리에게도 비슷하게 펼쳐진다. 서비스를 해지할 때 해지 경로를 어렵게 꼬아 놓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 해지 버튼을 배치하기도 한다. 버튼 문구를 헷갈리게 적어 놓기도 하고, 아예 버튼처럼 보이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 해지 안내가 나와 있는 페이지를 찾아내더라도 모바일이 아닌 PC에서 하라고 하거나, 평일 근무시간에 고객센터로 전화하라며 우리에게 좌절감을 안긴다.

해지 버튼을 겨우 찾아내 누르면 ‘정말 해지할 것인지’ 묻는 창업 창을 반복적으로 띄우거나 ‘지금 해지하면 다시 가입할 수 없다’라고 반쯤 협박하는 모습 역시 트루먼이 마을을 빠져나갈 때 겪었던 해프닝들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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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디자인 설계는 사용자가 로그아웃하는 경우, 광고나 약관 동의 설정을 바꾸는 경우, 회원 탈퇴를 하고 싶은 경우 등에도 활용된다. 서비스 입장에서는 사용자의 이런 행동이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사용자로 하여금 포기하게끔 만드는 전략들이다. 그리고 대놓고 어렵게 만들면 지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해지를 못하는 책임 소재가 서비스 측에 있는지, 아니면 사용자의 게으름이나 능력 부족 때문인지 애매하게 보이도록 정교하게 디자인한다.


교묘하고 치밀한 통제는 어떻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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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가 트루먼을 치밀하게 통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오랫동안 지켜봤기 때문이다. 트루먼이 생활하는 모든 곳에는 몰래카메라가 숨겨져 있었고, 화장실과 침실에서의 모습까지 촬영됐다. 트루먼이 거울을 보면서 말하는 혼잣말,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특정 상황에 나오는 행동 등이 상세하게 관찰됨으로써 트루먼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무서워하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영화 속 트루먼이 가여운 이유는 ‘트루먼 본인만 이 상황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촬영되고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도 동의한 적도 없는 상황에서 마치 동물원에서 태어난 동물처럼 트루먼은 그곳이 세상의 전부인 양 생각하며 살았다.

우리의 현 상황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핸드폰, AI 스피커, 스마트홈 기기들이 ‘비활성화’된 상태에서도 카메라, 마이크 및 각종 센서 등을 통해 우리 일상의 모습과 대화 내용, 각종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는 뉴스와 아티클들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5 " 2022년 컨슈머리포트(Consumer Reports)에서도 빅테크 기업들이 정확히 사용자의 어떤 정보를 수집하고,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면서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6 심지어 사용자 정보 수집을 ‘거부 설정’한 상태에서도 추적이 계속돼 개인정보보호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7 그리고 최근인 2023년 말까지 국내 기업에서도 고객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한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8

필자 역시 이 이슈와 관련한 경험을 수차례 한 적이 있다. 지난 한 해 연구년을 맞아 미국에 머물고 있는 동안 지인과 한국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가족에 대해 전화로 한두 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얼마 뒤 필자의 SNS 피드에 평소에 본적 없던 ‘치매’ 관련 광고가 연달아 떠서 경악했던 적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아내에게 ‘이발을 못해 머리가 너무 길어져서 제어가 안된다’ ‘나도 ADHD가 아닐까’ 등에 대한 푸념 섞인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며칠 뒤 필자의 피드에 [그림 1]과 같이 관련 콘텐츠가 뜨는 것을 경험했다.

마침 궁금했던 정보이니 반가워야 하는 걸까. 서비스의 취향 저격에 감탄해야 하는 걸까. 기막히게 추천해준 콘텐츠를 보면서 신기함과 더불어 섬뜩함과 불쾌감이 뒤섞인 기분이 든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정말 마이크와 카메라로 내 사적 정보가 수집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어떻게 수집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정도의 수집력이라면 사용자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목적과 상황에 맞게 콘텐츠를 띄워 사용자의 생각을 유도하고 제어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설계자는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 시청자가 설계자에게 ‘당신이 무슨 권리로 트루먼을 아기 때부터 데려다가 이렇게 구경거리로 만드냐’고 항의성 질문을 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트루먼이 사는 곳은 천국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곳은 지옥이죠. 나는 트루먼에게 특별한 삶의 기회를 줬습니다. 트루먼은 언제든 마음먹으면 떠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트루먼이 진실을 알고자 한다면 그걸 막지 못하지요. 하지만 트루먼은 시도하지 않았고, 자신이 있는 곳에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설계자는 트루먼이 사는 세계가 이상적인 세계라 주장한다. 두려울 것 없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낙원 같은 삶을 트루먼에게 선사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천 대의 카메라가 찍고 있는 상황이니 트루먼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누군가로부터 해를 입을 확률은 적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있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한다.

설계자는 트루먼을 대등한 존재가 아닌 도구화해서 바라본다.9 그의 눈에 트루먼은 상품성이 높은 대상이고, 그를 아끼지만 마치 우월적 존재가 피조물에게 하듯 대한다. 비슷하게도 온라인 서비스의 설계자 역시 사용자를 도구화해서 바라본다. 사용자의 데이터는 그들의 시스템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상품성 높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데이터를 무분별하게 수집하는 것에 대해 서비스 측은 ‘모든 게 사용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용자의 편의, 사용자의 경험, 사용자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표방하고 내세우지만 결국 트루먼쇼의 설계자 크리스토프가 했던 합리화와 정당화는 아닌지, 그리고 진정 우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와 합의가 수반돼야 한다.

무엇보다 트루먼의 행복에 대해서는 설계자가 아닌 트루먼의 입장에서 들어 봐야 한다. 그리고 트루먼이 설령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하더라도 설계자가 범한 윤리적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 될 것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거나 우선순위에 밀려 잠시 미루고 있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윤재영 | 홍익대 디자인학부 교수

    필자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에서 시각디자인 학사를, 카네기멜론대에서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석사와 컴퓨테이셔널디자인(Computational Design)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UX디자인 리서처로 근무했다. 주 연구 분야는 사용자 경험(UX), 인터랙션 디자인(HCI), 행동 변화를 위한 디자인 등이며 현재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사용자를 유인하고 현혹하는 UX디자인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디자인 트랩』이 있다.
    ryun@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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