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혁-신동엽교수의 Debate+
혁신에 대한 상호모순적 입장의 공존
김선혁 학계와 실무업계를 막론하고 요즘 혁신만큼 뜨거운 화두가 없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술혁신, 경영혁신, 조직혁신 등 다양한 종류의 혁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21세기 치열한 경쟁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학자들 역시 창조경영으로 불리는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하에서는 끊임없는 혁신이야말로 핵심적인 경쟁우위가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혁신에 대한 관심은 학계나 경영 현장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최근에는 행정관료나 정치인, 문화예술계 종사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혁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대선을 앞둔 유력 대권후보들은 한결같이 쇄신과 혁신을 외치고 정당들은 혁신비대위나 혁신위원회처럼 혁신을 모토로 한 정책 수립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3∼4년 전부터 시행된 혁신학교나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혁신도시 등을 비롯해 우리 주변에서 혁신을 전면에 내세운 사례를 찾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혁신의 시대입니다.
신동엽 그러나 뜨거운 사회적 관심에 휩쓸려 혁신의 양면성을 냉철하게 평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우려됩니다. 즉 혁신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적·무비판적일 뿐 아니라 맹목적으로 추종할 위험이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토론 역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듯 혁신이 정말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반드시 모두가 혁신을 시도해야 하는 것인지, 혹은 혁신의 위험은 없는 지, 혁신의 위험이 높다면 조직은 어떻게 혁신을 관리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혁신에 대해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인지 등의 이슈들을 냉정하게 검토해 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특히 혁신이 항상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이 가장 위험합니다. 그동안 발표된 수많은 연구결과들을 보면 혁신만큼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이슈도 없는 것 같습니다.
김선혁 실제로 혁신에 대해서는 학계와 실무업계가 서로 반대의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실무업계에서는 모든 조직이 무조건 시행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인 것처럼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데 반해 학계에서는 위험성을 더 강조합니다. 예를 들면 거시 조직이론의 주요 패러다임들은 대부분 혁신이 조직의 생존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신동엽 정확하게 말하면 혁신에 대한 상반된 입장은 심지어 학계 내부와 실무업계 내부에서도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경영학계만 해도 거장들 중에 크리스텐슨(C. Christensen)이나 하멜(G. Hamel) 등 실천적 지향성이 강한 학자들은 대부분 혁신의 당위성을 피력하는 데 반해 마치(J. G. March), 해넌(M. Hannan) 등 이론적으로 강한 학자들은 혁신이 위험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데 노력해왔습니다. 기업들을 봐도 일찍부터 혁신을 기업의 핵심 DNA로 강조한 스티브 잡스와 같은 경영자도 있지만 대다수 경영자들 사이에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혁신이나 창조성 등은 실제 상황을 잘 모르는 학자들의 허황한 담론이라는 입장이 대세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 기업들은 혁신보다는 개선을 통한 효율성 경쟁으로 단기 성과를 극대화하는 데 치중하고 있고요. 이렇게 학계와 실무업계 내에 혁신에 대한 정반대의 관점들이 공존하는 이유를 명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혁신은 과연 기업에 유익한 것인가? 아니면 조직이론가들이 주장하듯이 위험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은 혁신에 대한 기업 경영자들의 의사결정은 물론 학문적 연구에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왜 지금 혁신이 화두인가?: 21세기형 경쟁의 핵심 법칙
김선혁 먼저 혁신이 지금 이 시기에 이렇게 뜨거운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된 배경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또 근본적인 이슈입니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20세기 말에서 21세기로의 시대적인 대전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20세기를 규정짓는 핵심 키워드로는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추구하는 대량생산-대량소비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에 ‘양적 효율성’의 극대화는 기업을 포함한 모든 조직이 가장 우선시하는 절대적 가치였죠.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 인터넷 등이 등장하면서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했고 완전히 새로운 21세기형 경쟁환경이 형성된 것을 혁신이 강조된 이유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즉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던 20세기의 대량생산 시대와 달리21세기 환경은 극도로 역동적이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의 요구에 따라 기업도 끊임 없이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 같은 이유로 혁신이 최근 갑자기 전 세계적 화두로 부상했다고 봅니다.
신동엽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실제로 최근 학계에서도 새로운 21세기형 환경의 성격을 규정하고 이해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한 예로 90년대 이후 새로운 경쟁환경을 가리키는 용어들이 다수 등장했는데요, 대표적으로 신경제(new economy), 신경쟁(new competition), 지식경제(knowledge economy), 창조경제(creative economy), 스마트경제(smart economy), 뉴노멀(new normal), 초경쟁(hyper-competition)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개념들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조금씩 다른 점이 있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21세기형 경쟁환경의 주요 특성으로 ‘무경계성’과 ‘역동성’ ‘불확실성’을 강조합니다. 지역이나 시장, 산업별로 경계가 있고 환경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했던 20세기 환경과 그 성격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 때문에 기존 사업이나 시장에 선택과 집중해서 그 경계 안에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 양적 효율성을 추구하던 경쟁방식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완전히 달라진 21세기형 환경에서는 환경이 예측 못한 방향으로 급변할 때마다 기업도 이에 맞춰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시장과 가치를 창조해내는 혁신이 새로운 경쟁우위의 핵심 원천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21세기형 경영을 ‘상시 창조적 혁신 경영’ 혹은 ‘창조경영’이라고 부르는데 기존 시장에 선택과 집중해서 효율성 극대화로 경쟁하던 20세기형 경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경영모델입니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이 바로 이런 21세기형 경영을 대표하는 기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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