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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구매관리 석학, 한찬기 미 볼링그린대 석좌교수

구매를 예술의 경지에 이르게 하라

DBR | 4호 (2008년 3월 Issue 1)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려면 구매관리 책임자가 최고경영자만큼 중요하다는 인식부터 갖춰야 합니다. 제조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구매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수익 증대의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회사 내 최고 인재를 구매 분야에 대거 배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방위적 원가절감 경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날로 치솟고 있는 지금, 한국 기업들의 화두가 구매관리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 볼링그린대 한찬기 석좌교수가 그 주인공. 한 교수는 원가절감이 제품 경쟁의 우위를 좌우하는 시대에 가장 큰 원가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부문이 바로 구매관리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기업 생산비용의 대략 50%가 재료비, 인건비가 15%, 고정비가 35% 정도입니다. 반면 한국 기업은 재료비가 65∼70%에 달합니다. 인건비는 많아야 12% 정도구요. 이것만 봐도 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자보다 구매관리에 더 매진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최근 고유가, 국제 식품가격 상승으로 구매 혁신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ROI(투하자본 대비 수익률) 측면에서도 가장 큰 원가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구매입니다.”
 
한 교수가 구매관리의 중요성을 주창하는 것은 그의 이력과도 무관치 않다. 교수는 연세대를 졸업한 1964년 도미,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경제가 근대화를 이루기 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에게 장학금을 대준 곳이 바로 전미구매관리자협회(NAPM)다.
전미구매관리자협회(NAPM)는 미국 내 최고 경제단체 중 하나인 공급관리자협회(ISM)의 전신이다. ISM은 1915년 NAPM로 출범해 ISM로 간판을 바꿨다. ISM은 미국 전체를 10개 지역으로 나눠 관리하는데, 이중 시카고 지회만이 여전히 예전 명칭인 NAPM을 고수하고 있다.
 
시카고 구매관리자협회는 일리노이, 인디애나, 미시간 소재 제조업체 구매관리자들을 상대로 매달 조사를 실시, 시카고 구매관리자지수(PMI)란 제조업 경기지표를 내놓는다. 시카고 지회가 관할하는 미국 중부 지역에는 GM, 포드를 비롯한 미국 대표 제조업체의 공장들이 집중적으로 몰려있다. 때문에 시카고 PMI는 미국 제조업 경기의 척도인 ISM 제조업 지수의 선행지표 역할도 한다. 미국 경제와 산업에서 차지하는 구매 분야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구매 인재 육성의 첫 걸음은 입도선매
이런 이력 탓에 그는 오래 전부터 미국 대형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구매 관리자를 키워내고 기업 가치 향상에 이용하는지를 몸소 체득해왔다. 볼링그린에서 그가 길러낸 제자들 역시 제너럴 일렉트릭(GE), IBM 등 미국 대표 기업에서 구매담당자로 활약하고 있다. 심지어 시카고대에서 MBA를 마친 그의 차남도 프록터 앤 갬블(P&G)의 구매담당자로 근무한 바 있다.
 
“구매는 워낙 단위가 커서 1%만 절약해도 다른 분야보다 몇 배의 원가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P&G에 입사한 아들에게 네가 한 해 주무르는 예산이 얼마냐고 하니 2800만 달러라고 하더군요. 웬만한 글로벌 대기업의 경우 아무리 작아도 구매 예산이 1억 달러가 넘습니다. 1%만 절약해도 100만 달러죠. 100만 달러의 원가절감과 동등한 효과를 판매 분야에서 거두려면 최소한 1000만 달러 이상의 추가 매출을 내야 할 겁니다. 임팩트가 가장 큰 분야에 최고의 인재들을 배치하는 것은 경영학의 기본 아닙니까.”
 
한찬기 교수는 SCM(Supply Chain Management·공급망관리) 개념의 발달로 한국 기업들이 구매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여전히 최고 인재를 재무나 연구개발(R&D) 등 특정 분야에만 심어두고 있다고 우려했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휴대폰업체 노키아를 이기기 위해서는 구매관리부터 대대적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구매 분야는 최고경영자나 오너의 심복이 가서 비자금이나 만드는 곳이라는 옛날식 편견이 아직 한국 사회에 남아있습니다. 구매 관리자의 역할을 가정 내 주부와 비교해 폄훼하는 사람들도 많구요. ‘가정 주부가 훈련을 잘 받거나 경제학 지식이 뛰어나서 가정 살림을 책임지나. 그런 거야 맡겨 놓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구매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하면 안 됩니다. 주무르는 돈이 많으니 부정부패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조직 내에서 구매 전문 인재를 안 키우는 풍토도 문제입니다.”
 
노키아의 경우 세계 최대 휴대전화업체라는 지위를 바탕으로 독보적인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던 것처럼 대기업이 원가절감에 더 유리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한 교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형업체가 유리하긴 하지만 중소기업이라고 구매 분야에서 성과를 올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 그 예로 혼다자동차의 예를 들었다.
 
“일본 자동차업체가 미국에 진출한 초기인 1980년대부터 혼다는 미국 유명 경영대 졸업생을 구매 전문가로 키우기 위해 대량으로 인재를 스카우트했습니다. 구매 분야에서 이름난 미시간 주립대(MSU), 애리조나대, 볼링그린대 등에 가서 졸업생의 대부분을 싹쓸이하다시피 했죠. 구매 인재의 입도선매인 셈입니다. 당시 혼다가 지금처럼 대기업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매 분야 최고 인재를 발탁하겠다는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납품업체 간 경쟁 유도하되 윈윈 정신은 가져야
기업들이 당장 활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구매 전략을 알려달라고 하자 그는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공급업체에 압력을 가해 납품 단가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이해 당사자 간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서 별로 개별 구매하던 품목을 통합해 구매하거나, 주문 단위를 천 개에서 만 개로 늘리고, 단기 공급계약을 장기로 돌리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말고 새로운 납품업체를 내가 만들어 내겠다는 정도의 열의가 필요합니다. 납품업체가 여러 곳이라면 이들 간 경쟁을 유도하면 되지만 대체 업체가 없을 경우 경쟁 부품업체가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유도해야죠. 부품을 해체해 보세요. 나사 몇 개만 바꿔도 상당히 달라질 겁니다.”
 
하지만 납품업체 간 경쟁 유도를 하청업체 쥐어짜기로 잘못 이해해서는 곤란하다며 도요타의 예를 들었다. “도요타가 한 부품업체에게 현재 100원인 제품단가를 90원으로 낮추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부품업체가 이 목표원가에 도달하면 도요타는 이로 인해 발생한 이익을 반반씩 나눠 실질적인 제품단가를 95원에 맞춥니다. 이것이 바로 상생입니다. 추가로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서라도 부품업체와 성과를 공유하는 문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교수는 인터뷰 마지막까지 구매 부문 인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이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했을 때도 구매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바로 ‘구매를 예술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라’였죠.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마누라 자식빼고 다 바꿔라’만 기억하더군요. 이 회장의 말대로 구매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입니다. 대인관계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죠. 굉장히 민감하고 정량화하기 어려운 구매 분야에서 성과를 내려면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인재를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결국 CEO들이 구매에 대해 어떤 인식을 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한찬기 교수는 연세대 상대를 졸업한 후 1964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70년부터 볼링그린대에서 30년간 교수 생활을 했다. 은퇴 후 연세대를 비롯한 한국 여러 대학에서 방문교수 형식으로 생산관리 분야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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