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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된 부부보다 2주 된 부부가 서로를 더 잘 아는 이유

200호 (2016년 5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파킨슨병은 온몸을 밧줄로 꽁꽁 묶어놓고 움직여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병에 걸린 후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 병 덕분에 많은 가르침도 얻게 됐다. ‘미시적인 세상(micro world)’에 눈을 뜨게 된 것이 가르침 중 하나다. 바쁠 때는 모든 것을 스쳐 보냈다. 하지만 병으로 천천히 걷는 시간이 많아지자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나뭇잎에 매달려 있는 물방울에마저 소우주가 담겨 있었다. 아프면서 깨달은 것 중 또 하나는 도움이 필요할 때는 당당히 도움을 요청하라는 점이다. 독립적인 사람일수록 당당하게 도와달라고 말한다. 멈추면 보이는 것이 많다.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이 바쁘고 지치는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필자는 직업상 주로 높은 사람을 만난다. 기회가 될 때마다 그들에게사는 게 행복한가라고 묻는다. 강의 때도 이 질문을 많이 한다. 반응들은 흥미롭다. “이런 질문을 한 적도, 받은 적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답변은 부정적이다. “최근 행복한 적이 없다” “행복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말을 한다. 그럼 필자는그럼 언제쯤 행복해질 것인지묻는다.

 

아마 이들은 영원히 행복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행복이 이미 와 있지만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30년 동안 의사생활을 했고 시부모를 모시고 두 아이를 키우며 열심히 살았다. 15년 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지만 계속 일을 하다 작년 초 갑자기 병이 악화돼 병원문을 닫았다. 그 와중에도 책을 다섯 권이나 썼다. 인생이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 저자가 쓴 책의 제목은 의외로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도대체 뭐가 그리 재미있는 것일까?

 

병이 가르쳐준 지혜

 

파킨슨병은 온몸을 밧줄로 꽁꽁 묶어놓고 움직여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걸음을 걷기 위해 옷이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고생을 한다. 보통 이 병에 걸리면 15년 후 사망하거나 심각한 장애가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치매와 우울증, 사고력 저하 등을 동반하는데, 아직까지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그저 병의 진행을 더디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불치병이다. 그런데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는 애마를 타고 장애물 넘기를 하다 떨어져 목뼈를 다쳤다. 목숨은 건졌지만 사지 마비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하지만 신체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휠체어에 앉아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삶을 헤쳐나가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며 아직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아는 겁니다. 내 경우엔 운 좋게도 뇌를 다치지 않아서 여전히 머리를 쓸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파킨슨병이 걸리자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 했다. 병을 알았을 때 모든 걸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원망을 많이 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가진 게 참 많았다. 병으로 잃은 것도 많지만 여전히 할 수 있는 것도 많았다. 27년간 감옥생활을 했던 넬슨 만델라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감옥에 다녀온 뒤로는 원할 때 산책할 수 있는 일, 가게에 가는 일, 신문을 사는 일, 말하거나 침묵할 수 있는 일 등 어떤 작은 일도 고맙게 생각했다.” 예전엔 감사할 게 이렇게 많은 줄 생각하지 못했다.

 

파킨슨병이 가르쳐준 것이 있다. 첫째, 단점을 애써 고치려 하지 말고 그냥 장점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병에 걸린 후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가 된 기분이었다. 내 몸이 집이고 내 머리가 이걸 끌고 가는데 명령을 내려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집을 끌고 다니는 게 참 힘들다. 오른쪽 다리가 먼저 약해지자 튼튼한 왼쪽 다리에 힘을 주면 오른쪽 다리가 쫓아왔다. 반대로 약한 쪽에 집중을 하면 절대 움직일 수 없다. 단점을 그냥 두고 장점에 힘을 쓰는 것이 좋다. 둘째, ‘미시적인 세상(micro world)’을 발견했다. 바쁠 때는 모든 것을 스쳐 보냈다. 병으로 천천히 걷거나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나뭇잎에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보니 소우주가 담겨 있었고 참 아름다웠다. 고통스런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는데 해 뜨기 직전 하늘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밥을 줄 때 조그만 입을 오물거리는 금붕어의 모습도 그렇게 예쁘다. ‘어쩌면 세상에서 진실로 두려운 것은 눈이 있어도 아름다운 것을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못하고, 마음이 있어도 참된 것을 이해하고 감동하지 못하며 가슴의 열정을 불사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

 

셋째, 겸손을 배웠다. 저자는 요즘 편안해 보이고 표정도 부드러워졌다는 얘길 듣는다고 한다. 비결을 묻는 말에 웃으며제 병이 제 스승이지요라고 답한다. 병을 앓으면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고, 세상 일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힘이 조금은 커진다. 예전엔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잘난 줄 알고 살았지만 이제는 한계를 알기에 겸손할 수밖에 없다.

 

넷째, 유머의 힘이다. 사람들이 병에 대해 알면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럴 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요, 예전엔 가진 거라곤 돈하고 미모밖에 없었거든요. 근데 나이가 드니까 병하고 빚밖에 안 남았어요.” 그럼 사람들이 편하게 웃는다. 음식값을 계산할 때도 그렇다. “제가 다리가 불편하니까 제일 좋은 점이 뭔지 아세요? 음식 값을 안 내요. 제가 계산대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이미 다 계산한 뒤더라고요. 그런데 오늘은 제가 살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유머를 던지면 기분이 좋아진다.

 

신세를 질 때는 과감하게 신세를 져야 한다. 저자는 발병 초기, 병을 치료하고 가족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제주도에 갔다. 그러다 병이 악화돼 6개월 만에 다시 집에 왔다. 아들과 딸이 무척 반겨줬다. 병도 호전되기 시작했다. 가끔 병 때문에 부정적인 결정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남은 가족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스스로 생을 정리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 죽은 사람은 상관 없지만 남은 가족은 평생 그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고 남은 가족을 배려하지 않은 채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을 한 그를 두고두고 원망할 것이다. , 가족을 위한다는 결정이 가족들에게 무기력감과 죄책감, 분노와 같은 무거운 짐을 남기게 될 것이다. 가족을 편하게 해주겠다는 마음이 사실은 혼자서 고통을 피하려는 이기적인 선택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유쾌한 짐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런 태도가 좋다. 신세를 질 때는 져야 한다. 다른 기회에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 되는 것이다.

 

 

 

 

당당하게 도움을 청하라

 

누구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독립적인 사람은 당당하게 도움을 청한다. 도움을 청하면 사람들은 기꺼이 도움을 준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그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싶어 하고 공유하고 싶어 한다. 혼자 여행을 가서 아름답게 지는 해를 본 적이 있다. 가슴이 벅차, 참 좋다. 그치라고 말했는데 답해주는 사람이 없다. 그 순간 혼자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 자신이 한 말에 동의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너무 외롭고 쓸쓸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답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경험과 느낌은 내 기억 속에서 색이 바래져 가기 쉽다. 다른 사람과 공유한 기억은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된다.

 

 

삶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버텨야 한다. 버티는 것이 답이다. 첫 직장에서 인정받기까지의 날들을 버텨내고, 결혼을 깨버리고 싶은 날들을 버텨내고, 마흔이 넘어서는 병으로부터 버텨내고 있었다. 버티지 않고 어느 순간 포기해 버렸다면 삶이 쉬웠을지는 모르지만 많이 후회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다. 회사에 갈 때 즐겁고 재미있으면 입장료를 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입장료 대신 월급을 받는다. 그 대가로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 일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 일에 질질 끌려 다니는 피해자가 되고 만다. 회식자리에서 말도 안 되는 상사의 농담에 죽어도 못 웃어주겠다는 환자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까짓 웃어주면 어때요. 중요한 건 지금 당신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거예요. 상사 때문에 화를 내고, 상사를 볼 때마다 불편해 하고, 그에 맞춰주는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데 에너지를 써버리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나요? 그게 정말로 당신이 원하는 삶인가요?”

 

하고 싶은 말은 꼭 하라

 

결혼 후 30년이 지나서 비로소 깨달은 것이 있다. 부부관계를 포함한 모든 대인관계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해야 상대가 안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상대가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부부도 그렇다. 결혼한 지 2주 된 부부, 두 달 된 부부, 20년 된 부부 중 서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커플이 누굴까? 바로 2주 된 부부였다. 왜냐하면 이들은 끊임없이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며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하고, 얘기를 들어주기 때문이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 것이란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사랑해도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러니 자꾸 상대에게 말해줘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쌓아두는 대신 밖으로 꺼내야 한다. 어제와 다른 나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요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가장들이 많다. 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다.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첫째,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다. 실직을 당한 것은 무능한 것도, 모자라서도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세상 일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디서든 의외의 일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단지 그뿐이다.

 

둘째, 실직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마라. 얼마 전 서울 서초동에서 한 가장이 아내와 딸 둘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실직 사실을 1년 가까이 숨기고 아파트를 담보로 5억 원을 대출받아 생활비를 주면서 자신은 고시원으로 출퇴근을 했다. 저자는 실직 사실을 숨기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거꾸로 아버지가 당신에게 해고당한 사실을 숨기고 혼자 어떻게든 버텨보겠다고 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당신은 아무 것도 모르니까 평소처럼 아버지에게 용돈 더 달라고 떼쓰고, 유학 안 보내준다고 하소연하겠죠. 그게 과연 당신이 바라는 걸까요?” 가족은 슬픔과 기쁨을 같이 나누는 사람들이다. 당신이 곤란한 지경에 빠졌는데 그걸 숨기면 가족들은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셋째, 힘들다고 동네방네 알려라. 힘든 건 자꾸 알려야 한다. 그래야 정보가 들어온다. 실직한 사실을 알려야 친구들도 구직활동을 할 것이다. 병이 생기면 병을 알려야 하는 것과 같다.

 

넷째, 과거는 잊어라. 서두르지 마라. 갑자기 어두컴컴한 곳에 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동공이 확대되면서 어렴풋이 사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인생도 그렇다. 위기를 맞이하면 한 템포 늦추고 위기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있다. 모든 일을 숙제처럼 했다는 사실이다. 의사, 엄마, 며느리, 딸이라는 의무와 책임감에 치여 그 모든 역할을 잘 해내려고 애썼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텨야 하나 한숨이 먼저 나왔다. 어느 순간 저자는 웃음을 잃어버렸다. “왜 나 혼자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나라는 피해의식에 잡혀 남편과 가족을 원망했다. 그때 바로 삶을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후회가 된다. 그 시절 가졌던 죄책감과 피해의식은 내 기쁨을 빼앗아가고,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었으며, 분노하게 만들었다. 힘들면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피곤하다는 생각 대신 삶을 즐길 아이디어를 내서 그걸 실천에 옮기면 된다. 마음만 먹으면 끝없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삶의 즐거움이다. 해야만 한다는 말 대신 하고 싶다는 말을 늘려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는 휴식이 필요하다. 소위멍 때리는시간도 필요하다. 저자는 말로만 쉬어야 한다고 하면서 몸을 혹사시켰다. 어떤 일이든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직장에서든, 집에서든 자신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신 없이 산다는 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증거라고 생각해 좋아하기까지 했다. 과거의 나처럼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을 볼 때면 왠지 안타깝다. 몸도 기계처럼 과하게 쓰면 고장이 난다. 1년 계획을 세울 때 휴가계획부터 세워야 한다. 밥을 먹은 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뇌도 쉴 시간이 필요하다.

 

상처받을 용기

 

세상에는 상처받았다는 사람들로 차고 넘친다. 도대체 그 많은 상처를 누가 준 것일까? 정말 그게 상처일까? 모든 것을 상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상처 받기 싫어서 어느 누구도 깊이 만나고 싶지 않다는데, 그럴수록 더 상처에 예민해진다. 상처 없는 삶이란 없다. 상처에 직면해 그것을 이겨내려고 애쓰면서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이다. 굳은 살이 박이면 소소한 아픔들은 그냥 넘길 수 있다. 살다보면 징검다리를 만나기도 하고, 가시덤불과 마주하기도 한다. 근데 그건 상처가 아니다. 누구나 겪는 삶의 한 과정이다. 상처에 예민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걸 피하려 한다. 상사에게 야단을 맞았다고 해보자. 업무상 실수에 대한 지적인데 그걸 상처라고 말한다. 그건 상처가 아니다. 사소한 일까지 다 상처라고 하면 우리 삶은 문제투성이다.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누가 나에게 어떤 위해를 가했다는 것이다. 상대를 가해자로 나를 피해자로 만들어버린다. 모든 걸 상처라고 하는 것도 사실 열등감의 일종이다. 열등감으로 힘들어 하는 환자에게 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인생은 흘러가게 돼 있어요.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고 스스로를 실패자로 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지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바라보는 시각 말고,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그것부터 결정하세요.”

 

저자는 가능한 충고를 하지 않으려 한다. 충고는 기본적으로너는 틀렸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틀렸더라도 막상 그것을 지적하면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할뿐더러 엇나가고 싶어 한다. 충고를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스스로도 충고 듣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내가 싫은 건 남도 싫은 법이다. 정신치료에서도 “No comment is better than any comment”란 말을 많이 한다.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그 어떤 말을 해주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건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저 내 말을 들어주길 바란 것이다. 하지만 듣는 작업은 힘들다. 참견이나 비판을 하지 않는 것도 힘들고 에너지가 많이 소요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배울 수 있다. 내성적인 편인 저자는 연극을 하면서 많은 걸 깨달았다. 첫 공연을 끝냈을 때의 희열은 최고였다고 한다. 사람들 앞에서 말 한마디 꺼내기 쉽지 않던 그는 수많은 관객 앞에서 연기를 해냈다는 사실에 성취감을 느끼게 됐다. 연극에 미쳐 있던 시절, 오히려 학교 성적도 함께 올랐단다. 난생 처음 뭔가에 미쳐본 경험이 다른 것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됐던 것이다. 하나에 미쳐보면 다른 일에도 미칠 수 있다. 배역에 몰입해 성취한 경험이 저자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해준 것이다. 자부심은 기대와 성공의 비율에 좌우된다. 성공의 경험이 쌓일수록 자부심 또한 강화된다. 자부심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 도전할수록 성공의 확률도 올라간다. 성공이 연쇄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알을 깨고 나가는 일은 즐겁고 신난다. 반대로 자꾸 실패하면 무기력해진다. 학습된 무기력이다. 작은 성공을 거두면 다음 도전이 쉬워진다. 힘든 직장생활도 배울 게 있다. 조직에서 일한다는 건 나 혼자 잘났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요즘 신입들은 자신을 레알 마드리드 소속 선수로 생각하기 이전에 호날두라고 생각한다. 적응이란 일방적으로 환경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환경도 변화시키면서 내가 점차 확장돼나가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적응을 동화와 조절로 설명한다. 동화는 자신의 틀에 환경을 맞추는 것이고 조절은 환경변화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다. 순응도 내 사고를 확장시키는 과정이다. 직장 생활은 알을 깨고 나가는 과정과 같다. 알을 깨고 나가는 건 원래 신나는 일이다. 갑갑하고 좁은 세계를 벗어나 날개를 확 펼치는 일이다.

 

직장에서 가족을 기대하지 말라

 

직장에서의 대인관계도 그렇다. 모든 사람을 다 좋아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 맘에 드는 사람하고만 일할 수 없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직장에서 가족 같은 관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가족과 같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도 아니다.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유지해 나가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투여된다. 친밀한 관계는 평생을 통틀어 가족과 소수의 친구만이 포함되는 게 정상이다. 모든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 하다보면 몸과 마음이 녹초가 돼버린다. 인간관계가 의무이자 책임이 돼버린다. 친해지는 것과 원만하게 지내는 것은 다른 얘기다. 친밀함은 관계에 따라 동심원을 그리듯 퍼져나가는 것이다. 소수의 친밀한 관계부터 서로 알고만 지내는 사이까지 동심원의 크기는 다양하다. 원만하게 지낸다는 것은 관계에 따른 동심원의 크기를 잘 알고 알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직장 선후배 사이의 동심원은 서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갈등도 원만하게 해결해나갈 수 있는 정보면 충분하다. 꼭 서로를 좋아할 필요는 없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아끼고 쓰다듬지 않고 멋대로 던지면, 그릇처럼 다 깨져버리니까. 꽃은 활짝 피고 나면 시들 일만 남게 되고, 달은 꽉 차게 되면 기울 날밖에 남지 않는다. 활짝 피기 전이나 꽉 차기 전에는 그래도 마음속에 기대와 동경이 있는 법이다. 친구나 가족의 관계도 이와 같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만 확 트인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두 사람이 친밀해지기 위해서는 상대가 나와 다른 사람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서로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자신을 열고 상대를 이해해나가는 것이다.

 

멈추면 보이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저자가 그렇다. 건강한 우리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저자는 보고 있다.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건강한 몸으로 움직일 수 있고,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kthan@assist.ac.kr

 

필자는 서울대 섬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크론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핀란드 헬싱키경제경영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대우자동차 이사, IBS컨설팅그룹 상무,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등을 지냈고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겸임 교수를 맡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