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결이 좋아지는 샴푸, 모발 건강에 좋은 샴푸, 두피 건강을 향상시켜주는 샴푸, 머리숱이 많아지는 샴푸, 지성 두피에 맞는 샴푸, 비듬 치료 샴푸, 탈모 방지 샴푸. 한방 샴푸, 천연 샴푸, 저자극성 샴푸….’
샴푸 하나만 해도 이렇게 종류도, 기능도 많다. 여기에 다양한 종류의 향까지 더해지면 그 가짓수는 헤아릴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과연 어떤 기능에 어떤 향을 넣어 팔아야 ‘베스트셀러’가 될까? 모든 기능을 다 넣어버리면 소비자들이 좋아할까? 그런다고 해서 마냥 좋은 건 아니다. 머릿결이 부드러워지는 샴푸는 뻣뻣한 머릿결을 가진 사람에게는 좋겠지만, 파마를 한 주부들은 애써 만진 머리가 풀어지니 좋을 리 없다. 머리숱이 늘어나는 샴푸도 머리숱이 많은 사람에게는 매력 없는 상품이다. 게다가 모든 기능을 다 넣으면 저자극성 샴푸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독한 샴푸’가 된다.
이쯤 되면 샴푸회사의 ‘아이디어맨’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을지도 모른다. 이름 하여 ‘골라 쓰는 재미가 있는 샴푸’. 무향 무색의 투명한 플레인 기본 샴푸(plain base)에 자신이 원하는 기능과 향을 첨가할 수 있는 재료를 앰풀에 담아 판매한다. 아빠, 엄마, 오빠, 동생이 자신의 모발 상태와 요구에 맞게 각자 취향에 맞는 샴푸를 만들어 쓸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다. 연구원들은 앰풀에 담긴 첨가물이 어떻게 기본 샴푸에 골고루 섞일 수 있을지 온갖 기술을 개발한다.
이 제품은 성공할까? 이런 제품이 시장에 이미 나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제품이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다. 사람들은 샴푸를 쓰는 데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들 다양한 선택지를 갖춰놓고 ‘소비자가 골라 쓰는 제품’을 내놓으면 소비자 효용이 높아지고, 인기도 끌 거라고 생각한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배스킨라빈스 31’이 그렇고, 요거트의 토핑을 고를 수 있는 ‘레드망고’도 그렇다. 다양한 맛과 향의 캡슐 커피를 골라 마실 수 있는 ‘네스프레소 커피 머신’도 비슷한 사례다. 물론 이 제품들은 모두 성공했고 인기를 끌었다.
그럼 사람들은 이 제품들을 사용하면서 ‘골라 먹는 재미’를 만끽할까? 그렇지는 않다. 배스킨라빈스에 간 소비자들은 대부분 갈 때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두세 개(필자는 월넛과 피스타치오)만 먹는다. (처음에는 고민을 하긴 하지만) 매번 다른 걸 먹어보며 골라 먹는 재미를 만끽하는 소비자는 그리 많지 않다. 레드망고도 마찬가지다. 매번 다른 토핑을 얹거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고객은 많지 않다. 고객들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가장 적절한 배합을 빠르게 찾아낸다. 네스프레소도 예외는 아니다. 결국 항상 마시는 커피만 마시지 않는가!
이런 제품이 인기를 끄는 진짜 이유는 아이스크림이 맛있고, 커피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레퍼토리는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뿐이다. 매번 달라지는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다. 사람의 욕구와 스타일은 생각보다 안정적이고 일정하기 때문이다.
배스킨라빈스, 레드망고, 네스프레소 제품이 강조하는 ‘골라 먹는 재미’란 일종의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다양한 제품이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다. 아이스크림과 커피가 맛이 없는데도 골라 먹는 재미만으로 그 제품들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인간의 선택에 대한 특징을 잘 파악해 절묘하게 성공을 거둔 케이스가 ‘네이버’와 ‘다음’이다. 실패한 사례로는 한국의 ‘구글’이 꼽힌다. 구글의 초기 화면에는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화면에 검색창만 하나 달려 있다. 대신 자신이 초기 화면을 자유롭게 꾸밀 수 있는 기능과 아이템들이 많다. 원하기만 하면 자신의 취향에 맞게 초기 화면을 구성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글이 디폴트(default)로 제공한 깨끗한 초기 화면만 사용한다(물론 나는 구글의 초기 화면을 내 취향에 맞게 수정해 쓰고 있지만, 네이버만은 못하다).
반면 네이버의 초기 화면은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의 특징인 다양한 정보와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자연스레 볼거리가 많은 네이버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초기 화면의 구성을 바꿀 수도 있지만, 대부분 초기 화면 그대로 이용한다(네이버는 지난해 말 원하는 신문사의 뉴스를 고를 수 있도록 ‘오픈 캐스트’ 방식을 도입했지만, 사람들은 그마저도 귀찮아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게 수정하거나 골라서 사용할 수 있더라도 대개 주어진 디폴트대로 사용한다. 즉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을 특별한 배려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먼저 주어진 것을 소중히 여기는 ‘초기 효과(endowment effect)’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