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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에서 배우는 경영

노련한 하마는 배가 고파도 멀리 있는 풀을 먹지 않는다

서광원 | 178호 (2015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전략

 

노련한 하마들은 아무리 배가 고프고 맛있는 풀이 눈앞에 아른거려도 어느 지역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물속에서 무리와 함께 있을 때 천하무적인 이들이 물 밖에선 속수무책으로 맹수들의 먹잇감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련함의 핵심 조건 중 하나는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잘 아는 것이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포지셔닝(Positioning)이다. 한편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보스가 어디서 어떻게 하느냐는 무리의 생존, 더 나아가 보스 자신의 생존을 좌우한다. 사자 왕국에서 보스의 수명은 보통 2년이지만 상황에 따라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잘 아는 보스들은 5년까지 장수한다. 

 

아프리카의 강에는 아주 센 두 녀석이 산다. 철갑 무장에 세상에서 가장 강한 턱을 가진 악어와 역시 커다란 입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하마다. 녀석들은 덩치도 크다. 악어는 몸 길이 5m에 무게가 400∼500㎏에 달하고, 하마는 1.5m 남짓 키에 몸무게는 보통 1t, 큰 녀석은 3t까지 나간다. 이 거대한 두 녀석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같은 강에서 이웃하고 사니 날이면 날마다 바람 잘 날이 없을 것 같지만 녀석들이 사는 강은 의외로 조용하다. 별로 싸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하마는 초식이어서 악어에게 관심이 없고, 고기를 먹고 사는 악어는 하마가 커다란 입과 무서운 송곳니, 거기다가 무리까지 있으니 잘못 건드렸다간 본전도 못 찾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속에서야 3t에 달하는 튼실한 살점을 마음껏 포식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겠지만.

 

 

특히 하마는 누군가가 자기들의 영역을 침범하면 절대 그냥 놔두지 않는다. 평소에는 하루 종일 강물 밖으로 코와 눈만 내놓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온순한 측면도 있지만 영역 내 침입자만큼은 결코 곱게 보내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강 속의 하마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천하무적이다.

 

이 강물 속의 천하무적을 완전하게 볼 수 있는 시간은 뜨거운 태양이 사라져줄 때다. 강한 햇빛은 피부를 상하게 하기도 하고 사자 같은 녀석들의 눈에 띄면 좋을 일이 없기에 물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해질녘 강물 밖으로 나온 하마들은 근처 풀밭으로 식사를 떠난다. 워낙 덩치가 있는 녀석들이라 하루에 100㎏ 정도는 먹어야 하니 여유를 부리다가 뒤처지면 풍성한 식탁은 다른 놈들 차지다. 다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잰걸음으로 초원 속으로 사라진다.

 

녀석들이 하루에 먹어야 하는 풀 100㎏은 말 그대로 엄청난 양이어서 날이 갈수록 강 근처에서 풍성한 식탁을 찾는 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두들 조금씩 조금씩 강에서 멀리 나아간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무리들은 간 곳이 없고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캄캄한 초원에 혼자 떨어져 있는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아차 싶어 오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하지만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고, 이 예감은 맞아 떨어질 때가 많다. 이미 다가온 불행이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 불행의 정체는 배고픈 사자들이다. 어디서 왔는지 이글거리는 사자들의 눈이 어둠 속에 혼자 있는 하마를 빙 둘러싼다. 풍성한 식탁을 찾아 왔다가 사자들의 풍성한 식탁이 될 위험에 빠진다.

 

물론 몸무게가 톤 단위인 하마가 200㎏ 안팎에 지나지 않는 사자와 겨룰 수 있는 여지는 적지 않다. 하지만 결말은 언제나 하마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날 확률이 높다. 강에서는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천하무적이지만 강에서 나오는 순간 모든 강점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거대한 몸과 짧은 다리는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고, 커다란 입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며, 물속에서 최적화된 피부는 약간의 스침도 견뎌내지 못한다. 시간이 갈수록, 몸부림을 칠수록 상황은 악화되기만 한다. 죽을 힘을 다해 강으로 돌아오는 녀석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행운이 따르더라도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는 걸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노련한 하마들은 아무리 배가 고프고 맛있는 풀이 눈앞에 아른거려도 어느 지역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위기가 왔을 때 물속으로 재빨리 돌아오면 자기만의 강점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련함의 핵심 조건 중 하나는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잘 아는 것이다. 반면 젊고 팔팔한 녀석들은 그 팔팔함 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다. 생존의 기본 조건을 어긴 대가다. 생존의 기본 조건은 평상시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중요한 순간에 생과 사를 가른다.이 삶의 기본을 갖추지 않는 생명체에게 세상은 항상 가혹하다. 특히 있어야 할 곳을 아는 것은 특정 생태계 속에서 자리 잡고 살아가는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다. 삶은 어디에 어떻게 위치하느냐 하는 생태적 지위(niche)에서 시작하는 까닭이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포지셔닝(Positioning)이다. 이 삶의 기본 조건은 그것이 니치든, 포지셔닝이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국 서부 개척 시절 땅속이 아니라 청바지에서 금광을 찾아낸 청바지 업체 리바이스는 최초의 시장을 만든 덕분에 무려 100년 넘게 전 세계 청바지 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했다. 더구나 전 세계 젊은이들이 청바지를 자신들의 아이콘으로 받아들이면서 청바지의 세계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성장 곡선이 처지기 시작하자 좀 더 멀리 있는맛있는 풀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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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광원araseo11@naver.com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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