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

위험을 피하는 것 자체가 위험… 냉철하게 상황 인식하라

215호 (2016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2011년 정부의 발표로 그 피해가 공식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10 단계를 걸쳐 위기가 커졌지만 옥시는 제대로 된 위기 대처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회피하고 부정했다. 결국 2016년 모든 것이 터지며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됐다. 위기를 맞은 기업에 옥시 사건이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위험을 피하려는 것 자체가 위험이다. 희망하는 상태가 아닌 현실 그대로를 직시해야 한다. 체크리스트를 통해 상황을 빨리, 객관적으로 파악하라.
2.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지사는 흔히 ‘최고 로펌’을 선호하지만 변호인의 이름과 소속이 실명 보도되는 시대에는 특정
로펌을 쓴다는 것 자체가 평판 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
3. 사회와 기업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있다. 기업의 대외협력, 커뮤니케이션 업무도 과거와 같은 암묵적 거래가 아닌
사회적 공론의 과정을 통해 관계를 강화하는 ‘기업외교’로 봐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생활용품 화학물질에 의한 최악의 재난이자 대형 참사다.

5년여 동안 수사를 미뤄온 검찰의 수사가 2016년 봄 갑자기 시작됐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발행한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사건 백서>의 총괄편집인을 맡았던 안종주 전 한겨레신문 보건복지 전문기자는 ‘최악의 환경 비극, 가습기 살균제 재앙의 진실’을 다룬 <빼앗긴 숨>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2016년이 되자 모든 것이 일순간에 바뀌었다. 검찰이 어찌된 연유인지 느닷없이 가해 기업, 특히 옥시레킷밴키저(이하 옥시)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면서 이 문제에 천착하지 않았던 대부분의 언론사가 가장 먼저 달라졌다. 덩달아 환경단체, 시민단체, 소비자단체들도 불매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갑자기 대한민국에서 마술쇼가 벌어지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배신감이 느껴졌다.”

2016년 11월29일 검찰은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팔아 대규모 인명 피해를 일으킨 혐의로 기소된 신현우 전 옥시 대표에게 사건의 책임을 물어 징역 20년을, 존 리 전 옥시 대표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옥시가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73명이 사망하는 등 피해자 181명이 발생했다. 검찰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소비자의 안전을 희생시킨 신 씨 등의 책임이 무척 무겁다”며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정부가 2011년 8월31일 원인 미상 간질성 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최초의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사건의 시작을 알린 이후 5년 만의 법적 판단이고 1994년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가 처음 출시된 이후 22년 만의 일이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원은 2017년 1월6일 이들에 대한 선고를 앞두고 있다.

민관 합동 폐손상조사위원회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적이 있는 잠재적 피해자를 총 227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은 모든 국민이 피해대상자였고, 모든 국민이 실제 피해자인 사건이다. 피해자와 함께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처음부터 주도한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올해 10월31일까지 집계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모두 5060명이고 이 중 사망자는 1058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의 문제제기와 전개, 해결과정은 특이하고 글로벌 기업 레킷벤키저와 한국지사의 대응 또한 특수하다. 이 글에서는 글로벌 기업과 한국 지사가 위기를 맞아 어떻게 여론과 평판에 대응했는가를 중심으로 상황을 분석해보려고 한다. 우선 시간에 따른 사건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배워야 할 몇 가지 교훈들을 정리해보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전개 과정

# 1. “과도한 원가절감 추진으로 안전을 소홀히 함” (2001∼2011)

소비자의 안전보다 이윤 극대화를 우선시한 경영 윤리의 부재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초래했다.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은 1994년 ‘가습기 메이트’라는 이름으로 가습기 살충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바 있다. 옥시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한 직원은 지난 4월21일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원래 2001년 이전부터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를 팔았다. 그때는 독성 물질이 아니었다. 그런데 회사는 늘 원가절감을 하려고 한다. 관리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생산원가를 낮출 계획을 짠다. 2001년 포뮬러(원료)를 바꿨다고 하더라. SK케미칼에서 싸게 공급을 받은 것 같다.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냈을 것이다. 더 싸게 만들 수 있다고. 그 과정에서 제대로 검증을 했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안 한 것이다. 원가절감을 과도하게 추진하면서 안전 문제를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이다.” 그는 또 “독성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게 된 이유에 대해 “가습기 살균제는 옥시의 300여 개 생산물품 중 하나다. 게다가 가습기 살균제는 우리 공장에서 생산하는 품목이 아니고 한빛화학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품목이다. 매출액도 10억∼20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전체 매출의 1%가 안 되는 품목이었다. 안전성에 크게 신경을 안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습기 살균제 원료인 PHMG가 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느냐’는 물음에 “아마도 연구소 직원들은 알았을 것이다. 검찰에서도 그런 식으로 진술했다고 들었다. 위험성을 인식했다고 하더라도 심각하게 생각을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신현우 전 대표 측 변호인은 “신 씨는 대표이사로 재직할 당시 가습기 원료 물질이 (독성 물질로) 변경됐는지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2. 임산부, 어린이 중심으로 원인 미상의 간질성 폐질환 환자 급증 (2006∼2011)

2011년 4월25일,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과 사무실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원인 미상의 중증 폐렴환자들에 대한 역학조사를 의뢰하는 서울아산병원 감염관리실 의료진의 전화였다. 서울아산병원에는 2011년 1월부터 숨을 잘 쉬지 못하는 임산부들이 들어왔고 모두 7명의 입원 환자 중 한 명은 사망한 상태였다. 의료진은 항생제, 스테로이드, 체외순환막형산화요법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질병의 원인을 밝힐 수 없고 환자들의 상태는 악화되기만 했다. 이러한 환자들이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아산병원 의료진은 원인 미상의 중증 폐질환이 신종감염병일 가능성을 우려해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한 것이었다.

질병관리본부의 예비 역학조사가 시작되면서 임산부뿐 아니라 성인 남성과 어린이에게도 같은 질환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서울아산병원 소아과에서는 2006년부터 임산부들과 증상이 거의 같은 수십 명의 어린이 환자를 진료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숨졌다. 이러한 소아들의 원인 미상 폐질환에 대한 조사결과가 2008년과 2009년에 대한소아과학회지에 학술논문까지 발표되기도 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질환이 감염성 질환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판단에 따라 5월6일 환경보건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다각적 역학조사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결국 여러 환경 요인을 조사 대상에 포함해 역학조사를 벌인 결과 가습기 살균제에 쓰이는 PHMG, PGH 등이 폐 손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과관계를 최종 확인했다.

보건복지부는 8월31일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미상 폐 손상 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11월11일에는 “동물흡입실험진행 결과 가습기 살균제에서 위해성(PHMG, PGH 독성물질)이 확인됐다”며 ‘옥시싹싹 뉴 가습기 당번’ 등 6종
의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수거명령을 내렸다. 피해 대책은 제조사에 소송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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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대응과 불통으로 위기 확산 (2011∼2016. 3)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이 드러난 이후에도 피해자에 대한 무대응으로 일관해 위기를 키웠다. 2012년부터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피해자 유족 등이 옥시를 비롯해 가습기 살균제 제조회사와 회사 대표를 형사고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가습기 살균제 시장에서 80%를 차지하며 가장 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던 옥시는 즉시 사과나 피해 구제 등의 직접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홍보팀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이후 검찰 조사가 본격화되기까지 옥시는 피해자들과 직접 소통하지 않아 공분을 샀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 8월31일, 옥시가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데 대해 과징금 5100만 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공정위는 의결서에서 “옥시레킷벤키저는 실증이나 검증절차도 없이 사실과 다르게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했다고 제품용기에 표시했다”면서 이같이 결정했다.

이후 부정적인 여론이 커지면서 옥시는 2013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 지원과 관련한 자체 기금을 마련했다. 2013년 11월1일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당시 옥시의 샤시 쉐커라파카 대표는 “모든 피해자와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안타깝고 송구하다”면서도 “해당 제품을 만들어 판매할 때는 안전하다고 믿었다. 인도적 차원에서 50억 원을 출연해 지원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인도적 차원’이라는 말로 선을 그으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아니라 환경부에 기금을 공탁했으며 제대로 된 사과는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옥시의 전 직원은 “옥시는 100% 외국투자 기업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5년 전에 터지면서 영국 본사에서 ‘모든 절차를 법률에 따라 진행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러다 보니 법무팀이 실세가 됐다. 모든 결제를 법무팀을 거치게 했다. 매우 경직된 상태에서 법무팀과 외부 로펌 주도에 따라 일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임직원들에게는 ‘모든 미디어와 접촉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래서 홍보팀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4. 늦은 사과, 성의 없는 사과가 피해자의 분노를 키움 (2016. 4)

형사 고발 4년 만인 2016년 4월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특별수사팀을 확대했고, 옥시의 민원 담당 전 직원들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옥시는 검찰 수사망이 조여오자 4월 21일 뒤늦게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 입장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안과 관련해 좀 더 일찍 소통하지 못해 피해자 여러분과 그 가족 분들께 실망과 고통을 안겨드리게 된 점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모든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고 협조하며, 가습기 살균제 관련 환자분들과 가족 분들을 지원하기 위한 모든 논의와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

덧붙여 옥시는 지난 2013년 환경부와 협의를 통해 조건 없이 50억 원의 인도적 기금을 기탁했다며, 이번에 추가로 50억 원을 더 출연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너무 늦은 사과와 성의 없는 서면 사과문의 형식에 여론은 싸늘했다. 옥시에 앞서 롯데마트의 경우 김종인 대표가 직접 고개 숙여 사과하고 보상 규모를 100억 원을 우선 책정하겠다고 밝힌 것과 비교됐다. 살균제 피해자들은 옥시의 사과문은 사과가 아니라 입장발표문이라며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5. 로펌이 주도한 법적 다툼으로사과의 진정성 상실 (2016.4)

옥시는 대외적인 사과가 이뤄진 시점과 거의 동시에 검찰에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의 폐 손상 원인이 봄철 황사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해 여론의 분노를 키웠다. 검찰의 수사 개시 직후 가습기 살균제와 인체 폐 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 질병관리본부의 2012년 역학조사 결과를 반박하는 총 77페이지 분량의 의견서를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특별수사팀에 제출한 것이다. 해당 의견서는 옥시 측의 변호를 맡은 김앤장의 자문을 받아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폐 손상 발병 원인을 두고 왈가왈부할 단계는 이미 지났고, 옥시 측이 그 같은 의견서를 낸 것은 검찰 수사를 흐리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6. 가습기 살균제 논란 속 옥시 불매운동 본격화. 네티즌들 대체 제품 정리해 배포 (2016. 4)

소비자들의 분노는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옥시가 사과문을 낸 4월21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기사 댓글 등에는 옥시 상품을 구입하지 않겠다는 네티즌들의 글이 확산됐다.

MTN 보도에 따르면 네티즌들은 “옥시가 가습기 사건에서 보여준 행위만으로도 충분히 불매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가습기 사건 이후로 수년째 옥시 불매 중. 그 가냘픈 아이들이 평생 겪어야 할 고통을 생각하면 영원히 불매해도 모자람”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 이상 불매 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 등의 반응을 보였다. 또 일부 네티즌들은 옥시 제품들을 대처할 수 있는 타사 제품들을 정리한 사진 등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온라인 카페 등을 통해 확산시켰다.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불매운동 외에도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일부 소비자 단체에서도 ‘옥시’ 제품의 조직적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7. “이제 와서 뭐 하는 거냐” 피해자 및 가족 거센 항의, 옥시 샤프달 대표 기자회견서 “정말 죄송하다” 사과 (2016. 5)

검찰의 수사와 함께 불매운동 및 비판적인 언론 보도가 이어지는 등 여론이 악화되자 5월2일 옥시 아타 샤프달 대표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 사과문과 향후 피해보상안에 대해 발표했다. 보도자료 사과문 외에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문을 발표한 것은 2011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확인된 이후 5년 만에 처음이었다.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및 가족들은 기자회견에 참석해 “이제 와서 뭐 하는 거냐” “3년 전에 찾아갔을 땐 안 만나주지 않았느냐”며 샤프달 대표를 향해 크게 항의했다. 이들의 항의에 기자회견은 10여 분간 중단되기도 했다.

이에 샤프달 대표는 “정말 죄송하다.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말했고 “오는 7월까지 독립적으로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패널을 구성해 질병관리본부 및 환경부로부터 1, 2등급을 받은 피해자를 비롯해 옥시 제품을 사용한 모든 분들을 대상으로 한 보상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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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조사특별위원원회(가습기 특위) 위원들이 2016년 7월27일 서울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본사를 방문했을 때 아타 사프달 사장이 회의 전 이재원 전무와 귀엣말을 하고 있다.


# 8. 신현우 전 옥시 대표 혐의 전면 부인. “과학적 입증돼야” (2016. 8)

8월1일, 가습기 살균제 사태 책임자로 지목된 옥시의 신현우 전 대표가 법정에서 처음 밝힌 입장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다시 한번 여론의 공분을 샀다. 신 전 대표의 변호인은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 사이) 인과관계가 과학적 증거에 의해 입증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신 전 대표가 전체적인 공소사실에 대해 어느 정도로 주관적인 인식이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며 “각종 실험이나 의학적 의견들에 대한 증거를 전문가들이 법정에서 실제 설명해주는 형태로 재판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전 대표가 혐의에 대해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앞서 5차례 공판준비 기일을 진행했지만 신 전 대표 측은 “수사기록의 양이 방대해 아직 복사하지 못했다”며 의견 표명을 미뤄왔다.

함께 기소된 옥시 전 연구소장 김모 씨는 “흡입독성실험을 실시하지 않아 주의의무를 위반한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가습기당번의 원료물질의 위험성이나 인명피해 전부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고 혐의 일부를 부인했다.

# 9. “옥시 영국 본사, 증거자료 보여주니 그제야 책임 인정” (2016. 9)

9월22일, 국회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새누리당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CEO가) 포괄적으로 본사에 책임이 있다는 부분을 사실상 인정했다”며 5년 만의 공식사과를 받았음을 밝혔다. 그는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고, 우원식 위원장을 비롯해 여러 의원들이 증거자료를 보여주니 그제야 본사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 말했다. 또 “한국 정부가 여러 환자들이 발생한 것에 대해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 사고의 책임이 있다고 한 2011년 이후에 본사가 여러 증거를 조작하고 뇌물을 준 일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책임을 인정했다”고도 말했다. 증거 조작 은폐, 뇌물 공여 부분에 있어서 CEO를 비롯한 임원들이 책임질 수도 있는 단계까지 온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앞서 특위는 8월23일 영국 레킷벤키저(옥시 본사)의 라케시 카푸어 CEO를 만날 예정이었지만 레킷벤키저 측에서 면담 일체를 비공개로 진행할 것을 요청하고 공개 사과도 거부하면서 면담이 무산된 바 있었다.

#10. ‘가습기 살균제’ 옥시 한국 대표, “모든 잘못 인정한다” (2016. 10)

10월25일, 아타 사프달 옥시 한국지사 대표가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신현우, 존 리 전 대표와 함께 나란히 법정에 등장했다. 사프달 대표는 법정에 온 피해자들에게 “‘아이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피해자들의 말을 절대 잊지 않겠다”며 이같이 사과했다. 그는 또 “금전적 보상을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깊은 슬픔과 고통을 대신할 순 없을 것”이라며 “아이를 잃은 가족들에게는 10억 원까지 보상을 하고 평생 치료 방안을 제공해줄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피해자들이 고통을 잊고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가습기 살균제의 라벨에 ‘인체에 안전한 성분 사용’ ‘아이에게도 안심’ 등의 허위 문구를 넣은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또 살균제 원료로 쓰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에 독성이 있어 폐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다투지 않을 것이며 이런 비극이 다시 발행하지 않도록 안전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 11. 피해자들 “상급 법원은 징벌적으로 살인기업의 책임을 물어라” (2016. 11)

11월15일, 서울중앙지법은 15일 최모 씨 등 10명이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세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또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은 16일 광화문 네거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법원을 비판했다. 법원이 옥시의 조작 은폐된 주장에 휘둘려 합의 조정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으며 상급 법원은 징벌적으로 살인기업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검찰이 여러 차례 고발된 바 있는 정부부처에 대한 수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도 요구했다.

# 12. 검찰, 옥시 前 대표에 징역 20년 구형. “가습기 참사의 근원”(2016. 11)

11월29일, 검찰은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팔아 대규모 인명 피해를 일으킨 혐의로 기소된 신현우 옥시 전 대표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존 리 전 대표에게도 징역 10년을 구형하고, 옥시연구소장을 지낸 김모 씨에겐 징역 15년, 조모 씨에겐 징역 12년을 각각 구형했다. 신 씨 등은 살인죄가 아닌 과실치사와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그럼에도 검찰이 중형을 구형한 것은 이 사건의 파장을 고려한 조치다.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소비자의 안전을 희생시킨 신 씨 등의 책임이 무척 무겁다”며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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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26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옥시레킷벤키저가 주최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3차 사과 및 배상 논의의 장’을 찾은 피해자 임성준 군. 임 군은 12년째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 대응, 기업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지금까지 옥시 사건의 전개 과정을 살펴봤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네 가지 핵심 요소는 피해자/유족과 대중여론과의 공감(empathy),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관점에서 나아가 적극적 의미의 정직을 실천해야 한다는 투명성(transparency), 대중에게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전문성(expertise), 위기 상황에서 대중에게 리더가 직접 나서서 이슈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책임감(commitment)이다. 이 사건의 경우 위에 언급한 네 가지 요소가 모두 철저하게 무시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워스트 케이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 위기 발생 시 가능한 빨리 ‘알고 있는 (확인 절차를 거친) 사실을 말하라(Say what you know)’ ‘취하고 있는 조치를 말하라(Say what you’re doing)’ ‘시민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하라(Say what others should do)’ ‘위기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라(Offer perspective)’라는 커뮤니케이션 규칙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특히 사건 초기부터 법률 대응을 위한 위기관리만 있고 여론 및 평판 경영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은 없었다.

이번 사건을 돌아보며 글로벌 기업은 물론 한국 기업이 생각해야 할 위기관리 및 평판 경영의 10가지 명제들을 정리해 봤다.

1. 체크, 체크리스트

기업을 인수할 때는 위험도 같이 인수하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이 인수합병을 통해 새로운 기업을 인수하고 지사를 둔다는 것은 그 제품의 구성과 위험에 대한 체크를 전제로 한다. 영국에서 팔지 않는 제품을 한국에서 팔았다면 제대로 체크하지 않은 것이고 눈감은 것이다. 선진국에서 살균제 성분을 가습기 물에 집어넣어 이를 공기 중으로 뿌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실수와 결점을 보충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가 이래서 중요하다.

2009년 ‘허드슨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US Airway 1549편의 기장 설리 셀렌버거는 새 떼가 엔진에 충돌한 후 몇 분 만에 허드슨강에 비상착륙을 결정한다. 사상 초유의 사건에서 셀렌버거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부기장에게 비상착륙을 지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체크리스트에 의한 체크 덕분이었다. 그를 통해 기장은 최악의 상황임을 판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강 위로 비상 착륙한다는 직관적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2.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주시히라

위험은 터지면 위험하다. 그러나 안 터지면 더 위험한 경우도 많다. 그런 측면에서 발생한 위험은 먼저 대처하는 것이 맞다. 옥시 본사는 이미 터진 위험을 피하고 싶은 사고, 더 크게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로 보고 대처했다. 사건은 더 커져갈 수밖에 없었다.

위험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대처해야 한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말이다. “최대의 위험은 위험을 피해가는 것이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대에 위험을 피해가는 전략으로는 모든 것이 실패한다.” 앞서 언급한 셀렌버그 기장의 얘기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이 행한 위기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희망하는 상태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주시하는 능력’을 꼽았다.

3. 올바른 일을 하라

고객과 피해자를 위해 올바른 일을 해야 한다. 빨리 해야 한다. 올바른 대처를 미루다 보니 거짓이 누적되고 축적됐다.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건이 벌어졌던 미국 유통업체 타깃의 CEO 그렉 스타인하펠은 전격적 조치를 취하며 “고객을 위해 옳은 일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해 확인된 모든 사실을 발표하고 고객에게 깊이 사과하는 한편 재발 방지 조치를 취했다. “타깃은 해킹 사건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해킹에 어떻게 대처했느냐로 기억될 것”이라는 말도 남겼다. 반면 옥시는 사건이 발생하면 대처의 위기라는 또 하나의 위기가 발생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회사나 본사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객을 위해 바른 일을 하라는 명제를 실천하지 않았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에 상상을 넘어서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왔을 때 보급품을 가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는 정부보다 빠르고 바르게 행동했다. 비상운영센터를 가동해 각종 생필품을 사전 보관하고 신속하게 주민들에게 제공한 것이다. 최고경영자 리 스콧의 최종 지시는 다음과 같았다. “고객을 위해 바른 일을 하라.”



4. 공장을 멈출 권리를 부여하라

옥시 본사인 레킷벤키저는 지휘관의 모자를 한국 자회사에 주지도 않았고 사령탑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도 않았다. 앞서 소개한 월마트의 최고경영자 리 스콧은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상황이 발생했다는 전제 아래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는 결정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때 구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최선의 결정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월마트의 매장 점장들은 자신의 권한으로 기저귀, 물, 분유, 얼음을 주민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한국 언론사들의 질문에 레킷벤키저는 ‘본사로 오는 모든 문의는 한국의 자회사로 넘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상 한국 옥시는 본사의 컨펌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옥시와 본사는 끊임없이 상황을 회피했고 결정을 미루기만 했다. 한국 지사에서 근무하는 많은 글로벌 기업의 임원들은 두 가지 불만을 토로한다.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고,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얘기해도 본사 경영진이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기 상황에선 한국 최고의 로펌과 상의하라는 것이 본사의 유일한 지시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들은 때론 한국의 대기업이 부러울 것이다. 몇 해 전 삼성전자 계열의 화학공장에서 불이 났다. 삼성은 이후 환경·안전 담당자에게 ‘공장을 멈출 권리’를 주기로 했다.

5. 피해자의 시선으로 보라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문제는 최상급의 예의를 요구한다. 더군다나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 중 다수는 어린아이와 임산부였다. 자식과 아내를 잃은 가장의 슬픔은 피해자 우선의 입장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옥시는 피해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본다는 인식을 전혀 내보이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들은 옥시가 자신들을 입증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민원인으로 취급했다고 말했다.

2013년 노량진 배수지에서 작업하던 근로자 7인이 갑자기 유입된 한강물에 휩쓸려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서울시는 일을 진행하는 해당 부서가 아니라 정무적 상황판단에 능숙한 정무수석실 관계자를 피해자 및 유족과의 협상에 참여시켰다. 하도급사와 시공사 현장소장, 책임관리관 등에게 관리 소홀에 대해 징역 혹은 집행유예형이 선고됐지만 위로금 등 유가족과 서울시의 협상은 비교적 원만하게 이뤄졌다. 사고 발생 5일 만에 보상규모와 절차가 합의된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정무팀의 평가는 단 하나였다. “먼저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반면 옥시의 대응에는 오직 법률적 판단이 있었을 뿐이다.

6. 평판과 여론도 경영전략이다

피해자가 발생한 대처의 위기관리 책임자는 경영전략과 영업전략, 기술전략의 차원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평판과 여론의 위기전략은 별도의 전문성과 전략, 대처, 인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옥시에는 대행할 수 없는 일을 대행하는 로펌과 PR회사가 있었을 뿐이다.

삼성전자의 백혈병 사건이 오랜 기간 교착상태에 있다가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 시점은 담당 부서를 법무팀에서 커뮤니케이션팀으로 변경했을 때다. 법률 대응뿐 아니라 여론과 평판까지 함께 보면 관점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7. 로펌은 위기를 키울 수도 있다

한국에서 영업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 한국 최고 평판을 가진 로펌을 쓰는 것은 음지(陰地)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또 지사 입장에서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돼 왔다. 최고 로펌의 조언대로 했다고 변명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관예우의 풍습에 기초해 한국 대표 로펌에 의존하는 행위는 또 하나의 위험을 내포한다. 요즘 한국의 언론이 한 가지 습관을 바꿨다. 기사에서 변호인의 이름과 소속 로펌을 그대로 적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익명 처리되던 것이다. 이것은 법률시장의 위기와도 연관된 것이고, 의뢰인을 변호한다는 원론적 의미를 넘어서 좋은 일, 나쁜 일을 가리지 않는 로펌의 행태와도 연관된 것이다. 김앤장이 사건을 맡는다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옥시와 김앤장은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을 인지하고서도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의 폐 손상 원인이 봄철 황사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김앤장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형성됐다. 대기업 내부에선 여론과 평판의 전장에서 로펌이 하나의 새로운 위험요소로 떠오르고 있다는 보고가 돌고 있다. 몇 년 전 이건희 삼성 회장의 승소로 끝난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과의 상속 다툼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이 대형 로펌을 지정하지 않고 전문 변호사 개인들과 계약한 것은 상징적인 일이었다.



8. 투명 냉장고를 들여라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고 숨기려고 하면 더 위험을 만든다. 회사의 냉장고를 깨끗하게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투명 냉장고를 사는 것이다. 투명해질수록 깨끗해지는 것이다. 젊은 내부자들은 압축성장 시대의 회사형 인간이거나 조직형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범죄에 동참할 의사가 없다. 지금은 어제의 관행이 모두 범죄가 되는 시대이다. 모든 직원은 내부고발자가 된다. 기업의 문화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해법이 돼야 하지 비리와 문제를 은폐하는 충성의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앞서 설명한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 해결과정에서 서울시가 실천한 획기적인 진전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나쁜 정보까지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카톡방’을 열었다는 것이다. 칸막이와 층계라는 장벽이 사라지자 빠른 속도의 정보 및 의사결정이 이뤄진 것은 물론 투명하고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9.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라

사회의 변화는 시장 구성원의 변화를 의미한다. 기업과 사회는 훨씬 가까워지고 있다. 정치와 경제, 기업과 사회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강도가 더욱 강해지고 있는 지금 사회적 파장을 가를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기업은 사회에 대한 고려와 메시지를 훨씬 강화해야 한다. 대외협력 업무도 국제외교의 새로운 흐름과 같이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공론의 과정을 통해 관계를 강화하는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와 같은 기업외교의 성격을 띠어야 한다. 암묵적 거래관계는 언제든 새로운 위험을 유발할 수 있다.

보수적으로 평가 받던 월마트는 카트리나 대응에 있어 모범적인 평가를 받았다. 또 지난해 아칸소주에서 종교적 신념에 따라 고객과 직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종교자유보호법’이 아칸소주에서 제기되자 이를 반대했다. 종교적 신념에 따라 동성애자 차별을 허용한 법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월마트는 동성애자 직원의 동성 파트너에게도 의료보험을 실시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진 후 옥시의 사회적 관계를 통한 방어망은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잘한 일이 있어야 못한 일을 설명할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잘한 일로 못한 일을 방어하기에는 잘못한 일이 너무 크기도 했다.

10. 주어를 변경하라

고객의 데이터를 읽는다는 것은 시장과 고객 전략의 핵심이다. 고객과의 연결이 유통산업에는 핵심 기술이라고 할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공급과 수요에 대한 개념도 바뀌었다. 고객 요구와 기술 최적화라는 전략으로 수요 및 공급을 맞춰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유통기업은 이제 B2C가 아니라 C2B(Customer-to-Business)기업이다. 저성장 구조화에 따라 출구 없는 분노로 자신의 이해관계 영역을 넘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인류가 주어를 변경해 달라고 요구하는 산업이 유통산업이다.

새로운 마케팅의 근간이 되는 것은 ‘순식간에 빵 터지고 한순간에 훅 가는’ 조건이다. 아주 작은 실수에서도 커다란 스파크가 발생한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귀머거리였으며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의미다”라고 했던 미국의 뉴발란스 대변인의 말실수는 전국적인 뉴발란스 신발 태우기 운동을 불렀다. 또 최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시위 과정에서의 천호식품 오너와 자라 한국 지사장의 촛불시위 관련 발언은 대규모 불매운동을 촉발했다. 이런 문제를 말실수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판매대상이 아니라 연결관계인 소비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근본적 변화는 사실 여기에 있다. 레킷벤티저 본사는 그저 한국에서 잘나가는 기업을 이익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인수하고 운영했으며 그 관점에서만 위기에 대처했다. 이 회사 홈페이지에는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과의 파트너십이 나와 있다. 아이들을 구하자는 이 문구는 한국 자회사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대처할 수는 없었다.



결론에 대신해

위기에 10개의 단계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아홉 번째 단계의 위기가 진행된 후 위기를 발견하는 것과 첫 번째 단계의 위기가 진행된 후 위기를 해결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가습제 살균제 위기는 사실 2011년 8월 정부의 발표로 1단계 위기가 발견된 사건이다. 그리고 1단계에서 근본 대처가 가능한, 사건의 개요가 명백한 사안이었다. 더군다나 인명의 피해가 심각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시는 10단계의 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된 위기대처를 하지 않았다. 회피하고 부정했다. 결국 5년을 회피했지만 올해 모든 것이 터졌다. 더 커다란 위기가 되었고 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됐다. 첫 번째 단계에서 해결을 포기하면 위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열 배의 총합 위기로 증폭된다는 것을 이번 사건은 보여준다.

올해 초 검찰의 수사가 갑자기 진행되지 않았다면 그들의 전략은 성공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크고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러니 만약 열 번째 위기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열한 번째 위기가 새롭게 등장했을 것이다.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 컨설턴트 navy@acase.co.kr

유민영 대표는 위기관리 전문회사인 에이케이스(www.acase.co.kr)에서 대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성균관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청와대 보도지원비서관(춘추관장)을 지냈으며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과 메시지 전략을 강의했고 피크15 커뮤니케이션 대표를 맡았다.


참조문헌
<빼앗긴 숨>, 안종주 지음, 한울엠플러스, 2016


언론보도 인용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1/30/2016113000275.html
http://www.ajunews.com/view/20160801132557226
http://m.mtn.co.kr/news/news_view.php?mmn_idx=201604221015 1262134
http://www.huffingtonpost.kr/2016/04/21/story_n_9746246.html
http://www.mhj21.com/sub_read.html?uid=100647§ion=sc118
http://news1.kr/articles/?2761374
http://factoll.com/page/news_view.php?Num=3531
http://www.eco-health.org/bbs/board.php?bo_table=sub02_02?_id=155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423_0014040756&cID=10201&pID=10200
http://www.greenpostkorea.co.kr/news/article.html?no=59841
http://eco-health.org/bbs/content.php?co_id=list


생각해볼 문제

1. 글로벌 기업의 한국 자회사 임직원은 어느 정도까지 위기관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까. 본사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순응해선 안 된다는 판단이 들면 어떻게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까. 회사 내 입지에서 피해를 보지 않으면서도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2.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서와 법무부서 임직원은 회사의 평판 위기가 표면화될수록 오히려 사내 입지와 권력이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 즉 위기를 미리 방지하기보다는 사후 수습에 초점을 두게 될 수 있다. 경영진은 이런 이해관계의 충돌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동아비즈니스리뷰 348호 The New Chapter, Web 3.0 2022년 07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