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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영훈 코오롱글로벌 전무

대장금 90% 시청률, 제조업 기반 탄탄 수출절벽 한국, 5억 시장 교두보를 선점하자

장재웅 | 203호 (2016년 6월 lssue 2)

Article at a Glance

 국내 최고이란통으로 불리는 정영훈 코오롱글로벌 전무는 이란 진출을 위해 현지 업체와의조인트벤처수립을 최선의 방법으로 제시했다. 이란 현지 업체를 끌어들이면초기 투자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정보 불충분 등으로 인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으며, △현재 생산품에 대한 관세 장벽 활용 등 불확실성이 큰 이란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국내 유휴 설비들을 활용해 이란에 현물투자를 해 합작법인을 설립할 경우 큰 투자 없이도 이란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손지현(이화여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기회의 땅.’

 

최근 곳곳에서 이란을 이렇게 부르고 있다. 그동안 경제 제재로 원활한 거래가 불가능했던 이란 시장의 빗장이 풀리면서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대기업들이 입맛을 다시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이 매력적인 시장임은 분명한 듯하다. 일단 인구가 8000만 명에 달한다. 소비시장으로서 충분히 매력적이란 뜻이다. 2014년 기준 세계 4위 규모의 원유 확인매장량과 세계 1위 규모의 천연가스 확인매장량을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중동 제1의 자동차 생산국인 동시에 중동 지역에서 가장 발달한 제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유엔 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 따르면 중동 주요 산유국 중 석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의존도 비중 역시 이란이 71%로 가장 낮다. 산업 분야별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에너지 비중은 27.9%.

 

지정학적으로도 이란은 아시아와 유럽, 러시아·CIS(독립국가연합)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로 평가받는다. 특히 동쪽으로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서쪽으로는 터키와 이라크, 북쪽으로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7개국과 접하고 있어 역내 생산 거점으로도 손색이 없다. 풍부한 노동력 역시 장점으로 꼽힌다. 이런 조건은 국내 산업계에 기대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우리 기업들은 현재 지속적인 저성장 추세, 수출 감소, 조선 및 건설업의 위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란 이전에도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불린 곳이 많았다. 그중에 실제로 기회가 된 경우도 있지만 섣부르게 덤볐다가 큰 실패를 경험했던 경우도 많다. 이란에 대한 이해 없이 장밋빛 전망만을 좇다보면 또 다른 실패의 역사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란 사업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DBR은 국내 기업인들 사이에 이른바이란통으로 통하는 정영훈 코오롱글로벌 상사사업본부장(전무)을 만나 이란의 비즈니스 환경과 사업기회 등에 대해 물었다. 정 전무는 1998년부터 이란에서 주재원 생활을 시작해 14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사업을 수행했다. 또 부임 첫해인 1998년 당시 600만 달러에 불과했던 테헤란 지사의 연매출을 귀임하던 시기에는 3억 달러까지 끌어올렸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산업자원부장관 표창과 코오롱그룹 최우수 사원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자타공인이란통인 이유는 또 있다. 2001 9·11테러 이후 미국의 이란 공습 위협 속에서 유럽·일본·한국 등에서 온 외국 주재원들이 다들 철수한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이란을 지키며 거래선과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노력은 현지인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줬고 덕분에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었다. 그는물건만 팔 생각으로 이란 시장을 접근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란은 실제로 기회의 땅인가.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것은 사실이다. 일단 이란 내 인구 8000만 명에 배후지역인 카스피안 연안 국가나 CIS 국가들을 합하면 적게는 25000만 명에서 많게는 5억 명을 거느린 시장이 된다. 이 시장의 거점이 되는 곳이 이란이다.

 

 

 

 

한국은 지금 수출 절벽을 경험하고 있다. 실제로 새로 진출할 수 있는 나라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미개척 시장 중 가장 잠재력이 큰 곳이 이란이다. 하지만 조급하면 일을 망칠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 특유의 조급함을 버리는 것이 이란 진출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란은 장기적 접근 방식(long-term approach)으로 공략해나가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 나선 지 불과 50년 정도에 불과한 우리가 2000년 장사꾼인 페르시아 상인의 후예들과 거래하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국내 기업인들은 이란과 거래하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한다. 정보나 네트워크 역시 부족해 보이는데.

이란을 단순히 물건을 팔 시장으로만 봐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또 이란에 단독으로 진출하는 것은 실제로 리스크가 크다. 이란은 아직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규정이나 제도가 완벽히 정비돼 있지 않다. 경제 관련 법안이 허술하기도 하다. 예컨대 공정관리, 저작권, 상표권 등을 보호할 법규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그리고 이런 법 조항 끝에는 통상모든 법은 이슬람 율법에 따른다라는 문구가 포함된다. 우리 같은 외국인들이 이슬람 율법을 어떻게 알겠나. 그리고 이슬람 율법은 해석하기 나름인 경우가 많다. 일단 전반적인 철학은가진 사람이 조금 더 양보하라로 귀결된다. 또 판사 또는 정부 관료의 성향에 따라 똑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법적 제도가 이처럼 미비한 상황에서 단독 진출을 추진하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현지에서 믿을 만한 파트너를 찾고, 이 업체를 통해 인허가를 비롯해 이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리스크를 해결하게 해야 할 듯하다.

 

조인트벤처(JV)를 하라는 뜻인가?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다. 경제 제재 해제 이전까지 국내 기업들은 이란 시장에 완제품을 가져다 팔았다. 그것도 외화 거래가 불가능하다 보니 원유를 사고 그만큼을 제품으로 공급해주는 식으로 거래했다. 그런데 이제 제재가 풀리면서 조만간 유로화를 통한 결제가 가능해 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란에 대해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이런 변화는 무슨 의미일까. 이제 이란에서 완제품을 가져다 파는 비즈니스는 환영 받지 못할 것이란 뜻이다. 이란 정부 고위관계자에게서 직접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이란 정부가 최근 한국산 평판TV의 관세를 36%에서 76%로 올린 것도 이 같은 움직임의 일환이다. 이란은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이 돼 있지 않아 언제든지 관세를 올릴 수 있다. 관세 정책을 정부가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구조다. 그리고 이는 결국 더 이상 이란에 물건만 팔려고 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자국 내에서 완제품 생산까진 아니더라도 조립이나 포장이라도 하라는 게 이란 정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란에 공장을 지을 국내 기업이 어디 있나. 우리 기업들은 아직 이란의 비즈니스 문화나 법률, 기업 환경 등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조인트 벤처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란이 제조업 공장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실업률이 높다. 20∼25%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2014년 기준, 이란 국민의 평균 나이는 29.5세고 30대 이하 인구가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노동력이 넘쳐나는데 일자리가 없다는 이야기다. 실업률이 높으면 젊은 층들의 불만이 높아진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외국 기업들이 이란에 그냥 물건만 파는 게 아니라 투자를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이란이 지리적으로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란 주변 국가의 시장이나 슈퍼마켓에 가면 이란에서 만든 생필품 등 다양한 제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특히 완제품이나 부피가 큰 공산품을 외국에서 이들 국가들로 옮겨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란 주변의 내륙 국가들은 바다를 끼고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동쪽의 중국에서부터 물건을 수입하려면 텐산산맥을 넘어야 한다. 이 산맥은 해발 4000m에 달하는 높은 산이다.

 

또 서쪽에서 가져오려면 흑해를 통해 물품을 하역한 뒤 내륙 운송을 하고, 이후 카스피 해를 건너기 위해 다시 배에 물건을 싣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한마디로 이들 국가는 제품이나 원재료를 수입하고 싶어도 물류비가 엄청나다. 이에 비해 이란은 페르시아만(Persian Gulf)가 맞닿아 있어 원료를 받아 테헤란 주변 등 북쪽지역에서 생산한 뒤 트럭이나 기차로 북쪽으로 이동시키기에 유리하다. 말 그대로 이란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을 아우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것이다. 이란 정부가 요구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2000년 동안 이 지역 상권을 장악하고 있으니 한국이 장비, 기술을 들고 들어와서 같이 제품을 만들어서 이 지역에 팔자는 것이다. 이게 지금 이란 정부가 생각하는 콘셉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국 기업에도 나쁠 것이 없는 제안이다. 우리 기업들은 현재 수출 절벽이다, 불황이다 해서 적자를 보는 기업도 많고 대규모 투자를 할 여력도 없다. 특히 주요 공단에 가보면 공장 내 유휴 설비가 넘쳐난다. 어차피 사용을 못해서 고철로 변해가고 있는 중고 설비들을 가져다 현물 투자에 활용한다면 적은 초기 비용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 즉 유휴 설비와 인력을 바탕으로 이란과 합작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최고 수준의 기술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중급 기술, 생산기술, 적정기술이 필요한 것이 지금의 이란 시장이다.

 

결국 국내 기업에 요구되는 투자라곤 유휴 설비를 공급하고 중급 수준의 인력을 파견하는 게 전부다. 이 투자만 이뤄지면 이란 현지 파트너 기업이 건물을 짓고 회전 자금을 투입해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 현물 출자한 부분을 지분율로 인정받고 한-이란 합작기업이 동시에 주변 지역을 공략하는 방식이다. 실제 이 방식을 이란에서도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 여러 매체에서 이란 시장이 열렸으니 우리 기업이 물건 팔기 좋은 환경이 열릴 것이라는 기사를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기존의 단순 판매 방식으로는 승산이 없다.

 

오히려 제재가 풀리면서 유럽과 일본 등 경쟁국들이 이란에 재진입하게 되면 우리 기업으로선 기회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란으로서는 여러 국가 및 기업으로부터 쏟아지는 구애 속에서 여러 개의 선택지를 손에 쥐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실제 이 공장에서 제조를 하지 않아도 좋다. 적어도 포장 업무 정도만이라도 수행한다면 모양새는 그럴듯하게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인허가 등 현지 정부 또는 지자체를 상대로 한 업무는 현지 파트너가 수행하게 해 혼란을 피할 수도 있다.

 

 

이란이 제조업을 키울 역량이 있나.

중동 주변국을 통틀어 이란만큼 제조업 기반을 갖춘 나라가 없다. 이란은 제재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5, 6년 전까지 연간 180만 대의 차를 생산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연간 생산량(연간 800만 대) 가운데 한국 내 생산량(350만 대)과 비교해보면 꽤 규모가 큰 자동차 생산 기지인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 정도의 생산 기반을 갖춘 나라가 많지 않다. 특히 아프리카, 중동, CIS, 카스피 연안 국가들 중에는 유일하다. 그래서 우리 기업들로서도 다양한 협력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인구는 많아도 생산 기반이 없는 나라들에는 완제품 판매가 유일한 솔루션이지만 생산 기반을 갖춘 나라라면 큰 사업 기회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란 진출 시 유망한 품목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현재 이란은 저가 제품들은 터키, 중국, 인도 등에서 들여오고 프리미엄 제품이나 에너지 관련 기자재는 유럽에서 들여온다. 중국은 엄청난 자본력을 바탕으로 민간투자사업(BOT·Build Operate Transfer) 형식으로 큰 규모의 투자 사업을 이미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만큼의 자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방식이 익숙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유럽이나 일본과 프리미엄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무언가 우리만의 경쟁력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가 가진 가장 큰 파워는한류. 많이 알려졌지만대장금’ ‘주몽등의 드라마가 이란에서 90%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심지어 대장금이 방영될 당시에는 이란에서 축구 경기가 빛을 보지 못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원래 이란에선 축구에 대한 국민적 인기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아자디스타디움이라는 곳이 있다.

 

8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경기장인데 해발 1300m 이상 고지대에 있어선지 이곳에서 경기만 했다 하면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이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한국 축구의 무덤이라 불리는 곳이다. 보통 축구경기를 하면 이 경기장이 가득 찬다. 그런데 대장금이 방영되던 시기 이 경기장에서 이란의 숙적인 한 아랍국가와의 경기가 있었다. 이런 경기에는 경기장에 관중이 꽉 차기 마련이지만 이날엔 경기장을 찾은 사람이 800여 명에 불과했다. 당황한 이란축구협회가 자체적으로 진상을 조사해보니 이날이 대장금 마지막회를 방영한 날이었다. 드라마를 보느라 사람들이 축구 경기를 포기할 정도로 한류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드라마의 인기가 아직 한국 제품으로까지 연결이 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기업이 이란 시장에서 유리할 수 있는 아이템은 보디케어 제품, 코스매틱, 건강식품, 한국 전통식품, 한류 콘텐츠, 헬스 관련 제품 등이다. 이미지와 관련된 사업 영역들인만큼 일본, 중국, 유럽의 경쟁업체들과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란은 동양에 대해 큰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 스스로 서아시아인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2002년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의 강호들을 꺾자 한국 대사관저에 꽃, 사탕 등이 쌓이기 시작했다. 한국이 유럽국가의 코를 납작하게 해줘 고맙다는 의미였다. 나는 이런 정서가 한류와도 잘 연결된다고 본다.

 

다른 업종 중에는 유망한 게 있을까.

최근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분야가 환경 분야다. 이란은 한국의 환경 분야 기술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특히 한국을 방문하는 이란 사람들이 놀라는 것이 크게 2가지다.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 중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우거진 녹지를 만날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보통 산업화를 하면 환경도 황폐해지기 마련인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 크게 놀라곤 한다. 이란은 모래사막은 없지만 황무지 사막이 있다. 물이 부족해서 그렇지 땅에 농작물을 심으면 경작이 가능하다. 이처럼 물의 중요성이 크다보니 한국의 하수처리 시설에도 관심이 많다. 한강의 강줄기를 가운데 두고 서울의 천만 인구가 살면서도 어떻게 깨끗한 수질을 유지할 수 있는지 묻는다. 이 분야에서도 우리가 이란에 제공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 또 소프트웨어나 MICE(기업회의(Meeting), 포상관광(Incentive trip), 컨벤션(Convention), 전시박람회와 이벤트(Exhibition&Event) 산업에서 이란이 한국 기업에 거는 기대가 크다. 결국 정답은패키지 수출에 있다. 단순히 전시장을 지어주는 게 아니라 전시장 운영 노하우를 함께 수출해야 한다. 또 병원만 지어줄 것이 아니라 병원 운영 노하우, 인력, 내부 콘텐츠를 같이 제공해야 한다.

 

최근 코오롱에서도 직접 이란업체와 MOU를 맺고 화장품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밝혔는데.

내가 맡고 있는 상사 부문에서 이란과 화장품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코오롱이 직접 화장품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고, 국내 화장품 ODM 업체이자 코스닥 상장사인 코스온의 R&D 기술 및 제조역량을 합쳐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란에 14년 동안 살다보니 이란 고객들의 니즈에 대해서도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른다. 예를 들어 이란은 물에 석회질 성분이 많다. 이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했고, 이를 활용한 화장품을 현재 개발 중이다. 이란 현지 법인에는 판매 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투자금 1000만 달러 규모의 법인으로 이란 측 파트너가 49%, 코오롱과 코스온이 51%의 지분을 가질 예정이다.

 

이란 현지에서 국내 기업들이 선전하고 있다는데.

LG전자, 삼성전자 등 가전업체들이 선전하고 있다. 이란의 경제 제재는 크게 2번에 걸쳐 이뤄졌다. 첫 번째 제재는 이슬람혁명 후 미국 대사관이 점거당하면서 시작된 미국의 제재다. 이것은 아직도 유효하다. 미국 기업은 여전히 이란과 비즈니스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비자를 발급받아 여행 정도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안다. 비자 업무 자체도 미국이 아닌 스위스에서 대행한다. 그 정도로 양국 간 거리가 멀다 보니 달러도 통용되지 않는다. 이번에 제재가 풀린 것은 핵 제재 부문이다. 이란에 거주한 14년간 제재가 강화된다는 사실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유일한 돌파구를 활용해 국내 업체들은 비즈니스를 했다. 이란 국영석유회사(NIOC)라는 국영기업을 통해 원유를 들여오는 방식이다. 유입 물량도 갈수록 줄어들긴 했지만 미국의 허락하에 거래는 계속 유지됐다. 하지만 원유를 들여온 뒤에도 대금을 지급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방법을 찾은 것이 국내 계좌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란에서 원유를 수입하면 그 금액만큼을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있는 이란 중앙은행 계좌에 원화로 적립해 놓는다. 이후 이란에 우리나라 제품을 판매하면 그 판매액만큼을 계좌에서 다시 꺼내오는 방법을 썼다. 원화를 넣어두고 다시 꺼내오는 형태라 국제 거래가 아니었고 그래서 지급 수단으로 통용될 수 있었다. (그림 1)

 

 

 

하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부속서류도 복잡했다. 품목 제한마저 있어 사용에 한계가 있었다. 에너지 관련 품목이나 원부자재, 자동차 부품 등은 거래 자체가 불가능하다. 제재가 풀린 지금도 달러나 유로를 이란에 곧바로 송금할 수 없다. 제재가 풀렸다는 발표만 나왔을 뿐 아직 제도적으로 해결, 보완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투자를 하려면 돈을 보내야 하는데 지금은 보낼 방법이 없다. 유로화를 통한 거래는 곧 시작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유럽계 은행들마저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 과거 일부 유럽계 은행은 이란과 편법 거래를 한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로부터 천문학적인 액수의 패널티를 받은 적이 있어 눈치작전이 심한 편이다.

 

 

건설업이 유망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많다.

대형 프로젝트들이 예정돼 있으니 기회가 많긴 하다. 특히 몇몇 국내 건설사는 이란이 이라크와 전쟁을 하던 당시부터 이란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해 인지도와 믿음을 쌓았다. 대림산업이 과거 이란과 이라크가 전쟁을 벌일 당시 이란 내 작은 섬에서 석유 저장시설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라크 전투기가 이 공사 현장을 폭격하는 바람에 한국 직원이 숨진 적이 있다. 이후에도 대림산업은 공사를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공기 내에 프로젝트를 완료했고 이란 사람들은 이에 대해 높은 신뢰감을 표현한 바 있다.

 

이란에서 사업을 할 때 꼭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 있나?

크게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다. 첫 번째는 이란을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아달라는 거다. 예를 들어, 우리는 보여지는 것을 중시한다. 옥탑방 같은 곳에 사무실이 있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시를 하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란 사람들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란에선 실제로 돈과 권력을 가진 실세들은 앞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란에서 카펫을 사러 카펫 가게에 가면 보통 할아버지가 가게 앞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다가가면 그는 이것저것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어디서 왔냐, 무엇을 사려고 하냐, 지금 사는 곳은 어디냐 등 기분이 나쁠 정도로 꼬치꼬치 물어본다. 그리고 나서 이 사람이 물건을 살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이 되면 그때서야 손을 끌어 가게 뒤쪽 전시장으로 데려간다. 뒤쪽 전시장에 가면 카펫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살 사람만 상대한다는 것이 페르시아 상인들의 스타일이다. 또 한 가지, 이란은 과거 대국이었던 시절에 대한 향수와 자부심이 있다. 특히 5000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이란 사람들은 남의 집을 방문할 때 꽃을 사간다. 이는 과거 이란이 얼마나 부국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관습이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우리가 남의 집을 갈 때, 음식을 주로 사 가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란이 엄청난 부국이고 대국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주기만 해도 이란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단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향후 계획은?

이제야 이란 시장이 열린 만큼 그동안 쌓아온 현지 인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란 사업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동시에 국내의 이란 전문가 및 이란 진출 기업들과 함께-이란 경제 협의체를 발족할 계획이다. 이란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끼리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고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는 단체다. 이란의 법률이 어떻고, 식약처에 가면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고 등의 시시콜콜한 정보를 공유할 것이다. 맨땅에 헤딩을 하면 1년 가까이 걸릴생활의 지혜들을 공유하고 나눠 서로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 목표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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