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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9. GE의 추락

전략 짜는 것 만큼 잘 바꾸는 것도 중요 순혈주의 경영진, 위기 징후에 둔감해져

권기환 | 263호 (2018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126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제조업의 상징인 GE가 2018년 다우존스에서 퇴출됐다. 주가는 반 토막이 났고 구원투수로 나선 존 플래너리 CEO마저 1년 만에 교체되면서 위기가 장기화하는 조짐이다. GE가 추락한 원인으로는 1) 전략적 투자 판단 미스 2) 과도한 M&A의 부작용 3) 금융 부문의 과도한 의존 4) 경영진의 집단적 낙관주의 5) 행동주의 투자자의 경영 간섭 등을 꼽을 수 있다. GE의 역사를 만든 유능한 경영진이 과거의 영광에 도취해 쇠퇴의 징후를 가장 늦게 알아차렸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GE 사례는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대기업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준다.


GE의 추락
2018년 6월26일 S&P 다우지수위원회가 미국의 대표 기업 30개로 구성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에서 GE를 퇴출했다. GE는 1896년 생긴 다우지수의 원년 멤버로 1898년, 1901년 두 차례 퇴출됐지만 1907년 11월7일 이후 줄곧 다우지수의 터줏대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무려 111년 만에 다시 다우지수에서 쫓겨나면서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라는 자존심을 구겼다. 뒤이어 같은 해 10월 GE의 신용등급은 종전 ‘A’에서 ‘BBB+’로 강등됐다. 정크등급보다 겨우 두 계단 위다. 2018년 한 해 동안 40% 이상 떨어진 주가는 11월 말 현재 주당 8달러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JP모건체이스 등 증권가에서는 GE 주가가 6달러까지 주저앉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GE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GE는 핵심인 발전 사업 부문에서 결정타를 맞았다. 지난 3분기 실적 발표 때 GE는 2018년 3분기에 228억 달러(약 26조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는데 상당 부분이 발전기용 터빈을 만드는 발전 사업에서 발생했다. 발전 사업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3% 감소한 57억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2015년 프랑스 알스톰의 에너지 부문 인수로 비현금 영업권을 상각하면서 220억 달러 손실이 발생했다. 세계적으로 발전기 수요가 줄고 있는데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9월 텍사스주에서 GE의 최신형 터빈이 결함으로 멈추면서 체면을 구겼다.

2017년 8월 GE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CEO 존 플래너리는 1년 만에서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GE 역사상 최단기 CEO로 남게 됐다. 경영난으로 현금 곳간이 말라붙은 GE는 2019년부터 분기별 배당금을 기존 주당 12센트에서 1센트로 줄이면서 사실상 배당 폐지를 선언했다.



사실 GE의 추락은 2017년부터 시작됐다. GE의 주가는 2017년 한 해 동안에만 40% 이상 하락하면서 약 1250억 달러의 기업가치가 사라졌다. 2017년 3분기와 4분기 모두 시장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성과를 기록하면서 일시적 위기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1

무엇보다 2017년 말까지 직전 13분기 가운데 GE 매출이 시장 기대치를 상회한 시기는 단 3번에 불과했다. GE는 1878년 설립 이래 가장 큰 위기를 겪고 있다.

이 같은 위기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가장 큰 비난의 화살은 전임 CEO인 제프리 이멜트를 향했다. 이멜트 재임 16년 동안 S&P 500 지수가 124% 상승한 반면 GE 주가는 오히려 30% 하락했기 때문이다. 그전 CEO인 잭 웰치가 21년 재임 기간 동안 250억 달러 매출을 1300억 달러로 5배 이상 키우고 시가 총액을 38배 확대한 성적과 비교하면 이멜트에게 책임을 물을 만도 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번 위기가 CEO를 바꾼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뉴욕타임스 등은 “GE는 더 이상 ‘기적’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며 앞으로 잘 된다면 경제성장률 정도를 따라가는 ‘성숙 기업’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20세기 미국 제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었던 GE가 이제는 저성장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역설의 소용돌이 속에서 쇠퇴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최근 몇 년간 GE는 제조업에서 디지털 기업으로 변모하는 과정에 있었다. 새로운 변화에 앞장서며 ‘혁신’의 아이콘으로도 불렸다. 패스트웍스(Fast Works), 디지털 기반 기업 변신(Digitalization) 같은 새로운 조직 변화 프로세스를 도입하고 기존에 주력하지 않았던 사업 분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했다. 일각에선 GE의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이 100년 넘는 장수기업의 명맥을 이어온 비결이라고 칭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E가 기업의 존폐가 거론될 정도의 커다란 위기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외부 환경의 변화를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기술 기반의 디지털 기업들이 부상하면서 전통적인 제조업들이 부진해진 것이다. 하지만 GE 내부 사정을 보면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GE의 전략적 판단, 투자, 인력 운영 등 다양한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서 지금의 위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 부문이 성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화력발전 사업을 확장하는 전략적 실패가 대표적인 예다. GE 최고경영진은 위기의 징후를 알아채지 못했다. 과거의 영광에 도취해 사업에 빨간불이 켜졌음에도 ‘우리는 괜찮아’라며 안일하게 대응했다. 대형 투자자들도 GE를 도와주기는커녕 실적 부진과 배당액 등에 불만을 표출하며 안 그래도 어려운 GE의 목을 더욱 조였다.

GE의 실적 악화 원인 분석
1. 전략적 투자 판단의 실패
가장 뼈아픈 실패는 그동안 GE의 매출을 견인했던 GE파워의 수익성이 최근 들어 급격하게 악화된 것이다. 2017년 3월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GE는 천연가스, 석탄 등을 활용한 발전소의 효율성이 풍력이나 태양광보다 더 높다고 판단했다. 즉,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지 않더라도 수익성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예컨대 GE는 기존 화석연료 기반 발전용 터빈의 유지보수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화석연료 기반 고효율 발전용 터빈의 판매 가격도 인상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시장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세계적으로 풍력과 태양광 발전 설비 판매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발전소 수요가 크게 축소했다. 더군다나 2016년 11월 지구 온난화 방지 대책에 따른 파리협정이 발효됨에 따라 각 국가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지원책을 확대한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또 2017년 12월 세계은행이 석탄 및 천연가스 관련 기업에 대한 융자 정지를 발표하면서 인도 등에서 계획했던 신규 사업 추진도 어려워졌다. 글로벌 발전 시장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점유 비중이 현행 5% 수준에서 2040년에는 20% 정도로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글로벌하게 매년 300개 이상 팔릴 것으로 기대했던 대형 가스 터빈의 주문량은 2013년 212개, 2017년에는 122개로 축소되면서 GE의 재고 부담이 급증했다.

GE는 에너지 사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하면서 재무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도 실패했다. 2014년 97억 유로 규모의 알스톰 전력 및 그리드 부문을 인수하고, 2017년 74억 달러 규모의 원유 및 가스 굴착장비업체 베이커휴스를 인수하면서 가용 자금을 과도하게 소모했다. 다른 한편, 신재생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는 풍력 터빈 부문에 투자하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기술 발전과 설비비용 감소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높은 이익 창출을 기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결국 2014년 21% 수준이었던 GE 발전 부문의 영업이익률은 2017년 12%로, 2014년 14.5% 수준이었던 GE 오일&가스 부문의 영업이익률은 2.8%로 급감했다.

GE가 이처럼 전략적 판단 미스를 저지른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의 변화 속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대응하지 못한 탓이 가장 크다. 2017년 12월 제프리 번스타인 GE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전력 시장의 미래에 대한 오판으로 과잉 투자가 이뤄지면서 성과가 악화됐다”고 실토했다. 같은 시기 글로벌 경쟁 관계에 있는 독일의 지멘스와 일본의 미쓰비시히타치파워시스템은 화력발전 부문에서 상당한 수준의 감원을 진행했다.

아무리 중장기 성장 계획이 구체적이더라도 당장 닥치는 시장의 불확실성과 위험이라는 파도를 한 번에 넘기는 쉽지 않다. 기술 발전과 글로벌 경기 흐름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규모 설비와 규모의 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전통 사업도 더 이상 안심할 수 없다. GE는 이같은 변화의 징후가 여러 번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전략과 사업 포트폴리오를 우직하게 고수하면서 더욱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됐다.

2. 공격적 M&A의 덫
잭 웰치 이후 GE가 공격적인 M&A를 활용해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M&A 방식은 내부 개발(internal development)에 비해 다음의 장점을 갖고 있다. 우선 시장 접근 및 사업 수행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또 적정한 내부 능력이 확보되면 표적 기업을 저가에 매수해 핵심 역량을 흡수한 후 적정 가격에 매도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경쟁 기업의 수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안정적이며 때때로 시장을 짧은 시간 내에 확대하는 데 유리한 전략이다.

제프리 이멜트 역시 이전과 동일한 M&A 전략을 자주 활용했다. 텔레문도, 비벤디 유니버셜, 아머샴, 스미스그룹, 웨더채널, NBC유니버셜, 드레서, 존우드그룹, 러프킨, 알스톰, 베이커휴스 등을 인수했고, GE보험, GE플라스틱, NBC유니버셜, GE안타레스캐피털, GE캐피털, GE어플라이언스, 전구사업 등을 매각했다. 다시 말해 이멜트의 재임 기간 동안 GE는 미디어, 헬스케어, 우주, 석유, 전력 분야 사업을 인수했고, 금융, 화학, 미디어, 사모펀드, 가전 분야 사업을 매각했다. 전술한 주요 기업 인수 총액은 924억 달러, 매각 총액 역시 1242억 달러에 달했다.

GE의 공격적인 M&A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하지만 GE는 M&A 전략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을 간과했다. 성장 가능성이 높거나 주목받는 기업을 인수하는 데는 대규모 자금 투입이 전제된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는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는 이름으로 인수 기업의 흥망성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게다가 기업 간 계약이 성사돼 한 번 M&A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없었던 일로 되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잠재적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정확한 미래 산업 예측과 인수 대상 기업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필수 불가결하다. 또 가치 창출 극대화를 위해서는 M&A 이후의 조직 통합과 불필요한 부분에 대한 분리 매각 역시 체계적으로 수행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요즘 같은 저성장 시기에 불필요한 부분을 제값 받고 팔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M&A는 인수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조직 복잡성, 재무적 불안정성, 미래 사업의 불확실성 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GE가 추진해온 확장 지향적 M&A의 실체와 관련해서는 최근 CEO에서 물러난 플래너리 조차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2018년 연례 서한을 통해 “복잡성이 GE를 망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단순하고 집중된 GE를 만들어야 한다”며 “에너지, 항공, 헬스케어를 GE의 핵심 사업으로 규정한다”고 강조했다.

3. 금융 부문으로 과도한 의존
제프리 이멜트가 CEO에 부임하기 훨씬 전부터 GE캐피털은 GE 전체 사업에서 핵심적인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 경제가 성장기로 접어들면서 GE캐피털은 보험, 항공기 리스, 모기지 등을 아우르는 초대형 사업 부문으로 발전했다.

GE는 GE캐피털을 성장 동력으로 적극 활용했다. 특히 헬스케어, 가스터빈 등 다른 주요 사업 부문이 대출을 기반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진두지휘했다. 제조업에서 쌓은 신용도를 발판으로 GE캐피털은 기업어음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GE캐피털은 차입매수, 서브 프라임 모기지 거래 등 금융 분야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금융 부문으로의 투자가 확대되면서 혁신 기술 개발에 대한 GE의 투자 비중은 점차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 사업의 탁월한 성과는 단기적으로 주주들을 만족시켰을 뿐만 아니라 GE 전체의 성장을 주도했다. 2001년 당시 GE캐피털의 영업이익은 GE 전체 영업이익의 46%에 달할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GE는 미국 정부로부터 차입한 달러로 성장 가능성은 높지만 법인세율이 낮은 신흥국에 투자했다. 따라서 GE는 중국, 인도 등 신흥국 경기의 영향에 노출돼 있었다. GE는 교묘한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그룹의 이익 창출에 금융 사업 부문을 활용했다. 예컨대 대규모 대출에 따른 이자 비용을 높게 부과함으로써 국내 다른 사업 부문에서 발생한 이익을 상쇄해 세금을 축소한 적도 있다. 또 상대적으로 처분이 용이한 유동성 자산의 매매를 통해 분기 말 이익을 조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GE캐피털의 화려한 역사를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대규모 차입에 의존한 GE캐피털의 사업 확장은 금융위기 직후 전사적인 유동성 부족을 촉발했다. 단기 금융시장의 유동성이 고갈되면서 기업어음 상환에 어려움이 생겼고 이는 그룹 전체에 부담을 줬다. 결국 GE는 미국연방예금보험공사로부터 1390억 달러 규모의 보증대출을 받아 연명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까지 GE가 금융 서비스 부문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점을 연일 강조하자 이멜트는 제조업 뿌리로의 회귀를 강조하며 GE 캐피털의 매각을 서둘렀다.

부유한 곳간이었던 GE의 금융 부문이 위태로워지자 금융에 의존했던 다른 사업 부문까지 줄줄이 막다른 골목에 봉착했다. 특히 헬스케어, 가스터빈같이 대출을 기반으로 매출을 일으켰던 여러 사업이 어려움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2018년 1월 GE캐피털 보험 사업부에 엄청난 악재가 발생했다. 2004년 GE에서 분사한 젠워스파이낸셜이 1990년대에 판매했던 장기 간병보험 계약의 준비금 부족이 현실화한 것이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GE는 2017년 말 62억 달러를 적립했지만 역부족이었다. GE는 2024년까지 7년 동안 150억 달러를 추가로 적립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25억 달러 수준일 것이라는 시장의 예측보다 크게 웃돌아 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GE 해체 여부가 달린 가장 결정적인 사안이 될 것이라는 억측까지 제기될 정도였다.

장기 간병보험 관련 대규모 손실은 1990년대에 판매한 과거의 부실 계약에서 발생했다. 금융상품을 판매할 당시 금리 예측, 요율 책정, 보장 구조 측면에서 리스크를 거의 인지하지 못했다. 요구수익률 대비 금리 하락에 따른 운용수익률 저하, 고령화 추세를 반영하지 못한 낮은 요율 책정, 과다 진료를 유발하는 실손 보장 구조가 결합할 경우 얼마나 큰 파급 효과가 나타날 것인지 간과했던 것이다. GE는 이런 이슈를 2017년 3월에서야 제대로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GE는 금융 서비스 부문을 이익 창출 수단으로 잘 활용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본업의 경쟁력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4. 경영진의 집단적 낙관주의
GE 경영진의 지나친 낙관주의와 과도한 자신감 또한 GE가 서서히 침몰하는 데 한몫했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GE 성과가 지속적으로 악화한 이유 중 하나로 집단적 사고에 빠진 GE 경영진의 지나친 낙관주의를 지목했다.

GE 내부에서는 ‘선별된’ 긍정적인 정보만 공유하기 바빴다. 자연스럽게 구성원들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웠고, 나쁜 뉴스는 더욱 드러내기 어려워졌다. 예컨대 제프리 이멜트는 사업 부문들이 충분한 현금 수익을 창출하지 못할 때도 930억 달러를 자사주 매입에 사용했으며 자금을 차입해서 배당 수준을 가능한 한 유지하거나 높이려고 했다. 또 이멜트가 물러나기 직전까지 GE 내부에서는 알스톰과 베이커휴스 인수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컸다. 내부적으로 ‘할 수 없다’ ‘문제가 있다’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조직 분위기가 형성됐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GE의 독특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통해 내부에서 육성된 인재들로 구성된 경영진 사이에서 더욱 공고해졌다. 결국 성과 달성만을 과시하는 ‘성공 극장(Success Theatre)’의 문화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지나친 낙관주의와 순혈주의는 역설적으로 자만으로 이어졌고 이는 조직의 경직된 문화와 관료주의의 폐해를 낳았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이멜트의 강연에서 잘 드러난다. 2017년 5월 플로리다주 새러소타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이멜트는 산업계 전문가들과 금융권 인사들 앞에서 “주가가 재무 상황이 낙관적인 강력한 기업인 GE의 상황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2017년이 GE가 대규모 기업구조 조정을 추진하는 마지막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후임 CEO인 플래너리가 부임한 후에도 GE는 계속해서 사업을 매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왜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일까? GE의 승진 구조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GE는 어느 기업보다 임원 간 경쟁이 치열한 회사다. CEO 승진을 염두에 둔 임원들은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현 CEO가 후계자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구조에서 후계자들이 현재 CEO의 낙관적인 전망에 찬물을 끼얹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무리한 목표 설정,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한 투자 결정 보유 현금의 막대한 출혈 등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2017년 8월 이멜트가 물러난 후 GE 주가는 40% 이상 폭락했다. 이사회가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도 놀랍다. 2011년부터 이사회에 참여해서 기업구조 조정을 주도했던 전임 CEO 플래너리 또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5. 행동주의 투자자의 단기 지향적 경영 관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행동주의 헤지펀드 2 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특정 기업의 미래 가치가 현재 가치보다 충분히 증가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행동에 나선다. 일반적으로 트라이언파트너스, 칼아이칸, 서드포인트, 엘리엇 등 영향력이 막대한 글로벌 헤지펀드들은 특정 기업의 주식을 매수해 주주가 된 후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투자 이익을 극대화한다. 대개 이사회 재구성, 경영진 교체, 자사주 매입, 사업 구조 개편, 전사적 구조조정 같은 수단을 활용한다.

헤지펀드의 적극적인 경영 관여는 단기적 주가 상승의 혜택과 중장기적 기업 성장성 훼손 사이에서 논란을 낳기도 한다. 다우듀폰, 포드, US스틸, CSX, 네슬레, BHP빌리턴, P&G, 크레디트스위스 같은 기업과 마찬가지로 GE 역시 헤지펀드의 공격 대상이 됐다. 그들은 GE의 충분한 잠재력 대비 주가가 낮다고 주장했다.

2005년 설립돼 현재 넬슨 펠츠가 이끌고 있는 트라이언펀드는 25억 달러를 들여 2015년 5월 GE 주식 1% 정도를 사들였고 2017년 10월 트라이언펀드의 최고투자책임자(CIO)가 GE 이사회 멤버로 활동을 시작했다. 트라이언펀드는 GE 주가를 올리기 위해 비용 절감, 영업 마진 확대, 금융 부문 축소, 신중한 M&A, 채권 발행 확대, 자사주 매입, 산업 부문 집중 등을 꾸준히 주문했다.

GE는 기업의 운영 방식이나 전략 등에 대한 지적을 받아들이는 대신 2016년까지 490억 달러를 들여 자사주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만족시켰다. 사업 운영과 미래 성장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를 상승시키면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무리한 요구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경영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진행된 자사주 매입은 보유 자금의 감소만 유발하고 정작 주가 상승을 견인하는 데는 미미한 효과를 보였다. 자사주 매입의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드러나자 GE는 배당을 통해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2012년 50% 수준이었던 GE의 배당 성향은 투자자의 요구를 반영하느라 2016년 들어 99%로 증가했다. 주가 상승이 미미한 상황에서 주주들을 만족시키려면 배당금이라도 높여야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플래너리 CEO는 성장을 위해 투자자 간 합리적인 균형을 맞춘 배당 정책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GE 추락의 교훈
앞서 살펴본 5가지 GE 추락의 원인 요소들, 1) 미래 비즈니스 선정 관련 전략적 의사결정 리스크의 현실화 2) 신속한 성장에 집중된 M&A 활용의 한계 3) 금융 부문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정보 왜곡 4) 경영진의 집단적 낙관주의 5) 행동주의 투자자의 단기 지향적 경영 관여는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사안으로 봐서는 안 된다. 이들 사이에는 나름 상당한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 발전 부문 중심 비즈니스에서 수십 년 동안 쌓아 왔던 경험과 사업 수행에 대한 경영진의 자신감으로 말미암아 GE는 과거와 현재만을 반영한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GE 경영진의 집단적 낙관주의가 화력 발전 사업의 공격적 확장을 유도 혹은 방치한 것이다.

이러한 의사결정을 공고히 하고자 GE는 알스톰과 베이커휴스 등 인수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다. 이를 통해 디지털 변신의 실효성을 높이고 신속하게 수직적 계열 구조를 완성함으로써 미래 시장 지배력을 가시화하려는 의도였다. GE디지털을 통해 강화한 산업 인터넷 기술을 새로 인수한 기업들에 적용하고 경쟁 우위의 원천으로 삼아 높은 수준의 부가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상당한 수준의 경영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전략의 이면에는 금융 부문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던 과거의 습관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기대를 뛰어넘는 기술 혁신으로 글로벌 발전 시장은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재편됐고 GE는 내려가기도 쉽지 않은 엉뚱한 산의 정상에 서 있게 됐다.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는 참담했다. 시장 흐름으로부터 격리되면서 도저히 시너지가 구현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됐고 GE는 꾸준한 성과 하락에 직면했다. 게다가 GE의 시장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있음을 확신한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과거 의사결정에 따른 금융 부문의 잠재 위험이 가시화하면서 나쁜 소문의 전파와 시장 성과의 악화가 가속화됐다. 이렇듯 기대 이하의 저조한 실적과 시장의 철저한 외면은 GE 조직과 경영진으로 하여금 단기적인 비용 절감과 이익 확보에 집중하도록 이끌었다. 이런 분위기가 고착되면서 조직 내 불안이 증폭되고 핵심 역량의 왜곡 혹은 훼손 가능성 또한 커졌다. 결국 앞서 정리한 다섯 가지 사안들은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하면서 GE의 시장 가치를 추락시켰다.

GE 추락이 우리에게 던지는 몇 가지 교훈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GE의 추락은 ‘전략적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GE의 사례는 전략을 체계적으로 수립하는 것만큼이나 전략을 잘 변경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시사점을 준다. 기술, 경쟁, 고객, 시장 등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비즈니스 환경을 사전에 가능한 한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만큼이나 비즈니스 환경을 수시로 분석해서 유연하게 대응해 나가는 것이 필수 불가결하다. 외부의 불확실성을 적절히 살펴볼 뿐 아니라 기업 내부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면밀히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실패는 자산화하고 성공은 미래의 더욱 큰 성과를 위해 핵심 역량으로 승화해 나가야 한다. 단순히 실패를 감추기만 하거나 망각하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성공한 후에도 성공에 이르게 된 동인과 노력이 무엇인지도 면밀히 살펴서 조직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톱다운(Top-down)으로 수행한 계획이 실패했을 때 그냥 덮어 버리거나 보텀업(Bottom-up)으로 수행한 계획이 성공했을 때 축하하기만 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GE는 ‘기업은 어떤 방식으로 성장해야 하는가’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그동안 저성장 기조가 유지되면서 급격한 매출 성장을 위해서는 대규모 M&A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실물 옵션(real option) 성격의 소규모 M&A가 더 적절할 수 있다. 특히 지원과 역량이 뒷받침돼 있는 본업 중심의 성장 전략이라고 하더라도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경영 위험에 대비한 수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관련성이 낮은 주변 사업 분야라 할지라도 산업 간 융합의 잠재력을 고려해 적극적인 성장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GE의 추락은 ‘경영진이 발휘해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대기업 경영진은 모든 중요한 정보를 잘 알고 있는 전능한 사람들, 상상을 초월하는 보수를 받는 최고의 엘리트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커진 오늘날 경영진은 중요한 일부를 꽤 잘 아는 전문가 수준에 불과하다. 경영진 사이에 유사성보다는 다양성이 높을 때 의사결정의 질이 개선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GE처럼 목표 달성에 탁월한 성과를 보인 내부 엘리트들만 육성하고 이들 가운데 충성도가 높은 일부를 승진시켜 경영진을 구성하는 순혈주의는 집단 사고를 조장하고 관료주의를 퍼뜨려 조직을 퇴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대다수 한국 기업에서도 높은 충성심을 바탕으로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고 조직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이 대개 경영진으로 승진한다. 앞으로는 조직 내외부에 대한 경각심이 크고 변화하는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호기심과 유연성을 지닌 인재 역시 중용해야 한다. 특히 대규모 조직 변화와 근원적 전략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면 다른 업종 혹은 다른 국가에서 비즈니스 경험이 있는 글로벌 인재의 영입을 다각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GE의 추락은 ‘기업의 존재 의의’를 다시 묻게 만든다. 최근 장기적인 공유 가치보다 단기적인 재무성과를 요구하는 주주 중심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하지만 아마존, 구글, 넷플릭스 같은 기업들은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경영자 중심주의를 바탕으로 중장기 성장 전략을 세운다. 그리고 현재 성과의 양적 측면만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경영의 질적 측면을 포괄적으로 파악해 평가한다. 기업과 투자자 모두 미래 지향적인 소통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GE에 거는 기대
GE의 부진이 심화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흥미로운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 GE 가치가 너무 과도하게 저평가돼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이 흐르면 주가가 현재보다 50% 정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이 긍정적인 시장 전망이 나오고 있는 까닭은 무엇보다 GE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규모’에 기인한다. 1200억 달러 이상으로 예측되는 GE의 연간 매출액은 IBM, 나이키, 트위터의 연간 매출액 800억 달러, 340억 달러, 27억 달러를 모두 합한 금액보다 크다.

그뿐만 아니라 잭 웰치 이래로 지금까지 여러 차례 GE가 보여준 환골탈태의 기업 변신 DNA 역시 GE의 시장가치가 개선될 것이란 전망에 힘을 보태고 있다. 흔히 기업 변신은 기업을 구성하는 전략, 조직 구조, 관리 시스템 등 하드웨어 요소와 기업 목적, 업무 프로세스, 조직 구성원 등 소프트웨어 요소의 총체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대규모 변화가 기대한 성과 목표를 달성하려면 한두 가지 혁신 기법을 단편적으로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 특성에 맞는 혁신 기법을 연속적으로 실행해 전략적 합치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예컨대 잭 웰치는 워크아웃 타운미팅(work-out town meeting), 벽 없는 조직,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 도전적 목표 추구(stretch goal), 변화 가속화 프로그램, 6시그마 같은 혁신 기법을 통해 제조 및 R&D 역량을 키움으로써 GE를 글로벌 절대 강자로 성장시켰다. 제프리 이멜트는 단순화(simplification), 린 6시그마, 타운홀 회의(town hall meetings), 꿈꾸기 세션(dream sessions), 상상력 돌파(imagination breakthrough), 친환경 사업 혁신(ecomagination), 헬스케어 사업 혁신(healthymagination) 등을 통해 GE를 영업 및 마케팅 역량까지 겸비한 글로벌 기업으로 변화시켰다. 사람들은 이제 플래너리에 이어 신임 CEO가 된 래리 컬프가 보여줄 GE 특유의 기업 변신 DNA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래리 컬프는 GE 역사상 126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에서 수혈된 CEO다. 래리 컬프는 다너허코퍼레이션에서의 성공 경험을 살려 GE의 순혈주의와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과거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

GE가 GE디지털의 매각을 논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1년부터 추진해온 디지털 변신 전략의 잠재력이 어떻게 발휘될지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GE디지털 부문의 매출은 50억 달러 내외에 불과해 1200억 달러가 넘는 전체 매출액과 비교하면 아직까지는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디지털 혁신이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장기적인 성과를 기대해볼 만하다. 앞으로 기업을 살리는 과정에서 기술 기반 플랫폼인 프레딕스(PREDIX), 디지털 가상 설비인 디지털 쌍둥이(Digital Twin), 대규모 디지털 정보의 생성과 분석을 포괄하는 디지털 정보 흐름(Digital Thread), 소프트웨어 전문 인재들로 대별되는 디지털 변신 역량과 성과를 훼손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소개 권기환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kkh1212@gmail.com
권기환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서울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창의성학회 부회장, 한국전략경영학회 이사, 한국중소기업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기업 변신, 비즈니스 혁신, 벤처 글로벌화 등이 주요 관심사다.
  • 권기환 권기환 | -상명대 경영대학원 교수
    -한국창의성학회 부회장, 한국 창업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음
    kkh12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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