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은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이 터지면서 처음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계약 초기 한화는 산업은행에 이행보증금 3150억 원을 지급한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조선업계 상황이 급격히 변하면서 한화가 인수전에서 발을 뺄 것을 우려한 산업은행은 한화에 본계약 체결을 종용하게 되고 한화는 실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본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며 인수전에서 발을 뺀다. 이후 이행보증금 3150억 원에 대한 소송이 진행되는데 1·2심에서는 한화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데 대한 책임을 물어 산업은행의 손을 들어준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 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가 터지면서 분위기는 급반전한다.
편집자주 최종학 서울대 교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계학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회계를 통해 본 세상’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회계를 받아들이고 비즈니스에 잘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지난 2008년, KDB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은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던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겠다고 시장에 매물로 내놨다. 포스코, GS, 현대중공업과 치열한 경합 끝에 한화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인수대금은 6조3000억 원이다. 3주간 실사를 거친 후 발견된 사항에 따라 3% 범위 내에서 가격을 조정하고, 그 후 2009년 3월까지 본계약을 체결하는 것과 동시에 인수대금을 납부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소식이 발표되자 한화그룹 전 계열사의 주가가 동반 하락한다. 시장에서는 한화의 입찰 전 승리가 ‘승자의 저주’에 해당한다면서 한화그룹의 형편으로 볼 때 인수대금이 너무 커서 한화그룹의 경영 상황이 앞으로 악화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양해각서를 체결하기 직전인 2008년 가을부터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경제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한화가 6조3000억 원의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각할 예정이었던 계열사 주식이나 부동산의 가치는 급락하고, 한화에 돈을 빌려주기로 했던 금융사들은 훨씬 더 높은 이자율을 요구했다. 대우조선해양도 신규 수주가 급감한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은행은 한화에 ‘2008년 12월29일까지 본계약을 체결하고 실사 여부와 관계없이 2009년 3월 말까지 모든 대금을 납부하라’는 양해각서 조건의 변경을 강력히 요청해서 이를 관철한다. 원래 양해각서 초안에 있던 ‘실사 후 본계약 체결’이라는 내용을 바꾼 것이다. 이 조항을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양해각서를 체결하지 않겠다는 산업은행의 압박에 한화가 마지못해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한화와 산업은행의 갈등과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포기양해각서에 따라 한화는 우선 계약금의 5%로 책정된 이행보증금 3150억 원을 납부했다. 이 계약금은 위약벌(계약을 어기는 것에 대한 벌)이라고 계약서에 쓰여 있었다. 만약 한화 측의 귀책 사유로 최종 계약이 무산되면 산업은행이 이행보증금을 몰취하고, 그 반대로 한화 측에 책임이 없는 사유로 계약이 무산되면 한화가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다고 돼 있었다. 만약 양해각서가 해지될 경우에는 이 금액을 제외한 기타의 손해배상이나 원상회복 등 일체의 다른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도 명시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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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화는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이행보증금을 납부한 후에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실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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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각 위로금 지급 등을 요구한 노조가 한화 측의 회사 출입을 막고 자료 제공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도 한화의 실사를 돕기 위한 별도의 행동을 취하지 않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한화는 계약 조건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한다.
(1) 매각 대금의 분할 납부, (2) 산업은행 보유 대우조선해양 주식의 전부 매각이 아닌 분할 매각, (3) 확인 실사 후 본계약 체결 등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이 요청을 거부한다. 그러자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했고 산업은행은 이행보증금 3150억 원을 몰취했다. 한화는 공돈만 날린 셈이다. 그렇지만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한화그룹 계열사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한다. 자본시장에서는 오히려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한 것을 호재로 받아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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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한화는 산업은행에 소송을 제기한다. 세계금융위기가 경영 환경에 많은 영향을 미쳐 대우조선해양의 가치가 급락한 것은 계약 내용에 중대한 변경을 일으키는 사건에 해당하며 부실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반대와 산업은행의 비협조로 실사를 못한 만큼 계약조건을 이행하지 못한 것이 한화의 책임만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실사는 M&A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하는 절차인데, 이를 수행하지 못했으니 M&A 절차를 완료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즉 한화가 인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실사를 못해서 인수 절차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행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소송했다.
그러나 이 소송에 대해 2011년 1심, 그리고 2012년 2심 법원은 모두 원고(한화) 측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화가 법정 다툼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법원의 판단 근거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치열한 소송전과 법원의 판단 근거첫째, 한화는 대우조선해양이 우발채무나 부실의 발생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실사를 꼭 해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상장기업으로서 외부 감사를 받을 뿐만 아니라 산업은행이 대주주로서 대우조선해양에 직원을 파견해 엄격히 감독하고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므로 숨겨진 우발채무나 부실이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따라서 실사의 실익이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