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maly
Article at a Glance
지금의 이론으로는 명확히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일어나는 현상들이 있다. 이러한 ‘이상현상(anomaly)’들은 경영학계에서도 여럿 관측된다. ‘발생액 이상현상’은 그중 비교적 잘 알려져 있고, 또 투자업계에서도 실제 활용되고 있는 재무금융 분야의 이상현상이다. 당기순이익에서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을 차감한 값인 ‘발생액’이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일수록 투자수익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 방법을 활용할 때의 가장 큰 장점은 재무제표상의 몇 가지 정보만으로도 효과적인 투자전략을 쉽고 빠르게 수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편집자주
DBR이 ‘이상 현상(Anomaly)’ 코너를 마련해 ‘비정상적’이고 ‘비합리적’인 새로운 방법들이 기존의 익숙한 이론을 대체하는 현상들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속에 숨겨진 합리적 이유도 논합니다. 비교적 많은 실증 연구가 진행된 재무·금융 분야로 시리즈를 시작하고, 전략, 조직, 마케팅 분야에서의 이상 현상들로 확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이 결정됐다. 과연 그가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이 과거 그의 메달 가능성과 색깔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됐던 용어가 ‘돌핀킥’이다. 돌핀킥은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딴 선수인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가 잘 쓰는 기술로 알려져 있다. 스타트할 때나 턴 할 때 물 속 깊이 잠영하면서 유연하고 빠른 돌핀킥으로 남보다 쉽게 멀리 나가는 게 그의 비결이다. 박태환도 이 돌핀킥을 더 잘 익히려 부단히 노력했다. 펠프스가 돌핀킥으로 처음 돌풍을 일으켰을 때만 해도 그의 돌핀킥은 ‘비정상’으로 여겨졌다. 미국 수영 대표팀의 코치조차도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등장 후 이제는 누가 돌핀킥을 잘하느냐에 따라 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수영계의 ‘뉴노멀’처럼 됐다. 재무금융 분야에도 돌핀킥처럼 쉽고 빠르게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들이 알려져 있다. 그중 잘 알려진 기법이 ‘발생액 이상현상(accrual anomaly)’다. 발생액 이상현상은 발생액이 상대적으로 큰 회사의 주식을 팔고 발생액이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의 주식을 사면 초과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개념이다. 발생액은 쉽게 설명하자면 당기순이익에서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을 차감한 값이다.
주식 A와 B가 있다. 그중 한 종목에만 투자할 수 있다면 어떻게 골라야 할까. 워런 버핏의 투자법으로 유명해진 가치투자 방법을 따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당기순이익에 비해 회사가치의 비율이 적어 앞으로 ‘안정적으로 성장할’ 기업을 골라 낸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연구자들처럼 자산가격결정모델(Asset Pricing Model)과 같은 각종 연구모형들을 적용해 적정 주가를 도출해볼 것인가. 이런 방법을 쓰기 위해서는 기업과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상당한 계량경제학적, 통계학적 지식이 요구된다.
발생액 이상현상은 이와 반대로 비교적 간단하게 재무제표상의 몇 개 숫자들만을 비교해서 투자 판단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1996년 버클리대의 슬론(Sloan) 교수가 체계적 연구를 통해 ‘발생액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들의 미래 주식 수익률이 유의하게 높은 현상’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최근 한국에서도 연구들이 이뤄졌다. 2015년 김영준 한국외국어대 교수 등은 발생액에 따라 십분위 포트폴리오를 만들었을 때 발생액이 가장 작은 분위의 포트폴리오가 가장 높은 수익률을 가져온다고 발표했다. 발생액이 가장 작은 분위의 포트폴리오를 매수하고, 발생액이 가장 큰 분위의 포트폴리오를 매도하는 방식을 적용했을 때 17년간 한 번의 손실도 발생하지 않았다.
뮤추얼펀드나 헤지펀드 등 실제 투자 업계에서의 발생액 이상현상에 대한 관심은 더 뜨겁다. 무엇보다 분석 방법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계량경제학적, 통계학적 학식이 없이도 발생액에 근거한 투자 전략을 간편하게 만들 수 있다. 발생액 측정에 필요한 정보를 구하기도 쉽다.
발생액과 주가와의 인과관계에 대한 명확한 이론적 설명은 아직 없다. 발생액이 크다면 당기순이익이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보다 크게 계상됐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이익이 과다하게 계상돼 투자자들이 미래 이익의 지속가능성을 예측할 때 착오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슬론 교수는 시장참여자들이 이익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한 상세한 분석 없이 재무제표상의 이익만 살펴보려 하는 행동이 그 원인일 수 있다고 했다.
일부 학자들은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자산가격결정모형이 주식에 포함된 위험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고, 따라서 마치 발생액 이상현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관측된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발생액 이상현상은 연구자들이 모르는 위험요소와 발생액 간의 상관관계 때문에 일어나고, 초과수익은 해당 위험요소에 대한 보상이 된다.
자연계나 과학계에서는 분명한 원인을 알 수 없는 현상들이 비일비재하다. 많은 경우 아직 기존의 이론으로 명확하게 설명하거나 예측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경영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발생액 이상현상처럼 지금의 이론으로는 명쾌하게 설명이 안 되지만 분명히 나타나는 이상치들이 학계에서도 여럿 관측되고 있다. 실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업계를 살펴봐도,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언더독이 주류로 올라서는 일이 놀랍지 않은 세상이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강형구 한양대 경영대학 파이낸스 경영학과 교수 hyoungkang@hanyang.ac.kr 한인재 DBR 경영교육센터장 epici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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