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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Strategy

친절한 환영에 다가서다 보면…중국인의 그물전략, 그 달콤한 유혹

이병우 | 185호 (2015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중국인이 사용하는 소위그물 전략은 오랜 역사와 문화에 뿌리를 둔다. 가부장제도와 공동체 생활에 익숙한 그들은 상대방을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인 후 상대방과 충분히 친해졌다고 판단될 때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원하는 일을 추진한다. 이 같은 그물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서 진심으로 상대방과 친밀해지기 위한 그물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에게 받을 만큼만 베풀었다가 금방 거둬버리는 그물도 있다. 이는 주는 만큼 받아야 한다는인지상정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대체로 얼굴이 무척 두껍다. 얼굴이 두껍다는 것은 이익 앞에서 수시로 자기의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대방이 아무리 자기의 제안을 거절해도 집요하게 접근해서 마침내 목적을 달성하려는 근성도 포함된다. 우리가 잘 아는 소설 <삼국지>를 보면 다양한 얼굴들이 등장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일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삼국지를 보면 중국 사람들의 얼굴 두꺼움은 가히 대단함을 알 수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와 조조, 손권은 각 자가 촉, , 오국의 황제가 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역경을 겪었다.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고비마다 그들이 선택한 승부수는 역시 얼굴을 두껍게 하고 어제의 적과 동침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은 위와 촉이 연합하고, 어떤 때는 촉과 오가 동맹을 맺는다. 서로가 연합하고 동맹이 되는 이유는 아주 자명하다. 자기를 지키려는 의도다. 상대를 위해 동맹을 맺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 상대를 설득하고 회유해서 동맹을 맺는 것이다.

 

이럴 때 중국 사람들은 모든 자존심과 허세를 다 내려놓고 상대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얼굴을 두껍게 하고 찾아가서 언제 당신과 원수지간이었냐는 듯 거침없이 아첨을 하고, 뇌물을 주고, 구걸을 한다. 중국인들의 장점이다. 그러나 이런 장점이 때론 우리에게 무서운 그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 가서 빠지는 함정이 바로 이런 종류의 그물이다. 우리는 방문자 입장에서 중국인들의 접대를 받는다. 그들이 베푸는 향연은 표면적으로는 그야말로 정성이 지극하다. 칭찬과 친절에 쉽게 감동하는 정 많은 한국인들은 이 시점부터 그들의 그물에 빠지기 쉽다.

 

중국인의 그물이란 무엇인가

 

먼저그물()’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그물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중국 사회에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필자는 오랜 중국 생활 속에서 중국 사람들이 사업 관계를 맺거나 대인 관계를 관리할 때 그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행태를 발견했다. 중국에서 오랜 시간 주재원으로 근무했던 모 기업 법인장도 어느 글에서 비슷한 표현을 썼는데, 그는 그물 대신우리(屋里)’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토끼우리는 토끼를 가둬 놓고 기르는 장치를, 가두리양식장은 물고기를 그물에 가둬 기르는 곳을 말한다. 그물이든, 우리든 결국 원하는 대상을 자신의 영역에 가두고 가둔 주체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중국인의 그물 전략은 상대방을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인 후 본격적으로 원하는 일을 추진한다는 의미다. 그물이라는 도구는 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지, 일단 잡았다가 다시 놓아주기 위한 것이 아니며 더구나 어부가 치는 그물은 생업을 위해 고기를 잡아 이익을 얻기 위해 치는 도구다. 일단 고기가 그물에 걸리면 여간해서는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반면 그물을 친 입장에서는 그물에 걸린 고기를 손에 들어오게 하는 일이 아주 쉽다.

 

또한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는 작업은 혼자 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협동해야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 노를 젓는 사람, 그물을 던지는 사람, 수선하는 사람, 고기를 다듬어 저장하는 사람, 고기와 그물을 정리하는 사람, 고기를 파는 사람 등 각자 맡은 역할을 잘할 때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 중국인의 그물 전략도 이와 비슷하다. 많은 사람이 동원된다. 정부 관계자, 사업 파트너, 실무 책임자, 운전사, 술 잘 마시는 친구, 노래 잘하는 사람, 관광을 안내하는 사람 등 각 분야 사람들이 동원된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한번 걸려들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고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단계별로 착착 진행되기 마련이다.

 

중국인의 그물 문화

 

필자 개인의 경험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중국인들의 접근 방법에는 공통점이 있다.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다른 기업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이 공통적인 수법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이런 행동의 바탕에 유구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농경사회로 5000년의 역사를 이어 온 나라다. 농경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가부장제도 아래 가족 중심의 사회를 이룬다는 것이다. 가족은 친척을 형성하고, 친척은 친족으로 발전한다. 이런 관계들이 모여 마을 공동체가 형성된다. 황제가 바뀌고 왕조가 멸망해도 가족과 친척, 나아가 우리 공동체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대상이다.

 

중국인은 이 같은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상거래나 인간관계를 맺어 왔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계약보다 신의와 의리가 중요하다. 만약 작은 이익을 탐내다가 체면이 손상되는 일이 생기면 마을 공동체에서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는 등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중국 사람들이 목숨보다도 체면을 중시하는 습성은 여기서 비롯됐다. 서로 믿는 관계가 아니면 아예 거래를 시도하지 않는다. 설사 그런 경우가 생기더라도 중국 사람들은 중간에 서로를 잘 아는 사람을 반드시 개입시킨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것처럼 서로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일단 의심하고 보는 것이 중국인들의 습관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그들의 그물이라는 것은 원래 나쁜 의미가 아니다. 애당초 상대를 그물이나 가두리에 가둬 두려는 의도는 맞지만 좋지 않은 의도에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우리 공동체에 합류시키려는 작업이고, 이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유전자적 기질이자 습관이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과 사업을 하고 거래를 한다는 것은 중국 사람들의 전통적인 관념으로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 만난 사람과 절대로 먼저 사업 얘기부터 하지 않는다. 밥 먹고 술 마시고 관광지에 데려가고, 또 밥 먹고 술 마시고 함께 놀러 다닌다. 몇날며칠을 그렇게 보낸다. 우리는 남이 아니고 친구라는 공동의 정신을 공유하자는 의사 표현이자 습관적 행동이다. “이제부터 너와 나는 남이 아니다. 한 공동체다.” 서로 부딪치는 술잔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외국인들이 중국에 가서 당하는 곤혹스러운 일의 원인 중 하나는 중국 사람들의 계약 관념일 것이다. 쉽게 말해 계약을 안 지킨다는 말이다. 화가 나기도 하고 이해가 안 가기도 한다. 왜 계약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지면 중국 사람들은, 이제 이 사람은 더 이상 나를 믿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한다. 중국 사람들은 계약을 언제든 상황에 맞게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우리는 이미 같은 공동체에 속한 친구이므로 서로 의논해 고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오랜 습관적 사고가 깔려 있다. 원래 중국인들은 계약서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족 중심의 마을 공동체에서 어떤 거래를 한다는 것은 이미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형성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계약서가 필요하단 말인가?

 

 

 

이런 습관이 처음 만난 상대를 먼저 자기우리(屋里)’로 끌어들이게 한다. 이것이 필자가 표현하는그물 전략이다. 우리가 이런 그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망해서 돌아오는 것은 처음부터 중국인들의 그물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이 베푼 호의와 술과 밥을 오해했을 수도 있고 그 저변에 깔린 배경을 몰랐을 수도 있다. 아울러 중국인들의 공동체에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불변의 원칙이 존재한다. 도움을 받으면 갚아야 하고, 그것은 인간의 기본 도리라는 믿음이다.

 

 

우리는 중국에 진출해 합자회사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중국 회사의 도움 없이는 중국 땅에 무사히 정착하기가 쉽지 않다. 공장 설립부터 인허가 작업, 그리고 사업의 진행이 안정될 때까지 중국인들은 참으로 감동적으로 우리를 도와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대도 반드시 그에 상응한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인지상정이자 상대를 그물로 끌어들이는 이유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밤을 새며 만든 계약서를 갖은 고생과 타협 끝에 관철시켜 마침내 거래가 성사됐는데 너희들은 왜 이 계약서대로 지키지 않느냐고 따지고 든다. 중국 사람들은 그 순간부터 마음속으로 상대를 향한 신뢰를 접기 시작한다고 봐야 한다. 농경사회의 마을 공동체에서 의리가 없는 사람은 바로 도태된다. 신의가 없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놈으로 낙인이 찍히는 셈이다. 중국인들의 관념에는라는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로 시작해서우리로 끝난다. 물론 여기서의우리우리(屋里)’가 아니라 너와 나 모두를 일컫는 우리다. 한국 회사가 자꾸 자기 이익을 위해 합작 파트너에게 덤비고 따진다면 신뢰는 거기서 끝이 난다.

 

여기까지 살펴본 중국인들의 그물과 오랜 사고방식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그들의 문화이자 습관이고 유전자적 특성이다. 그런데 이런 습관이 왜 우리에게는 조심스럽고 위험한 문화가 되는 것일까? 우리는 중국에 놀러 간 것이 아니고 그들과 협동해서, 또는 도움을 받아 돈을 벌기 위해 간 사람들이다. 그들의 목적 또한 돈이다. 외국 회사에 토지와 건물을 제공하고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은 공짜가 아니다. 중국 사람들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도 공짜가 아니다. 그들은 주는 만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인들의 계산은 엄청나게 빠르고 정확하다. 아주 단순한 듯해도 돈에 대한 욕심이 끝이 없다. 다만 그 방식이 우리와 다를 뿐이다.

                                                                           

우리가 중국에 진출해 사업을 하는 과정에는 이처럼 미묘한 문화적 차이를 동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어떤 회사는 합작해서 성공을 거두고, 어떤 회사는 망하기도 한다. 망한 회사는 중국인들이 쳐 놓은 그물에 걸려 죽은 것이고, 성공한 회사는 중국인과 협동해 상호 호혜의 원칙을 잘 지키며 살아남은 셈이다. 결국 중국 시장에서의 성패는 중국 사람들의 그물에 걸려들었을 때 생존하는 법을 아느냐, 모르느냐 또는 전략상 후퇴해야 하는 방법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전략과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공장 설립부터

인허가 작업, 그리고 사업의 진행이

안정될 때까지 중국인들은 참으로

감동적으로 우리를 도와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대도 반드시

그에 상응한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물의 종류와 생존법

 

중국인들의 그물 전략은 이처럼 복잡 미묘하다. 공동의 이익과 선의를 갖고 출발한 협력 관계가 한순간에 박살나기도 하고, 서로의 끊임없는 양보와 노력으로 좋은 결실을 거두며 전진하기도 한다. 서로 의견이 안 맞고 피차 간 협력이 무의미하다고 판단될 때는 거래를 정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이든 그물 속에서는 일단 우리가 불리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그물에 걸렸을 때는 어떤 방식이든 중국인에게 이익이 제공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든지, 손해를 감수하든지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중국 파트너가 치려는 그물의 종류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물이라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며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더 나은 관계를 도모하기 위한 하나의 절차일 수도 있다. 우선 우리와의 상생이 필요해서 접근하는 그물이 있다. 우리의 기술이 경쟁력이 있거나 우리가 자금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판단했을 경우다. 중국 측에서 우리의 기술을 습득하는 데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판단했다면 그 그물은 당분간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측에서 원하는 것이 우리의 자본이라면 합작이라는 명목의 그물은 우리 측 자본이 중국에 모두 투자되고 나서부터 조금씩 무너질 확률이 높다. 중국 측은 적당한 시점에 손을 털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그물은 대충 적당한 그물이다. 오래 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며 대략 2∼3년의 시간만 투자했다가 털어버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위 마당만 쓸어주는 그물이 있다. 초기 단계에서만 우리를 사용하고 사업이 완성됨과 동시에 내치는 그물이다. 이럴 때 중국인은 우리에게서 받을 것이 별로 없으므로 자신도 단기간만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판단한다.

 

중국인들의 그물은 이처럼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양하다. 중국인의 그물은 선의의 그물로 시작해서 악의의 그물로 끝날 수도 있고, 처음부터 마음먹고 치는 전략적 그물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중국인과 주고받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런 중국인의 그물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중국인과의 합작 사업이 언제나 망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회사들이 성공적으로 상호 협조하면서 중국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는 어쩔 수 없이 그물에서 나와야 할 경우를 가정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만약을 대비한 전략은 무엇이고 그 수단과 방법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는 의미다.

 

수년 전 어느 날, 중국인이 한 명 찾아왔다. 필자는 그 사람이 입을 열기 전에 왜 방문했는지 알고 있었다. 어떤 말로 시작하든 결론은 도와달라는 것일 것이다. 그는 지난 날 필자를 아주 비참하게 걷어찼던 사람이다. 그가 식당을 막 시작했을 때 목을 매며 도움을 요청하는 바람에 도움을 준 적이 있다. 한국 식당을 안 해본 그로서는 한국 식자재를 구입하는 일에서부터 한식 요리가 가능한 주방장을 찾는 일까지 한국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식당이 초기 단계를 지나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돌변했다. 내게 주는 인건비가 낭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혼자서 운영할 자신도 생겼을 것이다.

 

 

엄청난

특혜와 제안으로

초기 단계에서 사람을 미혹시킨다.

변호사를 대동해 계약서를 작성하고

만전을 기한 다음

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중국 사람들이 사람을 내보내는 방식은 아주 냉정하다. 주로 봉급이나 약속한 돈을 안 주는 방법을 사용한다. 돈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돈을 안 받고 일을 하든지, 아니면 나가라는 식이다. 일단 그렇게 통보한 뒤에는 어떤 설득이나 대화도 통하지 않는다. 돈을 안 주겠다는데 계속 있을 수는 없다. 결국 나갈 수밖에 없다.

 

 

 

그랬던 그가 번쩍이는 외제차를 몰고 보무도 당당하게 찾아와서 필자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가 제안한 것은 중국 회사를 필자에게 소개하겠다는 것이다. 그 회사 관계자도 함께 찾아왔다. 그들의 제안은 귀를 솔깃하게 했고 나름 설득력이 있었다. 필자가 맡을 업무는 한국 회사를 상대로 관계를 맺고 거래를 성사시킨 후 생산을 시작해 이익을 내는, 아주 광범위한 일이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회사들을 상대로 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한국 회사와 원만하게 소통하고 관계를 가져갈 수 있는 한국 사람이 필요했다. 그들의 판단으로는 필자가 그 자리와 역할에 적임자였던 셈이다. 필자 또한 당시 중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귀국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던 처지라 그 사람들의 제안이 속으로 반갑기는 했다. 어쨌든 일자리가 주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서서히 접근해보기로 결심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에서 깨지고 터진 경험을 토대로 이번에는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한국 사람이 중국 회사의 대표로 들어간다는 것은 혼자서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한번은 호랑이굴에 들어가서 실제로 그들과 부딪치며 중국 사람들의 내면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싸움은 필자에게 완전히 불리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들이 원하는 거래 상대는 한국 회사, 한국인이었다. 필자가 움직이고 거래하는 내용은 나름대로 조정이 가능했고 그들이 자세히 알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얼마 후 그들을 따라 회사를 방문했다. 공업 단지 내 자리한 회사 건물은 채 완공되지 않았고 공장은 기본 설비만 간신히 갖춘 상태였다. 중국인들의 오랜 속성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사람을 이용해서 큰돈을 벌겠다는 욕심과 되지도 않는 사업 계획을 가지고 한국 회사를 상대로 쉽게 사업을 해보겠다는 허무맹랑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인들이 외국 회사나 개인을 상대하는 수법은 대개 비슷하다. 엄청난 특혜와 제안으로 초기 단계에서 사람을 미혹시킨다. 변호사를 대동해 계약서를 작성하고 만전을 기한 다음 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아직 발전이 덜 된 내륙 지방도시에서는 사고방식이 대충 이런 수준이다.

 

그들의 전략은 아주 간단했다. 필자를 그물로 엮은 다음 얼마간 좋은 대우를 해주다가 일이 성사되면 다시 그물을 더 넓게 쳐서 더 이상 빠져 나올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결코 좋은 대우를 긴 시간 동안 해 줄 의도가 없었다. 필자에게서 얻을 만한 이익이 장기간 유지될 만큼 큰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물에 완전히 걸리면 더 이상 대우해주지 않아도 필자는 필자로 인해 거래에 임한 한국 회사에 대한 책임 때문에 어찌 할 방법 없이 꼼짝 못하고 중국 회사를 위해 머리를 싸매며 일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될 것이라고 봤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원하는 결과이자 처음부터 의도했던 목적이었다. 그들은 결국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서서히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조바심을 내기도 하고 사람을 아주 피곤하게 볶아대기도 했다. 그들의 전략이 자꾸 지연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거래 과정과 마무리가 필자 손에 있는 구조였으므로 필자에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필자가 손을 털어야 할 시점이 왔다. 언제 어떻게 무슨 명분을 갖고 손을 뗄지 깊이 생각했다. 함부로 손을 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도 안 된다. 상대는 필자에게 많은 돈을 투자했다. 돈을 쓰고 허망하게 일을 망쳐서 기분 좋은 사람은 없다. 중국인들은 그렇게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손을 접어야 하는 명분의 그물과 그럴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의 그물을 동시에 치밀하게 쳐야 한다. 만약의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필자는 그런 그물을 서서히 치면서 그 자리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결과적으로 말해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방법을 그대로 사용했다. 중국인들은 처음에 아주 적극적인 도움의 자세를 취한다. “안 될 것이 없다고 자주 말한다. 그 다음은 시간을 끌면서 이리저리 약탈(?)하는 단계다. 이때 제일 많이 쓰는 말은기다려라. 예컨대고위층의 결정만 남았는데 잘될 것이다. 그러니 기다려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고위층이 반대한다는 수법을 쓴다. 그러면서너무 염려하지 마라. 여러 방면으로 손을 쓰고 있다고 달래기도 한다. 다시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지쳐가고 있을 때나도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필자도 이 수법을 사용했다. ”걱정하지 마라. 이야기가 잘되고 있다. 다만 당신네 기술에 문제가 있으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우선 관계를 맺고, 공장을 견학하고, 여러 자료를 검토하고, 제품의 견본을 만들어 납품하고, 검사한 후 문제가 없는지 토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래도 제품에 문제가 있다면 내게는 책임이 없다. 만약 제품상의 문제로 계약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결코 내게 그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지금 그만 두겠다.” 이 같은 내용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주지했다. 빠져나갈 여지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잘 털고 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도 중국에 진출해서 함정에 빠지고 그물에 걸리는 경우를 수도 없이 당한다. 지난 10년 동안 이와 비슷한 실패는 주변에서 많이 봤다. 합작한 중국 회사는 터무니없는 시설과 자본으로 한국 회사를 농락하고, 그들이 우리 측에 내 놓는 계획은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것이다. 이미 물이 엎질러진 후에 알아 챈 한국 회사들은 초기에 투자한 수십억의 자본을 중국 측 합작회사에 한 입에 털리곤 했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그들이 말하는 조건과 제안, 계획은 대부분 그들이 그물을 치기 위해 짠 전략의 일환이다. 하지만 중국 땅에서 사업하는 사람이 어떻게 중국인을 상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당연히 상대해야 한다. 그들의 그물에도 걸려야 한다. 그물인 줄 알면서도 들어가야 한다. 때로는 무수한 잡목 숲이 놓여 있고, 때로는 깊은 계곡과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도 있는 법이다. 정글을 통과하면 반드시 푸른 초원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중국 시장에서의 전투는 생존을 위해 싸우는 과정에 있지 결코 찬란한 성공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생존해서 이익을 얻는다면 최상이겠으나 때로 이익을 내지 못해도 죽지 않고 생존해 나가고 있다면 그 또한 성공이다.

 

중국인 특유의 그물 전략은 그들 나름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한다. 중국 사람들이 우리에게 치는 그물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상대의 그물이 어떤 종류인지를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하고 급해서도 안 된다. 아울러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평가해야 한다. 우리의 장점과 상대방의 장점을 철저하게 비교분석해야 한다. 그래야 중국 진출의 목적 또한 명확해진다. 상대가 우리의 기술을 원하는 것인지, 자본을 원하는 것인지, 그 대신 무엇을 얼마나 제공할 수 있는지도 봐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白戰不殆). 중국은 그 어느 곳보다 이 말이 잘 통하는 곳이다.

 

이병우 상양 국신광전실업유한공사 대표 dw6784@hanmail.net

필자는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증권사 펀드매니저를 거쳐 대우금속 및 대우메탈에서 임원 및 CEO를 지냈다. 그 후 중국 후베이성 무한시 초청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시 정부 문화원과중국 중부지역 경제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현재 후베성 상양에 위치한 국신광전실업유한공사 CEO로 재직 중이다. 저서에 <만만디의 중국 고수들과 싸울 준비는 했는가?> <한국인이 바라 본 중국(중국어)> 등이 있다.

  • 이병우 | - (현) 상양 국신광전실업유한공사 대표
    - (현) KOTRA 수출전문 위원
    - 대우금속 및 대우메탈 임원 및 CEO
    dw67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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