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코로나19로 인해 그간 눈에 띄지 않았던 금융회사의 ‘진짜 실력’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기업 가치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단기적인 위기관리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코로나19에 특화된 고객 경험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또 온라인 영업 채널을 강화하고, 하향식으로 이뤄졌던 본사의 업무 방식을 유연하게 개선하고, 리스크 관리 및 자산 운용 역량을 강화하는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코로나19 환경의 특수성을 기회로 삼아 기존 예산 편성을 제로베이스에서 재점검하고 디지털 사업 모델을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자.
코로나19 발병은 최근 수십 년 동안 글로벌 보건에 경종을 울렸던 여러 전염병 사태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위기에 속한다. 코로나19의 국제적 확산이 가속화되면서 시장에서는 전염병 관련 리스크가 자산 가격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대 일일 낙폭을 기록했다. 주요 국가 정부와 중앙은행의 발 빠른 조치에도 불구하고 경기침체의 기간과 바닥 지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 이유는 이번 상황은 과거의 경제 위기와는 달리 바이러스가 위기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과거 경제 위기는 모두 정부의 부채와 외환 관리 실패 혹은 금융기관의 탐욕에서 발생한 금융시장 충격이 실물경제로 전이된 경우였고, 발생 원인과 경로가 유사했기에 정책 당국의 해법도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는 금융 기능의 와해로 실물경제에 위기가 온 것이 아니다. 전염병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마비가 왔고, 이로 인해 실물경제 위기가 먼저 발생해 금융시장 충격으로 전이된 특이한 케이스다. 많은 이의 기대와 달리 조기 종식 혹은 V자형 반등 시나리오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경제 전문가의 중론이다. 과거 위기와는 달리 이번에는 수요와 공급망이 동시에 붕괴됐다. 그래서 수요 진작을 위한 정부 정책의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그리고 유가 폭락과 초저금리 기조라는 글로벌 거시 변수로 인해 시장이 너무 겁을 먹어서 정책 당국의 약발도 잘 듣지 않는다.
코로나19 위기는 국내 금융업계 전반의 경기 하강을 초래했다. 전통적인 대면 영업이 곤란해졌고 역대 최저 수준의 금리 기조, 심화되는 한미 환율 격차는 금융기관의 자산 운용과 리스크 관리를 미지의 영역으로 인도하고 있다. 최근 다수의 국내 금융기관 관계자와 대화해보면 코로나19가 금융업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으로는 부정적이나 장기적으로는 제한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러나 필자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금융기관의 단기적 재무 성과는 크게 타격 받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장기적인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심각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그간 식별하기 어려웠던 금융회사의 ‘진짜 실력’이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주주가치 창출력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현재 코로나19 위기가 어떻게 금융사의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촉발하고 있으며, 이에 맞서 경영진은 장단기적으로 어떤 대책을 추진해야 하는지 논의해보자.
과거 전염병 위기를 통해 본 코로나19의 영향코로나19에 따른 실물경제 충격에도 불구하고, 국내 금융기관의 단기적 성과는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을 거라고 판단된다. 최근 20년 동안 코로나19와 비견되는 대규모 전염병이 몇 차례 있었으나 당시 국내 금융기관 영업성과 및 수익성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전파력 및 치사율 측면에서 현재까지 코로나19는 신종플루와 메르스(MERS)의 중간 수준에 속한다.
금융업권 중에서 전염병 위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으로 평가받는 보험업의 실제 데이터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겠다. 보험업은 실제로 코로나19 영향으로 주가 하락이 가장 컸던 산업 분야다. 하지만 가장 최근의 전염병 사례이자 보험사 관점에서 수요 하락, 사회적 거리 두기 등 코로나19와 특성이 유사한 메르스 상황도 단기적 영향이 미미했다. 생명보험업을 예로 들면, 운용 자산 및 전체 보험료 측면에서 기존 보유 계약 의존도가 높은 보험업의 특성으로 인해 메르스와 같은 위기가 보험영업수익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그림 1)
생명보험의 신규 계약 영업만 봤을 경우 메르스의 피크 시점에는 전월 실적 대비 약 3%p 정도 하락하는 데 그쳤으며, 이는 주로 대면 영업인 설계사 채널의 부진에서 기인했다. 설계사 채널의 신계약 규모는 전월 대비 10% 줄었지만
2∼3개월 뒤에는 기존 실적을 회복했다. 또 경기 하락에도 불구하고 기존 고객의 계약 해지나 전속 설계사 이탈의 변화량도 크지 않았다. 손해보험업 역시 동 기간의 매출 하락은 제한적이었고, 오히려 마케팅 비용 절감 및 사고 빈도•심도 하락으로 손익이 개선된 회사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