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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황과 과제

한국인 54만 명 자발적 혁신에 참여… 기업, 사용자 혁신에 마음을 열자

김영배 | 175호 (2015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경영전략

 

 

우리나라 사용자 혁신 현황

제조기업 대상 연구

제조기업의 공정혁신 현황을 국가 간 비교한 결과 한국은 전체 제조기업의 17.7%가 사용자 혁신을 개발, 캐나다(43%)나 네덜란드(62%)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 혁신의 공유 비율 역시 3.2%에 그쳐 캐나다(18%), 네덜란드(19%)에 비해 현저히 낮아 중복 개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큰 상태.

소비자 대상 연구

소비자들이 주도한 사용자 혁신 사례를 분석한 결과스포츠/취미/오락 관련가정용품 및 가구도구 및 장비유아 및 교육 용품소프트웨어 등의 순서로 나타남. 소비자가 개발한 사용자 혁신을 다른 소비자나 기업들과 공유하는 경우를 국가 간 비교한 결과 한국(21.9%)은 영국(33%)보다는 낮지만 미국(18%), 일본(11%)보다는 높은 수준. 이는 제조업체의 사용자 혁신 공유 비율이 낮은 것과 대비되는 결과임.

  

사용자 혁신의 중요성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생산자 혁신(producer innovation)은 생산자가 혁신을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고자 개발한 혁신이다. 반면 사용자 혁신(user innovation)은 기업이나 일반 소비자가 필요한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스스로 개발한 혁신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커브드 디스플레이를 적용해 스마트폰 전면부뿐 아니라 측면에도 정보를 표시할 수 있는갤럭시노트 엣지를 만들어 낸 건 전통적인 생산자 혁신이지만 비용 절감이나 기능 개선 등을 목적으로 아예 삼성전자가 커브드 디스플레이를 직접 생산하기 위해 자체 공정이나 설비를 스스로 개발하거나 기존 설비를 개선했다면 사용자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 혁신은 개발 과정이나 지식재산권의 보호, 혁신의 확산 등에 있어 생산자 혁신과 다른 패턴 및 사회적 후생(social welfare) 효과를 보인다. 게다가 인터넷과 SNS의 확산, 사용자 편의성이 높아진 CAD/CAM이나 3D프린터 같은 설계나 제조 도구의 등장, 리눅스(LINUX) 같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보급과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 같은 새로운 개방적 혁신(open innovation) 전략의 일반화 등에 힘입어 점점 더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어 학계나 산업계에서 새로운 혁신 패러다임으로 주목을 받게 됐다.

 

사용자 혁신은 특히 우리나라의 혁신 정책이나 기업 혁신 전략에 여러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은 그동안 선진국에서 개발된 제품이나 기술을 빠르고 값싸게 모방하는 혁신 전략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뤄왔다. 그러나 최근 여러 산업에서 이와 같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방식의 한계를 절감하고 스스로 창의적인 혁신을 통해 시장선도자(market leader)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바로 시장과 기술의 불확실성이다. 이미 기술 개발이 완료되고 시장에서 검증된 제품을 모방 혹은 개선하는 혁신 과정에서는 불확실성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장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창의적 혁신의 경우 기술뿐 아니라 시장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사용자 혁신은 사용자가 필요한 욕구와 기능에 대해 스스로 기술적인 해결책을 개발한 것이므로 기술과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여줄 수 있는 중요한 대안을 제공한다. 더구나 사용자 혁신의 경우 생산자 혁신과는 달리 다른 사용자와 공유(심지어는 무료로 공유)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1

 

창조경제를 통해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고 있는 한국에서 기존 기업의 혁신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나 개인의 사용자 혁신은 기존 추격형 국가혁신시스템을 한 단계 끌어올려 탈()추격 국가혁신시스템으로 변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사용자 혁신을 기반으로 새로운 벤처기업의 창업(user entrepreneurship)도 활성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사용자 혁신의 현황

우리나라의 사용자 혁신 활동에 대한 체계적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2008 STEPI 보고서2 에서는 우리나라의 여러 산업에서 개발된 사용자 혁신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조선산업의 경우 외국에서 개발된 선박 설계를 위한 CAD 시스템을 기반으로 자사의 설계나 제조 프로세스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각종 응용 모듈을 스스로 개발한 사례가 있다. 온라인게임 산업에서도 게임사용자들이 새로운 콘텐츠나 무기 등을 개발해 게임의 효용성을 높이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이 밖에 내비게이션 지도 프로그램이나 의료기기, 휴대기기, PC부품 등 다양한 산업에서 사용자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1) 제조기업 대상 연구

개별적인 사례가 아니라 사용자 혁신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뤄지는지 파악하기 위해 필자를 포함한 연구팀은 한국 제조업을 대상으로 연구3 를 실시했다. 이 연구는 2008 STEPI에서 시행한 우리나라 혁신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제조기업의 사용자개발 공정혁신에 대한 현황을 조사한 것이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전체 표본 3081개 기업 중 3년 동안 공정혁신을 했다고 응답한 818개 기업에 대한 후속 조사를 통해 무응답 기업을 제외한 555개 기업 중 370개 기업이 제조공정에서 사용자 혁신을 수행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4 다시 말하면 제조기업의 17.7%[(818/3081)×(370/555)]가 사용자 혁신을 경험했는데 이는 유사한 조사연구를 기반으로 보고된 캐나다 제조기업(43%)이나 네덜란드(62%)에 비해 많이 낮은 수준이다.

 

< 1>에 우리나라와 캐나다 및 네덜란드의 사용자개발 공정혁신 비교가 구체적으로 정리돼 있다. 한국 제조기업의 경우 캐나다나 네덜란드에 비해 사용자개발 공정혁신에 더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반면 공정혁신을 위해 고객이나 공급자로부터 지원을 받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전체 370개 사용자 혁신 중 12(3.2%) 혁신만이 다른 기업과 공유되고 있어 캐나다의 약 18%, 네덜란드의 19%에 비해 현저히 낮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유사한 공정혁신이 다른 기업에서도 개발됨으로써 중복 개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사용자 혁신을 개발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특성을 좀 더 파악하기 위해 3081개 표본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매출 규모가 크고, 기술능력과 혁신 활동이 활발하며, 수출 비율이 높고, 산업 집중도가 비교적 낮은 산업에 속한 기업일수록 사용자 혁신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용자 혁신 기업의 특성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기업 규모가 클수록 공정혁신을 통한 혜택이 크고, 국내 혹은 해외시장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공정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의 필요성이 높아지며, 어느 정도 기술 역량이 뒷받침돼야 스스로 혁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지식재산권으로 보호되는 사용자 혁신의 특성을 분석한 결과 기업 차원에서는 특허 수가 많을수록 저작권 등으로 보호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혁신 자체의 특성 측면에서 본다면 혁신이 1) 개선(modification)이 아닌 창조(creation)일수록, 2) 고객기업의 지원을 받을수록, 3) 혁신 개발비용이 많이 소요되고 경쟁력에 도움이 될수록 특허나 저작권 등으로 보호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고객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경우 지식재산권의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표본기업의 3분의 2 정도가 B2B 기업으로서 다른 고객기업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데 이들 고객기업은 공급업체의 공정혁신이 다른 경쟁기업으로 유출되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앞서 우리나라 기업의 사용자개발 공정혁신이 다른 기업과 공유되는 비율이 현저하게 낮다는 사실과 관련해 시사점을 제공한다. 지식재산권으로 보호받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혁신이 다른 기업으로 확산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혁신의 공유 비율이 낮다는 점에서 혁신의 확산에 부정적인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5  혁신공유를 원하지 않는 고객기업의 입장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우리나라 전체 사회적 후생 관점에서는 혁신의 확산이 억제됨에 따라 혁신 개발의 중복 비용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6

 

2) 소비자 대상 연구

우리나라 소비자 개인을 대상으로 한 2014년의 연구7 결과는 다음과 같다. 소비자 패널 데이터를 보유한 SK M&C를 통해 3차례에 걸쳐 8318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survey) 결과 1821명의 응답자로부터 412명의 사용자 혁신 개발 경험 소비자를 확인했다. 이들이 제시한 혁신의 내용과 새로운 기능에 대한 기술을 바탕으로 3명의 평가자가 2차례에 걸친 평가를 실시한 결과8 이 중 201개 혁신만이 진정한 사용자 혁신으로 판정됐다. 평가기준은 사용자 혁신의 정의에 따라 1) 직무나 사업과 관련이 없으며, 2) 시장에 이미 존재하지 않고, 3) 판매 목적이 아니며, 4) 새로운 혁신적 기능이 포함돼야 하며, 5) 단순 고객화(customization)를 위한 혁신이 아닐 것 등이다.

 

< 2>는 우리나라 소비자가 사용자 혁신을 주도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전체적으로스포츠, 취미, 오락 관련(17.9%) △가정용품 및 가구(17.9%) △도구 및 장비(16.4%) △유아 및 교육 용품(10.9%) △소프트웨어(8.5%) 등으로 나타났다. 이는 영국이나 미국, 일본 등의 소비자 사용자 혁신 분포와 유사한 구조다. 동시에 에너지나 음식 등 기초생활 관련 사용자 혁신 비중이 높은 인도와는 다른 양상이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소득 수준이 소비자 사용자 혁신 패턴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용자 혁신의 단순 비율은 1.9%에 달하지만 표본 과정에서 사용자 혁신 가능성이 높은 기술적 배경을 가진 고학력의 남성이 과잉 포함됐기 때문에 우리나라 인구분포 비율을 반영해 교정을 한 결과 1.5%의 소비자들이 사용자 혁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9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성인 인구 중 54만 명이 혁신 활동에 참여했고 이들 개인이 혁신에 소요한 평균 비용도 68만 원( 628달러)가량임을 감안하면 매해 소비자들이 스스로 사용하기 위한 혁신 활동에 3670억 원( 34000만 달러) 이상을 투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는 우리나라 소비재 기업의 2009년부터 2011 3년 평균 R&D 비용의 4.4%에 달한다. 또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소비재기업인 CJ제일제당과 LG생활건강의 같은 기간 평균 R&D 투자액인 691억 원과 411억 원의 각각 5배와 9배를 상회하는 규모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소비자사용자 혁신을 미국, 영국, 일본의 소비자사용자 혁신과 비교한 자료가 < 3>에 제시돼 있다. 소비자가 개발한 혁신이 지식재산권으로 보호를 받는 경우는 7%로 나타나 미국보다는 낮으나 다른 선진국보다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소비자가 개발한 혁신을 적극적으로 다른 소비자나 기업들과 공유를 한 경우는 21.9%, 이들이 실제 채택해 사용한 비율은 14.4%를 각각 기록했다. 이는 영국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치로 우리나라 제조업체의 사용자 혁신 공유 비율이 낮은 것과는 대비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또한 우리나라의 소비자-사용자 혁신가들의 인구통계학적 특징을 분석한 결과 교육 수준이 높고 직업이 있는 남자일수록 사용자 혁신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적 배경 여부는 선진국과 달리 중요한 요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 사용자 혁신의 과제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용자 혁신의 현황에 대해 살펴봤다. 비록 선진국에 비해 비중이 낮기는 하지만 기업이나 일반 소비자들의 사용자 혁신 활동은 규모 면에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창조경제의 활성화나 모방형에서 창조형으로 혁신 전략의 변신이 필요한 우리나라에서 사용자 혁신은 새로운 혁신 대안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부정책결정자나 기업경영자 모두 그동안의 추격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해 잠재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이나 일반 소비자들의 사용자 혁신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요구된다. 먼저 사용자 혁신 활동과 성과에 대한 국가적인 현황 파악과 통계 측정이 필요하다. 최근 유럽에서는 국가혁신활동조사에 새롭게 사용자 혁신 항목을 포함하는 변화 노력이 이미 진행 중이다.10 또한 우리나라는 혁신 성과를 높이기 위해 기업이나 대학 및 출연연구소의 R&D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는 일반 소비자들의 사용자 혁신 활동에 대한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 재정적 지원뿐 아니라 온·오프라인 사용자 혁신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이들의 혁신 활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각종 개발 도구나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사용자 간 혹은 사용자와 기업 간 네트워크 활동이 일어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교육 시스템 역시 입시 위주의 암기 교육에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교육을 포함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창의적 사고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기업 역시 새로운 혁신의 원천으로서 사용자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선도사용자(lead user)의 파악을 통해 이들을 자사의 혁신 활동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3M이나 IBM, (Dell), 레고(LEGO) 등과 같이 브랜드커뮤니티 혹은 혁신커뮤니티를 구성해 이들의 혁신 활동을 지원한다든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크라우드 콘테스트(crowd contest)를 통한 개방적 혁신 전략을 구사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기업은 분배와 절차의 공정성을 통해 소비자를 포함한 외부 혁신 원천과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혁신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에는 협력업체와 수평적 개방적 관계로의 변신을 통해 혁신의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하고 상호 호혜를 기반으로 공유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제 바야흐로 혁신 활동이 민주화되는 시대11 를 맞아 우리 기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할 때가 됐다.

 

 

김영배KAIST 경영대학 교수 ybkim@business.kaist.ac.kr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MIT에서 박사후 연구과정을 밟았다. 1988 KAIST 부임 후 우리나라 기업의 혁신 전략과 창의적 조직관리를 위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전략경영학회장, 기술경영경제학회장 등을 역임했고 워싱턴 주립대 방문교수, 태국 AIT 파견 교수로도 활동한 바 있다.

 

  • 김영배 | - (현) 옥외광고 조사전문 회사 EDR-LK 대표이사
    - (현) 희망제작소 부설 간판문화연구소 컨설팅센터장 - (현) 한양대 광고학과 강사
    - 문화관광부 옥외광고 분야 자문위원
    - 행정자치부 옥외광고 정책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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