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관리 트레이닝
편집자주
※ 이 원고는 더랩에이치에서 2013년 발간한 <쿨 커뮤니케이션 리포트: 그들은 과연 쿨하게 사과했을까?>의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위기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조직과 잘하는 조직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못하는 조직은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위기관리를 시작한다. 잘하는 조직은 위기가 터지기 전, 평소에 위기관리를 한다.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이슈를 무시하는 것은 위기를 초대하는 것과 같다(An issue ignored is a crisis invited)”고 말한 적이 있다. 여기서 이슈란 ‘잠재된 위기’의 의미다. 위기관리를 잘하는 조직은 잠재된 위기 요소가 무엇인지 정기적으로 찾아내서 선제적 조치를 취한다. 이런 위기관리 방법은 스스로의 실수나 잘못으로 발생할 수 있는 대형 위기 자체를 억제한다. 제대로 된 위기관리의 90%는 평상시에 이뤄진다.
올해 상반기 주목해야 할 네 가지 위기 사건이 있다. 대기업 임원의 스튜어디스 폭행, 대리점주에 대한 영업사원의 폭언, 대변인의 인턴 성추행, 횡령과 배임으로 인한 오너 구속이 그것이다. 독자 여러분이 포스코에너지, 남양유업, 청와대, CJ의 최고의사결정자라고 상상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최고의사결정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위기관리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 다른 기업의 위기관리 뉴스를 흥밋거리로만 읽어 넘기거나 직원들이 올리는 분석 보고서를 읽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다른 기업의 위기 상황을 스스로에게 적용해보면서 우리라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임원들과 의사결정 게임, 즉 위기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일 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이런 시간을 가져보자. 이는 발생할 수 있는 위기로부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좋은 방법이다.
사건 1포스코에너지 임원의 스튜어디스 폭행 사건
이 사건의 핵심은 한 임원(W 상무)의 폭행이라는 개인의 잘못된 행동이다. 황은연 포스코 부사장이 “창피하지만 45년간 ‘갑 노릇’만 해온 포스코 문화에서 언젠가 분명히 터질 일”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포스코의 임원이 당연히 W 상무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어렵다. 이럴 때 위기관리 조치의 핵심은 잘못을 저지른 개인과 기업을 분리하고 거리를 두는 것이다. 실제 포스코에너지는 보직 해임, 본인 사표 제출, 사표 수리라는 수순을 밟으며 이런 전략을 실행했다. 물론 좀 더 적극적인 위기관리를 한다면 처음부터 사퇴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포스코는 비교적 위기관리를 잘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사건 초기, 포스코 측 담당자가 “서비스에 불만이 있어서 항의하던 중에 손에 들고 있던 잡지가 승무원 얼굴에 스친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W 상무를 두둔하는 듯한 해명을 SBS 뉴스에 내보낸 것이다. 사실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시점에서는 중립적인 태도를 지켜야 한다. 또한 “신속하고 투명한 조사 후 즉각적 조치를 약속”하는 입장을 전달했어야 한다.
포스코의 위기관리에서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스스로 때리기’다. 포스코는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인 지난 5월22일 정준양 회장과 계열사 전체 임원이 윤리실천 다짐대회에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이미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일반인 10명 중 8명은 승무원 폭행사건으로 포스코 명성이 손상을 입었으며 10명 중 5명은 이미지 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 조사 결과는 언론에 그대로 보도됐다. 과거 기업들은 이런 조사를 하더라도 부정적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포스코는 의외의 방식을 취했다. 소셜미디어 위기관리 전문업체인 밍글스푼의 송동현 대표는 이를 두고 “위기 평가를 통한 사후 위기관리의 새로운 방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도미노피자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이들은 뉴욕 타임스퀘어의 비싼 광고판을 이용해서 구매 소비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올리는 긍정과 부정의 평가를 실시간으로 공개했다. 이는 자신들의 잘못과 약점을 스스로 공개해서 공중의 신뢰를 얻기 위한 것으로 ‘전략적 투명성’을 잘 활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사건 2남양유업의 밀어내기 및 폭언 사건
남양유업의 위기관리에서는 다섯 가지에 주목하자. 첫째, 이들은 처음부터 위기 사건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규정했다. 얼핏 보면 이 사건은 포스코에너지처럼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한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했다는 잘못된 행동이 공개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폭언 내용이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면서 일반인들은 남양유업이 평소 대리점주들에게 ‘밀어내기’를 관행적으로 저질렀고 불공정하게 대우했다는 의심을 갖게 됐다. 즉 이번 사건은 처음부터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잘못된 관행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남양유업은 5월4일 올린 첫 사과문에서 이 사건을 해당 영업사원의 사표 제출과 수리, 관리자 문책 등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사건을 조직의 잘못이 아닌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가려고 했으나 이는 잘못된 전략이었다. 이 사건은 포스코처럼 ‘거리 두기’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었다.
둘째,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폭언 파일이 공개된 것은 지난 5월 초다. 하지만 잠재적 위기는 이미 1월부터 떠오르고 있었다. 올 1월 대리점주들은 ‘비열한 남양’이라는 인터뷰 다큐를 만들어 공개하기 시작했다. 같은 달 대리점주들은 공정거래위원회에 ‘본사 상품 강매 떡값 요구’를 이유로 남양유업을 신고했다. 이때 남양유업의 경영진이 실제 현장에서 떡값 요구가 있었는지, ‘비열한’ 조치가 있었는지 몰랐다면 객관적인 조사를 즉각 실시하고 대리점주들을 설득했어야 했다. 하지만 남양유업은 1월30일 피해자인 대리점주들을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하고 대리점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이는 ‘최악의 위기관리’라고 할 수 있는데 피해자들을 더 분노하게 만들었고 결국 위기를 스스로 증폭시켰다.
셋째, 악화된 여론에 대응하기 위해 남양유업은 5월4일과 9일, 두 차례에 걸쳐 사과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별 효과가 없었다. 필자가 속한 더랩에이치에서는 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서 남양유업 제품의 특성을 고려해 전국 20∼40대 여성을 대상으로 1차 및 2차 사과문의 효과를 두 차례 조사했다. <표 1>에서 보듯 소비자가 ‘사과문을 받아들이는 정도’에서만 일부 개선 효과가 있었을 뿐 전체적으로 사과문의 효과는 1차와 2차에 차이가 없었다.
남양유업의 사과가 진정성을 의심받고 효과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기관리 방법인 사과 행위의 진정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사과 행위 이전과 이후 기업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다. 남양유업은 1, 2차 사과를 하기 전후에 피해자 고소, 잘못에 거짓말을 했고 오너는 주식을 처분했다. 오너가 사과 회견장에는 나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위기가 진행되는 중 주식을 처분해 현금화했다. 그 어떤 사과문도 효과가 없을 수밖에 없다.
넷째, 남양유업 사원의 폭언 파일을 청취한 경험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조사한 결과, 26.9 대 34.4(1차 사과), 28.4 대 35.9(2차 사과)로 청취한 적이 있는 사람일수록 사과문을 본 후에도 부정적으로 판단했다. 폭언 파일은 소셜미디어가 있어서 공개가 가능했다. 남양유업 사태에서 소셜미디어 채널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마케팅 컨설팅 업체인 커스토머 인사이트에서 소셜미디어 모니터링 도구인 레디안식스(Radian 6)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 트위터, 블로그, 페이스북은 남양유업 사태에서 부정적인 뉴스를 확산시키는 주요 채널이었다. 커스토머인사이트의 분석(3월20일∼6월14일)에 따르면 남양유업 사태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5월2일 이후 소셜미디어상 버즈(buzz) 발생량은 경쟁사인 매일유업이나 서울우유의 40배를 넘어섰으며 남양유업의 기존 버즈와 비교하면 1518배에 달했다. 물론 상당량의 버즈는 남양유업을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다섯 번째, 남양유업은 2차 사건 이후 대리점들과의 협상 과정에서도 많은 갈등을 만들어냈다. 남양유업과 비슷한 상황에서 팀버랜드의 최고경영자 제프 스워츠가 취했던 해결방식을 참고할 만하다. 2009년 6월 그린피스 지지자들은 팀버랜드가 브라질에서 사들이는 가죽이 산림 파괴는 물론 노예 노동자 양산, 아마존 토착민 방출 등을 야기할 가능성을 경고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무려 6만5000통에 달했다. 팀버랜드 임원들은 브라질에서 구매하는 가죽이 전체 구매량의 7%에 불과하니 거래처를 바꾸고 ‘앞으로 브라질에서 안 사겠다’고 선언하며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할 것을 건의했다. 하지만 스워츠 대표는 그린피스의 문제 제기가 의미를 지닌다고 판단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공급업체들이 어떤 소에서 가죽을 얻는지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놀랍게도 그는 그린피스와 손잡고 가죽의 원산지 추적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시스템을 협력업체에 적용해 환경훼손 지역에서는 가죽을 공급하지 않도록 조치했다.나이키도 이런 접근 방식을 따라 유사한 정책을 폈다. 2009년 7월29일, 팀버랜드를 압박하던 그린피스는 팀버랜드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기에 이른다. 만약 남양유업이 이번 사태에서 참여연대와 같은 제3의 기관에 대리점과의 협상 중재를 요청하고 그 결과를 역시 제3의 기관에서 발표하도록 했다면 신뢰를 얻는 데 훨씬 도움이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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