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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를 통해 본 세상 33

빼빼로데이의 학살과 옵션 거래

최종학 | 76호 (2011년 3월 Issue 1)

 

편집자주 최종학 서울대 교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계학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회계를 통해 본 세상’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회계를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비즈니스에 잘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최 교수는 이번 원고를 시작으로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어떻게 결정되고 움직이는지, 그 과정에서의 회계정보를 활용한 올바른 투자 방안은 무엇인지에 관한 글을 총 4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입니다.
 
1자가 4개나 겹쳐 ‘빼빼로데이’라 불리는 2010년 11월 11일. 11월 옵션 만기일이기도 한 이날 한국 주식시장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1967에서 시작된 코스피 지수는 장중 거의 변동이 없었다. 그런데 폐장을 불과 10분 남긴 시점인 오후 2시 50분 무렵, 도이치뱅크·도이치증권이 정상적인 하루 주식 거래량의 20∼30%에 해당하는 무려 1조 8000억 원 정도의 주식 매도 물량을 쏟아냈다. 도이치뱅크는 포스코 30만 주, 현대자동차 66만 주, 현대중공업 18만 주, 삼성생명 21만 주 등 한국 대형 우량기업들의 주식을 시장에 대거 매도했다.
 
이 여파로 코스피 지수는 단 10분 만에 50포인트 폭락했다. 결국 종가는 전일 대비 53.12포인트(-2.7%) 낮은 1914.7을 기록했다. 약 10분 만에 시가총액의 3% 정도가 사라진 셈이다. 코스닥 지수도 대폭 하락했다. 이 사건은 국내 주식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시장에서는 이를 ‘도이치뱅크의 매물 폭탄’ ‘빼빼로데이의 학살’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기관투자가든 개인투자자든 자유 의지에 따라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만큼의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다. 다만 주식을 할 때는 되도록 비싼 가격에 주식을 팔려고 하기 때문에 대규모 물량을 한 번에 매도하기보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매도하는 게 정상이다. 한꺼번에 많은 물량을 팔려고 하면 수요보다 공급이 너무 많아서 일시적으로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급박하게 주식을 팔아서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가격 하락을 감수하고라도 팔아야 할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도이치뱅크는 보유 물량을 다 판 게 아니라 몇 개의 헤지펀드들이 보유한 물량을 청산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헤지펀드의 청산 시점이 11월 11일인데, 최후의 순간까지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가 팔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급박하다 해도 무려 1조 8000억 원의 물량을 약속이나 한듯, 여러 헤지펀드가 한꺼번에 같은 시점에 시장에 쏟아낸다는 건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렵다. 모종의 계획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기는 이유다.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한국 주식시장의 기반이 튼튼하지 못하다는 점을 나타내기도 한다. 만약 시장에 충분한 숫자의 시장 참가자가 존재한다면 한 기관투자가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전량 매각한다 해도 주식시장이 출렁거릴 정도로 큰 주가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사실 일시적인 투매로 주가가 폭락하는 현상은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부차적인 문제다. 장기적으로 주가는 해당 기업의 내재가치 근처로 회귀하게 마련이다. 도이치뱅크의 매도 물량 때문에 일시적 주가 급락이 있었다면, 조금만 기다리면 주가는 정상적인 수준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옵션 거래란 무엇인가
정작 심각한 문제는 주식시장 마감 후에 밝혀졌다. 옵션 거래를 통해 엄청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 내용은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에 우선 옵션 거래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해보자. 우리는 주가 상승을 예상하고, 미래 시점에 해당 주식을 미리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콜 옵션(call option), 반대로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미래 시점에 해당 주식을 미래 정해진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를 풋 옵션(put option)이라 한다.
 
개인 투자자 김철수 씨는 현재 50만 원인 삼성전자 주식이 6개월 후 70만 원으로 상승할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이다. 반면 현재 삼성전자 주식을 1만 주 보유하고 있는 이영희 씨는 6개월 후에도 삼성전자 주식이 계속 50만 원 정도를 유지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때, 김철수 씨는 이영희 씨를 설득해 6개월 후 시점에 삼성전자 주식 1만 주를 50만 원에 사는 계약을 할 수 있다. 그 계약을 위해 김철수 씨는 소액의 계약 금액, 예를 들면 총 매매대금의 1% 정도(50만 원×0.01(1%)×1만 주=5000만 원)의 비용만 현재 옵션의 비용으로 지불하면 된다. 이때 김철수 씨가 맺은 계약이 콜 옵션, 이영희 씨가 맺은 계약이 풋 옵션이다.
 
6개월 후 삼성전자 주가가 60만 원으로 상승한다면, 김철수 씨는 옵션 계약에 따라 주당 50만 원인 총 50억 원에 삼성전자 주식을 이영희 씨로부터 매입한 후, 시장에 60억 원에 되팔 수 있다. 즉 불과 1000만 원을 내고 무려 10억 원을 번 셈이다. 삼성전자 주식이 70만 원으로 올랐다면 1000만 원으로 무려 20억 원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반대 사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6개월 후 삼성전자 주식이 만약 40만 원으로 떨어진다면 김철수 씨는 10억 원의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 주식이 30만 원으로 떨어진다면 20억 원의 손해를 입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이영희 씨는 김철수 씨와 정반대 지점에 선다. 즉 삼성전자 주식이 떨어지면 김철수 씨가 손해 보는 만큼 이영희 씨는 똑 같은 금액을 벌 수 있다. 반대로 주가가 오르면 김철수 씨가 버는 돈이 이영희 씨가 손해를 보는 금액과 일치한다. 양자의 손실과 이익을 합하면 0이다.
 

 
주식과 옵션의 차이점
옵션 거래에서는 1원의 이익을 올리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1원의 손실을 보는 사람이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양측의 손실과 이익을 합하면 항상 0이 되기 때문에 이를 전문용어로 제로 섬 게임(zero sum game)이라 한다. 도박과 같은 구조다.
 
일각에서는 주식시장도 도박과 같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도박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주가 상승을 예상하지 못하고 주식을 파는 사람은 주식을 계속 보유하고 있을 때보다 돈을 덜 벌지만, 그렇다고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반대로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판 사람은 주식을 계속 보유하고 있는 사람보다는 손해를 덜 본다. 그런 예상을 하지 못하고 주식을 산 사람은 손해를 더 많이 입을 것이다. 즉 주식시장에서는 매수자나 매도자의 손익이 대부분 같은 방향으로 발생한다. 이익이나 손실의 크기 차이만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주식시장에서도 아무런 연구 없이 무조건 주식을 골라 사고 판다면 이는 도박과 다름없는 행위지만 일반적으로 주식 투자는 옵션 투자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옵션 거래 전부를 도박이라 하기도 어렵다. 이영희 씨의 사례를 보자. 이미 삼성전자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그가 미래의 주가 하락을 예상한다면 풋 옵션을 구매하는 건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이다. 이는 도박이 아니다. 이영희 씨가 원래 이 삼성전자 주식을 45만 원에 구매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영희 씨가 풋 옵션 계약에 따라 이 주식을 6개월 후에 김철수 씨에게 50만 원에 팔아야 하며, 이때 삼성전자 주가가 60만 원이라면 그는 매입 가격과 비교할 때 주당 5만 원의 이익(50만∼45만 원)을 거둘 수 있다. 물론 시가가 60만 원이니 주당 10만 원을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셈이긴 하다. 하지만 회계의 관점에서도, 실제로도 손해를 본 건 아니다.
 
결과적으로 이 거래를 통해 이영희 씨는 주당 5만 원, 김철수 씨는 주당 10만 원(60만∼50만 원)의 이익을 본 셈이다. 반대로 6개월 후 삼성전자 주가가 40만 원으로 떨어진다면 이영희씨는 주당 5만 원의 손실(40만∼45만 원), 김철수 씨는 10만 원(50만∼40만 원)의 손실을 보는 셈이다. 이 거래 구조는 주식 거래의 구조와 비슷하다. 즉 한쪽이 이익을 본다 해서, 나머지 한쪽이 똑 같은 금액의 손실을 보지는 않는다. 이때 옵션 가격은 미미하므로 이번 논의에서 고려하지 않았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옵션을 거래한 양 당사자 중 최소 한쪽이 옵션의 기초 자산(underlying asset), 여기에서는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상태에서 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콜 옵션과 풋 옵션을 주고받은 양 당사자가 모두 삼성전자의 주식을 보유하지 않았다면, 이때는 한 쪽의 손실이 다른 쪽의 이익과 직결되는 제로 섬 게임이 된다. 즉 이런 거래는 도박과 유사하다.1
 
옵션 거래 결과 드러난 엄청난 손실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의 파생상품 시장은 세계 1위의 거래량을 자랑할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비대하다. 도박을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의 특성이 일부분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옵션 시장에서는 투자자가 현재 가진 돈이 별로 없어도 얼마든지 풋 옵션이나 콜 옵션을 거래할 수 있다. 앞의 김철수 씨는 단 1000만 원의 비용을 부담하고 6개월 후 엄청난 이익 혹은 손해를 볼 수 있는 거래에 가담한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옵션시장에서 과감한 도박을 벌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식시장과 달리 몇 십억 원의 현금을 동원할 필요도 없고, 이론 상으로는 작은 돈으로 엄청난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1000만 원밖에 없는 사람이 옵션을 구입한 후, 미래의 주가가 그가 예측한 방향과 반대로 흘러갔을 때다. 앞의 예에서 삼성전자의 주가가 40만 원으로 하락하면 김철수 씨는 무려 10억 원의 손실을 입는다. 이때 김철수 씨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 원래 옵션을 구입하는 데 사용한 1000만 원밖에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파산이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 정부는 법으로서 결제대금(이번 예에서는 50억 원)의 상당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개인 또는 기관에만 옵션 거래를 허용한다. 이때의 돈을 옵션 증거금이라 한다.
 
11월 11일 사태 후 많은 자산운용회사가 엄청난 손해를 입었음이 드러났다. 자본금이 140억 원에 불과한 와이즈 자산운용은 하루 동안 무려 900억 원의 손실을 봤다. 더구나 와이즈 자산운용은 옵션 증거금 규정을 무시하고 증거금 범위를 벗어나 주가 상승에 과감한 베팅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연히 와이즈 자산운용은 900억 원을 지불할 돈이 없었고, 이 거래를 중개한 하나대투증권이 모든 대금을 물어줬다. 토러스 투자자문도 50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토러스는 이 사태로 한 달 후인 2010년 12월 투자자들이 제기한 소송에 직면했다. 11월 11일 사태로 금감원이 잠정 집계한 기타 국내 증권회사들의 손실 규모는 무려 1100억 원에 이른다. 물론 이 와중에서도 누군가는 돈을 번다. 이 날 옵션 거래로 500억 원을 번 사람이 있다는 소문도 있다.
 

 빼빼로데이의 학살은 조만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한국뿐 아니라 여러 신흥시장국의 주가는 비정상적으로 상승한 상태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만신창이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엄청난 달러를 찍어내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통해 막대한 달러 부채를 줄이는 효과를 낸다. 그런 자금들이 신흥시장으로 흘러들어왔다. 그 결과, 현재 한국 주식 및 채권시장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외국인 자금이 존재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현재 펀더멘틀을 상회하는 거품이 시장에 일부 존재한다. 만약 미국이 돈을 찍는 행위를 멈추는 순간 이 자금들은 즉시 한국 시장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금융 전문가들도 이런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 자금들이 신흥시장에 들어온 주된 이유는 주식이나 채권 투자를 통해 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다. 이들은 신흥시장국 통화의 가치 상승 및 달러 가치 하락을 노린다. 미국이 달러를 찍어내는 동안 세계 각국의 화폐 가치 상승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이게 끝나면 그 순간 해당 투자금은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특히 헤지펀드들은 남의 돈을 빌려 투자하기 때문에,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다면 즉시 포지션을 청산해서 부채를 상환할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한국 주식시장은 다시 출렁거릴 것이다. 주식시장보다 훨씬 무서운 곳이 옵션시장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옵션시장은 빼빼로데이보다 훨씬 큰 폭탄을 맞을 수 있다. 부디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이 무서운 도박을 자제했으면 한다.


옵션 거래의 숨겨진 내막

이제 도이치뱅크를 통한 외국계 자본의 주식 투매가 이 대규모 옵션 사태와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사실 1 8000억 원의 주식을 급매한 외국계 자본이 주식 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원화 수익은 그렇게 크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해당 자본들이 한국 주식을 매수할 시점에서부터 11 11일 까지 코스피 지수가 그다지 많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기간 중 상당한 원화 가치 상승(달러/원 환율 하락)이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해도 마찬가지다.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 달러화로 투자한 투자자들은 추가 수익이 생긴다. 그렇다 해도 환율 변동으로 인한 수익은 최대 20% 정도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헤지펀드들은 대부분 자기자본은 별로 없이 부채를 빌려서 투자를 한다. 20%의 수익률이라면 이자 지급을 고려해도 괜찮은 편이다.
 

만약 외국계 자본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11 11일에 청산되는 옵션을 대량으로 구매한 후, 11 11일 시점에서 주가를 일부러 떨어뜨리기 위해 주식을 대량 매도했다면 어떨까. 언론 보도에 의하면, 도이치뱅크의 매수 차익 잔고(보유하고 있는 현물 주식의 금액) 2010 6월에는 474억 원, 7월에는 2800억 원 정도였다. 이 돈은 갑자기 8월에 1조 원, 10월에는 1 5000억 원으로 불었다. 11 11일에는 1 8000억 원으로 증가했다도이치뱅크는 이 주식을 갑자기 11 11일 단 10분 사이에 모두 팔아치웠다.

물론 이렇게 보유 주식액이 급격히 증가하면, 자기 돈이 아닌 남의 돈을 빌려서 투자하는 헤지펀드는 결국에는 빌린 대금을 상환하기 위해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문제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서로 다른 펀드들의 청산 시점이 모두 동일할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이다. 다른 배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여러 세력이 공모해 의도적으로 주식을 사 모으는 동시에, 옵션도 구매하고 옵션 만기 시점에서 모아놓은 주식을 한꺼번에 매도했다면 어떨까. 옵션거래를 통해서 상당히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 미미한 옵션구입 비용만 지불하고 나서 옵션을 구입한 후,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수백 배의 돈을 한꺼번에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주식 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20%대의 수익은 옵션 거래를 통해 벌어들일 수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주가 조작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금융감독원도 실제 주식 거래가 이뤄진 도이치뱅크의 홍콩 지점에 직원을 파견해 주가 조작 여부를 조사했다. 어느 정도 공모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엄중한 징계가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회계학을 전공한 박사 과정 학생이나 기타 회계에 대한 전문지식을 대학원에서 배운 사람들이라면 공시된 재무제표를 통해 이를 분석하고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일반 투자자이고 이 정도의 전문 지식이 없다면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를 참조하거나, 그도 힘들다면 차라리 전문가가 책임지고 투자하는 펀드에 가입하는 편이 낫다. 이 정도의 노력과 공부도 없이그 회사 주식 좋다더라는 풍문을 듣고 주식 투자를 하는 행위는 도박과 다름 없다. 펀드 투자도 못 믿겠다면 차라리 주식 거래를 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 하에서만 거래해야 한다. 자본규모 140억 원의 회사가 10분 동안 9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할 정도로 막대한 거래를 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의 반성과 올바른 투자 방법
우리가 반성해야 할 사실은 왜 이런 일이 발생했냐는 점이다. 한국의 파생상품 시장 규모는 세계 1위지만 주식시장 규모는 세계적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주식시장의 부속시장인 파생상품시장이 이렇게 불균형적으로 크다는 점은 무엇을 뜻할까. 즉 기초 자산을 보유하지 않고 옵션 거래를 하는 사람이 비정상적으로 많다는 뜻이다. 기초 자산을 보유했다면 자산 가치 변동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옵션 거래를 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외환거래를 하는 기업들이 환율을 헤지하기 위해 파생상품을 사거나 파는 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기초 자산을 보유한 후 옵션을 거래한다면, 옵션시장의 거래량이 실물 시장보다 클 수가 없다. 실물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 모두가 옵션을 거래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옵션거래가 필요 없는 사람들까지 주가 변동에 대해 도박을 하기 때문에 한국의 파생상품 시장 규모가 비정상적으로 큰 셈이다. 즉 우리나라 파생상품 시장이 세계 제 1 위라는 자랑은 자랑이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운 일에 가깝다. 그만큼 도박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국민 중 도박에 빠진 사람 비율이 높다고 자랑하는 나라를 본 적이 있는가.
 
과거 글에서도 여러 번 밝혔지만 필자는 주식이나 파생상품 모두 철저히 자료를 분석하고, 해당 상품의 내재가치를 판단한 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식에 투자하려면 재무제표를 꺼내놓고 하나하나 항목별로 철저한 분석을 해야 한다. 이 기업의 대손충당금은 작년과 비교해서 어떤지, 경쟁기업과 비교하면 비슷한 수준인지, 회계처리 방법을 변경해 당기 손익에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닌지, 자산 재평가를 통해 부채 비율이 줄어든 건 아닌지, 외상 매출금이 급속히 늘어난 건 아닌지 등등 여러 항목을 철저히 살펴봐야 한다.
 

파생상품 거래도 마찬가지다. 주식관련 파생상품이라면 결국 해당 기업의 내재가치가 얼마인지, 앞으로의 경기 전망이 어떤지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환율관련 파생상품도 마찬가지다. 이런 자세한 공부 없이 파생상품 거래시장에 뛰어드는 일은 주식거래보다 훨씬 위험하다. 외환 파생상품인 키코(KIKO)를 구입했다가 막대한 피해를 본 기업들을 생각해 보라. 특히 파생상품 거래시장에 뛰어들었을 때는 이번 사태가 감독당국이 일부 제도를 제대로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설사 그렇다 해도 필자는 감독당국이 아니라묻지마 투자를 벌인 쪽이 더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카지노에 가서 도박을 하다가 패가망신한 사람이 카지노의 입장 규정이 잘못돼 자기가 카지노에 들어왔으니 카지노나 정부가 자신의 손실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주장한다면 옳은 일일까.어쨌든 감독당국은 이번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 보완에 착수했다.
 

해외 자본이 한국 주식시장이 급락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옵션을 판다고 했을 때, 그 옵션을 사는 사람이 없다면 옵션 거래가 성립될 수 없다. 비정상적인 옵션을 산다는 일 자체가 바로 별다른 연구 없이 도박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공매도(short sale,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사하는 매도 주문)나 파생상품 시장 거래를 통해 주가변동을 키워서 이익을 본다는 이야기도 계속 나온다. 하지만 공매도나 파생상품 거래 모두 반대 방향에서 그 상품을 받아주는 상대방이 존재해야만 거래가 성립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이런 비난 또한 잘못됐다.
 

모두가 이를 사지 않는다면 이상한 상품을 팔려고 하는 측도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다. 제대로 거래의 구조나 기업가치를 살펴보지 않으면서, 도박하는 마음으로 그런 상품을 사는 사람이 있으니 계속해서 파는 사람도 등장하는 것이다. 불량식품을 사 먹는 철모르는 어린아이도 아니지 않은가. 비정상적인 상품이라면 사지 않으면 그만이다.

 
워런 버핏의 투자철학
시간이 흘러 IT버블이 꺼지고 수많은 IT 기업들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버핏의 말을 기억해 내고 그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2000년대 초반부터 버핏이 ‘오마하의 현인’ 이라는 극존칭을 받으며 투자 황제로 추앙받게 된 비결이다.
 
버핏의 투자 방식은 너무도 간단하다. 그는 재무제표를 열심히 공부한 후 해당 기업의 내재가치에 따라 투자한다. 주가가 매일매일 폭등하던 IT기업들의 재무제표를 들여다봤을 때, 해당 기업들의 수익 모델은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버핏은 IT 주식을 사지 않았고, 닷컴 버블 붕괴를 피해갈 수 있었다. 남들이 다 그 주식을 사서 주가가 폭등한다 해도, ‘내 투자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투자하지 않는다’는 투자 철학을 꾸준히 지켰기에 그는 세계 최고의 거부가 됐다.
 
버핏의 집무실에는 현재의 주식시황을 보여주는 컴퓨터 터미널도 없다고 한다. 하루의 주식가격 등락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오직 장기적인 내재가치를 보고 투자한다는 그의 투자철학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이런 방식으로 투자를 한다면 큰 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큰 손해를 볼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많은 한국 투자자들이 워런 버핏의 자세를 본받았으면 한다. 부디 다시는 한국에서 ‘키코 사태’니 ‘빼빼로데이의 폭락’이니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키코 거래로 많은 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빼빼로데이 사태가 또 발생하니 착잡할 따름이다.
 
세계 2위의 거부 워런 버핏은 1990년대 말 정보기술(IT) 버블이 한창일 때, IT관련 주식을 단 한 주도 매입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워런 버핏은 유명한 투자가 중 하나였지 지금처럼 세계 최고의 투자가로 간주될 정도는 아니었다. IT 버블 당시 IT기업의 주가가 폭등하는데도 불구하고 워런 버핏이 투자를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버핏이 너무 늙어 투자 안목이 떨어졌다. 이제 그의 시대는 끝났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이때 버핏은 “나는 내재가치를 따져 투자할 뿐이다. IT기업들의 수익모델을 이해할 수 없다”고 거듭 말했다.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 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동시에 받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숫자로 경영하라>가 있다.
  • 최종학 최종학 | - (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 동시 수상
    - 홍콩과기대 교수
    acchoi@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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