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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Management

천편일률적인 창조 열정 소통

최명기 | 72호 (2011년 1월 Issue 1)

뒤늦은 김 사장의 후회
김 사장은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다가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회사를 맡았다. 대기업에 IT 부품을 납품하는 기업으로 상장돼 있을 정도로 규모가 제법 컸다. 사업 모델은 대기업이 원하는 물건을 남들보다 빠르게 싼 가격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김 사장은 ‘카피’를 주력으로 대기업에 납품하는 기업이 아닌 창조적인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 주위에서는 중소기업에 창조적인 인재들이 오겠느냐고 했지만 김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일단 장(場)을 만들어 놓으면 창조적인 인재들이 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 사장은 아버지 때부터 오랫동안 회사에서 근무했던 임원들이 눈에 거슬렸다. 그들이 변화를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조적인 직장을 만들려면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데 임원들이 그런 분위기를 막는 것 같았다. 그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하는 선배를 연구소장으로 스카우트 했다. 그 선배는 함께 일했던 명문대 출신 연구원 두 명과 함께 왔다. 그러자 기존의 연구소 직원들은 그들과 자신을 동급으로 대우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 밑에서 오래 전부터 일했던 임원 두 명이 회사를 나갔다.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막상 그들이 나가자 일이 잘 돌아가지 않았다. 시키는 일은 잘한다고 여겼던 연구소 직원 몇 명도 사표를 던졌다. 혁신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얼마 안 있어 김 사장은 임원 두 명과 연구소 직원이 경쟁업체로 간 것을 알게 됐다. 비싼 돈을 주고 영입한 선배와 새로 온 연구원들에게 급한 일을 해달라고 하자 그들은 이렇게 단순한 일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면서 난감한 태도를 보였다. 당장 밑에서 받혀줄 사람이 없으니 사업이 순조롭지 않았다.
 
김 사장은 비로소 아버지가 사업을 하던 방식이 옳았다는 생각을 했다. 몇 십 년간 아버지가 잘 꾸려온 회사를 창조, 혁신에 대한 자신의 욕심 때문에 망가뜨린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사업성이 급격히 나빠진 회사는 결국 매각할 수밖에 없었고 김 사장은 자신의 섣부른 판단 때문에 회사를 망친 것에 대해 후회했다. ‘일부터 잘하고 나서 창조가 있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천편일률적인 창조, 열정, 소통
미국에 공부하러 가기 전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책에 소개된 것처럼 비전과 미션에 따라 경영을 하는 기업이 미국에는 많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필자가 MBA에서 만난 미국 친구들은 마치 한국 사람들이 한국 기업에 대한 평가에 인색하듯, 자신의 회사를 인색하게 평가했다. 창조의 대명사 3M은 브랜드로 승부하는 회사가 되어 있었고, 막상 가본 월마트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으며, 아멕스 카드는 그저 그런 카드회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어로 쓰인 경영서적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외국서적과 달리 한국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사례들을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천편일률적으로 창조, 열정, 소통을 다루고 있다. 창조적인 직원, 열정적인 직원, 위아래 두루 소통하는 직원이 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책을 읽을 때마다 필자의 마음 한편에서는 “나는 여전히 일 잘하는 사람이 제일 좋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럴까.
 
과거에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왔는데 지금은 배울 것이 없으니 창조를 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있다. 그러면서 관료적인 한국의 대기업과 창조적인 외국의 대기업을 비교하면서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애플과 구글이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들이 창조적이기도 하지만 일을 잘 해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창조를 강조하는 책에서는 직원들을 지독하게 관리하는 대신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풀어 놓으면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생긴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미국 기업의 느슨한 조직관리가 과연 창조의 필요조건이었을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령 경쟁이 없던 시절에는 성장률이 높아서 기업이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팔려 저절로 돈이 벌렸다. 그렇게 여유가 생기다 보니 느슨하게 조직관리가 이뤄졌던 것일 수도 있다. 원인과 결과를 반대로 생각한 것이다. 과거에는 연속적으로 혁신적인 상품을 만들던 3M이 왜 더 이상 혁신적인 상품을 만들지 못하는지, 우수한 신약을 계속 출시하던 머크가 왜 더 이상 블록버스터를 만들지 못하는지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설명이 된다. 느슨한 회사 분위기와 창조성과는 큰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소위 창조적인 회사의 창조적인 분위기라는 것은 어쩌면 과거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현재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호사가들이 극소수의 예를 확대재생산해 만들어내는 허구 속의 기업 유토피아일지도 모른다.
 
열정 역시 마찬가지다. 열정은 흔히 과감한 투자와 연결된다. 하지만 열정의 문제는 시장분위기가 상승할 때 효과가 크지만 시장과 엇박자로 놀면 대책이 없다는 데 있다. 특히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잡고자 할 때의 열정은 과잉투자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실 기업 경영에는 열정보다 냉정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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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진의 고령화로 조직이 경직되면서 참신한 젊은 인재와의 소통이 점점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모아야 기업이 살아남는다는 주장에 반대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소통은 필연적으로 시간을 잡아먹는다. 더군다나 소통이라고 하면 모두가 한마디씩 하는 미국 문화를 흔히 연상한다. 아무리 쓸모없는 이야기라도 당사자 앞에서 면박을 주지 않는 것이 미국 사람들의 특징이다. 하지만 역으로 미국 기업의 문제 역시 의사소통과정이다. 미국에서는 요새 ‘실행이 중요하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적지 않은 미국의 CEO는 뚝심 있게 밀어붙이기보다 주주의 의견을 반영하기에 급급하다. 그러다 보니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처럼 밀어붙이는 기업인이 돋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CEO가 너무 밀어붙이기 식의 경영을 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CEO가 주주의 눈치보기에 급급한 것이 문제다.
 
소통의 창구를 열어 놓으면 직원들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한 의견을 나누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 일단 방향이 정해진 후 실수 없이 더욱 빨리 가기 위해 소통이 이뤄진다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어느 한쪽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 모두가 한마디씩 하면서 거드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결정된 상황에서 계속 딴죽을 걸면서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통은 오히려 짐이 될 뿐이다.
 
새 기술을 감지하는 촉수를 길러라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인재의 풀이 적다. 창의적이 된다는 것, 자발적인 된다는 것, 소통할 만한 자기 의견이 있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창조를 강요하고, 열정을 강요하고, 뭔가 말할 거리를 강요하는 것은 그나마 주어진 일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줄 수도 있다. 회사가 답답하다는 불만을 합리화하기 위해 우리 회사는 창조적이지 않아, 우리 회사는 열정이 없어, 우리 회사는 직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습관처럼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열정, 창조, 소통을 통해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위대한 일을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남보다 잘하고 남보다 더 빨리하는 것 역시 대단한 재능이다. 그러한 실행력, 조직력, 추진력은 창조, 열정, 소통만큼 멋있어 보이진 않지만 기업 생존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요건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떻게 새로운 기술을 따라잡을 것인가? 기업 자체가 창조적이 되는 것은 어렵더라도 기업에 새로운 기술을 감지하기 위한 촉수를 만들어내는 것은 필요하다. 창조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려면 장을 갖추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든다. 그리고 기업이 원하는 일이 아닌 그들이 원하는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개인의 창조적인 능력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기업에서 한 사람의 창조 역량이 약해지는 순간 다른 사람으로 교체가 이뤄져야 한다. 지금의 창조자도 나중에는 새로운 창조자를 가로막을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기업은 새로운 창조적 기술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져야 하다. 스스로 창조적이지는 않더라도 호기심이 많고 적극적인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과학자이지는 않지만 과학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천재를 알아보고, 새로운 기술을 감지해내는 재능이 있다. 그들이 창조적인 사람들을 회사로 끌어 들이면 회사는 그 기술을 이용해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회사 자체를 창조적인 조직으로 만들기 힘들다면 외부에서 만들어진 창조적인 성과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도록 하면 된다.
 
농부는 목장과 농장에서 좋은 재료를 만들고 요리사는 좋은 음식을 만든다. 반대로 요리사는 좋은 재료를 만들지 못하고, 농부는 좋은 음식을 만들지 못한다. 때때로 식당에서 농장과 목장을 직영으로 운영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드문 일이다. 창조적인 과학자들은 새롭고 맛있는 재료를 만들어내려는 농부와 같다. 회사는 그 재료들을 사용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들이 일하는 식당이다. 농부가 항상 요리사가 원하는 재료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요리사의 입장에서 농부가 만드는 새로운 재료가 항상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누군가는 농부가 만들어내는 재료 중 요리사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 없는지 끝없이 찾아서 요리사에게 들이밀어야 한다. 기업이 원천기술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누가 만들었건 쓸모 있는 새로운 기술을 발굴해서 도입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아직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기술이 무궁무진하다.
 
편집자주 DBR이 기업을 운영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계신 독자 분들에게 상담을 해드립니다. 최명기 원장에게 e메일을 보내주시면 적절한 사례를 골라 이 연재 코너에서 조언을 해드릴 예정입니다. 물론 소속과 이름은 익명으로 다룹니다.
  • 최명기 | - (현) 정신과 전문의·부여다사랑병원장
    - 경희대 경영대학원 의료경영학과 겸임교수
    myongki@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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