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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ting Machiavelli-15

사랑에 빠진 마키아벨리, 풍자의 칼 들다

김상근 | 122호 (2013년 2월 Issue 1)

 

 

 

편집자주

많은 사람들은 마키아벨리는권모술수의 대가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억울하게 살고 있는 약자들에게더 이상 당하지 마라고 조언했던 인물입니다. 메디치가문의 창조 경영 리더십 연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 마키아벨리를 주제로 연재합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주는 마키아벨리의 이야기 속에서 깊은 지혜와 통찰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마키아벨리가 코미디 작가라고?

1519, 마키아벨리는 두 젊은이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한 사람은 그가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이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그가 죽도록 미워했던 사람이다. 그가 죽음을 애도했던 사람은루첼라이 정원의 좌장이었으며 <로마사 논고>의 헌정 대상이었던 코시모 루첼라이였다. 또 다른 사람은 <군주론>의 헌정 대상이었던우르비노의 공작로렌초 데 메디치였다. 코시모 루첼라이가 죽자 마키아벨리는 자비로운 후원자를 잃었고우르비노의 공작이 죽자 관직으로 나갈 수 있는 마지막 가느다란 희망을 잃게 된다. 마키아벨리의 두 대표작인

<군주론> <로마사 논고>를 헌정했던 두 사람이 우연히 한 해(1519)에 죽자 그의 삶도 서서히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이제 마키아벨리도 쉰 살이 됐다.

 

마키아벨리는 1519년 삶의 방향을 바꿨다. 이미 공직에 대한 미련은 버렸으니 아예 전문 작가로 밥벌이에 나서기로 작심했다. 코미디 작가로 변신한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생전에 <군주론>의 저자로 알려진 것이 아니다. <만드라골라>를 쓴코미디 작가로 불렸다. 그의 최고 히트작은 <군주론>이나 <로마사 논고>가 아니라 16세기 이탈리아를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코미디 <만드라골라> <클리지아>였다. 마키아벨리는 전문 코미디 작가로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역사의 무대 뒤에서 영웅들의 은밀한 속내를 들춰 보며 약자가 강자의 횡포에서 맞서는 법을 연구했다. 왜 갑자기 포복절도할 재치와 음탕한 내용으로 가득한 코미디를 쓰게 됐을까? <군주론> <로마사 논고>의 집필에 한참 몰두하던 시절 동네사람들은 마키아벨리에게 별명을 붙여줬다. 마키아벨리는 주로 밤에 글을 썼기 때문에 낮 시간에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동네 상점이나 술집에 앉아 사람들과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시간을 죽이곤 했다. 워낙 말주변이 좋은데다 타고난 붙임성까지 있어서 동네사람들은 그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재미삼아 그를상점 진드기라고 불렀다. 늘 상점에 빈대 붙으면서 음란하고 허튼 농담을 널어놓는 마키아벨리의 넉살을 풍자한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아내는 그를집 진드기로 불렀다. 특별한 직업이 없이 빈둥거리며 사내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남편에게 붙여준 조금은 잔혹한 별명이었다. 로마에 가 있던 친구 베토리와 편지를 교환하는 일이 마키아벨리의 유일한 낙이었다. 편지 내용은 궁색하기만 하다. 허드렛일이라도 좋으니 로마에 일자리를 좀 알아봐 달라는 하소연과 수입은 90피오리노뿐인데 세금을 40피오리노씩 뜯어가니 어디서 급전을 빌릴 수 없겠냐는 아쉬운 소리를 늘어놓았다. 베토리는 이 딱한 친구를 위해 대출보증을 서주면서 이렇게 썼다.

 

“마키아벨리는 가난하지만 착한 사람입니다. 물론 달리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는 분명히 착한 사람입니다. 제가 마키아벨리의 신용을 보증합니다. 그는 지금 수입에 비해 과중한 세금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의 수중에 돈은 한 푼도 없고 집안에는 아이들만 바글바글합니다.”1

 

이런 마키아벨리가 갑자기 코미디 작가로 변신한 이유는 운명적인 한 과부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마키아벨리는 라 타파니(La Tafani)로 불리던 동네 과부와 사랑에 빠졌다.2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나중세의 장송곡으로 불리는 <신곡>의 영감을 얻었다면 마키아벨리는 동네 과부 라 타파니를 만나 코미디 작가가 됐다. 번개 같은 사랑은 누구에게나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1514 83, 친구 베토리에게 쓴 편지의 내용은 마키아벨리를 <군주론> <로마사 논고>의 저자로 존경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리 시골마을에서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났다네. 그런데 그녀는 천성이나 됨됨이가 너무나 부드럽고, 너무나 섬세하고, 너무나 고귀해서, 나의 어떤 찬사와 사랑도 그녀에겐 그저 부족할 뿐이라네. <중략> 난 감정이 움직이는 대로 몸을 맡기지. 때로는 나의 감정과는 다르고 심지어 반대되는 경우까지도 말이야. 내가 지금 커다란 고통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곳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네. 그건 바로 그녀의 보기 드문 용모 때문이기도 하고 그녀 때문에 나의 고통을 모두 잊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 세상의 어떤 것을 준다고 해도 난 여기서 벗어나지 않겠네. 그래서 위대하고 중차대한 문제 같은 것은 생각지 않기로 했다네. 이제 더 이상 옛 역사를 읽는 것도, 우리 시대의 사건들을 숙고하는 것도 즐겁지가 않다네. 이 모든 것이 감미로운 생각들로 바뀌어버린 걸세.”3

 

 

마키아벨리는 사랑에 빠졌다. 큐피드가 쏜 사랑의 화살에 심장을 찔렸다. 자신의 가난과 고통을 송두리째 잊었다. 고대의 빼어난 고전을 읽으며 시대의 난제를 숙고하던 그의 노력은 잠시 중단됐다. 가난과 고통을 포함한 모든 것이감미로운 생각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로마에 있던 베토리에게 여자 스타킹 한 켤레를 짤 수 있는 양의

푸른색 털실을 구입해 달라는 편지까지 썼다. 마키아벨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선물을 위해서 친구에게 염치없는 부탁도 스스럼없이 할 정도로 사랑에 눈이 멀었다. <만드라골라>는 사랑의 열정에 불타오르던 떨리는 가슴으로 쓴 코미디다. 마키아벨리처럼 미친 듯이 사랑해 본 사람만이 <만드라골라>의 참뜻을 알게 되리라.

 

대박이 터진 마키아벨리의 코미디, <만드라골라>

<만드라골라>가 집필된 시기는 1518년 사육제 기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렌체에서 초연된 이 코미디는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에서 상연됐다. 교황청은 단독으로 <만드라골라>를 제작해서 메디치 출신 교황들을 즐겁게 해줬다. 베네치아에서는 너무 많은 청중이 몰려들어 무대 장치가 무너지는 사고로 <만드라골라> 공연이 중단되기도 했다. <만드라골라> 16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코미디였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었다면 이탈리아에는 <만드라골라>를 쓴 마키아벨리가 있었다.

 

 

 

<만드라골라>에는 7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연극의 무대는 당연히 마키아벨리의 고향인 피렌체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불세출의 미인이지만 이미 니시아(Nicia) 판사의 아내가 된 루크레치아(Lucrezia)가 피렌체에 살고 있었다. 1484년에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던 칼리마코(Callimaco)는 루크레치아의 미모에 대한 소문을 듣고 고향 피렌체로 돌아온다. 칼리마코의 꿈은 루크레치아와 길고 진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다. 그녀를 한번만 안아볼 수 있다면 자기 생명까지 바치겠다는 사생결단의 각오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칼리마코는 피렌체에서 유명한 건달이며 사기꾼(Trickster)인 리구리오(Ligurio)를 만나 니시아 판사와 루크레치아를 속일 방법을 만들어낸다. 결혼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아직 자식을 얻지 못한 니시아 판사에게 칼리마코를 프랑스에서 온 유명한 의사로 소개하고 임신에 특별한 효험을 가진만드라골라라는 약을 소개한다는 것이다. 이 신비의 영약을 먹으면 반드시 임신하게 되는데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르는 것이 문제다. 이 약을 복용한 여인과 잠자리를 같이 한 첫 번째 남자는 일주일 이내에 죽는다고 설명했다. 루크레치아에게 이 약을 먹게 한 뒤 동네 건달을 한 명 잡아다가 그녀의 방안으로 밀어 넣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루크레치아는 임신하고 건달은 곧 숨진다. 니시아 판사는 스캔들에 휘말릴 염려가 없다. 후손을 보고 싶어 안달하던 니시아 판사는 리구리오와 칼리마코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러나 루크레치아는 분명 망설일 것이다. 루크레치아를 설득하는 일은 사악한 수사인 티모테오(Timoteo)가 맡기로 한다. 티모테오는 니시아 판사로부터 두둑한 기부금을 받아낼 요량으로 루크레치아를 설득한다. 임신하기 위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남자를 죽음으로 몰아놓는 것이 꺼림칙했던 루크레치아에게 괴변을 늘어놓았다. 남편의 뜻에 따르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강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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