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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팩트 측정 방법론

마포대교 자살 방지 캠페인 흐지부지
사회적 가치 제대로 측정 못한 까닭

도현명 | 270호 (2019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사회적 가치와 관련한 오해와 진실
1. 사회적 가치는 ‘좋은 어떤 것(something)’이기만 하면 충분하다?
: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 없이 그저 좋기만 해서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다고 할 수 없음. 사회적 가치는 사회문제 해결을 통해 일어난 긍정적 변화를 뜻함.

2. 사회적 가치는 공익적 가치와 동일하다?
: 예술 작품이나 스포츠처럼 여러 사람이 향유할 수 있는 공공의 가치를 제공한다 해도 구체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한 게 없다면 일반 효용가치가 불특정 다수에게 제공된 것일 뿐 사회적 가치라고 볼 수 없음.

3. 사회적 가치 평가와 건강성 평가는 같다?
: ‘다우존스지속가능성지수(DJSI) 편입 기업’ ‘비콥(B-Corp) 인증 기업’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에 유리한 요건을 갖춘 ‘건강한 조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저절로 사회적 가치가 만들어지지는 않음.



지난 2012년 마포대교 난간에 약 2㎞ 길이로 설치된 ‘생명의 다리’를 기억할 것이다. 한강 다리 중에서도 특히 투신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마포대교에 자살 방지를 위한 문구를 적은 전광판을 설치한 것으로, 서울시와 삼성생명의 후원을 받아 제일기획이 기획한 자살방지 캠페인이었다. 캠페인의 원래 취지는 다리 난간에 ‘많이 힘들었구나’ ‘스스로를 믿어’ ‘말 안 해도 알아’ 등 감동적이고 용기를 줄 수 있는 문구를 적어 자살을 하려고 갔던 사람들이 이런 글귀를 보고 자살 시도를 포기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 캠페인은 참신한 아이디어라는 호평을 받았고 칸 국제광고제를 포함해 국내외 유수 광고제에서 다수의 상을 휩쓸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이 캠페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는 힘들다. 꽤 유명했고 상당한 투자가 들어갔던 사업이 조용해진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시는 언론 보도를 통해 지난 2015년 삼성생명의 재정지원이 끊어진 게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하기도 했지만 아마 그보다는 생명의 다리 설치 후 ‘자살 예방’ 효과가 나타났다고 보기 어려운 통계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실제로 마포대교 자살 시도 현황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2012년 15건이었지만 2013년에는 93건, 2014년엔 184건으로 계속 늘어났다. (그림 1) 자살 예방 캠페인이 이런 현상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캠페인의 효과는 기대 이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문제는 해외에서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KFC가 핑크리본 캠페인(유방암 예방의 중요성을 알리고 조기 진단을 권장하는 국제 캠페인)을 진행했다 큰 어려움을 겪었던 일이 대표적 예다. 지난 2010년 KFC는 세계 최대 유방암 치료재단인 수전 G. 코멘(Susan G. Komen)과 함께 ‘버킷 포 더 큐어(Buckets for the Cure)’라는 캠페인을 통해 유방암 관련 모금을 시작했다. 핑크색 치킨 버킷이 팔릴 때마다 50센트씩 기부해 약 90억 원 정도를 만들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그러나 이 캠페인은 KFC에 큰 위기를 불러왔다. KFC 치킨 속 트랜스지방이 유방암을 일으키는 주원인 중 하나인데 이런 회사에서 유방암 예방 캠페인을 한다는 게 위선적이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그 결과 KFC는 사상 최대의 불매운동 사태를 겪어야만 했다.


사회적 가치 측정이 중요한 이유
생명의 다리 캠페인이나 KFC의 핑크리본 캠페인은 실질적인 ‘사회적 가치’ 창출에 실패한 프로젝트들의 대표적 예다. 이런 프로젝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사회적 가치는 그저 돈만 쏟아붓는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프로젝트 실행을 통해 기대하는 성과, 즉 소셜 임팩트(social impacts)를 만들어 내기 위해 전략을 고민하고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만들어 내고자 하는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며, 어떤 사회적 가치를 측정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해야 한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측정 없이 사회적 가치 창출을 하겠다는 것은 살을 빼겠다면서 지금 자신의 몸무게가 몇 ㎏인지 모르는 것과 같다. 생명의 다리 캠페인이나 KFC의 핑크리본 캠페인은 모두 이 점을 놓쳤다. 만약 프로젝트 설계 단계에서부터 어떤 사회적 가치를 측정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고민했다면 이 프로젝트들은 지금과 같이 실망스런 결과를 낳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생명의 다리 캠페인은 진행 중 몇몇 전문가와 기관에서 우려를 표했다. 자살 시도자들의 심리상태에 대해 수십 년간 축적한 연구 결과를 잘 살펴보지 못한 채 캠페인을 기획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가령, 미국의 심리학자 샌드라 싱어에 따르면 많은 자살 시도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매우 강하다. 따라서 외진 곳이 아니라 유명한 장소, 혹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쉬운 곳을 자살 장소로 택하는 경향이 크다. 만약 캠페인 기획자들이 이런 연구 결과를 잘 살펴봤더라면 가뜩이나 자살 시도가 많이 발생하는 곳에 전광판까지 만들며 대대적인 광고 캠페인을 하는 건 되레 자살 시도를 부추길 수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작업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어서 높은 수준의 전략 기획 역량과 실행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 측정을 통해 도출된 ‘수치화된 정보’가 필요하다. 어떤 투입 요소나 활동에 변화를 줘야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더 나은 임팩트 창출을 위한 개선 방안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를 수치로 측정해 놓은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사회적 가치 ‘측정’이 중요한 이유다. 사회적 가치 측정은 그 자체의 의미보다 ‘사회적 가치 창출과 제고’라는 궁극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정보이자 언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오해와 진실
사회적 가치 측정에 대한 관심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관련 이론도 명확하게 수립되지 않아 오해나 혼란도 많다. 그중 특히 많이 착각하고 혼동하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1. 사회적 가치는 ‘좋은 어떤 것(something good)’이기만 하면 충분하다?
우선 사회적 가치는 ‘사회문제를 해결한 크기’라는 정의로 한정 지어 논의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사회문제 해결의 긍정적 변량’이라는 것인데, 이는 두 가지 전제를 내포한다. 하나는 사회적 가치 측정과 평가가 필요한 경우는 사회문제 해결이 중요한 목표라는 전제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문제가 존재하는 영역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사회문제가 없는 곳에서 사회적 가치는 창출될 수 없으며, 사회문제 해결이 목표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엔 사회적 가치 측정과 평가가 그리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뜻한다. 결국,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가 무엇이고 그 시작점은 어디인지 파악해서 그 시작점보다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할 때, 그 차이를 사회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성과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무엇을 했고 그 결과는 무엇인지를 확인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 가령, 다이어트를 위해 몇 끼를 샐러드만 먹는 행동을 했다면, 과연 그 일이 내 목적(체중 감량)에 쓸모가 있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체중계로 몸무게를 재 봐야 한다.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평가하려는 노력의 근저에는 반드시 변화시키고 싶은 무엇인가(사회문제)가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사회적 가치 창출 논의는 공허하다. 사회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지도 않았는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주장은 성립되기 어렵다. 국내에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많은 구호가 때로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문제를 해결해, 어떤 사회적 가치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설명하고 있지 않아서다. 그저 좋아 보이고, 좋은 느낌이 나는 어떤 것을 사회적 가치라고 추상적으로 설명해내는 일은 당연히 측정되거나 평가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가 그저 ‘좋은 어떤 것(something good)’을 사회적 가치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 결과, 사회문제도 제대로 정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좋은 일만 하는 걸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가령, 국내 기업 A는 자사가 새로 만든 생수가 다른 생수보다 미네랄이 훨씬 더 풍부하기 때문에 사회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을 한다. 이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다른 생수들이 미네랄이 부족한 게 사회문제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A의 주장대로 우리가 보통 마시는 생수들보다 기업 A가 만든 생수에 좀 더 많은 미네랄이 들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사회문제를 해결해주는 건 아니다. 심지어 미네랄이 풍부하면 반드시 사람에게 훨씬 더 좋은지도 논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주장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회문제 해결을 통해 일어나는 긍정적 변화란 무엇일까? 예를 들어, 국내 저소득 청소년의 영어 점수가 전체 청소년 평균(75점)보다 15점이 낮은 60점이라고 가정하자.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가치는 저소득 청소년의 영어 점수를 높일 때 창출된다. 기본 교육에 포함돼 있는 영어 성취도가 소득 때문에 차이가 나는 건 분명한 사회문제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소득 청소년의 낮은 학업성취도는 졸업 이후 취업이나 글로벌 진출 기회 등에도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청소년들이 커서 장차 성인이 돼 사회에 나갔을 때에도 저소득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만약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어 학습 지도를 제공하고 그 결과 아이들의 평균점수가 60점에서 70점으로 올랐다면 그 10점의 증가가 사회적 가치의 한 지표가 될 수 있다.



2. 사회적 가치는 공익적 가치와 동일하다?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치의 종류(일반 효용가치 vs. 사회적 가치)’와 해당 가치의 ‘귀속 대상(사적 귀속 vs. 공공 귀속)’이라는 두 가지 기준에 따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림 2) 우선 사회적 가치란 사회문제를 해결한 데에서 나오는 가치인 반면 일반 효용가치는 사회문제와 상관없이 가치 증진을 가져온 경우를 의미한다. 사적 귀속은 특정 개인 혹은 집단만이 배타적으로 그 혜택을 누리는 경우를 말하지만 공공 귀속은 불특정 다수에게 가치가 반복적으로 향유되는 경우를 뜻한다.

이 두 가지 기준을 놓고 보면 가치창출 사례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이 중 사회적 가치는 유형 3(사회적 가치 & 사적 귀속)과 유형 4(사회적 가치 & 공공 귀속)에 해당한다. 유형 3의 대표적 사례는 취약계층 고용이다. 장애인을 고용함으로써 발생하는 효용은 불특정 다수가 아닌 고용된 개인(혹은 가족)에게 국한돼 귀속된다. 유형 4에 해당하는 경우는 환경오염을 저감하거나 해결한 경우다. 어떤 기업이 탄소 배출을 감축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 가치는 특정인에게 귀속되지 않고 불특정 다수에게 긍정적인 사회적 가치를 제공한다.

유형 1(일반 효용가치 & 사적 귀속)에 해당하는 가치창출 사례는 일반적인 생산-구매 활동을 꼽을 수 있다. 가령, B라는 기업이 생산한 아이스크림을 C라는 소비자가 사서 먹는 활동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회적 가치를 구분할 때 가장 혼란스러운 부분은 바로 마지막으로 설명할 유형 2다. 이른바 ‘공익적 가치’인데, 대표적으로 예술이나 스포츠 영역에서 많이 발견된다. 멋진 예술품이 걸린 미술관은 공공의 가치를 분명히 제고한다. 그러나 그 미술관이 반드시 사회문제를 해결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럴 경우 공익적 가치는 있지만 사회적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단지 일반 효용가치가 ‘불특정 다수’에게 제공됐을 뿐이다.

물론 유형 2의 경우,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부나 비영리 조직은 이렇게 공익적인 가치에도 자원을 배분한다. 그렇다고 유형 2를 사회적 가치 창출(유형 3 & 4)과 같은 범주로 분류해서는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평가할 때 엄밀성을 갖기 어려워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한편, 현재 국내에서 추진되고 있는 사회적 가치 기본법의 발의안을 보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가치만 다루고 있지는 않다. (표 1) 정부가 다뤄야 할 가치의 범주에는 사회적 가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도 포함되기 때문에 이를 정부가 추구하는 것에 문제는 없다. 다만 사회문제에 대한 명확한 정의 없이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모든 것을 사회적 가치에 포괄할 경우 자칫 개념상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더불어 최근에 목격되는 혼란 중 하나는 ‘공유경제’에 대한 것이다. 공유경제는 물품을 독점하거나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공유해 빌려 쓰는 개념으로 인식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다. 한 번 생산된 자산이 여러 명에 의해 여러 번 사용되는 특징을 가지는데, 이 경우 해당 자산은 경제적 생산성이나 일부의 공공성을 증진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의 공공성을 증진했다고 저절로 사회적 가치가 증가하는 건 아니다. 국내에 진출한 한 해외 자전거 공유기업이 공유경제라는 단어를 앞세워 사회적 가치를 주장한 것은 이런 오류를 범한 예라고 할 수 있다.

3. 사회적 가치 평가와 건강성 평가는 같다?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치고 근육량이 적은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근육량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달리기에 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근육량은 달리기를 잘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유리한 요건을 갖춘 ‘건강한’ 조직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적 가치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D라는 기업은 운영위원회에 직원 대표를 참여시키고 있고 이사회에 여성 비율도 절반이나 된다. 육아 휴직도 남성들에게 확대 적용하고 있으며, 대표와 직원 간 임금 차이도 거의 없다. 회사에 수유실도 갖추고 있고, 이해관계자들이 의견을 낼 수 있는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며 이런 일을 하는 기업이 좋은 회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D가 노인들의 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본업으로 하고 있는 회사라고 가정해보자. 이때 이 회사가 창출하는 핵심 사회적 가치는 ‘해당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치매가 예방된 노인들의 수’가 될 것이다. 이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들 중 치매 예방 비율이 높아야 한다. 즉, 더 많은 사람에게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해 실제 결과를 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결과가 없다면 이사회 구조나 수유실 유무 등의 건강성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더라도 실제 사회적 가치 창출에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마주하는 많은 사회적 가치 평가 툴은 건강성 평가에 머무르는 경우가 흔하다. 이 허점을 교묘히 활용해 실제 사회적 가치 창출엔 실패했음에도 마치 성과를 창출하고 있는 양 포장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업의 건강성을 평가하는 세계적 지표인 다우존스지속가능성지수(DJSI, Dow Jones Sustainability Indices)의 최상위권에 머무르던 폴크스바겐이 일부 디젤차량의 배출가스량을 고의로 조작하는 등 정보를 속여 문제가 생겼던 일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건강성 평가는 분명 필요한 것이지만 진정한 사회적 가치 측정 및 평가와는 다르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가치 측정 및 평가 방법
사회적 가치 측정과 평가에는 수많은 툴과 프레임워크가 있다. 그들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보면 ‘원리 기반 접근법(Principle-based Approach)’과 ‘규칙(또는 지표) 기반 접근법(Rule-based Approach)’으로 나눠볼 수 있다. 원리 기반 접근법에서 원리란 측정·평가 작업 참여자 및 외부의 평가 전문가를 포함하는 다양한 구성원이 합의한 원칙을 뜻한다. 이 원칙을 합의된 가이드라인으로 삼아 측정·평가 대상의 활동을 실사하고, 이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가공해 사회적 성과 창출 활동의 결과를 측정·평가하는 접근법이 원리 기반 접근법이다. 규칙 기반 접근법은 계량적 규명이 가능한 측정 지표와 평가 대상 등에 대한 정의와 규칙을 사전에 설정하고 이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질문지가 여러 개 정해져 있고 그 질문지에 답변을 하면 배점에 따라 점수가 부여된다.

두 접근법은 모두 장단점이 있다. 원리 기반 접근법은 정해진 항목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방식(규칙기반 접근법)이 아니라서 평가자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정보 축약 정도도 상대적으로 적어 다양한 정보를 반영해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객관성이 떨어질 수 있고, 사례 간 비교가 사전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전문가의 개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것도 단점이다. 규칙 기반 접근법은 대체로 활용하기 쉽고 비용도 적게 든다. 기존에 정해진 규칙대로 수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등급이나 점수로 결과가 도출되기 때문에 축약된 결과를 다른 사례의 점수와 직접 비교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규칙을 세울 때 고려되지 못한 요소가 있는 경우 추후 반영할 수가 없어 유연성과 대응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원리 기반 접근법으로 사회적 가치를 측정·평가하는 방식의 대표적 예는 사회적 투자수익률(SROI, Social Return On Investment)이다. 사실 SROI는 엄밀히 말해 사회적 가치 평가 방법이라고 하기에는 구체적인 적용에 대한 명료성이 떨어져서 하나의 ‘관점’이라고 보는 게 옳다. 미국의 로버츠기업개발재단(REDF, Roberts Enterprise Development Fund)에서 주로 일자리, 자립과 관련된 사업을 추진하면서 그 성과를 비교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몇 가지 원칙 외에는 별다른 가이드가 없다. SROI에서 핵심 요소는 들어가는 비용 대비 사회적 가치의 창출이라는 비율 값에 있다. REDF가 초기에 목적했던 사회적 가치들은 대부분 화폐가치로 환원됐다. 따라서 사회적 가치를 분자에 두고 분모에는 투입된 비용을 넣으면 다른 비영리 조직이나 정부의 다른 프로그램과 비교해 투입된 예산 대비 적절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볼 수 있다.

가령, 성년을 앞둔 학교 밖 청소년을 자립시키기 위해 실행된 프로젝트에서 10명의 아이가 자립해 10만 달러의 순소득이 증가했는데 이런 결과를 창출하기 위해 들어간 프로젝트 비용이 총 8만 달러라고 치자. 이 경우 단순하게 이야기해 1.25(10만 달러/8만 달러)의 SROI를 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 비율은 같은 사업의 다른 연도와 비교해 볼 수도 있고, 좀 더 확장해 보면 분모와 분자가 같은 종류의 내용을 가진 유사 사업끼리 그 효과성에 대해 비교해 볼 수도 있다. 특히 과거보다 효과성이 높아졌는지를 판단하는 데 유용하다.

SROI는 사회적 회계라는 관점과 결합해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보고하는 데 활용됐다. 그러나 화폐가치로 환원되기 어려운 것들까지 억지로 변환한다거나 전혀 다른 종류의 사회적 가치끼리의 비율 값을 단순 비교하는 등 오류가 반복되면서 한계점이 부각돼 관점으로서의 가치 외에 방법론으로서의 가치는 점점 힘을 잃어 가고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인 B랩(B-Lab)이 주관하는 B콥(B-Corp) 인증의 기초가 되는 평가 시스템(BIA, B Impact Assessment)은 대표적인 규칙 기반 접근법이다. 크게 ▲조직의 운영 체계 ▲근로자에 대한 경제적 및 사회적 처우 ▲고객들의 평가 ▲환경적 이슈에 대한 적합성 ▲공급자, 지역, 다양성 등을 고려한 커뮤니티 형성 수준 등 총 다섯 가지 영역에 대해 180개의 질문에 답해 200점 만점에서 80점을 넘으면 B콥 인증을 주는 제도다. 실제적인 사회적 가치를 직접 측정하고 평가한다기보다는 대체로 조직의 활동과 준비 상태가 그에 적합한지를 보는 조직의 ‘건강성 평가’에 가깝다. 이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는 있지만 BIA 점수가 높고 비콥 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실제 사회적 가치가 크게 창출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가 평가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데이터 신뢰도에도 한계가 있고, 점수를 부여하는 항목 간 배점에 대한 논란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평가의 간편함과 비콥 기업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사회 흐름이 더해져서 최근에는 투자자나 지원자의 관점에 맞춰 조정된 글로벌 사회성과투자 평가 시스템(GIIRS, Global Impact Investing Rating System)이 BIA 기반에서 만들어져 활용되는 등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툴과 프레임워크 혹은 솔루션이 나왔고, 또 나오고 있다. 사회문제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거대해지면서 사회적 가치가 창출되는 영역과 방식 역시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고, 이에 따라 사회적 가치를 다양한 관점에서 측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요구와 필요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 각각의 사회적 가치 방법론은 고유한 특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방법론이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다. 사용자의 관점에서 각각의 방법론의 목적과 특성을 살펴보고 기업과 해당 사업 특성의 필요에 맞춰서 선택하면 된다.

오히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임팩트 투자자와 사회적 기업 등 이해관계자 간 합의 방식이다. 투자를 하는 쪽과 받는 쪽 모두 서로 ‘합의한 지표’가 사실상 측정돼야 할 지표, 즉 목적에 가장 부합한 지표일 것이고, 그 지표에 대한 데이터가 있어야 실제 목표한 결과에 도달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전 세계의 사회적 가치 지표들을 모아서 이런 이해관계자 간의 합의를 쉽게 도출할 수 있도록 돕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임팩트 보고 및 투자 기준(IRIS, Impact Reporting and Investment Standards)인데, 글로벌에서 가장 유력한 임팩트 투자자 네트워크인 글로벌 임팩트 투자 네트워크(GIIN, Global Impact Investing Network)가 공통으로 사용하면서 특히나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IRIS는 지표 카탈로그로, 실제 활용사례를 잘 연결해 설명하고 있고 산업이나 사회문제 테마의 분류를 통해 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측정과 평가가 실행된 뒤 보고하는 방식에서도 통합이 일어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임팩트 관리 프로젝트(IMP, Impact Measurement Project)가 있다. IMP는 광범위한 사회적 가치 측정과 보고 및 관리에 대해 일반적이고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기준 수렴을 목적으로 하는 세계 최대 네트워크다. 수년간 사회적 가치 평가를 위해 각 조직은 나름의 미션과 활동의 특성을 반영한 툴과 방법론을 개발하고 적용해왔지만 최근 들어 이를 하나의 관점으로 통합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크게 5개의 차원(What, Who, How much, Contribution, Risk)으로 사회적 가치를 개념화하고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지표와 IRIS 지표 라이브러리 등을 연결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림 3)



결론
사회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는 이상 사회적 가치 추구 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가치의 측정과 평가도 지금보다 더 활발해지고 더 발전하게 될 수밖에 없다.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이나 과학적인 설계가 사회적 가치의 측정 및 평가 영역에서도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세계적 트렌드를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 사회적 가치 측정과 평가에 관심을 가진 조직과 개인들에게 크게 세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한다.

첫째, 사회적 가치 측정과 평가가 우리에게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은 큰 의심 없이 활용하는 기업회계기준도 지금과 같은 수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개선 작업이 있어 왔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조급하지 않아야 진정한 진보를 목격하게 된다.

둘째, 사회적 가치 ‘워싱(washing, 이미지 세탁)’을 경계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사회적 가치를 외부에 보여주는 데 급급해 진정한 가치 창출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해 데이터를 속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우연히 혹은 비목적성으로 발생된 사회적 가치를 마치 처음부터 의도했던 양 포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꼼수’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감사가 강해진다면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우리의 목적이 평가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숫자만 나열해 놓고 정작 그 숫자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숫자에만 집중해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제고하기 위해 측정하는 것이지 증명하기 위해서만 측정해서는 안 된다(Measurement to Improve, Not just to Prove)”는 금언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적 가치의 측정과 평가는 잠시 주목받는 유행이라기보다는 이제서야 일어서기 시작하는 사회적 가치 생태계의 큰 기둥이다. 이는 그 자체로서도 가치가 있지만 생태계 전체를 활성화시킨다는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다. 사회적 가치의 측정과 평가에 대해 좀 더 많은 고민과 투자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필자소개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 timothydho@impactsquare.com
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영학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네이버에서 업무 경험을 쌓은 뒤 지난 2010년 임팩트 비즈니스 개발 전문기업 임팩트스퀘어를 설립해 소셜 벤처 액셀러레이션, 공유가치 창출(CSV) 전략 개발, 사회적 가치 평가 등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와 한양대에서 사회적 기업, 사회적 가치 평가 등과 관련된 수업을 맡아 인재 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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