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

남성 우월주의 사회일수록 여성의 경제파워 더 세다

165호 (2014년 1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마케팅, 인문학

매일 뉴스에여풍(女風)’이라는 말이 나오고여성상위시대라는 표현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됐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여권이 신장된 나라일까? 여성이 소비의 중심에 있고 문화를 리드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여권향상사회는 아니다. 역으로 남성 다수가 대부분의 시간을 경제활동에 참여하면서 보내고 여성은 가정을 주로 돌보는, 얼핏 보면 남성우월주의적인 사회가 사실은 소비패턴에서여성중심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가족 간의돈 관계경제문제’가 아니라문화. 따라서 기업들은 서로 다른 문화권마다 다르게 형성돼 있는소비의 중심(여성인지, 남성인지)’을 먼저 포착하고 시장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주

‘문화전략가’인 조승연 작가가 그동안 연재해 온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연재를 이번 회를 끝으로 마칩니다. 조만간 문화전략과 관련한 새로운 연재로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욕망의 전략(Strategy of Desire)>의 저자인 에네스트 디히터는광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프로이드가 발명한 정신분석학을 기업이 고객 심리 이해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이를 위해 고객의 구매 의도를 분석하는 동기조사(Motivational Research) 테크닉을 개발했다. 하지만 그의 저서인 <욕망의 전략>을 읽어보면 에네스트 디히터가 성공한 요인은 고객 분석 테크닉에만 있는 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인간과 사회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하고 있었다. 그의 통찰력 중 가장 획기적이었던 것은 남자가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는 사회도 소비는 집안 살림을 담당하는 여자들이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한 것이다.

 

디히터는 콤튼광고사로부터 아이보리 비누 브랜드의 광고에 대한 자문을 요청받았다. 콤튼광고사는 비누 소비자들의 구매 의도를 사전에 분석하기 위해왜 경쟁사 제품을 사지 않고 아이보리 비누를 샀습니까같은 식상한 질문으로 고객 설문 조사를 실시하고 있었다. 디히터는 그런 논리적인 질문으로는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봤다. 대부분의 비누 구매자들이 여성이라는 점에 착안, 여성들의 어떤 숨겨진 감정적 욕망이 구매 의욕을 일으키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누를 구매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행동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여성 소비자들 대부분이 비누를 구매하려고 매장에 들어오면 비누를 쓰다듬고 눈을 감고 향기를 맡아본다는 점을 알게 됐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디히터는 여러 예비 고객들을 인터뷰했다. 인터뷰를 통해 남성들에게 비누란 단순히 몸을 씻는 도구일 뿐이지만 여성들에게 비누는 좀 다른 의미라는 걸 알게 됐다. 비누와 여성 사이에는 깊은 정신적 관계가 있었다. 디히터가 활동하던 1930년대의 미국 여성들은 성적 욕구를 드러내 이성에게 적극적인 태도로 다가가거나 혼자 있는 곳에서도 자기 몸을 노출하는 것이 엄격한 금기 사항이었다. 홀로 있는 욕조에서조차 나체로 자기 몸을 비누로 문지르는 행동은 아주 비밀스럽고, 여성스럽고, 감각적인 은밀한 행동이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무의식중에 목욕을 빙자해 자기 맨살을 부드럽게 문지를 수 있는, 자기 몸을 만질 권리와 자유를 주는 비누의 질감이 매우 중요했다. 여성들이 비누를 구매하기 전에 미리 만져보고 질감이 좋으면 구매를 결정한다는 점을 발견한 디히터는 아이보리 비누의 광고를 획기적으로 구성했다. 행복한 표정으로 욕조에서 비누칠을 하고 자기 몸을 문지르고 있는 여성 모델을 기용하고 비누 모양도 딱딱한 사각형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둥글고 매끈한 모양으로 바꾸도록 했다.이 광고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이후로 아이보리 비누는 수십 년간 미국 여성들이 가장 사랑하는 비누 브랜드가 됐다.1 디히터는 자기 시대의 미국은 가계와 가사를 책임지던 어머니들이 소비의 주체인 Matrifocal Society라는 점을 제대로 깨달아 광고계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셈이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의 주어진 역할은 서로 다르며 그런 역할은 그 사람이 자란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면 유럽의 북방 민족인 바이킹족은 전쟁이 발발하면 남녀가 나란히 무기를 들고 나가 싸워야 했다. 하지만 여자는 주로 방패를 들고 자기 옆에서 싸우는 남자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고, 상대편을 창과 칼로 치며 공격하는 역할은 남자들이 맡았다. 남자는 일정 나이가 되면 사회적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입신양명해야 하고 여자는마님으로서곳간 열쇠를 책임지던 우리나라의 오래된 남녀 역할 분담도 한국의 문화적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은 여 궁수들이 군사와 정치를 담당하고 남자들이 가사 노동을 전담했다. 이렇게 남자와 여자의 역할 분담은 문화에 따라 달랐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남자와 여자의 교육이 분리돼 있었고 남녀는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두 개의 다른 문화권을 형성해 왔던 것이다. 그로 인해 한 사회에서 남자 또는 여자가 소비 주체가 돼서 소비와 자녀교육을 주도할 때 그 문화의 주류 소비 문화 패턴은 매우 다르게 발달하면서 남성위주 vs. 여성위주 사회의 문화 DNA 차이를 만들어 냈다.

 

여성 중심 사회의 3가지 유형

문화인류학에서는 여성 위주 사회를 크게 3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아들이 어머니의 이름을 이어받고 아버지는 가족의 중심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모계(Matrilineal)사회다. 중국 모이족이 대표적인 예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의 고려시대처럼 여자가 시집을 가서 시댁으로 이주하지 않고 오히려 남자가 장가 들어 처가로 이주하는 처가거주(Matrilocal) 사회다. 오늘날의 산업화·정보화 사회에서 이 두 가지 유형은 매우 드물어서 가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나 접할 수 있다. 한편 많은 사회는 사실 내면적으로는 어머니가 가사와 자녀교육의 주체가 된 여성중심 (Matrifocal)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 아버지의 직장 근로시간 과다, 군 장기 복무, 전쟁 참전 등으로아버지가 가정을 이끌 수 있는 물리적 시간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사회가 여성 중심으로 돌아가는지 여부를 알아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인류학적 교훈이 있다. 처음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이로코이 원주민 부족을 접한 유럽의 학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이로코이족은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 중에서 가장 용감한 전사들이었다. 아들을 강하게 키우려고 아주 어릴 때부터 혹독하고 고통스러운 훈련을 시켜 고통에 둔감해지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보는 데서 전쟁터에서 잡아 온 적군의 손톱을 뽑고 사지를 잘라 동네 한가운데에서 구운 다음 식인종 파티를 열었다. 이처럼 시체와 인간 피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의례를 치르고서야 남자로 인정해줬다. 남성성이 강한 이로코이족이지만 주로 남자들이 처가에 얹혀 살고, 아들도 어머니의 이름을 따르는 모계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남자가 살림살이에는 관여하지 못했다. 이로코이족은 남자가 사회를 주도하면 강한 전사 사회를 이루고 여자들이 사회를 주도하면 섬세한 사회가 된다는 유럽인들의 선입견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이후로 수많은 유럽 사회학자들이 이로코이족을 찾아가 그들 사회를 연구하고 여러 논문들을 발표했다.

 

인류학자 윌리엄 디비알레는 아들을 강한 전사로 길러낸 이로코이족이 오히려 여성 중심 사회가 된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이로코이 부족은 원래 전쟁이 생업인 전사 부족이었다. 그러나 부족 간의 전쟁이 너무 잦아지자 미국 북동부에 거주하던 이로코이족들끼리 큰 연맹을 맺고 같은 종족 간에는 전쟁을 하지 않는 풍토를 만들었다. 그 대신 이로코이 연맹에 가입된 부족들이 모여 대형 전사 군단을 형성해 몇 달씩 걸어서 오대호 부근의 다른 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싸우고 돌아왔다. 그런 식으로 남자들은 매년, 적어도 몇 달씩 집을 비워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집에 남아 있던 여자들끼리 마을의 주요 사항들을 결정하고 가사와 자녀 훈육, 농사일까지 도맡게 됐다. 점차 그런 식의 시회 시스템이 갖춰지다 보니 남자들의 가정 내 역할이 줄게 됐고 결국 여성 주도 사회가 자리잡게 됐다는 것이다. 이로코이족이 여성 위주 사회로 흐른 사례는 남자가 정치적·사회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국가에서도 남자들이 오래 집을 비우고 외부 활동에 전념하는 경제 구조를 유지하면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이 커진다는 점을 알게 해준다.

 

디히터가 활동하던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의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미국은 거대한 대륙에 낮은 인구밀도의 국가였다. 그때 막 자동차와 도로의 발전이 급격히 이뤄지면서 남자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씩 자동차를 타고 미국 대륙을 종횡무진 누비며 고객이나 파트너를 만나 비즈니스에 전념하게 됐다. 남자들이 오래 집을 비워야만 했다. 자연히 집에 남은 어머니가 자녀 교육과 살림살이를 도맡았다. 당시의 미국 극작가 아더 밀러의 명작 <세일즈맨의 죽음>은 이렇게 미 대륙을 종횡하며 가족 부양을 위한 경제 활동으로 거의 평생을 보낸 아버지가 은퇴하고 집에 돌아온 후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자살하는 당시 미국 사회의 가장 비극적인 면을 잘 그려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게다가 미국은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세계사적인 큰 전쟁에 수많은 군인들을 파병했다. 그 시기에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낸 미국인들은 아버지 없이 자란 경우가 아주 많았다. 그 결과 이 시대에 유년과 청년기를 보낸 미국 남자들 역시 어머니의 양육으로 여성적 문화 DNA를 물려받았다. 어머니가 가사와 자녀 교육의 주체가 된 여성중심(Matrifocal) 사회가 형성됐다는 얘기다. 이들이 사회의 주체로 성장하자 미국 주류 문화의 여성화가 급격하게 이뤄졌다. 1970년대에 사회 주역으로 성장한 이들 세대를 흔히 ‘Flower Children’이라고 부르는데 남자들도 꽃무늬가 많고 몸매가 드러나는 몸에 찰싹 들러붙은 의상을 입고 춤을 즐기며 오랜 미국의 가치관이었던 정복 전쟁을 거부하는 대규모 반전 시위, 자연환경에 대한 애착, 행복한 가정생활을 중요시하는 등 여성적 문화 DNA를 미국의 주류 가치관으로 가지고 오는 큰 역할을 했다. 1970년대 미국 영화인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를 보면 이런 여성적인 문화 DNA를 가진 아들과 (존 트라볼타 연기) 전통 미국 남성형 가치관으로 무장한 아버지와의 갈등이 적나라하게 잘 그려져 있다.

 

남성의 가정 부재 역사가 만들어 낸 여성적 문화 DNA 사회는 1990년대 말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의 소비 패턴을 놀라운 방향으로 바꿨다. 남성들의 화장품과 패션 등 여성적인 상품들의 대량 소비 시대를 연 것이다. 오하이오대 패션 연구가인 섀넌 브라이언트에 의하면 미국의 한 지역에서만 남성 목욕용품 시장이 1999 200만 달러 규모에서 2003 1900만 달러 규모로 급성장했고 남성 화장품 시장은 같은 기간에 390만 달러에서 1380만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영국성형외과협회에 의하면 2003년에서 2004년 한 해 동안 남성 성형수술 시장은 50% 성장했으며 미국의 경우 2003년 한 해에 110만 명의 남성이 성형수술을 했다. 이런 트렌드가 계속 진행되더니 지금은 남성과 여성 화장품 시장 규모가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미국 저널리스트들은 이런 현상을 Metrosexualism(도심성애자)라는 신조어로 표현했다. 도심 Metropolis와 동성애자 Homosexual을 합성해서 만든 이 단어는 도시의 성공한 미국 남자들이 화장품, , 액세서리 등에 대한 관심이 여성들 못지 않게 높아서 마치 동성애자 같아 보인다는 의미를 담은 신조어다. 그러나 이 용어의 숨은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면 화장품이나 패션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새로운 개발도상국에 진출할 시기와 상품 개발 방법 결정에 중요한 단서가 돼 줄 것이다. 그 나라의 역사 흐름을 살펴보면 아버지 세대가 대부분 원정 전쟁에 징집됐거나 해외 근무, 장기 근무 등으로 가정 내에서 아버지 부재 기간이 길 경우, 그들의 자녀 세대가 독립적 소비를 시작하는 20세가 넘어갈 무렵부터 대체로 남성이 여성 고유의 소비 영역을 차지하게 되는 패턴을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Matrifocal 사회의 문화 DNA: Men make, women spend

여자가 주요 소비재 구매 결정권과 자녀 교육을 담당하는 우리나라도 matrifocal society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전쟁 때 많은 남성들이 전쟁터로 나가 사망하면서 수많은 미망인들이 홀로 자녀를 키운 사례가 급격히 늘었다. 1952년대의 통계를 보면 46만 명의 미망인이 혼자 힘으로 135만 명의 아이를 기르고 있었다. 당시의 인구 분포로 보면 아버지 부재 가정이 대단히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이 끝난 이후로도 국가가 공업 위주의 경제 성장을 추구하면서 남자들의 긴 근로가 필요해 새벽부터 야간까지의 작업 등으로 남자들이 주로 직장에서 머물고 가정을 비웠기 때문에 살림은 어쩔 수 없이 여성들이 도맡아야 했다. 당연히 가전제품이나 부동산 같은 고가품 구매, 자녀들의 학원·교재·독서 도서 선택권 등을 어머니들이 갖게 됐다. 이어진 베트남전쟁 참전과 중동의 노동자 파견으로 남편들은 해외로 나가 부재 기간은 더욱 연장됐고 그렇게 번 돈을 집으로 송금했기 때문에 여자들이 이 돈을 관리하고 소비하는 역할도 주도하게 됐다. 아버지 부재의 가정에 돈이 유입되고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주부들은 외제 물품 소비 등 새로운 소비 트렌드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한국의 소비자 시장도 여성 주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사회·역사적 형편으로 가정 내 아버지의 부재가 지속되는 동안 소비 권한이 커진 외로운 주부들에게 접근해서 금품을 강탈하는제비족현상이라는 부작용까지 속출했을 정도로 여심을 사로 잡아야만 성공할 수 있는 matrifocal 사회가 정착돼 갔다. 이런 역사의 영향으로 우리나라는남자는 벌고 여자는 쓴다는 여성중심사회적 문화 DNA를 갖게 됐다.

 

 

 

소비자학자 피터 런트와 소피아 리빙스톤은 남자는 돈을 벌고 여자는 쓰는 사회를분리 영역 사회(Separate Spheres Society)’라고 부른다. 남자와 여자의 활동 영역이 철저히 분리돼 남자는 정치, 직장생활, 비즈니스 등 생산적인 역할을 맡고 여자들은 가정 관리, 문화예술 향유, 소비자 역할을 맡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두 학자는 이런 사회에서는 물건을 굳이 구매하지 않더라도 신상품들을 관람하는쇼핑이라는 것이 삶의 한 형태로 떠오르게 된다고 말한다. 물품 구매가 여자의 공인된 사회적 역할이기 때문에 여성들은 쇼핑이라는 행동을 통해 소비전문가’가 되며 그 역할에서 최고가 돼 자기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처럼 여성들이 소비를 주도하는 나라의 백화점에는 남성을 위한 공간보다 여성용 공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심지어 명품 브랜드 수입업자들이 남성용 제품은 아예 수입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외국에서는 보기 드문 백화점의 여성 전용 주차장이 있고여성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으로 포장된 대출 상품이 많은 이유 역시 아버지들의 긴 근무시간 등으로 오래 지속된 matrifocal 사회의 단면인 셈이다. 가계에서도 주택 구입부터 가전제품, 가구와 생활소품, 자녀 교육 등 여성이 지출을 맡는 분야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마케팅도 여성의 감성에 호소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예를 들면 남성 위주의 북유럽 mediamart 전시장에는 세탁기의 전기 소모량, 물 사용량 표기, 모터의 파워 등 남성들의 판단 기준 위주로 가전제품의 성능을 내세운다. 하지만 한국에서 내놓은 제품들은 섬유별 세탁 기능 같은 여성들이 중요시하는 항목 기준으로 표기돼 있다. 한국에서는 카페나 음식점에 여성들끼리 모여 앉아 소비생활을 즐기는 풍경이 흔하다. 그런 장소 역시 여성의 취향에 맞춰져 선과 공간미보다는 색상, 아기자기한 소품 위주로 꾸며져 있다.이런 디자인은 남성 소비자가 스스로 소비를 주도하는 사회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Feminist 사회의 문화 DNA

여성중심(matrifocal)사회와 여권향상(feminist)사회는 엄연히 다르다. 라틴 문화권에 속하는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대표적인 여성중심사회다. 전통 가톨릭 사회인 이 두 국가는 여성이 비즈니스 CEO가 되는 일이 거의 없는 등 전통적인 남성 영역에 여성이 진출하기가 매우 어렵다. 정치에서도 어머니, 부인 등 여성 역할 모델을 내세워야만 성공할 수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같은 직업을 가졌을 때 임금 차이가 매우 크다. 하지만 이들은 고대로부터 대지의 여신을 섬겨왔고 정의, 지혜, 사랑 같은 고결한 개념을 항상 여자의 모습을 빌려 여신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곳 사람들은 여성들은 보호받아야 할, 연약하지만 고결한 존재로 믿어 비가 오면 자기는 비를 맞더라도 여성에게 우산을 씌워주거나 자동차 문을 열어주고 여성이 먼저 탄 다음에 타는 등 남자들이 여성들의보호자의 역할을 도맡아 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이탈리아 최고의 조각 작품인피에타는 다 자라 성인이 된 아들을 끌어 안고 슬픔에 젖어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라틴 문화권에서는 여성들과 남성의 역할을 철저히 분리하는 대신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맡아왔던 요리, 패션, 디자인 등을 여성의 자부심으로 여긴다. 국가 역시 이런 분야를 국가의 자부심과 정체성에 포함된 별도의 산업으로 발전시켜왔다. 이런 면에서 이 두 사회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남녀 역할론을 가지고 있다.

 

그와 달리 캐나다, 호주, 북유럽 등은 여권향상(feminist)사회다. 이곳 여성들은 전통적인 여성 역할을 벗어나 활발하게 경제, 정치 등 사회 진출을 해왔다. 캐나다, 호주에서는 부부가 같이 자동차를 몰고 외출할 경우 남편이 조수석에 타고 여자가 운전을 맡아 하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스라엘처럼 여성도 군에 입대해서 남성들과 동등하게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등 남성과 여성의 전통적 역할 모델을 부정하는 이와 같은 사회를 feminist사회로 본다.

 

여성 중심 사회에서는 여자의 정체성이 소비로 정의되기 때문에 이런 사회의 여성들은 과시 소비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여권향상사회 여성들은 대체로 남자와 함께 사회에서 돈 버는 동등한 경제 파트너이기 때문에 훨씬 실용적인 소비 패턴을 갖는다. 여성 소비 중심 사회에서는 가전제품 등 복잡한 기계가 갑자기 고장났을 때나 이삿짐을 옮기는 등의 상황에서 주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주는 서비스업이 발달하는 데 비해 여권사회에서는 여자가 혼자 돈을 벌어 알뜰하게 소비하면서 가족 부양도 도맡기 때문에 가장 싼 비용에 여자 스스로 간단하게 조립할 수 있는 DIY(Do it yourself)상품이 인기를 모은다. 대표적인 여권사회인 북유럽에서 여자들도 쉽게 조립할 수 있는 IKEA가구가 폭풍 인기를 끈 이유도 이러한 문화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중국은 국토가 워낙 방대해서 지역별로 문화 DNA가 다르다. 상하이는 대표적인 여성 중심 사회이고 쓰촨성은 대표적인 여권사회다. 상하이의 남성들은 직장생활을 하며 돈 버는 일을 맡고 여성은 출산과 양육에만 전념하는 경우가 많다. 상하이는 세계적으로 봐도 여성 위주의 과시 소비가 두드러지는 곳이다. 그에 비해 모계사회(모계사회적 전통은 지금의 여권사회적 속성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인 쓰촨성은 옛날부터 여자가 경제생활과 양육을 책임지고 남자는 수묵화와 바둑, 탄금과 시에 전념해서 능숙한 솜씨을 갖춘 뒤에 여자를 즐겁게 해주면 가장 멋진 남자라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같은 나라지만 두 문화권의 소비 양상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남성 중심 소비사회의 문화 DNA

유럽 중에서도 독일은 대표적인 남성 중심 소비사회다. 필자의 친구 쉐들리는 독일에서 대학을 나온 튀니지 출신 건설 엔지니어다. 2005년에서 2008년까지 서울로 와서 국내 굴지 대기업인 H건설사에서 근무했다. 그는 한국 동료들과 함께 독일 출장을 갔다가 귀국길에 함께 면세점에 들러 별 생각 없이 고급 와이셔츠를 구매했다. 그러나 한국 동료들이 입은 셔츠는 직급에 맞지 않을 만큼 초라해 보이는데다 면세점에서 와이셔츠를 두 벌 이상 사면 대폭 할인을 해주고 있어서 같이 간 한국 동료들에게 구매를 제안했다. 그런데 한국 동료들은 거기에 쓸 돈이 없다며 끝내 사양했다고 한다. 높은 연봉을 받는 한국 동료들이 왜 셔츠 하나 살 돈조차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던 쉐들리는 그 이후에 회사 야유회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싸구려 와이셔츠 두 벌을 회사에 걸어 놓고 번갈아 입는 남편과 달리 부인은 고가의 명품 옷과 가방,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등장했던 것이다.

 

쉐들리가 청소년기를 보낸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전통적인 남성 중심 사회 중 하나로 남자가 경제활동의 주도권과 가족의 소비와 자녀 교육 주도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아시아에서는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머니들이 자녀 교육을 주도한다. 그런데 독일은 정반대다. 독일 문화권의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나 베토벤은 다 엄격한 아버지에게 가정교육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독일의 천재 문호 괴테는 변호사가 되라는 아버지와 계속 다퉜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독일의 명작 영화인바에스 밴드(Weiss Band)’에 보면 아들딸이 사춘기에 자위를 하거나 늦은 나이에 소변을 못 가리는 등 창피한 행동을 하면 아버지가 허락할 때까지 팔에 하얀 리본을 매달고 지내면서나는 죄인이다라는 것을 누구나 알도록 표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심지어 자기 나라를어머니 프랑스(la mre france)’라고 부르는 옆 나라 프랑스인들과 달리 독일인들은 자기 나라를아버지 나라(Vaterland)’라고 부른다.

 

아버지가 가계를 담당하는 만큼 독일의 소비패턴은 매우 남성적이다. BMW, 메르세데스 등 독일 자동차는 시트가 딱딱하고, 승차감이 스포티하며, 엔진음이 거칠고, 문이나 트렁크가 묵직한 남성미가 특징이다. 하만-카돈이나 B&O 같은 독일어권 전자제품은 알루미늄이나 철, 목재 같은 원자재의 색상과 질감을 살리고 여성스러운 색상으로는 치장하지 않는다. 독일 액세서리 브랜드 몽블랑은 남성이 좋아하는 만년필, 시계, 지갑 등을 판매한다. 여성용은 아예 만들지도 않는다. 독일의 건축 디자인은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느낌보다는 탁 트인 느낌과 튼튼한 구조가 특징이다. 남성조차 여성들이 보기 좋게 아름다운 포장을 해주는 프랑스 패션과 달리 독일 패션은 독일 브랜드 휴고 보스(Hugo Boss)에서 보듯 남자의 무게감을 더해 상대편을 제압할 수 있는파워 슈트의 전형을 추구한다. 이런 부계사회의 문화 DNA를 가진 독일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쉐들리에게 남성들이 여성에게 소비 권한을 넘겨주는 한국 문화가 이해되지 않았음은 당연했을 것이다.

 

결론

세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들의 직장 진출이 급격히 늘자 대부분의 마케팅을 여성 소비자와 직결시켰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우 독일보다 여성의 사회 진출 정도와 남녀 임금 평등성이 훨씬 낮은데도 소비자로서 여성들의 역할이 훨씬 더 크다. 전통적으로 여성이 소비를 주도해온 국가의 남성 소비자들은 자기가 사용할 물건을 구매할 때에도 여성들이 어떻게 볼 것인지를 더 많이 신경 쓴다. 한국에서 남성용 의류 매장에 가보면 판매원들이 고객을 향해여자들은 저런 스타일을 싫어한다라고 일러주는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소비 패턴이 매우 다른 나라의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려는 기업은 사전에 그 나라에서 실제로 소비를 주관하는 가족 구성원이 누구인지부터 분석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어느 나라나 가족 간에 돈이 오가는 것은 경제 행동이라기보다 문화 행동이고, 꼭 돈을 버는 사람이 돈을 쓰는 것이 아니므로 지갑을 여닫는 권력자를 겨냥해야 시장 진입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조승연 문화전략가scho@gurupartners.kr

필자는 고교 시절 미국전국라틴어경시대회에서 우수상(Magna Cum Laude)을 받았으며 미국 고등학생 문예지에 시와 단편소설이 실리기도 했다.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NYU Stern School)을 졸업한 뒤 프랑스 최고 미술사 학교인 에콜드루브르에서 2년간 수학했다. 영국계 컨설팅회사 UnfroZenMind에서 외부 상임이사를 지냈으며 한국무역협회 등 국제마케팅리서치에 참여했다. 현재 오리진보카 대표로 <피리부는 마케터> <이야기 인문학>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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