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Theory in Movies
편집자주
20세기 사회과학이 이룩한 큰 업적 중 하나로 게임이론의 등장과 다양한 분야로의 확산을 꼽습니다. 하지만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의 적용은 아직까지 어렵고 요원한 게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 속 명장면들을 통해 게임이론의 주요 개념들과 비즈니스 활용 가능성을 짚어봅니다.
죄수의 딜레마 상황은 우리 사회 곳곳은 물론 조직 내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학연과 지연에 따른 과도한 라이벌 의식과 부서 이기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마케팅과 생산관리 부서, 스태프와 실행 부서, 연구개발과 영업부서 간 오랜 갈등의 기저에는 모두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깔려 있다. 이러한 갈등 상황은 필연적으로 이기적 행동을 낳게 되고 결국 회사 전체의 이익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조직 내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막아내기 위해 단순히 직원들의 사명감과 주인의식, 도덕적 이타주의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개별적인 이익 추구보다 전사적 이익 추구가 더 유리하게끔 하는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부서 간의 소통 채널 확대, 비협조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에 대해 응징하는 조직문화 정착, 부서 간 협업이나 시너지 성과에 대해 별도의 보너스를 지급하는 방법 등을 고려해볼 만하다.
배트맨 시리즈의 가장 최근작인 ‘다크나이트(The Dark Knight, 2008)’. 정의의 수호자 배트맨(크리스찬 베일)은 관록의 형사 짐 고든(게리 올드만), 패기 넘치는 지방 검사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와 함께 그들이 살아가는 고담시(市)를 범죄 조직으로부터 영원히 구원하고자 한다. 불안을 느낀 악당들이 대책 마련을 위해 모인 자리. 보라색 정장에 우스꽝스러운 화장을 한 괴이한 광대 모습의 조커(히스 레저)가 예고도 없이 등장한다. 그는 어떠한 룰도 목적도 없이 단지 파괴와 살육을 즐기는 악당 중의 악당이다. 배트맨을 죽이고 고담시를 끝장내 버리려는 조커의 광기 어린 행각에 고담시는 점점 더 혼란에 빠져든다.
살인본능에 충실한 사이코패스인 동시에 유머러스하고 교활하기까지 한 조커는 배트맨이 가면을 벗고 정체를 밝힐 때까지 살인과 파괴를 멈추지 않겠다며 배트맨을 압박한다. 조커는 가진 것도 지킬 것도 없이 오로지 폭력 자체를 즐기는 ‘도덕성 제로’의 절대악이다. 반면 배트맨에게는 스스로 정한 엄격한 도덕률이 있으며 이것이 그의 행동을 제약하는 약점으로 작용한다. 우리의 배트맨이 밀릴 수밖에.
조커는 급기야 의도적으로 악의적인 게임 상황을 만들어 가면서까지 인간의 불신과 이중성을 비웃으려 한다. 선량한 시민들과 복역수들이 나누어 타고 있는 두 척의 배에 각각 폭탄을 설치해 놓고는 다른 쪽 배를 폭파시킬 수 있는 기폭장치를 양쪽 배에 전달한 것이다. 그리고는 1시간 내에 먼저 스위치를 눌러 다른 쪽 배를 폭파시킨 배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 속 조커의 말처럼 이건 일종의 ‘사회적 실험(social experiment)’이다. 시민들과 복역수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두 가지, 스위치를 누를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뿐이다.
이 상황은 게임이론 모형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의 전형을 보여준다. 범행을 저지른 두 명의 공범자가 있다. 그들은 각각 다른 방에서 동시에 경찰의 조사를 받는다. 둘 다 범행을 부인할 경우 혐의 입증이 어려워 경미한 처벌에 그치게 되지만 둘 다 자백하면 혐의가 모두 드러남으로써 무거운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여기까지는 쉽다. 문제는 둘 중 한 사람만 자백할 경우다. 만약 자백한 사람은 그 대가로 즉시 석방되지만 끝까지 범행을 부인한 사람은 가중 처벌돼 더욱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면?
순순히 자백할 것인가 끝까지 부인할 것인가라는 운명의 갈림길에서 두 명의 죄수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래서 ‘죄수의 딜레마’다). 이때 상식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답은 (물론 죄수들 입장에서) 두 명 모두 범죄를 부인하고 경미한 처벌만 받고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영리한 죄수들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본 후 결국 두 명 모두 서로를 배신하며 자백을 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된다. 상대방이 어떤 액션을 취하든 간에 내 입장에서는 항상 자백하는 게 더 나은 선택, 즉 ‘지배적 전략(dominant strategy)’이 되기 때문이다.
죄수의 딜레마 상황은 우리 사회 곳곳, 특히 회사 내에서 흔히 발견된다. 학연과 지연에 따른 과도한 라이벌 의식과 부서 이기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마케팅과 생산관리 부서, 스태프와 실행 부서, 연구개발과 영업부서 간 오랜 갈등의 기저에는 모두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깔려 있다. 이러한 갈등 상황은 필연적으로 이기적 행동을 낳게 되고 결국 회사 전체의 이익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가벼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파워포인트로 발표자료를 만드는 게 대중화되면서 많은 회사들은 보고서의 홍수에 질려 있는 상황이다. 특히 온갖 현란한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이 남발되면서 보고서 내용이 질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시각적 요소에 집중되기도 한다. 제한된 시간 내에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시간 안배를 ‘내용’과 ‘시각적 요소’ 중 어디에 더 많이 둘 것인지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문제는 경쟁 부서의 행동이다. 경쟁 부서가 시각적 요소에 공을 들인다면 우리 부서만 칙칙한 보고서로 얼굴을 구길 수는 없다. 반면 경쟁 부서가 내용에만 상대적으로 공을 더 들인다면 이때야말로 경영자의 눈에 쏙 드는 ‘쿨’한 시각적 장치로 점수를 딸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결국 양 부서 모두 현란한 그래픽에 과잉 투자를 하게 되고 경영진은 알맹이 없는 ‘화장발’ 보고서의 홍수에 휩쓸리게 되고 만다.
전체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 간 괴리로 인한 손실이 쌓이면 회사의 성장과 생존에 해를 끼치게 되므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사전에 모니터링하고 예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단순히 직원들의 사명감과 주인의식, 혹은 도덕적 이타주의(Altruism)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개별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조직 내의 이기적 합리성이 존재하는 한 결국에는 균형상태, 즉 딜레마 상황으로 회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개별적인 이익 추구보다 전사적 이익 추구가 더 유리하게끔 하는 유인책 마련이 필수적이다.
우선 부서 간의 소통 채널 확대가 필요하다. 개인, 혹은 부서 간의 전략적 선택에 대해 사전에 믿음이 가는 시그널이나 커뮤니케이션 기회를 넓혀줌으로써 게임의 결과를 회사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비협조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스타일로 철저하게 응징하는(tit-for-tat) 조직문화 정착을 통해 쌍방 모두의 이기심에 제동을 거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부서 간 협업이나 시너지 성과에 대해 별도의 보너스를 지급함으로써 게임의 이익구조(payoff structure)를 바꾸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직 전체적으로 ‘한솥밥 정신’, 즉 구성원 간 관계의 지속성을 상기시킴으로써 지금 당장 눈앞의 이득에 현혹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좋은 평판을 유지해 꾸준히 이득을 쌓아가도록 하는 좋은 방법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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