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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품격

인간은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가?

김헌 | 364호 (2023년 03월 Issue 1)

편집자주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한 명강의로 대중들에게 서양 고전을 알리는 데 힘써 온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가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서양 고대의 역사와 문학, 철학을 넘나드는 글에서 인문학적 사유의 깊이를 한껏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Article at a Glance


인문학이란 이 세상에 무엇을 새겨 넣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학문이다. 인문학 중에서 역사(史)가 사실에 입각해 지금까지 인간이 이 세상에 무엇을 남겼는가를 밝힌다면 문학(文)은 사실을 넘어서 인간이라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더 나아가 철학(哲)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는 정신적인 가치인 지혜보다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욕망에 자신을 맡기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갈 것인가, 또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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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인문학이 무엇일까부터 단순하게 풀어보자. 이 말은 ‘인문(人文)’과 ‘학(學)’으로 나뉘고, ‘인문’은 다시 ‘인(人)’과 ‘문(文)’으로 나뉜다. 文은 ‘글월 문’인데 ‘글월’이란 ‘글자’, 그리고 글자들이 결합해 이뤄지는 ‘글과 문장’을 가리킨다. 그러면 인문은 ‘사람의 글자’ ‘사람의 문장’이란 뜻으로 풀이되는데 과연 무슨 뜻일까? 잘 잡히질 않는다.

文은 아주 옛날 중국의 갑골문에서는 팔을 벌린 사람의 가슴에 문신을 새겨 넣은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그러니까 文은 애초엔 ‘사람의 가슴에 문신을 새긴다’는 뜻이었다. 사람마다, 부족마다 취향과 약속에 따라 서로 다른 문신을 새겼기 때문에 위와 같이 다양한 모습으로 文의 원초적 형태가 남아 있다. 그러니까 文은 글자라는 뜻 이전에 ‘무늬’라는 뜻으로 통했던 것이다. 나중에는 이 둘의 의미를 구분하면서 文은 글자를 뜻하는 것으로 굳어졌고, 대신 무늬를 뜻하는 紋(문) 자가 새롭게 생겨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글자라는 것도 종이 위에 새기는 무늬와 다를 바 없으니 굳이 나눌 필요가 있었을까 싶긴 하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人文은 원래 ‘사람의 무늬’라는 뜻이었다. 위 글자들을 보면 ‘사람에게 새겨진 무늬’, 즉 ‘문신(文身)’을 뜻하는 것이었지만 사람의 몸에 문신을 새기는 이도 결국 사람이었을 테니 ‘사람이 (사람에게) 새겨 넣은 무늬’라는 뜻도 된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에게 새겨 넣은 무늬, 즉 문신만을 뜻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람이 사람의 몸이 아닌 다른 것에다 새겨 넣은 무늬도 모두 인문이 된다. 돌에 새겨 넣은 그림이나 글, 고운 비단 위에 수놓은 그림, 종이 위에 붓으로 멋지게 쓴 문장들도 모두 인문이다.

그렇다면 인문에 대비되는 것은 무엇일까? 『주역』의 ‘분괘(賁卦)’에는 이런 말이 있다. “천문(天文)을 살펴서 시간의 변화를 관찰하고, 인문(人文)을 살펴서 천하를 화성(化成)한다.” ‘인문’에 짝을 이루는 말이 ‘천문’이라는 데 주목해보자. 천문은 말 그대로 ‘하늘의 무늬’, 즉 ‘하늘에 새겨진 무늬’라는 뜻이다. 아침에 떠올라 한나절을 밝히다가 서쪽으로 저물어가는 태양이 하늘에 새겨진 가장 대표적인 무늬일 것이다. 천문으로서의 태양의 움직임을 잘 살펴보면 하루라는 시간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밤이 되면 두둥실 달이 떠오르는데 달은 밤하늘에 새겨진 무늬, 또 하나의 큰 천문이다. 달은 날카로운 손톱처럼 초승달이 떠올라 보름달이 될 때까지 차오르다가 점점 기울어가면서 그믐날에 아예 사라진다. 천문으로서의 달의 움직임과 모양새의 변화를 관찰하면 한 달이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다. 또한 반짝이며 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별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별자리들의 움직임을 헤아린다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는 곧 “천문을 살펴서 시간의 변화를 관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천문의 움직임을 탐구하는 학문이 ‘천문학’이고, 천문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을 ‘천문대’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인문을 살펴서 천하를 화성한다”는 말에서도 인문과 인문학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인문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사람의 무늬이다. 사람의 몸에 새겨진 문신에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사람들이 이 세상에 새겨놓은 다양한 인문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름 모를 수많은 풀이 무성한 땅이 있다. 그곳으로 한 농부가 소를 끌고 들어와 풀을 뽑아내고 땅을 간다. 드론이라도 띄워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다면 농부가 밭을 가는 모습은 땅에 선을 그리며 그림을 그려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즉, 자연 위에다 농부가 무늬를 새겨 넣는 것으로, 이는 농부의 인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넓은 황무지를 개척해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며 다른 마을로 통하는 길을 닦는 것도, 강이 범람하지 않도록 강물을 따라 둑을 쌓는 것도 모두 인간들이 땅에 새겨 넣는 무늬, 즉 인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인문이란 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 죽어갈 인간들이 생존과 행복을 위해 새겨 넣는 흔적의 총칭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어디 그뿐일까? 자기가 보고 느낀 것을 화폭에 그리는 행위는 화가의 인문일 테고, 삶의 경험과 깨달음을 글로 써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은 작가의 인문이다. 어떤 사람의 몸에 무늬를 새겨 넣는 것처럼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짓는 표정과 행동,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그 사람의 마음에 내가 새겨 넣는 인상 일체가 그 사람에게 새겨 넣는 나의 인문이다. 선생이 학생들에게 지식과 정보, 전통과 가치를 전달하는 교육의 행위는 한 공동체 내의 정체성과 역사를 이어 나갈 중요한 인문의 실천이다. 내가 지금 글을 써서 독자들이 읽고 마음에 새겨 넣는다면, 이 또한 글을 통해 내가 독자들에게 나의 인문을 새겨 넣는 일일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인문이니, 삶의 터 위에 함께 사는 사람들이 어떤 ‘인간의 무늬’, 즉 인문(人文)을 남기느냐가 한 나라, 한 민족의 문화(文化)와 문명(文明)의 실체와 수준을 결정할 것이다.

그런 인문을 살피고 탐구하는 것, 그래서 천하를 화성하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이다. 천하를 ‘화성(化成)’한다는 건 그야말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이 세상에 남겨 놓은 온갖 종류의 인문을 살피면서 ‘인간은 무엇이기에 이런 것들을 남겼을까’라며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것,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며 인간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타진하는 것, ‘그런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가’라고 물으며 인간의 도덕적ㆍ윤리적 당위성을 모색하는 것, 이것이 인문학이다. 마지막 질문에 이르면 ‘화성(化成)’은 더 높은 차원의 의미로 올라선다. 단순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덕을 구현하고 세상을 선하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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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헌kimcho@snu.ac.kr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필자는 서울대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 및 서양고전학 석사, 서양고전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에서 서양고전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 『천년의 수업』이 있으며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 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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