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트레이닝

만약 당신 자녀의 특채의혹이 제기됐다면?

66호 (2010년 10월 Issue 1)

편집자주
위기는 ‘재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어느 기업에서나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위기관리 시스템을 철저히 정립해놓고 비상시에 현명하게 활용하는 기업은 아직 드뭅니다. 위기관리 전문가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가 실제 사례들을 중심으로 기업의 위기관리 노하우를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직접 겪은 위기관리 사례를 공유하고 싶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김 대표의 e메일로 보내주십시오. 좋은 사례를 골라 본 글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이명박 대통령, 노벨 평화상을 받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한국의 대표 기업 삼성의 이건희 회장, 창의성의 신화를 만들어가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국내 최고의 엔터테이너 이효리….
 
모두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유력 인사들이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대중을 상대로 공개 사과한 적이 있다. ‘힘 있는 사람들’의 공개 사과는 2000년대 들어 급증하기 시작했다. 사회가 투명해지면서 사회 지도층 인사나 리더들의 실수, 잘못이 낱낱이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에까지 카메라가 장착돼 있다보니 거리의 모든 시민들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전대미문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뉴스 생산과 유통 주체가 기성 언론에서 모든 시민으로 확장되고 있다. 뉴스를 얻는 채널도 TV, 신문과 같은 전통매체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과거처럼 권력을 이용해 부정적인 뉴스를 은폐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사회 분위기도 힘있는 사람들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압박할 수 있는 수평사회로 바뀌고 있다. 국가나 기업의 리더들이 요즘처럼 국민이나 직원들의 ‘눈치’를 보는 시대도 전례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수나 잘못을 예방하는 일만큼 효과적인 사후 대응 노력도 중요하다. 최근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채 문제가 한국 사회의 이슈가 됐다. 이 문제는 한국 리더의 자질론으로 번졌고, 행정고시 개편 안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이 사건이 주는 교훈도 적지 않다. 만약 당신이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면 어떻게 처신했어야 할까. 특채 과정에 부정이 개입되었을 수도 있고, 절차는 정상적이었으나 여론의 오해를 받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이번 호에서는 유사한 가상 시나리오를 통해 위기관리의 교훈을 살펴보자.
 
가상 시나리오:당신은 한 나라의 행정부 A부처를 이끄는 수장이다. 얼마 전 당신의 자녀가 A부처에 특별 채용됐다. 당신이 인사 담당자들에게 특별한 부탁을 한 적은 없다. 오히려 “내 딸이니까 더 엄격하게 하라”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어느 날 오후 당신은 갑작스러운 보고를 받았다. 자녀의 특채 문제와 관련한 비리 의혹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당황해서 대책을 논의하는 사이 인터넷에서는 특채 관련 비리 의혹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네티즌 사이에 엄청난 속도로 퍼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온갖 비난 댓글을 달기 시작한다.
 
1)이슈를 여론의 입장에서 정의하라
상황이 이쯤 되면 누구나 엄청난 혼동 속에 어쩔 줄 모르게 된다. 비난의 화살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상황에서 침착하기란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는 데 급급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위기관리는 꼬여들기 시작한다. 위기관리란 여론의 입장에서 이슈를 파악하고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절차상에는 하자가 없다’ ‘오히려 장관 자녀이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심사했다’ ‘능력이 있는 인재가 단지 누구의 자녀라는 이유로 응시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냐’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반면 여론의 반응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절차 같은 것은 어떻게든 짜 맞췄을 것이다’ ‘장관에게 보고하는데 자격이 안 되는 자녀를 봐줬다고 하겠느냐. 그 말을 믿은 게 잘못이다’ ‘장관이 자기 딸을 특별 채용에 응모하게 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라는 반응이 나오기 십상이다. 결국 이슈의 핵심은 규정이나 절차가 아닌 ‘리더의 행동’과 ‘도덕적 인식’, 즉 ‘리더의 염치’로 쏠린다. 장관이 자신의 딸을 특별 채용에 응시하게 한 것 자체가 염치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응하는 쪽이 이슈를 ‘문제없음’으로 정의하고 초기 대응을 한다면 여론과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고 상황도 꼬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여론이 제기한 핵심적인 이슈인 도덕적 책임에 대한 명확한 해명과 비리 의혹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을 분리해 사안을 인식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2)이슈의 비중은 ‘큰 맥락’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평가하라
똑같은 실수나 잘못이 시기나 상황에 따라 더 크게 부각될 수도 있고 큰 문제없이 지나갈 수도 있다. 이슈의 크기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큰 맥락 속에서 상대적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가 높고 유사한 이슈가 진행되는 상황이라면 제시된 가상 시나리오와 같은 사건의 파급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최근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유도 공정성에 대한 사회의 기대치가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까지 나서 ‘공정한 사회’를 강조하고, 특채비율을 확대하는 정부의 행정고시 개편 안과 같은 정책적 이슈까지 맞물려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상 시나리오와 같은 사안의 폭발성은 특채 과정의 편법과 불법이 없더라도 클 수밖에 없다. 만약 이 과정에서 특혜 등의 부정이 개입됐다면 이슈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큰 그림 안에서 상황을 판단하는 노력이 중요한 이유다.
 
3)위기 극복책은 실수나 잘못을 사과하는 것에 ‘플러스 알파’ 있어야
위기 대응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결정이 바로 해결책이나 보상책의 제시다. 많은 리더들이 초기에 비난 여론을 ‘말도 안 되는 억측’으로 단정했다가 여론이 나빠지면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것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사퇴’ 등의 최종 수순을 밟게 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대응은 여론에 떠밀려 사건을 봉합하려고 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하기 십상이다.
 
만약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로 사건이 발생했다면, 해결책이나 보상책은 실수나 잘못 크기의 절대 값에 ‘플러스 알파’를 더해야 한다. 들켰으니까 잘못한 것만 원상복구 시키겠다는 발상은 오히려 여론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채 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그 행위 자체가 도덕적 책임을 부를 수 있다면 채용을 취소하는 선에서 마무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 불법과 편법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게 바람직하다.
 
4)내부자끼리 위기 상황 판단은 위험하다
위기 상황에서 이슈를 정의하거나 비중을 판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위기를 초래한 당사자나 이해관계가 얽힌 내부자들은 상황을 객관화해서 바라보기 어렵다. 위기관리 대책을 논의하고 의사 결정을 할 때는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의 조언을 듣는 과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즉, 솔직하고 냉정하게 현재의 여론 상황을 기반으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과 논의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수장에게 ‘여론을 고려할 때 사퇴하는 게 낫다’는 식의 의견을 내놓을 부하 직원은 많지 않다. 상하관계나 이해관계가 얽혔을 때에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 판단 과정에서 법률 자문을 받고 변호사와 상담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위기 상황 대응에 대한 법적 검토를 통해 효과적인 대응책을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종 상황 판단을 법률적 검토와 조언에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변호사는 법적인 측면에서 고객을 보호하는 법률 전문가이지 여론을 고려하고 조언하는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법적 보호에 초점을 맞춰 대책을 논의하다보면 대부분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하는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론 법적 책임이 없더라도 여론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 사과를 해야 할 때도 있다. 따라서 위기 상황에서는 법과 여론의 ‘균형점’이 어디인지를 짚어가며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위기관리, 특히, 실수나 잘못이 저질러진 상황에서의 위기관리란 벌어진 상황을 되돌리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일을 거꾸로 되돌리려 하다보면 거짓말을 하고 사안을 부인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의 위기관리는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정의하고, 비중을 판단하며, 리더로서의 해결책을 먼저 제시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
 
김 호 더랩에이치 대표 hoh.kim@thelabh.com
필자는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마켓대에서 PR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KAIST 문화기술 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위기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연구 중이다. 글로벌 PR 컨설팅사인 에델만 한국 대표를 거쳐 현재 더랩에이치 대표로 있으면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에게 위기관리 노하우를 전하는 코칭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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