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마이클 포터
편집자주
DBR 정기 필진 중 한 명인 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새 코너 ‘손자와 마이클 포터’의 연재를 새로 시작합니다. 고대 동양의 군사전략가인 손자와 현대 서양의 경영전략가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의 전략 모델들을 비교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합니다.
<손자병법>의 난해성
<손자병법>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를 잘 아는 사람은 많겠지만 원전을 모두 읽어보거나 이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원문은 총 13편에 6000여 자로서 일반적인 글씨 크기로 쓰면 A4 용지로 약 다섯 페이지에 불과하다. 표현은 쉽지만 함축적이고 간결해 문구 속에 숨겨진 깊은 뜻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또한 <손자병법>의 원본은 2500여 년 전에 죽간(竹簡)에 쓰여져 세월이 흐르면서 대나무 조각을 이은 끈이 끊어지기도 하고 일부 원문의 배열이 흩뜨려져 심오한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손자병법>을 외국어로 번역할 경우 원문(중국어)의 뜻과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상응하는 외국어 단어를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대립 또는 모순되는 개념을 많이 다루는 도가(道家)사상이 <손자병법>을 이루는 철학의 바탕인데 이 도가사상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손자병법>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손자병법>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후세들의 노력은 지속돼 왔다. 기원전 6세기경 춘추전국시기 제(?)나라 사람 손무(孫武)가 <손자병법>을 펴낸 후 1000년이 조금 더 지나 8세기 무렵에 <손자병법>이 일본으로 전파됐다. 그 후 다시 1000년이 지나 18세기 프랑스 신부 아미오(Jean Joseph Marie Amiot)가 불어로 번역해 처음으로 유럽에 전파됐고 이후 지금까지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30여 개 국의 언어로 번역돼 왔다.
<손자병법>은 병법에 대한 책이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침서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경영전략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손자병법>
의 내용 중에는 경영에 큰 도움을 주는 내용들도 많지만 경영에 적용하기 어려운 독소조항도 상당히 많다. 기존 관련 서적들이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손자병법>을 무차별적으로 경영지침서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했는데 이는 위험하다. 경영 분야에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쟁과 경영의 본질적인 차이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손자병법>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과 경영, 그리고 <손자병법>의 특징
사람들은 기업전략을 적과 싸워 이기는 경쟁전략으로만 보기 때문에 군사전략을 경영전략에 널리 활용하지만 전쟁과 경영 간에는 본질적으로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이를 ‘가치창출의 정도’와 ‘윤리수준’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림 1)
전쟁은 인간뿐 아니라 재산과 자연자원을 파괴한다. 승자는 패자의 자원을 차지하므로 전쟁은 자원 재분배의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승자 역시 전쟁으로 인한 일정한 대가(비용)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전후(戰後) 결과는 항상 마이너스가 된다. 따라서 전쟁은 본질적으로 가치파괴(value destruction)란 특성을 가진다. 반면 경영 활동의 본질은 가치창출(value creation)이다.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관련 기업과 협력하고, 주주에게 이윤을 줌으로써 가치를 창출한다. 특히 다른 기업과 경쟁을 하면서 더욱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회 전반을 발전시킨다.
윤리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전쟁에서는 속임수가 필수요건이다. 손자는 ‘용병의 본질은 적을 속이는 것(兵者, 詭道也)’이라고 했다. 군사전략을 수립할 때는 속임수를 써서 적이 아군의 능력, 의도 및 상태에 대해 오판하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전쟁에서 윤리수준은 매우 낮거나 거의 없다. 반면 경영에서 윤리는 기본이다. 사회에 해를 주면서 이익만 추구하는 기업은 사회의 배척을 받아 시장에서 도태된다. 따라서 경영에서 윤리는 필수적이며 그 수준은 매우 높다.
비록 전쟁의 윤리적 기준을 경영전략에 적용시킬 수 없고 전쟁의 목적 또한 가치창출과 거리가 멀지만 <손자병법>은 몇 가지 점에서 기존의 일반 병법서와는 달리 경영의 목적에 상당 부분 일맥상통한다. 이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손자는 전쟁에서 무조건 적을 이기는 것보다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비용의 최소화를 강조했다.이는 전쟁이 엄청난 물자와 병력을 소모하므로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개인은 물론 국가에 큰 피해가 발생하며 남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전쟁은 돈과의 싸움이다. 손자는 군사 10만 명을 동원하는 데 하루에 천금(千金)이 필요하고 전쟁을 오래 끌수록 투입된 자원도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결국 국력이 쇠약해진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손자는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으면 군대를 동원하지 말아야 하고 더욱 중요한 것은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오래 끌면 안 된다(故兵貴勝, 不貴久)고 역설했다. 또한 그는 만약 승리의 확신이 없으면 차라리 비겁하더라도 전쟁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무조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확실하게 이기는 전쟁을 강조한 것이다.
둘째, 손자는 전쟁에서 전승(全勝·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란 방법을 강조했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다(百戰百勝,非善之善也)”라는 손자의 말은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이다. 모든 승리를 군사적 대결을 통해 얻으면 자원 소모도 그만큼 많아지고 이러한 승리는 오히려 새로운 재앙의 시작인 ‘화(禍)’가 될 수 있다. 손자는 전쟁은 피치 못할 상황에서 쓰는 최후의 대안이어야 하고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셋째, <손자병법>은 단순히 무력으로 적을 이기는 군사전략의 수준을 넘어서는 대전략(大戰略)이다.
<손자병법>에는 전쟁에 필요한 전략과 전술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전쟁 전의 준비와 이에 필요한 경제적 요소에 대한 준비, 전쟁 후 사회와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한 손자는 군사적 힘과 수단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외교 등 모든 분야의 역량을 통합해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추구하기에 일반 병법서보다 다루는 내용의 폭이 훨씬 더 넓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근대 군사이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가 쓴 <전쟁론(Vom Kriege)>에서는 무력을 통해 승리를 얻는 전략을 위주로 논의했으며 전쟁 전과 후에 대한 고려 및 기타 비무력 수단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이와 같은 <손자병법>의 전쟁비용 최소화, 완전한 승리, 대전략 등의 핵심원칙은 군사 분야뿐만 아니라 경영전략에도 적용 가능하다. 그러나 <손자병법>을 경영 분야에 적용하는 기존 연구는 대부분 <손자병법>의 일부 문구를 인용해 기업의 성공사례를 해석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경영전략을 위한 체계적인 시사점을 도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단순한 사례를 통한 군사전략과 경영전략의 연관성을 모색하는 것보다는 <손자병법>과 경영전략의 이론적 체계를 깊이 있게 이해한 후 이들 간의 연관성(그리고 비연관성)을 잘 연구해 경영전략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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