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성’의 원천을 찾아서: 김대진 피아니스트
편집자주
모두가 ‘창조’를 말하는 시대지만 정작 정확한 개념 정의도, 진정한 의미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창조성’에 대해 10여 년 전부터 연구해 온 신동엽 연세대 교수가 여러 학자들과 함께 진행한 각종 인터뷰와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21세기 시대정신, ‘창조성’의 원천을 찾아서’를 연재합니다.
자발적 열정, 창조성의 불완전한 원천
조직행동론의 거장 디시(Edward Deci)나 해크먼(Richard Hackman) 교수는 어떤 행동을 열심히 하도록 만드는 동기부여의 원천에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그 행동 자체를 좋아해서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경우로 동기부여의 궁극적 원천이 그 행동 내부에 있다는 뜻에서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라고 부른다. 둘째는 행동 자체를 좋아하기보다는 그 행동에서 높은 성과를 창출할 때 기대되는 보상을 좋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경우다. 동기부여의 궁극적 원천이 행동이 아닌 외부의 보상에 있다고 해서 ‘외재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라고 부른다.
디시 교수나 해크먼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행동의 동기부여는 이 두 가지로 구성돼 있으며 각 조직의 동기부여 전략은 이 두 가지 동기 유형 사이의 상대적 비중에 따라 달라진다. 컨베이어벨트 앞에 서서 한두 가지 나사만 조이는 단순한 동작을 몇 십 초에 한 번씩 종일 반복하는 포디즘 대량생산 공장을 예로 들어보자. 이 경우 내재적 동기는 거의 전무하며 생산량에 비례해 지급되는 성과급이 동기부여의 핵심이므로 거의 100% 외재적 동기부여에 의존한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대량생산 시스템의 단순반복작업에서 초래되는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각 직무에 다양한 과업들과 권한, 책임들을 포함시켜 재설계한 직무충실화(job enrichment)는 내재적 동기부여를 높이기 위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과 같은 창조적 행동의 동기부여는 어디에서 올까? 창조성 연구의 거장 아마빌(Theresa Amabile) 교수는 창조성은 압도적으로 내재적 동기부여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외재적 동기에 의한 행동은 본질적으로 보상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최소한의 노력으로 가장 빨리 원하는 보상을 쟁취하려는 효율성의 원칙이 행동을 지배하게 된다. 즉 가장 효율적인 행동루틴을 파악하면 그 행동만 반복할 뿐 새로운 시도를 할 이유가 없다. 이에 비해 내재적 동기에 의한 행동은 그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행동을 더 잘하고, 폭을 넓히며, 깊이를 더하기 위한 다양한 새로운 시도들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이는 곧 창조성으로 연결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흔히 듣는 ‘가난한 예술가’라든지 ‘예술 그 자체를 위한 예술(arts for arts’ sake)’ 등의 표현은 바로 창조성이 핵심인 예술 행위에서 내재적 동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내재적 동기에 기반한 자발적 열정이 창조성을 낳는 것은 사실이나 문제는 자발적 열정이 항상 같은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열정과 영감이 샘솟다가 이유 없이 갑자기 침체에 빠져 의욕을 상실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다. 즉, 내재적 동기와 자발적 열정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만 믿고 창조성을 추구하기에는 너무 불안정하고 부침이 잦다는 결정적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형성된 현대 산업조직의 초기 선구자들인 테일러(Frederic Taylor)나 포드(Henry Ford)는 아예 불안정하고 부침이 많은 내재적 동기부여에 의존하는 것을 포기했던 것이다. 그들은 차라리 모든 구성원들을 치밀하게 미리 설계된 프로세스와 규칙, 절차에 따라 정해진 대로 기계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대량생산 관료제조직이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계론적인 피라미드형 현대 조직들은 효율성과 신뢰성에서는 전대미문의 성과를 창출했으나 개별 구성원들의 창조성을 극도로 억압하고 획일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든다는 치명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20세기 대량생산 조직의 비창조성을 극복하기 위해 최근 제시되고 있는 21세기 창조경영형 조직모형들은 개인의 자율성과 내재적 동기, 자발적 노력 등을 강조함으로써 창조적 혁신의 가능성은 높아졌다. 그러나 그 대가로 효율성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창조성과 효율성/신뢰성 간 딜레마를 극복할 근본적 해법은 없는 것일까?
투철한 사명감이 자발적 열정의 부침을 해결할 열쇠
필자가 동료 학자들과 함께 <창조성의 원천> 책을 집필하기 위해 20여 명의 세계적 예술가들을 심층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이 창조성과 효율성/신뢰성 간 딜레마의 해결책을 찾아봤다.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바로 ‘투철한 사명감’이었다. 일반적으로 동기부여의 원천은 어떤 행동에 대한 자발적인 열정이나 도구적인 이익 추구,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명감, 소명의식, 책임감 등 규범적이고 철학적이며 어떻게 보면 가장 심오한 제3의 동기부여 원천을 간과하는 수가 많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이 이유 없이 사라지고, 특별한 보상도 기대할 수 없으며, 다른 누가 외부에서 강제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한 발자국도 떼기 힘든 상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그 일에 완전히 치열하게 몰입해 끊임없이 창조적 혁신을 추구하게 만드는 힘은 바로 그 일에 대한 소명의식, 즉 사명감이다. 따라서 내재적 동기에 기반한 자발적 열정이 일시적으로 식을 때에도 투철한 사명감이 작동하면 지속적인 몰입을 만들어갈 수 있다. 즉 좌절해 주저앉아 버리지 않고 다시 한번 창조적 혁신의 불꽃을 태울 수 있도록 붙들어 주는 강력한 닻의 역할을 해준다.
필자가 <창조성의 원천> 집필 과정에서 인터뷰한 20여 명의 세계적 예술가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예술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피아니스트 김대진의 음악과 예술에 대한 사명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세계 200대 피아니스트로 선정될 정도로 정상급 피아니스트인 김대진은 교육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단연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그가 가르친 김선욱, 손열음, 문지영 등 순수 국내파 제자들이 세계 최고의 피아노 콩쿠르인 리즈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에틀링겐 콩쿠르 등을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김대진은 ‘클래식계의 멀티맨’ ‘건반 위의 진화론자’ ‘욕심 많은 팔방미인’으로 불린다. 피아니스트, 교육자, 세계 각종 콩쿠르의 심사위원, 실내악 리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등 한 명의 개인이 소화한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역할을 열정적으로 소화해 내고 있는 김대진의 지칠 줄 모르는 예술 창조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토록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김대진에게 그중에서도 자기의 가장 중요한 역할과 소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는 한마디로 요약한다. “나는 선생이다.” (조선일보 탑클래스 2009년 8월 호) 김대진이 본인을 규정하는 ‘선생’이라는 단어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육성하는 교육자로서의 역할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창작자와 매개자, 소비자 모두가 성숙한 클래식 문화를 만들고 즐기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기 위한 개척자와 길잡이의 역할까지 포함하는,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사명감을 뜻한다. 그랜드피아노 두 대가 나란히 놓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연구실에서 클래식 음악계의 위대한 ‘선생’ 김대진을 만났다.
예술 창조성의 원천: “선천선과 후천성 사이의 고민”
김대진이 자신의 역할 중 가장 좋아하는 일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그는 가르치는 일에 대한 흥미는 대학교 1∼2학년 무렵 어린 학생들 개인지도를 맡을 때부터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한다. 당시에도 가르치는 일이 편했고 학생들도 잘 따랐다. 그래서 매우 자연스럽게 연주를 가르치는 일을 접했다. 박사 졸업 후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길에 들어섰다. 서울대 재학 시절 은사인 오정주 선생의 영향으로 김대진은 1993년과 1994년 서울대 임용에 응했으나 기회가 쉽사리 오지 않았다. 1994년 서울대 임용을 위해 한국에 잠시 들어온 김대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총장인 이강숙 선생에 의해 음악원 교수로 영입된다. 1995년부터 기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2012년 9월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영재교육원장 직도 겸하고 있다.
1) “철저한 자기 관리와 연주자로서 홀로서기를 가르친다”
김대진은 자신의 스승들이 본인을 가르쳤던 방식으로 학생들을 지도한다. 기본을 바로 잡아줌으로써 모든 학교 과정이 끝났을 때 연주자로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궁극적으로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대진이 처음 피아노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몸이 아파 학교에 가지 못했던 어느 날, 집에 있던 피아노를 재미 삼아 쳐봤고 이때 외할머니께서 찬송가 멜로디를 가르쳐주셨던 것이 연주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이후 김대진이 성장해 홀로서기를 할 때까지 영향을 준 선생님은 총 세 사람이다. 어린 시절의 은사인 서울대 이선균 교수, 서울대 재학 시절 사사한 오정주 교수, 줄리어드의 마틴 캐닌 교수다. 김대진은 그들이 모두 학구파에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들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원칙을 가르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저도 선생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좋은 선생이란 학생이 학교도 졸업하고 레슨을 받을 나이가 지났을 때 스스로 배워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그런 방향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려고 합니다. 기본적인 원리(principle)를 배운 학생들은 혼자서 얼마든지 자기가 공부를 해나가고, 새 것을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렇게 막막할 수가 없죠. (따라서) 곡 레슨을 할 때에도, 가르치는 곡의 특정한 부분의 원리를 설명을 하면서 그것을 일반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면 그걸 알고 있는 아이들은 혼자 공부를 해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바로크 시대의 곡을 가르칠 때 이 시대 곡들의 장식음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고 어떤 요소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면 나중에는 다른 곡들에도 응용해서 혼자서 공부를 해나갈 수 있어요. 여기서 장식음을 이렇게 치는 것을 배웠는데 다른 장식음은 연관이 안 되는 거면 문제가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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