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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은 답을 주지 않는다. 단지 평가할 뿐이다

이윤철 | 121호 (2013년 1월 Issue 2)

 

편집자주

기계적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었던 기업의 사회공헌활동(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는 기업의 핵심 역량을 이용해 기업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CSV(Creating Shared Value)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과 동아일보 DBR이 만든 비즈니스 리더의 연구모임 ‘CSV 미래경영 연구회강연 내용을 지상 중계합니다. 이번 호에는 이윤철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의 강연 내용을 요약합니다.

 

※이 강연의 정리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정수(서강대 영미어문학과 4학년) 씨와 서진원(서울대 응용생명화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기업을 가만히 두면 커다란 공룡같이 된다. 공룡같이 된 기업은 변화에 대응하는 역량이 줄어들면서 서서히 몰락한다. 기업은 수천, 수만 마리의 카멜레온이 모여서 공룡 크기만큼 커지는, 즉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기업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산업의 선도자(Rule Maker)로 이들은 초창기 산업이 태동하면서부터 시작해 고객을 만족시키는 방법을 고안한다. IBM, 제록스(XEROX), 캐터필러(Caterpillar), 아메리칸에어라인(American Airlines) 등이 그 예다. 이런 기업들이 잘나가면 모방자(Rule Taker)가 생겨난다. 이들은 선도자가 만든 게임의 룰을 따른다. 컴팩(COMPAQ), 컨티넨털에어라인(Continental Airlines) 등이 그 예다. 선도자와 모방자와 차별되는 기업이 바로 혁신자(Rule Breaker). 이들은 기존 산업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한다. 예를 들면 서점계의 리딩 컴퍼니인 반스앤노블(BARNES&NOBLE)을 다른 방식으로 무너뜨린 아마존(Amazon)이 좋은 예다. 이들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간파하고 돈 버는 방식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CSV(Creating Shared Value)도 우리가 알고 있던 시장 경제의 게임의 룰을 다른 방식으로 부순 것이다. 효율성보다는 고객 가치를 우선하고 경쟁보다는 공유가치를 먼저 본다. , 지금의 룰을 부수는 관점에서 접근하다 보면 CSV 자체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기반이 될 수 있다.

 

CSV를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할 때 우선 현재 자신의 비즈니스에 대해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게리 하멜(Gary Hamel) 교수와 프라할라드(C. K. Prahalad) <미래를 위한 경쟁>에서 기업은 현재를 위한 경쟁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경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경쟁 구도와 시장점유율, 제품 주도권도 중요하지만 근원적으로 기업이 가진 핵심역량을 활용해 미래 경쟁력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경쟁해야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게임의 룰을 완전히 바꾸는 블루오션을 찾아야 한다는 개념이 1990년대, 2000년대 들어서 급속도로 성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CSV도 기존 경쟁 프레임이 아닌, 좀 더 다른 차원에서 나의 이익을 높이는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다. 신시장을 창출하고 가치를 창출할 블루오션의 세계다.

 

일본의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동물원에는 투명 스카이 브리지가 있다.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침팬지의 생동감 있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터널로 만든 수족관을 통해서는 마치 펭귄이 하늘을 나는 듯한 모습도 볼 수 있다. 펭귄이 새처럼 날아가고 침팬지를 눈앞에서 보여주자는 창의적인 제안을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러한 것을 간절히 원하던 고객들의 아이디어였을까? 아니다. 바로 동물원에 근무하면서 동물들의 생태와 습성을 가장 잘 아는 사육사였다. 사육사는 높은 곳에 사는 침팬지를 고객들이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깊이 고민했고 그 결과 투명 스카이 브리지를 생각해냈다. 고객은 어떤 경우에도 답을 주지 않고 단지 평가만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조직 내 구성원들이 짜내야 한다. 구성원들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서 아이디어를 뽑아내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라진다. 이 동물원의 사육사들이 최선을 다해서 동물을 보살피고 키우는 데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면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육사들이 사람들과 동물 사이에서 행복을 전달하는 통역관으로의 역할로 사고를 전환했을 때 동물원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탄생했다.

 

혹시 바다 밑 250m에서도 방수가 되는 시계를 기억하는가? 방수시계의 기술적 측면은 뛰어났지만 이 제품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제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만든 사람이나는 이렇게 훌륭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부심 때문에 만든 것이다. 이런 제품은 시장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

 

CSV 관점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고안할 때 중요한 것이 고객의 세분화와 고객과의 접점이다. 고객과 만나는 곳에서 변화가 있고 기업은 그 변화를 잘 캐치해야 한다. 고객을 세분화한 뒤 나에게 가치 있는 고객이 누구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과정이 CSV 관점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는 출발점이다.

 

 

정리=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이윤철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 강연

이윤철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서울대에서 경영학 학사, 석사, 박사를 받았다. 일본 히토츠바시대 산업경영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일했고 1996년부터 항공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1년 한국전략경영학회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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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윤철

    - (현)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
    - (전) 일본 히토츠바시대 산업경영연구소 객원연구원
    - 한국전략경영학회 회장
    - 산업정책연구원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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