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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의 원천을 찾아서: 최태지 국립발레단장

“나는 완벽주의자, 적당한 공연은 싫다. 당장 세계 최고를 노려야 창조가 가능하다”

신동엽 | 143호 (2013년 12월 Issue 2)

 

 

 

편집자주

모두가창조를 말하는 시대지만 정작 정확한 개념 정의도, 진정한 의미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창조성에 대해 10여 년 전부터 연구해 온 신동엽 연세대 교수가 여러 학자들과 함께 진행한 각종 인터뷰와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21세기 시대정신, ‘창조성의 원천을 찾아서를 연재합니다.

 

 

2010 10, ·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국립발레단의라이몬다공연이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올랐다. 볼쇼이발레단의 살아 있는 전설,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의스파르타쿠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인형’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어라이몬다를 공연함으로써 국립발레단은 러시아 발레의 5대 레퍼토리를 완성했다. 이 공연은 발레 팬들이 한국발레의 놀라운 발전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였을 뿐 아니라 볼쇼이발레단과의 협연을 통해 한국 발레의 새로운 지평을 연 중요한 사건이었다. 특히라이몬다는 무용수의 역량에 자신 없는 발레단은 올릴 수 없는 작품으로 정평이 나있다. 주역을 누가 맡는가가 전체 극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라이몬다는 여주인공의 절대적 기량에 의존하고 있다. ‘라이몬다라는 새로운 레퍼토리를 성공적으로 극장에 올릴 수 있었던 국립발레단의 역량,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 러시아 발레의 정상인 볼쇼이 발레의 주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한국 발레의 발전은 과연 어디로부터 생겨난 것일까? 공연계 관계자들은 한국 발레계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끈 인물로 주저 없이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을 꼽는다.

 

창조적 예술을 만들어내는데도 리더십이 필요한가? 만일 리더십이 필요하다면 창조적 리더가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일까? 창조성이나 예술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가진 소수 천재들의 개인적인 역량과 열정이 핵심이지 리더십은 크게 영향을 미칠 여지가 없는 분야 아닐까? 불과 10여 년만에 세계 발레계의 변방에서 단숨에 세계 최정상급으로 숨가쁘게 성장한 국립발레단과 한국 발레의 스토리를 들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립발레단은 현재 공연의 질적 수준, 무용수들의 기량, 레퍼토리의 다양성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데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다. 지난 10여 년간의 비약적 발전은 최태지 국립발레단장 없이는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지난 25년간 프리마1 발레리나로, 국립발레단장2 으로 한국 발레계의 중심에 있어왔던 인물인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을 만나 예술에서 창조적 혁신의 원천에 대해 들어봤다.

 

불만족이 창조를 낳는다!

 

 

개인이나 조직, 국가를 막론하고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또 그 성과를 평가할 때 기준이 되는 나름대로의 잣대, 즉 눈높이를 가지고 있다. 스탠더드, 눈높이, 잣대 등으로 불리는 목표설정과 성과평가의 기준을 학술용어로는 열망수준(aspiration level)이라고 부른다. 열망수준은 어떤 목표나 성과에 대해 만족-불만족 여부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따라서 열망수준이 매우 높으면 대다수가 만족할 만한 높은 성과에도 불만족을 느끼게 되며, 반대로 열망수준이 낮으면 웬만하면 다 만족하게 된다. IMF 관리체제 이후 우리나라에 급속히 퍼진 화두인글로벌 스탠더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팀제, 성과주의 연봉제, 유연 고용제도 등 구체적 제도의 채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경영의 성과와 프로세스 모두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을 지향하자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열망수준이 바람직할까? 크게 보면 자기 실력에 부합하는 열망수준이 바람직하다는 주장과 열망수준은 높을수록 좋다는 두 가지의 상반된 입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눈높이가 낮을수록 좋다는 의견은 없으나 도전적이기는 하지만 과도하게 높지는 않은 적정 수준의 열망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 절대적 다수인 것 같다. 이런 입장의 논리는 자기 실력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눈높이는 과욕(hubris)과 무리수(overshooting)를 불러일으켜 결과적으로 실패의 덫(failure trap)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경영 컨설턴트의 대부격인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등이 주창했고 경영현장에서도 자주 활용되는 MBO(Management by Objective)의 핵심 원칙 또한어렵지만 달성 가능한(difficult but achievable)’ 적정 난이도 수준의 목표를 수립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소수 의견이기는 하지만 열망수준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는 전혀 다른 입장도 존재한다. 이런 주장은 대부분 창조적 혁신을 강조하는 사람들에 의해 제기됐다. 창조적 혁신은 기존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과 불만족을 가지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경구항상 갈망하라!(Stay Hungry!)”는 열망수준을 극단적으로 높여서 결코 현재에 만족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이런 주장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힐링 관련 책이나 강좌에서 흔히 접하는현재에 만족하는 삶이 행복하다는 일반적 메시지와는 정반대 입장이다. 물론 만족이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있겠지만 결코 창조적 혁신을 낳을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혁신에 대해 강의할 때 항상불만족이 혁신을 낳는다! 만족하면 더 이상의 혁신은 없다!”고 강조한다.

 

스티브 잡스가 충고하듯이 현실에 만족하지 않으려면 눈높이, 즉 열망수준을 자기의 현 상황과 상관없이 항상 극단적으로 높이 설정해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볼 때는 현실적으로 달성 불가능하며 거의 과대망상 수준인 극단적인 눈높이에서 출발해 끊임없이 창조적 혁신을 추구하는 대표적 집단이 바로 예술가들이다.예술의 본질은 기존 작품의 모방이 아닌 끊임없는 창조적 혁신이기 때문이다. 창조적이기 위해서는 기존에 그 누구도 선보이지 않은 작품을 최초로 시도하는 것이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현재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선두의 눈높이를 넘어서는 노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극단적으로 높은 눈높이를 가져야 한다. 최고의 거장 중 하나인 미켈란젤로는진짜 위험한 것은 높은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목표의 달성에 계속 성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극단적으로 높은 눈높이로 창조적 혁신을 계속할 것을 주문했다.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서 세계 최고의 눈높이를 발판으로 단숨에 세계적 수준의 예술을 만들어낸 대표적 인물이 바로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이다. 최태지가 세계 발레계의 변방이던 한국 발레를 단숨에 세계 정상급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은 점진적으로만 가능한 자생적 발전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세계 발레계의 최첨단, 최정상의 창조적 리더들과 직접 교류한 것이다. 그전까지 그 어떤 발레 지도자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당대 세계 최고 발레단 및 안무가들과의 적극적 교류는 한국 발레의 예술적 수준을 단 10년 만에 그들과 대등하게 협업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발전시켰다. 또 최태지는 소수 전문가와 애호가들만의 예술이던 발레를 대중화시키기 위해 모든 금기를 깨고해설이 있는 발레와 같은 현장과의 소통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이제 한국 발레는 세계적 예술성을 자랑하면서 동시에 모든 공연이 매진될 정도로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장르가 됐다.

 

최태지는 일본 교토 출신으로 일본과 미국, 프랑스에서 발레를 공부했고 1983세헤라자데공연의 객원무용수로 한국 국립발레단과 첫 인연을 맺었다. 1987년 국립발레단 프리마 발레리나로 특별 채용되며 고국 무대에서 본격적 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국립발레단 제3대 예술감독을 지냈고,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정동극장의 극장장을 맡았으며, 2008년부터 다시 국립발레단 대표 및 예술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 발레가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후반이다. 그 중심에 국립발레단이 있었다. 1997년에는 당시 새로 취임한 최태지 단장의 리더십하에 이집트와 이스라엘에서 최초로 해외 공연을 했으며해설이 있는 발레프로그램을 신설해 발레의 대중화를 도모했다. 또한 라이선스 개념을 국내 발레계에 정착시켰다. 선진 예술계에서는 공식적으로 작품의 라이선스를 지급하고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관행이 당연시되고 있었지만 국내 발레계에서는 제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관계로 해외 단체들의 공연을 필름이나 실황 등을 통해 본 다음 적당히 흉내내 마음대로 무대에 올리곤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국립발레단은 그런 관행을 과감하게 탈피하고 공식적으로 원 안무가와 제작자에게 정당한 라이선스 대금을 지급하고 원작 그대로의 정밀한 안무, 무대, 의상 등을 들여오고 실제 안무가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인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레퍼토리의 개념이 처음으로 도입된 것이다. 그 결과 공연의 질적 수준이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발전했고 이를 계기로 국립발레단은 세계적 기준에서 봐도 공식 레퍼토리를 많이 가진 단체 중 하나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는 전막3  발레 공연 상연이 더욱 활발해지고 발레단의 레퍼토리가 더욱 확충됐으며 애호가 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로서 발레 열풍이 거론될 만큼 많은 사랑을 받는 장르로 각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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