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혁-신동엽 교수의 Debate+
21세기는 문화예술의 시대
오늘은 최근 기업경영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최근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문화예술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와 기업들, 대중 모두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CEO와 경영자들이 음악, 미술, 무용 등 문화예술을 공부하는 강좌나 프로그램들이 최근 급증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로 생겨나는 문화예술 관련 경영자 교육 프로그램들의 수는 입이 벌어질 정도입니다. 각 대학에서도 경영과 예술을 접목하는 전공들을 서둘러 개설하거나 경영대학 최고경영자 과정의 핵심 내용으로 문화예술 특강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영이나 경제, 시사 등이 CEO 교육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입니다. 왜 이렇게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지, 경영과 예술을 연결하려는 최근의 경향이 논리적으로 타당성을 지니는지, 경영과 예술이 만나 창출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지 등 많은 질문이 생각납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기업 경영자들을 비롯해 사회 전반적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 및 관련 교육이 급증하게 된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우리나라만 한정해서 생각한다면 최근 문화예술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의 배경으로 ‘한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류’ 열풍이 아시아 지역을 넘어 유럽 및 아메리카 대륙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한류의 본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변했습니다. 사실 초기에는 한류를 단순히 드라마나 음악, 일부 인기 연예인에 국한된 문화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한류가 경쟁력을 갖는 범위도 일본이나 중국, 기껏해야 동남아 등 우리나라와 문화적 유사성을 가진 지역 정도로 한정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 남미 등 전 세계로 확산되고 소수 연예인이 아닌 우리나라 대중문화계 전체가 한류의 주인공으로 인식되면서 한류를 21세기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보는 시각까지 등장했습니다. 또 한류의 확산과 함께 우리나라의 국가적 이미지가 개선되고 브랜드 파워가 높아지면서 기업들도 한류 마케팅의 수혜자가 되고 있습니다. 즉 한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적 위상이 급변했다고 봅니다.
한류 열풍이 주로 K-Pop으로 불리는 가요나 TV 드라마, 영화 등을 중심으로 일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최근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전 사회적 관심이 특정 분야나 장르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가요, TV 드라마,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 분야에서 클래식 음악, 미술, 무용 등 순수예술의 각 장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주목받고 있으니까요.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이 분야에 대한 정부나 기업들의 지원 및 투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보여주기식의 단발성 지원이 아닌 인프라 구축에 기여할 수 있는 장기적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제안들이 다양한 창구를 통해 나오고 있는데요, 문화예술의 발전을 고민하는 전 사회적 논의의 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다양한 학문적 연구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학문적 연구는 과거에도 활발했지만 학문적 대상으로서의 문화예술은 미학이나 예술이론, 인문학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에 경영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분야는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경영학에서 문화예술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고 일부 경영학자들의 개인적 관심에서 극소수 연구가 간헐적으로 진행됐을 뿐입니다. 그러나 최근 경영학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과학 분야 학자들이 문화예술에 대해 앞다퉈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오늘 토론의 주제를 도출했으면 합니다. 최근 전 사회적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사회학적 이슈고 매우 광범위합니다. 기업 경영과 관련된 주제들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본 칼럼의 목적이라는 점을 고려해 경영과 예술 간 관계에 한정해 오늘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방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문화예술은 전통적으로 기업 경영 실무나 경영학적 연구에서 거의 완전히 무시돼 온 영역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하셨듯 최근 기업의 실무 경영자들뿐 아니라 경영학에서도 문화예술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같은 최근의 관심을 분석적이고 비판적으로 검토해서 경영과 예술의 만남을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제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갑자기 경영자들과 경영학자들이 문화예술의 문을 두드리나?
의미 있는 문제 제기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의 시대를 맞아 경영 실무계와 학계가 반드시 짚어 봐야 할 이슈입니다. 먼저 경영과 경영학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부터 살펴봤으면 합니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한류를 말씀하셨는데 이런 추세가 다른 나라들에서도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한류붐을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경영자들과 경영학자들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21세기 창조사회로의 전환인 것 같습니다. 획일화된 상품을 효율적으로 대량생산-대량소비하는 것을 핵심 원리로 하던 20세기 산업사회와 달리 21세기 창조사회는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기술, 고객가치 등을 창출하는 창조적 혁신이 중심이 되는 사회입니다. 따라서 20세기 산업사회적 가치 생산의 핵심 요소인 하드웨어를 대신해 소프트웨어 콘텐츠가 미래의 신성장 동력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콘텐츠의 중요한 원천 중 하나인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게 된 것입니다. 문화산업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업 경영의 모든 단계에서 창조적 혁신이 핵심 화두로 떠오르면서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창조적 혁신 역량이 절실히 필요하게 됐고 이런 역량이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던 문화예술 분야가 자연스럽게 관심을 끌게 됐습니다. 즉 21세기 창조사회로의 변화가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키워준 것입니다.
결국 21세기의 시대적 변화가 문화예술의 가치를 산업, 경영, 경제적 관점에서도 평가 받을 수 있게 한 셈이네요. 쉽게 말하면 경영자들이나 경영학자들이 문화예술도 가치 창출이나 경쟁우위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예술 분야 내부에서도 경영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경영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는 것인데요,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사회 전 분야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문화예술 역시 치열한 시장경쟁 환경에 노출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예술이 스스로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경영 마인드를 받아들이게 된 거죠. 최근 우리나라 문화예술 분야의 주요 조직들에 대기업 CEO 출신이 대표로 임명되거나 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마케팅 및 홍보 전략을 도입하는 조직이 많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또한 최근 국내외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전공인 ‘예술경영’ 역시 경영학의 기존 논의들을 기반으로 예술을 경영한다는 것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결국 시대적 변화 속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텄고 그 과정에서 경영자나 경영학계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문화예술의 경영원리 접목에 대한 필요성이 함께 커졌다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이렇게만 보면 애초에 경영자나 경영학자들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원인이 단지 성과창출의 새로운 장으로만 인식했다고 볼 수 있을지에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면 최근 급증한 CEO 대상 문화예술 강좌나 프로그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또 문화예술 현상을 분석하려는 경영학계의 움직임을 단지 기업경영의 원리를 문화예술에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로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경영자와 경영학자들이 문화예술에 큰 관심을 보이는 본질적 이유가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의 독특한 본질과 구조가 기업 조직에 주는 풍부한 통찰력이 그것입니다. 문화예술은 상시 창조적 혁신이 핵심 화두인 21세기 창조사회형 경영의 핵심 원리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배움의 장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모든 제품은 예술과 기술의 만남에서 나온다고 말했듯 21세기는 예술과 경영이 만나 만들어내는 창조사회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1세기 경영은 문화예술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언급해주셨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제가 무척 관심을 갖고 있는 이슈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신성장 동력’으로서 문화예술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점에 주로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시대적 변화 속에서 과거에는 간과됐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화예술을 이해하면서 얻는 통찰력이 21세기 경영환경에 중요한 교훈을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는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봤으면 합니다. 21세기 경영이 문화예술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 일단 창조성과 혁신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키워드1: 창조성과 혁신
좋습니다. 창조성과 혁신만큼 문화예술 분야를 설명하는 키워드도 없을 것입니다. 문화예술의 핵심은 기존 예술가나 작품과 차별되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표현일 텐데요, 우리가 어떤 예술 작품의 작품성을 평가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기준 역시 창조성과 혁신입니다. 아무리 완벽하고 정교한 기술을 사용한 작품이라도 예술가 자신의 독자적인 해석과 색깔이 없다면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과학, 기술 등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분야들 중 창조성과 혁신에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분야는 당연히 문화예술일 것입니다. 저는 창조와 혁신이 문화예술 분야의 핵심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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