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간 경쟁이 아닌 기업 간 경쟁의 시대다. 빠르게 변하는 경쟁 환경 속에서 특정 제품 자체의 차별성은 일시적 경쟁우위만 보장할 뿐이다. 고객 니즈의 변화를 감지하고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접목한 혁신적 상품과 서비스를 끊임없이 내놓아야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혁신 경쟁의 시대에는 남다른 지식과 역량,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은 지식으로 구성돼 있다’는 경영학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예컨대 런던비즈니스스쿨의 게리 하멜(Gary Hamel) 교수는 기업은 핵심역량(core competency)과 이를 둘러싼 규율(encompassing disciplines)들의 조합이라고 정의했다. 혼다(Honda)의 핵심역량은 다양한 기계장치에 적용될 수 있는 엔진기술이다. 여기에 더해 품질관리, JIT(Just in time) 생산 체계, 빠른 제품개발 방법, 서비스 체계와 같은 규율들이 작동하기 때문에 혼다는 지속적으로 양질의 제품을 만들어내 고객에게 최선의 가격에 제때 공급할 수 있다. 하멜과 같은 학자들은 결국 기업 간 경쟁은 필요한 지식과 기술의 축적 속도와 정도, 효율성에 관한 것이라고 본다. 특히 조직에 내재된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이 중요하다. 암묵적 지식은 쉽게 기업의 경계를 넘어 확산되지 않는 ‘특유한 자산’이다. 때문에 전략적 제휴나 합작투자의 목적도 협력 상대방의 기술과 노하우, 특히 단순 구매나 라이선싱으로는 얻을 수 없는 암묵적 지식의 획득이라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활동 중에 가장 중요한 게 바로 학습(learning)이다. 지식의 습득과 유지, 강화를 위한 학습의 성과가 기업의 혁신 성과, 나아가 기업 간 경쟁의 성패를 가른다고 보기 때문이다. 경영학자들은 공통적으로 학습 의도(learning intent), 학습 역량(learning capacity), 흡수도(receptivity 또는 absorptive capacity)를 기업 차원의 학습 성과의 주요 결정 요인으로 들고 있다. 학습을 저해하는 조직 차원의 요인은 무엇일까. 폰 크로그(Von Krogh) 등은 학습을 통한 지식 창출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기업 내에 체화된 패러다임과 기존의 운영 원칙 또는 성공 법칙이라고 주장한다. 즉 학습에 있어 가장 큰 장벽은 ‘기존에 배운 것을 버리지(unlearning·폐기학습)’ 못하는 조직 문화라는 것이다. 하멜은 학습 수용도를 결정짓는 주요 요인으로 ‘폐기학습의 필요 정도(need to first unlearn)’를 제시했다. 피터 드러커는 기업은 시기를 정해 폐기학습을 정기적으로 시행해야 혁신할 수 있다며 ‘계획된 폐기(planned abandonment)’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증적 연구결과도 있다. 버나드 시모닌(Bernard Simonin) 터프츠대 교수가 국제 전략적 제휴에 참여한 147개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폐기학습을 장려하는 학습 문화를 가진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더 나은 학습 성과를 냈다. 요즘 기업은 물론 정치 사회단체들까지 변화와 혁신을 내세우지 않는 곳이 드물다. 경영자들 사이에 지식 경영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커지고 있다. 조직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훈련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겠다고 말하는 경영자들도 많다. 이런 노력을 통해 실제 암묵적 지식의 수준을 높이고 혁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조직 문화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행동의 기반이 된 논리와 원칙을 재고하고 이미 확립된 관행과 신념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지식과 창조적 아이디어가 자리 잡을 수 있다. 버리지(unlearn) 못하면 얻을(learn) 수 없다. 한인재 경영교육팀장 epicij@donga.com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AT커니 등 컨설팅 회사에서 금융·보험·정보통신·헬스케어 업체의 신사업 및 해외진출, 마케팅 전략, CRM, 위기관리 컨설팅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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