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를 통해 본 세상

3조원 더 준 한화의 大生 인수가 헐값?

130호 (2013년 6월 Issue 1)

 

 

 

 

편집자주

최종학 서울대 교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계학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회계를 통해 본 세상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회계를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비즈니스에 잘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지난 2008 1024일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그룹을 선정했다. 이로써 포스코, GS, 한화, 현대중공업 등이 대우조선해양을 둘러싸고 벌였던 치열한 경쟁은 한화의 승리로 끝났다. 마지막 순간까지 유력한 후보였던 포스코와 GS그룹 컨소시엄이 입찰가격을 둘러싸고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고1  이로 인해 최종 가격을 제출하지 못해 입찰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한화는 어부지리로 얻은 승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시장은 대우조선해양 입찰전에 뛰어든 4개 기업을 두고 2(포스코, GS) 2(한화, 현대중공업)으로 분류해왔다.

 

산업은행은 입찰가격이나 입찰자의 경영 능력, 인수 후 발전 계획과 시너지, 자금조달 계획, 노사관계 계획 등 여러 기준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한화그룹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정확한 입찰가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분 50.2%를 인수하는 대금은 대략 63000억 원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한 후 대우조선해양을 또 인수하게 되면 한화는 단번에 재계 순위 8위로 도약할 수 있다.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8년 들어 일부 정치권이나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전체가 아닌 소수의) 몇몇 언론들은 부도덕한 기업 한화에 대우조선해양 인수자격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2002년 한화가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로부터 대한생명을 인수하기 위해 회계분식을 했고 대한생명 인수자격을 갖추기 위해 맥쿼리증권과 이면계약을 맺었으며 그 결과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한생명을 헐값에 인수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화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계열사였던 충청은행과 한화종금이 경영부실로 모두 3조 원의 공적자금을 받았기 때문에 환란의 책임이 있는 기업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렇게 부도덕한 기업 한화에는 인수자격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다.

 

필자는 2008년 한 해 동안 많은 기업 관계자들이 포스코나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바를 들을 기회가 많았다. 그중 하나는 철강 공급이 수요에 비해 매우 부족한 상황인데 만약 포스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경쟁업체들에 공급하는 철강 규모를 줄여 조선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는 현대가 이미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 대우조선해양까지 인수하면 조선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는 독점기업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사실 두 주장 모두 나름대로 설득력이 충분하다. 대우조선해양 매각과 아무 관계가 없는 필자가 수차례에 걸쳐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면 인수 명분을 얻기 위한 선전전이 매우 치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GS그룹이나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서는 안 된다고 기업 관계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반면 일반 기업인들의 정서와는 달리 일부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소수 언론에서 한화그룹의 도덕성 문제만 집요하게 언급하며 한화 이외의 기업에 대우조선해양을 팔아야 한다는 식으로 유도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흥미롭다.

 

營業權 회계처리에 대한 논란

 

한화에 대한 주장들이 사실인지 살펴보자. 먼저 대한생명 인수 직전 부의 영업권 회계처리를 하면서 회계분식을 했다는 주장을 알아보자. 대한생명 인수를 위해 구성된 컨소시엄에 한화그룹은 한화석유화학, 한화종합화학, 한화유통, 한화증권의 4개 회사를 앞세워 참여했다. 이 중 한화석유화학은 한화유통의 주식을, 한화유통은 ㈜한화의 주식을 1999년과 2000년에 걸쳐 매입했다.

 

당시 사용된 회계기준에 따르면 주식 매입가가 매입대상 기업의 공정시장가치를 초과할 경우 이를 영업권(營業權·goodwill)이라고 부르며 자산으로 분류한다. 만약 반대로 매입가가 매입대상 기업의 공정시장가치보다 낮으면 이를 부(·negative)의 영업권이라고 칭한다. 자산으로 분류된 영업권은 20년 이내의 합리적인 기간 동안 균등하게 상각돼 비용으로 처리되고 부의 영업권 역시 20년 이내의 합리적인 기간 동안 균등하게 환입돼 이익으로 인식된다.

 

한화석유화학과 한화유통은 주식 취득과 관련해 발생한 부의 영업권을 일시에 환입해 당기 이익으로 인식했다. 그 금액은 두 기업을 합해 1999년에 약 3000억 원, 2000년에 약 1500억 원 정도다. 이 정도 금액을 모두 해당년도 이익으로 계산했으므로 두 기업은 모두 당기순이익을 크게 보고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양호한 신용등급을 얻었고 대한생명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좀 더 저렴한 비용으로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뒤 금융감독원에서는 2001년 회계감리를 통해 한화그룹 3개 계열사 이외에 동부건설, 동부제강, 동부화재해상보험, 동국제강, SK케미칼 등 총 8개 기업이 부의 영업권을 일시에 환입한 회계처리가 분식회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전문 용어로는감리지적을 했다고 한다. 이런 판단의 논거는 1년이라는 기간이 회계기준에서 정한합리적인 기간보다 매우 짧다는 데 있다.

 

해당 기업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이 같은 처리방법이 해당년도 이익을 상당히 늘려 보고하는 방법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분식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애매하다는 반론이다. 회계기준에는 20년 이내의 합리적인 기간 동안 부의 영업권을 환입한다고만 규정돼 있을 뿐 합리적인 기간이 무엇이며 얼마로 계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기업들은 더욱이 이런 회계처리 방법이 회계법인의 승인을 받고 금융감독원에 문의해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까지 받은 결과인데 사후에 말을 바꿔 회계기준 위배라고 지적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분식회계를 했다면 이런 회계처리 사실을 숨겼어야 했는데 1년에 환입했다는 모든 회계처리 내용이 회계보고서에 자세히 공시돼 있으므로 이를 분식회계로 지적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도 설명했다.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증권선물위원회에서는 해당 기업과 기업들을 감사한 회계법인들에 징계 결정을 내렸다.2

 

부의 영업권에 대한 다른 기업들의 회계처리

 

사실 증권선물위원회의 당시 결정은 논리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김효진 전주대 교수와 윤순석 전남대 교수의 연구3 에 따르면 부의 영업권을 기록하는 회계처리를 한 기업은 2000 60, 2001 38개에 이르며 2002년에도 31개나 된다. 분석기간인 2000년에서 2006년까지 부의 영업권을 기록한 것으로 파악되는 기업 145개 가운데 1년 만에 모든 부의 영업권을 이익으로 회계처리한 기업은 18(12.4%)에 이른다. 그런데 금융감독원은 2001년 단 한 차례만 부의 영업권을 1년 만에 모두 환입한 8개 기업에 대해 분식회계라고 지적했다. 다른 기업에 대해서는 한 번도 지적한 적이 없다. 2001년 이후에도 많은 기업들이 동일한 방법을 계속 사용했는데도 말이다. 또한 2년으로 나눠 절반씩 이익으로 처리한 기업이 20, 3년으로 나눠 처리한 기업 역시 20개나 되는데 1년에 처리하는 방법이 회계기준 위반이라면 2년이나 3년에 나눠 처리하는 것은 왜 회계기준 위반이 아닌지도 의문이다.

 

김효진과 윤순석 교수의 연구결과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3년 이내 또는 4년 이내에 이익 처리하는 기업이 각각 42%, 55% 정도다. 즉 기업들이 사용하는 부의 영업권 환입기간은 평균 3∼4년 정도다. 당시 회계기준은 달랐지만 2011년부터 국내에 도입돼 사용되고 있는 국제회계기준(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에 따르면 부의 영업권은 해당 항목 발생연도에 즉시 이익으로 인식하도록 규정돼 있다. IFRS에 따르면 한화가 행한 방법대로 하지 않으면 분식회계가 된다. 검찰도 한화가 고의적으로 분식회계를 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이 사건에 불기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분식회계는 아닐지 모르지만 어쨌든 3개 기업이 동시에 계열사 주식을 싸게 사서 1년 만에 부의 영업권을 환입했다는 것은 계획적으로 이뤄진 일일 것이다. 따라서 이 일을 그룹 차원에서 결정하고 실행했을 것이라는 점은 거의 분명하다.

 

1999년과 2000년 당시 한화그룹은 이익을 높여 보고할 만한 강한 인센티브가 있었다. 유효 법인세율을 30%로 가정할 때 한화석유화학과 한화유통이 영업권을 1년 동안의 이익으로 회계 처리한 방법은 회계기준상 최장기간인 20년 동안 나눠 처리했을 때보다 1999∼2000년을 합한 세후 이익을 3000억 원 정도 과다 보고한 셈이다. 이후 2001년부터는 2019년까지 매년 약 157억 원씩 이익을 과소 보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화는 당시 이익을 많이 보고해서 재무제표에 나타나는 재무 상황을 우호적으로 표시하고 대한생명 인수에 필요한 자금 조달에 나섰을 것이다. 당시 정부가 대기업들에 내렸던,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라는 명령도 이행하기가 쉬워졌을 것이다.

 

그런데 전술한 것처럼 실제로 20년 동안 나눠 부의 영업권을 회계 처리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통상 기업들이 하는 것처럼 3년 정도로 나눠 이익 처리하는 방법과 비교하면 한화가 선택한 회계처리 방법은 1999년에는 이익을 1400억 원 과대 보고하고 2000년에는 차이가 없으며 2001년과 2002년은 각각 1050억 원과 350억 원씩 이익을 과소 보고한 것이다. 2003년 이후로는 양자에 차이가 없다. 따라서 한화가 대한생명을 인수한 2002 12, 또는 협상이 시작되던 2001년 말 기준으로 보면 이런 회계처리로 인한 재무제표의 차이점이 이미 상당히 사라진다.

 

더구나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2008년 쌍용건설을 인수하려다가 협상 중간에 계약금 231억 원을 날리면서까지 인수를 포기했던 동국제강도 한화처럼 1년 만에 부의 영업권을 환입하는 회계처리를 했다가 한화와 함께 분식회계로 감리지적을 받았다는 점이다. 다른 점은 한화에 대해서는 분식회계를 저지른 부도덕한 기업이니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서는 안 된다는 비난이 거셌지만 동국제강에 대해서는 부도덕한 기업이니 쌍용건설 인수를 반대한다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있었던 현대건설이나 하이닉스 매각 때 후보자로 거론된 기업들도 모두 과거 분식회계 경력이 있다. 그런데 이들 기업에도 역시 별로 비난이 없었다.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면 당시 반대 목소리가 거셌던 데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맥쿼리보험과의 이면계약 논란

 

이제 이면계약 논란을 살펴보자. 한화는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하기 위해 일본 오릭스, 호주 맥쿼리보험과 컨소시엄을 맺었다. 3사의 지분비율은 각각 63%, 30%, 7%였다.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은 총 8200억 원이나 되는 인수가액을 홀로 마련하기가 벅차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당시 매각조건에 보험업종에 속하는 회사를 우대한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화는 보험사를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맥쿼리보험을 끌어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보가 2005년 제기한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 무효 소송의 원인이 여기서 발생했다. 예보는 맥쿼리와 한화가 이면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대한생명 인수가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한화에서 맥쿼리에 대여하고 추후 맥쿼리 지분을 한화에서 인수하며 대한생명 일부 자금의 운용권을 맥쿼리에 준다는 내용으로 이면계약을 맺었다는 주장이다.

 

자금을 대여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상거래이므로 문제 삼을 수 없을 것이다. 일정시간 경과 이후의 지분인수 계약은 일종의 콜옵션으로 옵션계약은 기업의 M&A 과정에서 인수자 측이 재무적 투자자 등과 공동으로 피인수자를 인수할 때 흔히 체결된다. 예를 들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때는 풋옵션이, 두산그룹의 대우종합기계 인수에는 풋옵션과 콜옵션이 모두 사용된 바 있다(DBR 22호 회계를 통해 본 세상-4 ‘숨겨진 그림자, 풋옵션을 양지로’ 참조). 따라서 옵션과 유사한 계약이 붙어 있다고 이면계약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장이라는 느낌이 든다. 만약 그렇다면 국내에서 최근 이뤄진 거의 모든 대규모 M&A가 무효다.

 

이 사건과 비슷한 예를 들어보자. 2000년 칼라일이 한미은행을 인수할 때도 은행이 아닌 사모펀드이기 때문에 단독으로 인수할 수 없었다. 금산분리제(실제로는 은산분리제)라는 법률에 따라 은행만 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칼라일은 은행업 면허를 가진 JP모건을 설득해 두 회사가 함께 한미은행을 인수했고 이후 씨티그룹에 매각했다. 오늘날 씨티은행은 이렇게 탄생했다. 만약 한화와 맥쿼리의 계약이 불법이라면 칼라일-JP모건에 한미은행을 매각한 거래 역시 불법인 셈이다.

 

논란의 여지를 없애려면 처음부터 매각조건에콜옵션은 허용하지 않겠다거나컨소시엄에 포함된 회사는 대한생명 인수 후 일정 기간 동안 주식을 매각하지 말라는 내용을 넣었어야 한다. 예를 들어 2011년 현대건설 인수전에서는 매각조건에자금조달의 적정성 증빙이라는 조건이 포함돼 있었다. 이 조건 때문에 더 비싼 가격을 제시하고도 그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를 증명하지 못한 현대상선/엘리베이터가 현대건설을 인수하지 못한 바 있다.

 

한화와 맥쿼리의 계약과 관련해 한화가 잘못한 점은 옵션계약이 있다는 사실을 공시하지 않은 것이다. 이 내용은 경영상 중대한 사건인 만큼 계약 체결 시 공시를 통해 한화 주주들에게 알렸어야 했다. 따라서 공시 관련 규정 위반으로 한화 관계자들을 처벌했다면 설득력이 있다.4  하지만 옵션 내용을 매각 당사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은 매각조건에 규정된 바 없으므로 이를 주장할 수는 없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맥쿼리보험의 지분이 7%밖에 안 된다는 것 자체가 맥쿼리는 대한생명을 계속 경영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준다. 경영을 직접 하려고 했다면 과반수의 지분을 인수하려고 했을 것이며 과반수가 아니더라도 지분을 30%쯤 인수해 경영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했을 것이다. 7% 지분은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수준이므로 맥쿼리는 적당한 시기에 지분을 팔아 이익을 올리고 떠나겠다는 의도로 이 거래에 참여한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결국 보험사 경력이 있는 회사를 우대한다는 매각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한화가 맥쿼리를 설득하고 자금도 대여해줘서 맥쿼리가 인수에 참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맥쿼리 입장에서는 주주로서 일부 자금의 운용권을 갖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어차피 다수 외부 운용사에 자금 운용을 위탁하는데 주주에게 그 정도 혜택을 준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를 들어 포스코는 일부 지분을 보유하는 철광석이나 석탄 광산 회사들로부터 장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철광석과 석탄을 수입할 수 있는 계약을 맺고 있다. 이런 계약을 이면계약으로 보고 비난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대주주에게 특혜를 준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맥쿼리는 대주주가 아니다. 그 계약 때문에 대한생명이 손해를 본 것도 없다.

 

필자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3심까지 간 재판에서 한화그룹은 모두 승리했다. 예보는 이 문제를 국제상사중재원으로 끌고 갔지만 역시 패했다. 법원에서는 일부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불법적인 이면계약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예보도 이 사건이 소송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나 일부 정치권에서 계속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면피 목적으로 국내 문제를 국제상사중재원까지 끌고 가는 이상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나 싶다. 국제기관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리자 정치권은 2010년 국정감사를 실시하고도 모자라 감사원을 동원해서 사기업인 한화를 감사했다. 그러나 감사원조차도 2011 7월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적정 인수가격에 대한 논란

 

김대중 정부 시절에 벌어진 일을 이명박 정부 때의 국회와 감사원이 조사해서 내린 결론이니 실제로도 문제될 소지가 거의 없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수차례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유일한 사실은 당시 한화 측에서 정치인들을 만나 대한생명 인수를 도와달라고 로비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한화의 일부 관계자들은 경미한 처벌을 받았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대한생명 매각을 문제 삼은 정치권이 매각 당시 야당 측이었으며 2008년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문제 삼은 정치권도 야당 측이라는 점이다. 야당은 야당인데 정권이 바뀌었으므로 두 야당은 서로 반대된다. 서로 상대방 정권하에서 이뤄진, 또는 진행 중인 일에 부정이 개입돼 있다며 매각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자세히 조사해야 한다며 입장을 정반대로 바꾼 셈이다.

 

한화가 대한생명을 헐값에 매입했다는 주장은 필자가 볼 때 논쟁의 여지가 별로 없다. 예보는 1999 3차에 걸쳐 대한생명을 공개입찰로 매각하려 했으나 모두 무산됐다. 입찰에 참여한 회사들이 제시한 가격은 모두 예보의 기준 가격에 현저히 미달했다. 결국 조기 매각을 포기한 예보는 총 35000억 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대한생명 정상화를 시도했다.

 

그 후 2002 12월에 이르러 한화는 대한생명 지분 51% 16150억 원에 인수한다. 최초 합의한 가격 8236억 원보다 거의 두 배나 올랐다. 매각과정을 총괄한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 매각안이 상정돼 논의할 때 매각심사소위에서는 가격이 낮다며 반대했지만 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매각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여기서 8236억 원이라는 가격은 한화가 제시한 것이 아니라 예보가 매각 주간사인 투자은행 메릴린치(금융위기로 2008 BoA(Bank of America)에 인수됨)에 의뢰해 산정된 가격이다. 한화는 이 가격에 동의했고 거래가 성사됐다. 매각가격 8236억 원은 당시 메릴린치가 평가한 6000억 원대 초반에서 8000억 원대 초반의 가격 범위 중 상한선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팔려고 한 금액 범위의 상한선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합의했으니 한화 입장에서는 오히려 비싸게 샀다고 볼 수도 있다. 미국 메트라이프(Metlife)생명도 2002년 인수경쟁에 참여했으나 한화와는 달리 회사와 더불어 13000억 원 이상을 주면 인수하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에 경쟁에서 탈락했다.

 

한화에 팔기로 결정된 후 예보는 한화와 계속 협상해서 매각 대금을 16150억 원으로 올렸다. 메트라이프의 주장과 비교하면 가격이 29000억 원 이상 차이난다. 대한생명의 경영상황이 호전되고 있으므로 이 점을 반영해 추가 협상을 해서 매각가를 상당히 올린 것이다. 이를 보면 예보도 제값을 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대한생명은 매각 직후부터 경영이 급속히 호전됐다. 한화가 경영을 잘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이 이렇게 흘렀다면 진흙 속에 숨겨져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진주의 내재가치를 알아보고 사들인 한화가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이런 진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팔아버린 측이 잘못한 것인지는 매우 자명하다. 대한생명을 헐값에 사들였다며 한화를 부도덕한 기업으로 몰아가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이유다. 만약 누군가를 꼭 비난해야 한다면 그 가격에 팔라고 평가한 주체나 직접 판 주체의 잘못이 더 크지 않을까?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이후 발생한 실제 이익이 얼마인지보다는 당시로 돌아가 가격을 평가할 때 모든 정보를 적절히 고려했는지를 우선 살펴봐야 한다. 신이 아닌 이상 미래를 정확히 예측해서 가격을 매긴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사후에 대한생명이 벌어들인 이익만 보면서 인수가격이 적정했는지를 논할 수 없다. 만약 매각 당시 대한생명 가치가 불명확했다면 다른 방법을 취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미래 3년 또는 5년간 이익이 얼마 이상 발생하면 얼마의 가격을 추가로 지불한다는 식의 이익 범위에 따른 옵션 계약을 체결했다면 이런 논란 자체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화에 팔지 않았다면?

 

한화가 지은 죄가 있다면 대한생명을 인수한 후 망하지 않고 돈을 너무 잘 벌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한 후 외환은행이 잘되자 싸게 팔았다며 매각을 무효로 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과 흡사하다. 외환은행 매각에 대해서도 헐값 매각이나 로비, 뇌물 제공 등 여러 논란이 있었다. 사실 논란 정도나 의혹들로 보자면 외환은행 사례가 대한생명보다 훨씬 심각하다.

 

매각 과정이 어쨌든 한 번 맺은 계약을 몇 년이 지난 후 무효로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입장을 바꿔 만약 우리나라 회사가 외국에 진출해 모 회사를 인수했다고 하자. 인수 후 열심히 경영해 회사를 발전시켰다. 그런데 5년쯤 지난 후 그 나라 정부가 매각과정이 잘못됐으니 매각을 무효로 하고 회사를 다시 내놓으라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론스타가 많은 돈을 벌어 외국으로 가져가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억지로 우길 수는 없다.

 

충청은행과 한화종금이 환란을 일으킨 책임이 있는 기업이라는 주장도 상당히 과장된 측면이 있다. 당시 환란의 단초를 제공한 기아차는 국민기업이니 매각하면 안 된다고 반대하고 경제부처가 환란을 막기 위해 추진했던 금융기관 통합관리안 등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득표에 불리하다는 계산 때문에 적극 반대하던 여야 정치인이나 언론을 보자. 충청은행이나 한화종금 같은 군소 금융회사를 이들과 비교할 때 어느 쪽에 더 큰 책임이 있는지는 명약관화다.

 

만약 환란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회사들은 기업 인수자로 나설 자격이 없다고 한다면 당시 부실해져서 막대한 구제금융을 받았던 우리나라 시중은행들은 모두 M&A 후보자에서 제외돼야 한다. 삼성자동차와 관련된 삼성그룹, 현대건설 및 현대상선과 관련된 범현대그룹, 하이닉스( LG반도체)와 관련된 범LG그룹, SK글로벌과 관련된 SK그룹 등 당시 경제위기 악화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기업이 없다. 이런 기업들이 M&A 인수자로 나설 자격이 없다면 한국 회사를 인수할 수 있는 회사는 외국계뿐이다. 한화에 팔지 말았어야 했다고 계속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다면 인수과정에서 한화와 경쟁했던 외국계 메트라이프생명사에, 메트라이프 주장대로 13000억 원을 얹어 주면서 대한생명을 넘겼어야 했다는 의미인지 묻고 싶다. 아니면 당시 대한생명 노조 측 주장대로 노조에 공짜로 회사를 넘겨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대우조선 인수 실패 이후 벌어진 사건들

 

이제까지 한화의 대한생명 매입과 관련된 논란들을 살펴봤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화는 역전에 성공해 대우조선해양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러나 양해각서를 체결한 후 세계 금융위기가 시작되면서 경제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현금 마련을 위해 팔기로 했던 계열사 주식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했고 매각 예정이던 부동산 가격도 폭락했다. 원래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하기로 했던 금융기관들도 모두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새로운 투자에 나설 형편이 안 됐다.

 

그 결과 2009 3월 말까지 완납하기로 한 63000억 원 인수금액을 계획대로 마련하기가 힘들어졌다. 결국 한화는 대우조선해양의 주인인 산업은행에 도움을 청했다. 대금 완납이 아닌 분납과 한화가 매각하려고 하는 몇몇 부동산과 주식 등을 산업은행에서 사줄 것을 요청했다. 산업은행은 이런 요청을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계약 불이행을 문제 삼아 한화가 납부한 이행보증금 3150억 원을 가져가 버렸다. 결국 대우조선해양 매각은 원점으로 돌아왔고 한화는 3150억 원만 날린 셈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산업은행이 계약 파기를 선언하자 한화그룹 계열사 주가가 동반 상승했다.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의 인수자로 선정됐을 때 주가가 폭락한 것을 고려하면 정반대의 반응이다. 3150억 원을 날리기는 했지만 시장은 이행보증금을 잃더라도 한화그룹이 인수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후 한화그룹은 계약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걸었다. 세계 금융위기라는 천재지변이 터졌고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반대로 실사도 못한 만큼 계약조건을 이행하지 못한 것이 한화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계약과정에서 중대한 상황의 변화가 생겼으니 계약조건을 다시 협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예보가 최초 8236억 원에 팔기로 한 대한생명이 협상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실적이 좋아지고 있으니 상황이 변했다는 이유로 점점 가격을 높여 최종적으로 16150억 원에 넘긴 것과 유사하다. 즉 계약조건을 변경할 만한 중대한 상황변화가 당시 있었는지 여부가 법정에서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또한 한화는 산업은행과 MOU 체결 후 최종 계약일까지도 실사를 못했다. 우선 계약을 체결하고 실사는 나중에 하기로 했다. 하지만 고용보장과 위로금 지급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노조가 회사 출입을 막아 끝까지 실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한화는 실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으므로 산업은행에도 귀책사유가 있고 따라서 3150억 원 모두를 가져가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대우조선해양과 한화의 미래

 

법원은 2011년부터 2012년까지 1심과 2심 모두에서 산업은행이 계약금을 돌려줄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실사하기로 했지만 실사를 못했다고 매매계약 전부를 해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계약조건에 실사를 못하면 계약을 파기한다는 식의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법정은 당시 벌어졌던 세계 금융위기가 계약내용을 바꿔야 할 만큼 중대한 상황이라고 판단하지 않은 듯하다. 그 결과 대우조선해양은 산업은행의 품으로 되돌아왔다. 앞으로 누가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세계 2위의 우량 조선사이니만큼 대우조선해양은 우수한 경쟁력을 갖춘 회사다. 그러니 세계경기가 회복되고 조선 경기가 살아나면 인수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는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산고를 거쳐 한화그룹의 일원이 된 대한생명은 경영권이 한화그룹을 넘어간 지 10년이 지난 2012 6월 주주총회에서 회사 이름을 한화생명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이제까지 수차례 시도했지만 2대 주주인 예보의 반대로 번번이 실패한 명칭 변경안이 드디어 통과됐다. 예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주주가 찬성표를 던진 덕분이다. 한화증권이나 한화손해보험, 한화투자신탁운용 등 기존 한화 브랜드를 사용하는 회사들과 브랜드를 공유해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 사명 변경의 이유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화생명의 더 큰 발전을 기원해 본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acchoi@snu.ac.kr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 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동시에 받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숫자로 경영하라> <재무제표 분석과 기업가치평가>가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8호 The New Chapter, Web 3.0 2022년 07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