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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맹자를 말하다

박재희 | 40호 (2009년 9월 Issue 1)
올해 7월 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중국과 미국의 전략경제대화는 화려한 중국 고전 명구로 장식됐다. 중국 고전을 인용한 사람들이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등 중국 측 지도자가 아니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장관들이었다는 점에서 특히 이목을 끌었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때 미국이 중국을 보는 시선은 공산당 1당 독재, 인권 탄압, 불법 복제 등에 머물렀다. 이제는 확실히 달라졌다. 미국과 함께 나아갈 동반자 관계임을 인정했다.
 
‘산에 난 조그만 오솔길도 갑자기 사람이 모여 이용하기 시작하면 큰길로 변한다(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그러나 잠시라도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으면 다시 풀로 가득 덮여 없어지고 만다(爲間不用則茅塞之矣).’
 
오바마 대통령은 <맹자(孟子)>의 ‘진심(盡心)’ 하편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사람도 자주 만나야 정이 드는 법이다. 왕래가 드물면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 역시 자주 왕래하고 상호 소통의 큰길을 만들자는 뜻으로 <맹자>를 통해 중국 대표단에 자신의 뜻을 전달한 것이다.
 
의미심장한 대목은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하지 않은 <맹자> 원문의 마지막 한 구절이다. 이는 ‘그런데 지금 그대의 마음은 풀로 뒤덮여 무성하구나(今茅塞子之心矣)!’라는 구절이다. 해석하기에 따라 중국이 기분 나빠 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맹자가 이 말을 한 것은 자신의 제자 고자(高子)를 꾸짖기 위해서였다. 듣기에 따라서는 ‘나는 자주 왕래를 하여 길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대 마음은 풀로 뒤덮여 나와 왕래할 적극적인 의사가 없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
 
상대방에게 익숙한 고전을 인용해 내 생각과 의도를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은 상대 문화에 대한 존중의 뜻을 전하는 외교적 수사법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태산도 옮길 수 있다(人心齊 泰山移)’는 구어체 표현으로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티머시 가이스너 재무장관은 중국어로 <손자병법>의 한 구절인 ‘풍우동주(風雨同舟)’를 인용해 중국 지도자를 감동시켰다. ‘비바람이 불어도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무사히 건널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 고전의 향연으로 끝난 중·미 전략경제대화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지도자조차도 중국 고전 몇 구절쯤은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도 예외는 아니리라.
 
한편으로 중·미 전략경제대화는 급변하는 세상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미국 월가의 투자은행이 문을 닫고, 잘나가던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파산 선고를 받았다. 이제는 미국이 혼자서 세계를 끌고 가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중국은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자 미국 제품을 만드는 공장이며, 미국은 중국의 최대 소비 시장이다. 두 나라는 이제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중국 인민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미국과의 외교에서 ‘구동존이(求同存異)’를 외쳤다. 서로 같은 것을 추구하되, 서로 다른 의견은 담아놓았다가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동반자로서 중국과 미국의 상호 협력 철학을 설파한 외교 원칙이 현실이 되고 있다.
 
동양과 서양의 경계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 서양은 물질이고, 동양은 정신이라는 근대 오리엔탈리즘의 이분법은 더는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과학과 철학, 예술과 경제가 만나고 동양과 서양, 좌익과 우익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만남의 시대에 어느 하나만 옳다고 고집하다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조직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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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재희

    박재희taoy2k@empal.com

    - (현)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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