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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 덕분에 월가 탄생했다? 역사를 바꾼 5가지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

223호 (2017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 이 다섯 가지 물건들의 공통점은 바로 역사를 바꾼 물건이란 사실이다. 인류 문명의 기본이자 재화의 개념으로 ‘거래’를 형성한 소금, 중요한 무역 품목으로 고조선 경제사의 시작이자 고조선 개척 및 개발의 일등 공신인 모피, 보어전쟁을 유발해 보어인의 대학살이라는 전대미문의 참상을 일으킨 보석, 대항해 시대의 개막과 식민지 획득경쟁의 목적이 된 향신료, 상처를 치료하는 바르는 연고에서 국가적 존망을 위협하는 상품이 된 석유가 바로 인류사와 함께하며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한 주요 상품들이다.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 이 다섯 가지 물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역사를 바꾼 물건이란 사실이다. 모든 문명 발상지의 공통점은 소금이다. 소금이 없는 곳에서는 문명이 발달하기 힘들었다. 모피가 없었다면 시베리아와 북아메리카는 별 볼일 없는 땅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보석을 둘러싼 갈등 덕분에 공산주의가 태어났다. 동양이 가진 향신료 덕에 서양은 동양에 관심을 가졌고 동서양 문명의 교류가 시작됐다. 석유를 빼놓고 현대사를 얘기하긴 어렵다. 오늘은 그런 것에 관한 책 <세상을 바꾼 다섯 가지 상품 이야기>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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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역사적으로 소금이 생산되는 곳이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소금으로 거래가 시작되고, 거래는 시장을 만들고, 시장이 발달한 곳에서 경제는 번성했다. 천일염은 태양과 바람의 축복이다. 그런데 만드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우선 염전을 꾸밀 갯벌이 있어야 한다. 둘째, 물을 증발시킬 정도로 덥고 건조해야 한다. 셋째, 비가 적고 바람이 있어야 한다. 지중해 연안 일부, 인도 서부, 호주 서부와 한국 등이 여기에 적합하다. 한국의 서해안은 세계 5개 갯벌 중 하나이자 아시아 대륙의 유일한 대형 갯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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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발전한 이유 중 하나도 소금이다. 로마는 남부 이탈리아의 조그만 어촌에서 소금 거래를 하던 몇몇 상인들이 만든 나라다. 페니키아시대에 로마 근교 테베레강 하구에 건설된 인공 염전에서 소금을 만들었다. 유럽 최초의 인공 해안 염전이다. 소금은 생산도 힘들지만 운송은 더 힘들다. 당연히 운송비가 많이 들었다. 낙타 네 마리에 싣고 온 소금 운송비로 세 마리 낙타가 싣고 온 소금을 줘야 했다. 통행세인 수입세와 관세도 물어야 했다. 통행의 두 가지 장애는 울퉁불퉁한 길과 도적들이다. 이들은 길을 잘 닦아놓고 통행세를 받았다. 2세기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는 소금과 금을 얻기 위해 다치아인들이 살고 있던 땅을 정벌해 큰 암염광산을 획득했다. 이 땅이 로마인의 땅이란 이름의 루마니아다. 로마 초기에는 소금이 화폐 역할을 했다. 그래서 관료나 군인에게 주는 급여를 살라리움(salarium)이라고 했다. 여기서 급여를 뜻하는 샐러리가 나왔다. 이외에도 소금 관련한 말이 많다. 독일어 할레(Halle)는 ‘소금을 만드는 집’이란 뜻이다. 미국의 솔트레이크시티, 터키의 투즐라,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모두 소금과 관련한 곳이다. 한국은 1907년 주안에서 최초의 천일염이 만들어졌다.

베네치아는 훈족의 침입으로 생겨난 해상도시다. 당시 로마인은 훈족을 피해 갈대의 늪지대로 이전했는데 무사히 섬에 도착한 후 ‘베니 에티암’이라고 외쳤다. 나도 여기에 왔다는 뜻이다. 여기서 베네치아란 말이 나왔다. 원래 베네치아는 석호에서 나는 숭어와 장어, 소금 외에는 별 생산품이 없었다. 그러다 7세기 이후 해수면이 내려가면서 소금 생산에 좋은 조건이 만들어졌다. 여러 개의 염전을 만들고 펌프와 수문을 이용해 바닷물의 염도를 점점 높여 다음 단계로 보내는 방식이다. 베네치아는 소금 독점을 기반으로 배를 만들어 바다로 나갔다. 대외 교역을 위해서였다. 10세기경부터 아드리아 해안가 염전에서 대량으로 천일염을 생산해 알프스 지역에 공급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다. 이들은 소금 독점을 위해 여러 차례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14∼15세기에는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소금 생산을 할 수 없었다.

소금은 여러 사건을 일으켰다. 당나라 황소의 난이 대표적이다. 9세기 당나라 말기 정부는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지나치게 비싼 값에 소금을 팔았다. 원가의 20배에 해당하는 값이다. 개인이 소금을 만들려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했고 만약 걸리면 왼쪽 발가락을 잘랐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는 법이다. 당연히 암거래가 생겨났다. 황소란 사람은 과거에 낙방한 후 소금장수를 시작했는데 이런 부당한 것을 참지 못하고 난을 일으킨다. 그게 유명한 황소의 난이다. 프랑스혁명의 원인 중 하나도 소금이다. 정부가 소금에 불공정 세금을 매겼고 이에 따라 암거래가 성행하면서 악순환이 계속됐다. 백성에게는 지나치게 비싼 세금을 매기고 귀족에게는 염세를 면제해줬다. 만약 소금 암거래를 하다 걸리면 200리브르의 벌금을 내야 했는데 당시 노동자의 1년 수입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또 ‘G’라는 낙인을 찍어 갤리선에서 죽을 때까지 노를 저어야 했다. 인도 독립의 시발이 된 소금 행진도 영국인의 염세에 반대해서 일어난 사건이다. 옛날부터 소금은 국가가 관리했다는 것은 글자만 봐도 알 수 있다. 소금의 한자인 소금 염(鹽)이 그렇다. 글자를 파자하면 신하 신(臣), 소금 로(鹵), 그릇 명(皿)으로 돼 있다. 그릇에 있는 소금을 신하가 관리했다는 의미다.



모피

모피 역시 세상을 바꾸었다. 모피 사냥 덕분에 개발된 곳이 동토의 땅 시베리아와 북아메리카다. 모피 사냥꾼의 시베리아 개척 속도는 군대의 진격 속도보다 빨랐다. 모피는 대표적 사치품이다.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최초로 모피에 세금을 붙였다. 시베리아 검은담비 모피 가격은 사냥꾼 한 명이 검은담비 몇 마리만 잡아도 생애를 편하게 보낼 정도였다. 한때 러시아의 비버 가죽 수출액이 재정의 11% 정도를 차지했다. 명품 모피의 대명사 비버는 북아메리카의 역사를 바꾸었다. 비버로부터 귀한 해리향도 얻었다. 비버가 짝짓기를 할 때 상대를 유인하려고 분비하는 아주 강한 향을 지닌 물질이다. 유럽에서는 고급 향수의 재료로 쓰인다. 비버에 눈독을 들인 네덜란드 상인들은 뉴욕 맨해튼 지역을 주목했다. 처음에는 그곳에 가죽 거래를 위한 교역소를 세웠고 이듬해 24달러를 주고 아예 맨해튼을 샀다. 남단의 배터리파크는 역사적 거래가 이뤄진 장소이다. 네덜란드인은 이곳에 뉴암스테르담을 건설했다. 지금도 배터리 남단은 네덜란드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인디언과의 싸움이 치열했고 인디언의 습격을 막기 위해 통나무벽을 쌓았다. 1653년 맨해튼 남단에 영국군의 침략을 막기 위해 끝을 뾰족하게 깎은 나무목책 벽(wall)을 세웠는데 나무목책이 세워진 거리와 인접한 거리를 ‘월가’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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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역사에서 모피 사냥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다. 고조선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담비 가죽은 우리의 중요한 무역 품목 중 하나였다. 특히 유목민족들이 사는 북쪽 초원길 쪽에 수요가 많았다. 내다 팔 사이도 없이 모피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중국은 담비 가죽을 동쪽의 세 가지 보물 중 하나로 쳤다. 일본에서도 담비 가죽은 인기였다. 발해 사신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의 왕족 하나가 담비 가죽 여덟 벌을 입고 나와 자신을 과시했다고 한다. 담비는 현재 한국에서 아주 귀한 동물이 돼버렸다. 하지만 고대에는 동옥저에서 담비 가죽으로 조세를 받을 정도로 많았다.



보석

1492년 3월31일 스페인은 자국 내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국민의 6.5%가 유대인이었다. 1492년은 마지막으로 이슬람을 몰아내고 스페인 통일을 달성하던 해다. 이반된 민심을 추스르고 바닥난 국고를 재정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는 유대인들이 상권을 장악했다. 바르셀로나 몬주익 일대는 과거 유대인의 집단 거주지였다. 몬주익이란 단어 자체가 ‘유대인의 산’이란 뜻이다. 콜럼버스 신항로 탐사에 들어갈 자금 마련도 목적 중 하나다. 4개월 내에 떠나야 하고 재산 처분은 허용하되 화폐와 금, 은 등 몇 가지 귀중품을 가져갈 수 없다. 한마디로 재산은 놔두고 몸만 빠져나가라는 말이다. 개종을 거부한 유대인은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헐값에 팔아 치웠다. 집을 주고 당나귀를 얻고 포도원을 몇 필의 포목과 교환했다. 이 중 몇 명은 저당으로 잡았던 부피 작은 보석류를 챙겼다. 신변의 위험을 안고 사는 유대인은 늘 재산을 나누어 놓는다. 3분의 1은 현금으로, 3분의 1은 보석이나 골동품 같은 재화로, 나머지는 부동산 등으로 나누는 것이다. 안정적 분산투자란 뜻으로 쓰이는 ‘포트폴리오’는 여기서 유래했다. 떠나기에 앞서 열 살 이상 되는 아이들은 모두 결혼시켜 가족을 이루게 했다. 17만 명이 한꺼번에 추방당했다. 1480년 종교재판을 피해 빠져나간 사람까지 합하면 26만 명 이상이 스페인 땅을 떠났다. 당시 도시 인구는 3만 명을 넘기 어려웠는데 대단한 숫자다. 콜럼버스의 배도 유대인에게서 빼앗은 돈으로 건조했다. 1492년 8월3일 떠났으니 유대인 추방이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이주 도중 2만 명은 길에서 목숨을 잃었다. 스페인에서의 유대인 몰락은 유대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근데 이 사건이 앤트워프와 암스테르담의 보석시장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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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대규모 광맥이 발견되자 이는 축복이 아니라 악마의 저주로 변한다. 보석을 장악하려는 제국주의의 만행은 보어전쟁을 유발한다. 대학살이 일어난다. 이를 취재하던 영국 특파원 존 홉슨은 제국주의론을 쓰고 레닌이 이를 받아들여 공산주의가 탄생한다. 드비어스란 독점괴물이 점령해 생산, 유통, 판매, 재고 관리를 한다. 인위적으로 공급을 제한해 높은 가격을 받는다. 유대인 성 중 골드버그, 슈타인버그는 금과 보석을 다루는 직업이다. 네덜란드어로 농부를 뜻하는 ‘부어(boer)’란 단어에서 유래한 보어인은 남아프리카 지역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동인도회사 사람들인데 현지에 눌러앉은 것이다. 이들은 여기서 케이프식민지란 이름의 식민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영국인들의 압력으로 내륙으로 거주지를 옮겨 트란스발 지역에 네덜란드계 국가를 건설했다. 그러다 다이아몬드가 발견된다. 1866년 오렌지강 연안에서 에라스무스 야곱이라는 보어인 양치기 소년이 21캐럿짜리 초대형 다이아몬드 원석을 본 것이다. 그 원석이 유명한 ‘유레카’다. 유레카는 발견했다는 뜻이다. 농사짓던 사람들이 광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원석을 캐기 위해 땅을 파 들어갔다. 영국인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45만 명의 영국군을 파견해 보어인의 집과 농지를 파괴한다. 1881, 1889년 두 차례에 걸쳐 보어인을 대학살한다. 이 전쟁에서는 두 사람이 유명하다. 하나는 윈스턴 처칠이다. 종군기자로 활동하다 포로로 잡혔으나 탈출해 명성을 날렸다. 또 한 사람은 존 홉슨이다. 제국주의를 비판하는데 이 이론이 레닌 이론의 알맹이가 된다. 영국은 경제적 수탈을 일삼고, 외국에 서슴없이 마약을 팔아 자국의 국부를 늘렸다. 제국주의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를 비판한 학자가 바로 존 홉슨이다. 영국 노동당의 사상적 기초를 닦은 사람이다. 제국주의를 “국가 내의 부유층이 사치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의 통치를 강탈해서 외국의 몸에 빨판을 박아 그들의 부를 빼내려고 제국을 팽창시키는 기생적인 사회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뉴욕에는 2000명의 다이아몬드 딜러클럽 자격증을 가진 딜러들이 있다. 주로 드비어스 사이트홀더를 통해 다이아몬드를 공급받고 있다. 98% 이상이 유대인이다. 이 안에서 모든 것이 정해진다. 유대인을 영어로 ‘주(Jew)’라고 하는데 이는 보석을 뜻하는 주얼리와 뿌리가 같다. 드비어스는 다이아몬드 광석을 등급별로 분류해 가공 직전 단계의 원석을 파는 회사다. 거래 방식이 희한하다. 일 년에 딱 열 번만 판매를 한다. 세계적으로 150개 고정 지정 고객에게만 구매권한을 준다. 이들이 사이트홀더다. 지정 고객은 원석에 대한 선택권이 전혀 없다. 회사가 가격과 물량을 제시하면 불만 없이 현금으로 구입해야 한다. 가격에 불만을 나타내면 다음부터는 초청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정 고객이 못 돼 오히려 안달이다.



향료

14세기 초 동서 교통로를 보호해주던 원나라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오스만제국이 발흥해 유럽과 동방의 무역로를 차단했다. 그러자 유럽에서 후추 가격이 폭등했다. 생산지 가격의 100배는 보통이고 육두구의 경우 600배까지 치솟았다. 동양의 향신료만 얻을 수 있으면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그러자 유럽 각국은 동방 향료를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인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 개척이 시급해진 것이다. 지리상의 발견이 시작된 것도 바로 후추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근데 유럽인은 왜 비싼 향신료를 선호할까? 그들은 후춧가루를 친 스테이크를 좋아했다. 맛없는 음식에 정향이나 육두구 같은 향료를 넣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콜럼버스가 대항해를 결심한 배경에는 아브라함 자쿠토의 영향이 컸다. 그는 남반도에서 위도를 구하는 방법을 찾아냈고 콜럼버스에게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사람이다. 콜럼버스는 유럽에 감자, 고구마, 옥수수, 토마토 등을 갖고 왔다. 아이티에서 고추도 발견했다.

커피와 와인은 인류의 역사를 이끈 쌍두마차다. 기독교 문화가 뿌리를 내린 곳 어디서나 포도농장을 볼 수 있었던 반면 이슬람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곳에는 어디서나 커피향이 가득했다. 기독교에서 와인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멋진 선물로 여겨진다. 심지어 와인은 예수의 피로 상징된다. 반면 이슬람에서는 인간을 인사불성으로 만드는 와인을 혐오했다. 이성과 절제를 추구하는 이슬람교도들은 정신을 맑게 해주는 커피를 애호했다. 이들에게 커피는 종교였다. 커피는 무함마드에게 가브리엘 대천사가 전해준 음료였기 때문이다. 커피는 9세기 이슬람 율법학자들이 졸음을 쫓기 위해 마셨다. 이들은 커피 씨앗의 유출을 막았다. 대신 씨앗을 끓이거나 볶아서 유럽행 배에 선적했다. 커피와 와인은 인류 역사를 이끈 쌍두마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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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는 12세기 십자군전쟁 때 커피가 처음 유입됐다. 하지만 기독교도들은 이를 이슬람 음료로 여겨 배척했다. 예멘에 사는 유대인들은 커피 독점 공급을 위해 수출항을 한곳으로 정했다. 그게 아라비아반도의 남부 항구 모카항이다. 아라비아반도에는 3만 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 17세기 말까지 300년간 커피 무역을 독점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이 항구를 본떠 ‘모카커피’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편 차 문화권에서는 쉬고 싶을 때 차를 마신다. 그러나 커피는 일의 속도를 올리고 싶을 때 각성의 의미로 마신다는 점이 크게 다르다.



오일

영국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중동을 장악하려 했던 이유는 바로 석유 때문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영국이 외국에 연료를 일방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은 국가적 존망이 달려 있는 문제였다. 자국에서 석유가 나오지 않는 것은 적국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도 마찬가지였다. 1차 세계대전 중 중동을 둘러싼 한판 전쟁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석유가 많이 매장돼 있는 중동은 1914년 1차 세계대전부터 열강의 격전장이 된다. 신이 내린 축복이 이들에게는 재앙이 된 것이다. 중동은 당시 석유 자원의 혜택을 몰랐고, 사용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채굴 초기부터 석유 자원은 미국과 유럽제국주의 국가의 석유 메이저들의 소유가 되고 만다. 이처럼 석유 또한 역사를 바꾼 상품이다.

석유란 이름은 바위틈에서 흘러나온 기름이란 뜻이다. 영어 ‘petroleum’도 돌이란 ‘petra’와 기름이란 ‘oleum’ 라틴어를 합했다. 예전에는 석유는 바위틈에서 흘러나오거나 지표면에 간혹 자연 분출된 것들이 소량 시중에 나왔다. 기원전부터 역청이라 불렸다. 노아의 방주에 방수용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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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주식전문가 조지 비셀이 처음 연료로서의 석유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석유를 조명용 기름으로 쓰면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선 소금광산 주변부터 찾았다. 보통 석유는 염전 부근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비싼 양초와 고래기름에 의존하던 조명이 등유로 바뀐다. 석유 개발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1800년대 초까지는 제염업자들이 염수를 찾다 석유를 발견하곤 했지만 쓸데없는 방해물로 생각했다. 록펠러는 석유를 찾는 일보다 석유가 미칠 파급 효과에 주목했다. 정유사업을 했고 물류비를 줄이기 위해 고민했다. 그래서 철도회사와 협상을 한다. 일정 원유수송량을 보장하는 대신 가격을 깎았다. 협상을 위해 주변 정유공장을 흡수 합병했는데 그 결과 1870년, 스탠더드오일이란 회사가 탄생한다. 스탠더드란 이름은 말 그대로 표준을 지향하기 위해 만든 이름이다. 이전에는 불순물 등이 많아 석유의 품질을 믿지 못했다. 그는 빠른 속도로 인수합병을 시작해 석유산업을 독점하면서 경쟁자에겐 두 가지 옵션만을 줬다. ‘경영권을 상납하고 주식을 받든지, 아니면 독자적으로 하다 파산하든지’가 그것이다.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단 생각을 한 것이다. 한편 은행을 구워삶아 그들에게 돈을 지원하지 못하게 했다. 고사 작전을 쓴 것이다.

소금은 교역을 활성화시키고 도시를 만들었다. 향신료 때문에 바다로 나가고 결국 신대륙을 발견하게 됐다. 다이아몬드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 모피를 얻기 위해 시베리아도 개발하고, 오늘날의 뉴욕도 만들어졌다. 석유 때문에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했고 지금도 석유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일까. 앞으로 세상을 바꿀 상품은.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kthan@assist.ac.kr

필자는 서울대 섬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크런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핀란드 헬싱키경제경영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대우자동차 이사, IBS컨설팅그룹 상무,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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