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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의 심리학

게임,하이퍼텍스트가 시대정신 ‘건강한 중독자’ 덕후가 21세기 인재다

고영건 | 199호 (2016년 4월 lssue 2)

 

Article at a Glance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말했듯너드(nerd)가 지배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서양에서의너드는 아시아에서는오타쿠’, 특히 한국에서는 변형된 용어로덕후. ‘오타쿠라는 일본어에는 부정적인 개념도 포함돼 있지만 한국의덕후는 현재 서구에서 긍정의 의미를 획득하게 된너드와 마찬가지로건강한 중독, 긍정적 중독을 가진 마니아 집단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21세기 비즈니스 시장에서 존경받는 기업, 성공하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면 인간의 삶에서의 영원한 핵심 테마이자덕후들의 취미활동 기저에 깔린()’공격성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이를 정신적으로 성숙한 형태로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긍정적이고 건강한 중독을 통해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소비자들이 대거 등장할 수 있다. 그들은 소비자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긍정적 중독이 사람들의 발상을 바꾸고 혁신을 만들어내며 건강한 중독에 빠진덕후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덕후 문화와 뇌의 보상체계 간 관계

 

일본에서 시작된오타쿠문화는 한국으로 넘어와덕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새로운 문화현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덕후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경과학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본고에서는 신경과학적 접근을 통해 덕후 문화를 고찰하고 경영자들에게 주는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덕후 문화의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는 특정 분야에 남다른 열정과 흥미를 갖고서 매진한다는 점이다. 덕후들은 특정 활동과 관련해서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강렬한 욕구(欲求)를 경험한다. 이것은 덕후의 활동에 뇌의 보상추구(reward seeking) 체계가 관여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과거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의 특정 행동을 강화시키는 보상 체계가 뇌의 쾌락중추 및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에 의해서 유발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전에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이 좋아하는 행동을 하면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그러한 활동을 계속 추구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신경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뇌의 보상체계는원함 체계(wanting system)’좋아함 체계(liking system)’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다시 말해서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조절하는 뇌 부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그림 1) 기본적으로 쾌락을 즐기는 행동에는중변연계의 오피오이드 체계(mesolimbic opioid system)’가 관여한다. 이 체계는 자극으로부터 쾌락을 즐기는 행동을 주로 관장한다. 오피오이드(opioid)는 엔도르핀(endorphin)이나 모르핀(morphine)과 같은 마약 제제를 총칭하는 용어다.

 

대조적으로, 어떤 대상을 간절히 원하는 보상추구 행동에는중변연계의 도파민 시스템(mesolimbic dopaminergic system)’이 관여한다. 이 체계는 일정한 보상을 얻기 위한 동기부여 행동을 관장한다. 이처럼 도파민 체계는 먹는 행동 자체 혹은 섹스 행동 자체보다는 음식을 찾아다니거나 섹스 파트너를 찾아다니는 행동과 관계돼 있다. 이때 대상을 찾아다닐 때처럼 도파민이 활성화된 상태에서는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한다. 단지 먹을 것과 섹스 파트너를 얻기 위한 강렬한 욕구만 체험하게 될 뿐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탐색한 결과, 실제 목표대상을 획득하고 나면 엔도르핀의 작용에 의해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쥐의 원함 체계(도파민 체계)를 차단하면, 주변에 음식이 있더라도 쥐는 먹지 않기 때문에 기아 상태가 된다. 이것은 중독과는 반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하에서도 쥐의 입에 음식을 넣어 주면 쥐는 음식을 즐기는 행동을 나타낸다. 좋아함 체계(오피오이드 체계)를 차단하면 쥐는 맛있는 음식을 덜 맛있는 것으로 느끼게 된다. 이렇게 할 경우 쥐는 좋아하는 음식을 봤을 때 전형적으로 나타내는 행동들, 즉 앞발이나 입술을 핥거나 혀를 날름거리는 것 등의 행동을 보이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적게 먹는다.

 

 

 

 

게임과 뇌의 보상체계 간 관계

 

기본적으로 게임과 같은 활동은중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게임을 하는 동안 중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뇌의 보상추구 체계가 관여하기 때문이다. 1997년 영국의 해머스미스(Hammersmith)병원에서는 역사적인배틀존(Battlezone)’ 게임 시합이 열렸다. 이 시합이 유명해진 것은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양전자 단층촬영(PET)이 함께 진행됐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인 실험을 위해 게임 참가자들은 누운 상태에서 스캐너로 들어간 다음 머리 쪽의 스크린을 보면서 손에 쥔 조이스틱으로 탱크를 조종해 게임 속 전장을 누볐다.

 

배틀존에서 게이머들은 적군의 탱크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적의 탱크를 박살내면서 깃발을 수집하게 된다. 이때 게이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난도가 높은 레벨로 올라가게 되는데 다음 레벨로 이동하게 될 때마다 상금으로 약 1만 원씩 지급받았다.

 

실험 결과, 게이머들이 적군의 탱크들은 박살내면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을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놀라운 점은 이때 분비되는 도파민의 양이 필로폰의 주성분인 암페타민(amphetamine)을 주사할 때만큼이나 많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게임과 중독행동 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실험 결과가 발표된 이후에 해머스미스병원의 연구진은 학계의 스타로 떠오르는 동시에 게임업체로는 수많은 고발과 소송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뇌의 주요 보상체계로 도파민 체계와 오피오이드 체계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을지라도 도파민 체계 자체는 마약제제 관련 오피오이드 체계와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동물들이 무언가를 간절히 찾아다닐 때 도파민 양을 측정하면 상당히 많은 양이 검출된다. 특히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보상받게 될 확률이 5050 수준일 때, 도파민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두뇌의 보상추구 시스템은 손익을 예측할 수 없을 때 가장 심하게 흥분하게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예측 가능한 보상보다는 예측 불가능한 보상에 더 강하게 끌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도박에 빠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단 찾던 대상을 발견한 후 소비하고 나면 동물들의 뇌는 도파민을 더 이상 분비하지 않는다. 따라서 도파민은 목표의 달성 그 자체보다는 그 과정에 더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실제 목표를 이뤘을 때보다도 그러한 성취에 대한 기대감을 더 크게 갖게 되는 것은 바로 도파민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해머스미스병원 연구진의 실험 결과는 덕후들이 특정한 행사 참여 권한을 얻기 위해, 혹은 한정판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미친 듯이뛰어다니는 행동을 잘 설명해준다. 또한 특정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는 데는 도파민 체계가 관여한다는 점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도파민 체계가 관여한다고 해서 해당 활동이 무조건적으로 정신병리의 하나인 중독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 중독과 부정적 중독

 

정신과 의사인 윌리암 글래서(William Glasser)는 중독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그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약물 중독 혹은 알코올 중독과 같은부정적 중독과는 달리 취미활동이나 운동에서 체험하게 되는긍정적 중독(positive addiction)’은 우리가 삶 속에서 도파민과 엔도르핀을 매개로 한 활동을 온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긍정적 중독의 대표적인 예로는 하루라도 조깅 또는 배드민턴 등의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게 되는 것을 들 수 있다. (‘긍정적 중독의 특징참조.)

 

 

 

 

긍정적 중독은 두 가지 형태로 우리가 행복감을 경험하도록 도울 수 있다. 첫째, 중독이 긍정적 효과를 낳는 측면이다. 긍정적 중독은 우리에게놀듯이 일하고 일하듯이 놀 줄 아는 몰입의 노하우를 선사해줄 수 있다. 발달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 이러한 특성은 만 3세부터 7세 무렵 사이에 터득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년기에 이러한 덕목을 터득하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 이후의 단계에서도 얼마든지 노력을 통해 습득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행복감을 경험하는 데 이처럼 놀듯이 일하고 또 일하듯이 놀 줄 아는 몰입의 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긍정적 중독 과정을 통해 생계 수단으로써의 일과 즐거움의 원천으로써의 여가활동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긍정적 중독이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길러준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긍정적 중독 상태에 있는 동안 세상의 모든 근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긍정적 중독 활동을 하는 순간에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사건이 머릿속에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건이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 상태로 만들어줄 수 있다. 긍정적 중독의 이러한 기능은 공상에 빠지거나 술에 취함으로써 문제 상황으로부터 일시적으로 회피하는 것과는 분명하게 구분된다. 이러한 일시적인 도피에서는 문제 상황에서 떠나 있다 하더라도 그 문제가 유령처럼 그 삶을 좇아다니게 된다. 시험기간 동안에 공부하기가 싫어서 TV를 보는 학생은 시청하는 동안 시험에 대한 불안감이 늘 머릿속을 맴돌기 때문에 집중하기 어렵다. 하지만 긍정적 중독은 스트레스가 주는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완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해준다.

 

비록 게임에 몰입하는 것과 같은 덕후 활동이, 해머스미스 병원의 실험 결과가 보여주듯이, 도파민 분비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지라도, 덕후 활동 자체가 부정적 중독의 위험성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덕후 활동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리는 수준으로 강박적이고 기계적인 형태로 변질될 때 비로소 부정적 중독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제 부정적 중독에 대해 알아보자. 심리학자 피터 밀너(Peter Milner)와 제임스 올즈(James Olds)는 수면과 각성주기를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뇌 망상계를 표적으로 한 상태에서 쥐의 뇌에 전극을 이식하는 수술을 한 다음 외부에서 전기 자극을 주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연히 이식된 전극이 표적을 벗어나중격(septum)’이란 부위에 닿게 됐고,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쾌락중추를 발견하게 됐다.

 

새로운 발견에 고무된 올즈와 밀너는 쥐들이 지렛대를 누르면 이식된 전극을 통해 똑같은 위치의 뇌 부위를 직접 자극할 수 있는 실험용 상자를 만들었다. (그림 2) 그러자 신경과학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 중 하나가 펼쳐지게 됐다. 쥐들이 자기 뇌를 자극하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지렛대를 눌러댄 것이다.

 

이때 실험용 쥐들이 스스로 자극했던 부위는 뇌의 쾌감중추인 동시에 보상회로였다. 쥐들이 실험에서 경험한 뇌의 활성화 정도는 자연 상태의 어떤 자극보다도 더 강한 수준이었다. 실제로 쥐들은 물과 먹이보다도 쾌감회로가 제공해주는 자극을 더 좋아했다. 심지어 수컷들은 발정기의 암컷을 곁에 두고도 지렛대를 눌러댔으며 암컷들은 갓 태어난 젖먹이 새끼를 내버려 두고서 연신 지렛대를 눌러댔다. 어떤 쥐는 다른 모든 활동을 제쳐두고 시간당 평균 2000번씩 하루 동안 무려 48000번이나 지렛대를 눌러댔다. 그 쥐들에게는 쾌감회로와 연결된 지렛대를 누르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쾌감을 주는 자극이 된 것이었다.

 

외견상 올즈와 밀너의 실험용 쥐들 중 하루 동안 무려 48000번이나 지렛대를 눌러댄 쥐의 경우 고통이 아니라 쾌감을 경험한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전형적으로 실험용 쥐들의 그러한 행동은 부정적 중독에 해당된다. 부정적 중독에서는 내성(tolerance)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내성은 이전과 같은 수준의 만족감을 경험하려면 더 높은 수준의 자극을 필요로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내성의 문제 때문에 부정적 중독자들은 비록 쾌감을 맛보고 싶어 하더라도 실제로는 언제나 고통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부정적 중독 현상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욕구 추구 과정에서 주체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이다. 중독 행동에 관한 한 실험에서 마약중독자들에게 모르핀과 식염수를 주사했다. 이때 마약중독자들에게 본인이 원하는 경우 원하는 만큼 주사를 맞을 수 있도록 했다. , 그들이 어떤 주사를 맞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주사를 맞은 후 기분이 어떤지를 보고하도록 했다. 그 결과 적당한 수준의 모르핀을 주사한 경우, 마약중독자들은 주사를 맞을 때 쾌감을 느낀다고 보고했으며 계속해서 주사 맞기를 원했다. 대조적으로 식염수를 주사 맞은 경우, 마약중독자들은 주사액이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했으며 더 이상 맞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모르핀을 극소량만 주사 맞은 경우, 마약중독자들은 비록 그 주사가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보고하면서도 주사를 계속 맞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실험조건은 마약중독자들이 전형적으로 보이는 양상을 잘 보여준다. 마약중독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처음에 마약이 제공해주었던 쾌락의 느낌을 재경험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약물을 계속 사용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지속된다. 마지막 실험조건에서도 모르핀이 마약중독자들의 원함 체계는 활성화시켰지만, 쾌감 체계는 활성화시키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부정적 중독 행동은 쾌감, 즉 즐거움을 동반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지속될 수 있으며 당사자는 자신이 왜 특정 대상에 집착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할 수 있다.

 

 

부정적 중독과 자극의 초정상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인류가 처음으로 출현한 것은 지금부터 약 5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화석이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그리고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 즉 지혜로운 사람으로 불리는 현대적인 인간이 나타난 것은 약 5만 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사실상 인간이 동물과는 구분되는 형태의 생활을 한 것은 신석기 시대에 해당되는 기원전 1만 년 무렵에 그림 문자를 통해 문명을 발전시키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인류의 역사를 24시간으로 환산해서 표현한다면 인간이 문명화된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불과 3분도 채 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뇌는 여전히 원시적(原始的) 특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본질적으로 동물의 뇌와 유사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일로 생각된다.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마음은 생존에 필요한 여러 가지 회로로 구성된 컴퓨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때 각각의 두뇌 회로들은 무의식적인 동시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동물학자인 니코 틴버켄(Niko Tinbergen)은 부정적 중독 현상의 심리적 기제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초정상자극(Supernormal Stimulus)’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제안했다.

 

초정상자극은 동물이 본능적 행동을 유발하는 자연계의 실제 유인자극보다 오히려 과장된 모조품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말한다. 니코 틴버겐은 자신의 알을 굴려서 둥지로 가져가는 습성이 있는 회색야생거위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거위 알의 색, 크기, 무늬를 과장해 모형 알들을 만들었다. 그러자 회색야생거위는 자신의 알들을 내버려 둔 채모형알을 구출하려 덤벼들었다. 니코 틴버겐에 따르면, 동물은 진화 과정에서 본능적으로 몇 가지 외부 자극 특성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도록 암호화돼 있으며 이러한 자연적 특성들을 인위적으로 과장할 경우, 동물들은 쉽게 속아 넘어가게 된다.

 

 

 

 

동물학자들은 진화 과정에서 암호화된 본능코드가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한다. 예를 들면, 수컷 칠면조의 성행동을 유발하는 결정적인 요인을 탐색하기 위해 처음에 동물학자들은 암컷 칠면조 모형으로 수컷을 자극한다. 수컷이 암컷 모형에 흥분 상태에서 올라타는 것을 확인하면 그 다음 단계에서는 성 반응을 유발하는 최소 자극을 찾기 위해 모형에서 꼬리, 날개, 발 등을 순차적으로 떼어낸다. 실험 결과, 수컷 칠면조는 암컷의 머리만 보고도 흥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컷 칠면조는 머리가 없는 암컷 몸통보다는 몸통 없이 머리만 달려 있는 막대를 더 좋아했다.

 

동물행동학의 연구 결과는 인간도 본능유발인자가 과장된 초정상자극에 의해 얼마든지 희생당할 수 있는 가련한 존재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컴퓨터 화면에 제시된 야한 사진만 봐도 성적인 흥분을 일으키는 것을 들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부정적 중독의 문제를 야기하는 모든 대상은 초정상자극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알코올, 마약, 담배, 포르노그래피, 비만을 야기하는 정크 푸드와 초콜릿 등이 그것이다. 물론 덕후들이 몰두하는 대상 모두가 초정상자극의 속성을 갖는 것은 아닐지라도, 과도하게 잔인하고 폭력적이거나 변태적인 형태의 성행동과 관련된 게임과 만화, 그리고 애니메이션에 집착하는 경우, 이러한 탐닉 활동은 부정적 중독에 해당되며 그때의 대상은 초정상자극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보가 주는 쾌감: 덕후 문화의 신경학적 기초

 

흔히 인터넷을정보의 바다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덕후들의 주사냥대상중 하나인 정보도 섹스나 마약처럼 두뇌의 쾌감회로를 자극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에단 브롬버그-마틴(Ethan Bromberg-Martin)과 동료들은 일련의 실험을 진행했다. 그들은 목마른 원숭이들에게 간단한 의사결정 과제를 훈련시켰다. 비디오 화면의 좌우 양측에 각각 표적이 나타나면 원숭이가 그중 하나를 선택해 두 눈을 깜박거리게 했다. 그러면 몇 초 뒤, 원숭이에게 다량의 물 또는 소량의 물이 보상으로 주어졌다. 이때 보상은 원숭이가 어떤 표적을 선택하든지 간에 관계없이 무작위로, 그리고 똑같은 빈도로 제공됐다. 이 실험에서의 핵심 사항은 만약 원숭이가 특정 표적을 선택하면 몇 초 후 그 다음에 나올 물의 양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정보가 화면에 제시되는 반면 만약 다른 표적을 선택하면 무의미한 기호가 무작위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의미 있는 정보를 보든지, 아니면 무의미한 기호를 보든지 관계없이 원숭이가 큰 물방울을 먹을 확률은 동일했다. 하지만 원숭이들은 10번의 시행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의 매번 의미 있는 정보를 주는 표적 자극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파민 회로 속 뉴런들에서 나온 측정기록을 봤을 때, 원숭이가 큰 물방울을 예고하는 기호를 보면 그 뉴런들의 점화율이 상승하고 반대로 작은 물방울을 예고하는 기호를 보면 점화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요한 대목은 여기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훈련을 마친 후 실시한 탐침 실험에서, 이 뉴런들은 의미 있는 정보를 예고하는 표적을 보기만 해도 활성화됐고 무의미한 표적을 볼 때는 약화됐다. 물이 주는 쾌감에 대한 기대치를 나타내주는 그 도파민 뉴런들은 실험이 끝나서 해당 정보가 더 이상 쓸모없어졌을 때조차도 여전히 정보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런 점에서 원숭이들은 정보 그 자체에서 쾌감을 얻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에단 브롬버그-마틴과 그의 동료들의 실험은 완전히 무가치한 정보조차도 뇌의 쾌감-보상회로를 가동시킬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신경과학자 리드 몬태규(Read Montague)는 추상적인 정보로부터 쾌감을 이끌어내는 인간의 이러한 능력을슈퍼파워(superpower)’라고 불렀다. 추상적인 관념을 통해 쾌감회로를 가동시키는 이 거대한 능력은 덕후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덕후 문화가 정보의 바다로 불리는 인터넷의 등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을 통해 덕후들이 추구하는 호기심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수수께끼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스터리다.

 

수수께끼에는 답이 존재한다. 낱말풀이 문제에서처럼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은 설사 자신이 정답을 모르고 있는 경우에도 문제에 정해진 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한 경우 답이 알려지고 나면 더 이상의 호기심은 작동하지 않게 된다.

 

대조적으로 미스터리에서는 모호한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분명하게 정답이 주어지기 어렵다. 미스터리에서는 어떤 정보가 중요하고, 어떤 정보가 중요하지 않은지, 그리고 주어진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은지 등을 고민하는 것이 중심과제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가장 아름다운 것은 미스터리다. 미스터리는 모든 진정한 과학과 예술의 원천이다라고 말했다. 당연히 덕후들은 수수께끼가 아니라 미스터리를 더 좋아한다. 사실상 덕후들은 미스터리들을 끊임없이 탐험하게 되는데 수수께끼와는 달리 미스터리에서는 호기심의 반감기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이퍼텍스트: 덕후 문화의 매체

 

기본적으로 인터넷에는 PC통신과는 달리 서비스 제공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호스트 컴퓨터도 없고 이를 관리하는 특별한 조직도 없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의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는탈중심화라고 할 수 있다.

 

웹에서는 하이퍼텍스트(hypertext)라는 형식으로 작성된 정보가 홈페이지(home page) 단위로 관리되며 링크(link) 정보에 의해 세계 전역의 하이퍼텍스트와 연결될 수 있다.1 이 하이퍼텍스트는 약 50년 전인 1965년에 테드 넬슨(Theodor H. Nelson)이 제작했다. 하이퍼텍스트 기술은 정보의 검색과 활용 면에서 혁명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테드 넬슨은 대화형 문장 시스템을 개발한 후 스스로 자신의 시스템이 미래의 매체가 될 것으로 확신했다.

 

하이퍼텍스트가 개발될 당시 미국 정부의 과학자들은 정보들이 알파벳이나 숫자를 바탕으로 한 색인목록에 따라 저장 및 배열될 경우 검색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다순이나 알파벳순보다 더 편리한 정보 검색 방식에 관해 고민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탄생하게 된 것이 바로 하이퍼텍스트이다.

 

하이퍼텍스트는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웹문서 형식(HTML)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웹사이트는 종이책과는 달리 마우스를 누르면 원하는 부분으로 다양하게 이동해 나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 사용자는 작가나 홈페이지 디자이너가 정해놓은 고정된 순서로 정보를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순서와 방식대로 정보를 탐색해나갈 수 있다. 하이퍼텍스트는 인간의 사고 과정에 매우 친화적인 형태의 정보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정보를 책의 기록처럼 선형적으로, 즉 순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이어나간다. 자유 연상을 바탕으로 사고하는 인간에게 책의 기록 방식은 사고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배열한 어색한 행위일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하이퍼텍스트는 인간이 기계처럼 선형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압박에서 벗어나 무한한 상상력과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하이퍼텍스트의 이런 특성을 이용해 작품 활동을 할 경우, 매우 창발적인 형태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 창발성(emergent property)은 하위 수준의 개체 단위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특성이 상위 수준의 군집 단위에서 발현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2002년 월드컵 당시에 수많은 한국인들이 빨간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와 응원을 했다. 그런데 그들 중 대부분은 사실 평소에는 빨간 색 옷을 입지 않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복잡한 형태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마침내 거리의 한국인들이 “Be the Reds!”라고 새겨진 빨간 티셔츠를 입고 뭉치게 됐다.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에서는 원작자가 제시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 대해 독자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선택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하이퍼텍스트는 다양한 문화적 활동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선사해주며 오늘날 덕후들의 주 무대 중 하나인 인터랙티브 픽션(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게임들에서는 텍스트 위주의 소설 형식에 시각과 음향 효과가 부가된다.

 

윈스턴 처칠은 대단히 통찰력 있는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건물의 형태를 만들고 건물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그에 따르면, 무릇 인간이 만든 것들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법이다. 인터넷은 탄생한 지 아직 5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보인다. 인터넷은 인간의 문화를 근원적으로 변화시킬 만큼 앞으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덕후 문화의 핵심 콘텐츠로써의 성(sex)과 공격성

 

덕후 문화에서의 대표적인 콘텐츠 중 하나는 바로섹슈얼리티(sexuality)’라고 할 수 있다. 섹슈얼리티는 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 사고, 감정, 및 가치관을 말한다.

 

덕후의 세계에서 남성 덕후들이 미소녀가 등장하는 성인 만화와 게임을 좋아하고 여성 덕후들이 미소년 동성애자들이 등장하는야오이(やおい)’를 좋아한다는 것은 유명하다. 이처럼 특정 대상에 매력을 느끼는 것을 덕후의 세계에서는모에()’라고 부른다. 일상적인 표현으로는마음이 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에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캐릭터에 대해 연정을 품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때 모에 속성은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 중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쉬운 황금패턴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모에 속성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유행 아이템과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에는 단순히 특정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보다는 마치 남녀 간의 사랑처럼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것에 해당된다. 이런 점에서 모에는 정신-(psych-sexuality)적인 특성을 갖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단순한 섹슈얼리티와는 달리 정신-성적 행동에서는 일반적인섹스와 관계없어 보이는 것도 성적인 함의를 지닐 수 있으며섹스인 것처럼 보이는 행동에도 성적인 함의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전자의 예로는 한 남성이 미사일이나 전차와 대포 같은 피규어를 수집하는 데 집착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수집 대상들은 전형적인 남성 성기 상징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정신-성적인 특성을 갖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후자의 예로는 열등감이 많은 어느 남성이 강박적으로 성행동에 집착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때 그 남성이 집착하는 성행동은 전형적으로 성욕과 관계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성욕보다는 열등감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에에서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가와이(可愛)’라고 불리는 귀여운 대상에 집착하는 현상이다. 이것은 비단 일본 문화에서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일례로 월트디즈니(Walt Disney)는 애니메이터의 책상에귀여움을 유지하라!”는 메모를 둔 것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이러한 현상은유형성숙(neoteny)’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어른에게 어린아이와 같은 특징이 남아 있을 때 더 귀엽다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성체에게 유형 성숙의 특징이 나타나는 동물들에게 더 끌리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북극곰은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있지만 어른들은 판다()나 코알라를 더 좋아한다.

 

(sex)과 더불어공격성은 덕후 문화에서의 핵심적인 키워드 중 하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에 따르면, 인간의 삶에서는 생물학적으로 고정된 행동 패턴을 뜻하는 본능(instinct)보다는 주어진 환경 조건하에서 행동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는 역할을 하는 추동(drive)이 더 중요하다. 본능의 예로는 새가 둥지를 만드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추동의 예로는 성난 사람이 분풀이할 대상을 찾아다니는 행동을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때 화가 난 사람은 하나의 고정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때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행동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예를 들면, 자신을 화나게 만든 사람을 찾아가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고, 엉뚱한 대상에게 화풀이를 할 수도 있으며, 아예 화가 난 내색을 하지 않기로 결심할 수도 있다. 이처럼 본능과 추동의 주요한 차이점은 바로행동의 가변성여부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행동하도록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추동에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성(sex) 충동인 에로스(Eros)와 죽음의 충동인 타나토스(Thanatos). 에로스는 사랑과 관계돼 있고 타나토스는 공격성과 관계가 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상극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 삶에서는 동전의 앞뒷면 같은 역할을 한다.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결합된 대표적인 예로는 가학-피학(SM) 커플 사례를 들 수 있다. SM 커플 중 가학적인 파트너는 피학적인 파트너가 보내는중지신호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이때 피학적인 파트너가 보내는 신호는 상호 간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마조히즘(Masochism), 즉 피학증에서의 핵심은 모욕과 고통이 아니라통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어떤 마조히즘 사례에서는 강도 높은 SM 플레이에는 응하더라도 치과를 가는 것은 거부하기도 한다. 치과를 방문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고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에게 공격적인 충동이 존재한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찰스 다윈(Charles R. Darwin)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의 진화는 경쟁을 통해 진행돼 왔으며 이때 경쟁은 다른 종에 대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종끼리도 이뤄져왔다. 자신의 대표작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에서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진화 과정에서 자연선택이 이뤄지는 단위는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이며 생물의 다양한 특성은 해당 특성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의 생존 및 증식에 유리하도록 진화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들에 대한 명백한 지지 증거 중 하나는 중앙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DNA 분석 결과다. 여성의 성 염색체는 XX인 반면에 남성의 성염색체는 XY. 따라서 남성의 Y 성 염색체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직접 전해지기 때문에 부계는 정확하게 추적하는 것이 가능하다. 놀랍게도 중앙아시아 남성의 8퍼센트가 사실상 동일한 Y염색체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는 중앙아시아 남성의 8퍼센트가 한 남성의 후손이라는 점을 뜻한다. 그 선조는 바로 칭기즈칸이었으며 칭기즈칸의 후손은 무려 약 16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칭기즈칸이 전쟁이 끝날 때마다 수많은 여성을 전리품의 일종으로 약탈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호전적인 성향이 강할수록 유전자가 생존 및 증식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진화 과정에서는 호전적인 성향이 자연선택돼왔던 것으로 보인다.

 

전쟁과 테러의 근원이 되는 집단적 공격 행동은 4000여 종의 포유류 중에서 침팬지와 인간 등 지극히 일부 종에서만 나타난다. 물론 그중 집단 공격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는 종이 바로 인간이다. 이런 점에서 인류학자 레이먼드 다트(Raymond A. Dart)는 인간을도살자 유인원(Killer Ape)’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인류 역사의 95%는 전쟁과 싸움으로 점철돼 있다는 점에서 말콤 포츠(Malcolm Potts)와 토마스 헤이든(Thmas Hayden)도 인간에게는전쟁의 본능이 있다고 제안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볼 때 해머스미스병원의 배틀존 실험 결과가 보여주듯이 공격성을 테마로 하는 전투 게임을 할 때 뇌의 보상 체계가 마치 마약 성분인 암페타민이 주사될 때만큼 활성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덕후에 관한 심리학적 분석이 기업 경영에 주는 시사점

 

덕후에 관한 심리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기업 경영을 위한 조언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21세기 기업의 생존전략을 고민하고 있다면 건강한 덕후를 사회적 인재로 발굴해내고 육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간의 세기의 대결로 일약 스타가 된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 CEO인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는 건강한 덕후의 모델이 될 만하다. 데미스 하사비스의 트레이드 마크는 검은 뿔테 안경, 맨투맨 셔츠, 청바지, 그리고 콜라 캔이다. 이런 점에서는 그는 전형적인너드 룩(Nerd look)’을 하고 있다. 너드는 덕후의 영어식 표현으로서 대중적이지 않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비주류 활동을 하는 데 과도한 시간을 쏟으며 생활하는 사교성이 부족한 지식인을 뜻한다. 그는 외모뿐만 아니라 이력도 전형적인 덕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일종의 게임 덕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4살 때부터 체스를 배워 영국 1위와 세계 유소년 챔피언 2위에 오른 전력이 있다. 체스는 명백히 게임의 일종이다. 게임 덕후답게 그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게임회사에 취업해 17세 때 시뮬레이션 게임인테마파크라는 유명 비디오게임을 만들었다. 실제로 홈페이지에서도 자신을 게임 디자이너이자 AI 프로그래머로 소개한다.

 

 

그리고 나이가 채 40이 되기도 전에 그는 알파고를 통해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업적을 남겼다. 이런 점에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이너드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21세기의 시대정신은게임이며 그 세계는 덕후의 주 무대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기업의 임직원들이 오판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바둑을 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바둑 형태의 컴퓨터 게임을 한 것이다. 굳이 컴퓨터 게임의 종류를 들자면 그들은 일종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게임을 한 셈이다. 특히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 컴퓨터 시뮬레이션 게임에서의 핵심 요소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라는 점이다.

 

 

셋째, 21세기 문화에서의 핵심 매체는 바로 하이퍼텍스트라는 점이다. 그리고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의 핵심 과제는 사용자에게 수수께끼가 아니라 미스터리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은 창발적 문화(앞에서의 ‘Be the Reds!’ 부분 참조)를 구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넷째, 21세기 비즈니스 시장에서 존경받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면 인간의 삶에서의 영원한 핵심 테마인 성과 공격성을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고 성숙한 형태로 향유할 수 있도록 돕는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초정상자극을 상품의 기획, 제조, 판매에 활용하려는 유혹은 철저하게 경계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초정상자극은 사람을 유인하는 힘이 마약만큼이나 강렬할지라도 부정적 중독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소비자에게 결코 행복감을 선사해주지는 못한다. 앞에서 소개한 바대로 초정상자극에 기초한 성적이고 공격적인 콘텐츠는 인간을 동물화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다행히 일찍이 프로이트가 설파한 대로 인간은 성과 공격성을 문화적인 형태로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세돌과의 대결에서 알파고가 선보인 컴퓨터 시뮬레이션 게임은 유혈이 낭자한 배틀 게임보다 공격성을 더 문화적으로 향유하는 방법으로 보인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적인 대결은 그 어떤 배틀 게임보다도 박진감이 넘치고 치열하며 처절한 인상을 주는 전투의 연속이었다. 특히 그 과정에서 펼쳐진 이세돌의 휴먼드라마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큰 감동과 애틋한 감정을 선사해줬다. 이런 점에서 구글 딥마인드는 이번 이벤트를 통해 21세기의 문화 콘텐츠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21세기에 문화 콘텐츠 산업은페스티벌(festival)’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점이다. 21세기의 문화 페스티벌이 이전 시기와 구분되는 포인트는 하이퍼텍스트 기반 정보와 게임, 그리고 SNS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하이퍼텍스트 기반 정보, 게임, 그리고 SNS는 인간의 삶에서 중독성이 강한 대표적 문화 매체들이다. 이러한 문화적 매개물들이 인간에게 행복감을 선사해주기 위해서는긍정적 중독의 형태로 프로그래밍될 필요가 있다.

 

21세기 문화 콘텐츠 산업의 발전방향을 시사해주는 좋은 예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의코미케(Comicket)’이다. 이것은 코믹 마켓(comics market)의 줄임말로서 만화 동인(同人)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형성된 만화 동호인 축제라고 할 수 있다. 1975년 제1회 코미케에 참석한 인원은 700여 명 수준으로 사실상 오타쿠들을 위한 서브컬처 모임으로부터 출발했다. 하지만 현재 코미케에는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며 해당 행사 기간 동안에만 무려 1800만 부 이상의 만화책이 판매된다. 따라서 오늘날 일본에서 코미케는 더 이상 서브컬처가 아니라 사실상 주류 문화의 하나가 됐다.

 

21세기에는 하이퍼텍스트 기반 정보와 게임, 그리고 SNS가 결합되기만 한다면 해당 문화 콘텐츠의 위력은 가공할 만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가 바로바둑 대국으로 펼쳐진알파고 페스티벌이다. 알파고 페스티벌의 본질은 정보, 게임, 그리고 SNS가 결합된 문화 축제였다는 점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구글 측은 이번 축제를 위해 단 돈 100만 달러를 투자했다. 하지만 알파고 페스티벌 이후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Alphabet)의 시가 총액은 무려 58조 원이나 급등했다. 알파고의 개발과 발전,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 모든 일은마니아’, 혹은덕후라는 단어를 빼고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DBR mini box

 

 

긍정적 중독의 특징

 

글래서에 따르면, 긍정적 중독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1)중독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해주지만 그러한 활동이 다른 영역까지 지배하는 형태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2)중독 때문에 나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인 힘을 얻어 본인이 원하는 것을 더욱 잘 성취할 수 있도록 돕는다.

3)인간관계나 외부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 생활하는 것이 가능하며 외부에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다.

4)부정적인 중독은 일시적으로 쾌감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건강에 해로운 반면에 긍정적 중독은 하찮은 일 같은 인상을 줄지라도 그 심리적 효과는 크다.

5)하루하루의 생활을 긍정적으로 중독된 활동을 함으로써 시작하기를 원하게 된다.

6)행위자를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트린다.

7)부정적 중독에서와는 달리 중독 관련 행동의 개시 및 종료 여부를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8)정신력이 강해지고 또 자기통제감이 강해지도록 해줌으로써 나쁜 습관(과음, 흡연 등)을 중단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9)쾌감만의 단조로운 감각이 아닌 성취감, 충만감 등의 다양한 정서적 충족이 이뤄진다.

 

 고영건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lip@korea.ac.kr

 

필자는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삼성병원 정신과 임상심리레지던트를 지냈고 한국임상심리학회 임상심리전문가와 한국건강심리학회 건강심리전문가 자격을 따기도 했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에서 박사 후 과정을 했으며 현재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고영건 고영건 |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필자는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삼성병원 정신과 임상심리 레지던트를 지냈고 한국임상심리학회 임상심리 전문가와 한국건강심리학회 건강심리 전문가 자격을 취득했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쳤다. 한국임상심리학회장을 지냈다.
    elip@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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